14,15절 심판으로 녹초가 된 백성을 달래고 어르십니다(‘타이르다’의 직역). 이스라엘은 광야(거친 들)처럼 황폐해졌지만, 하나님밖에 의지할 수단이 없는 그 광야가 새 관계의 출발지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시 처음부터, 출애굽에서부터 시작하실 것입니다. 광야를 포도원으로, 아골(고통) 골짜기를 소망의 문으로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내가 쓰러진 그곳에서 다시 시작케 하시는 주님의 다정한 음성이 들리십니까?
16,17절 ‘바알’은 자기 남편을 부르는 말이기도 했는데, 거룩한 신부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바알’이 아닌 ‘남편’으로만 불러야 한다고 하십니다. ‘남편’이신 하나님을 우상들처럼 ‘바알’이라고 부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불의와 부정이 가져다준 복을 신앙의 수식어로 치장한다면, 그것이 하나님을 바알로 부르는 일입니다.
18-20절 신부 이스라엘에게 여호와 자신을 알라고 요구하십니다. ‘안다’는 것은 추상적인 성찰이 아닌, 공의, 정의, 은총, 긍휼, 진실이라는 하나님의 속성을 우리 현실과 사회에 구현하는 것입니다. 내가 여호와를 알면, 내 욕망으로 만든 우상은 무너지고 내 야망으로 만든 활과 칼은 꺾일 것입니다.
21-23절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은 창조질서의 회복으로 이어집니다. 피와 전쟁으로 얼룩진 이스르엘은 그 이름대로 하나님의 씨를 뿌려 풍요를 거두는 곳이 될 것이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입니다. 많든 적든 바알이 아니라 여호와께 구하여 받은 것일 때 복이 될 것입니다.
3:1-5 신전 창기로 되돌아간 아내를 다시 맞아들이라고 호세아에게 명령하십니다. 값을 지불해서라도 아내의 소유권을 획득하라 하십니다. 호세아와 그 아내가 보낸 숙려기간처럼, 이스라엘은 눈에 보이는 왕도, 지도자도, 제사도 없는 암흑기를 거친 후에야 정결해져서 돌아올 것입니다. 고난으로 내 죄와 부족함이 드러나거든 자숙과 성찰의 기간을 자처해서라도 주를 경외하는 마음을 회복합시다.
첫댓글 15 거기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그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아멘! 고통의 골짜기에서 소망을 품고 나아가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나의 포도원을 평강과 평안과 풍요와 형통으로 열매맺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나에게 주어진 권리로 교만하지 않게 하시고 담대함으로 무장하게 해주시고 축복의 기도와 말씀으로 아버지를 증거하는 날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