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도 한두 번, 길면 병이 된다
옛날에도 입만 산 놈 많은 모양
나쁜 말 들었더라도 ‘침묵’ 강조
천수경에 구업 관련 죄가 4개
나쁜 말은 무익하고 재앙 불러
좋은 말도 한두 번이지 길면 병이 된다./
하물며 좋지 않은 말을 여러 번 함에랴./
혹시라도 좋지 않은 남의 말을 들었다면/
내 입에 옮기지 말고 잠잠히 말을 말라.
好言一二長爲病(호언일이장위병)
況是多番不好言(황시다번불호언)
如或聽人言不好(여혹청인언불호)
莫移吾口默無言(막이오구묵무언)
-해담치익(海曇致益, 1862~1942)
‘아가리 파이터(fighter)’라는 속어가 있다. 입을 가리키는 ‘아가리’라는 비속어와 영어 ‘파이터(fighter: 투사)’가 합성된 말이다.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입만 산 놈’이다. 근데 실제로 얼마 전, 필자가 진짜로 ‘아가리 파이터’가 되고 말았다. 정의를 정의라고 말해야한답시고 그만 엄청난 구업(口業)을 짓고만 것이다.
발단은 이렇다. 평소에 언행이 좀 가벼운 분이 계셨다. 그런데 그분이 법에 어긋난 일을 좀 했다. 그리고 그것을 (정의고 자랑이랍시고) 필자가 포함된 단톡방에 글과 사진으로 버젓이 올렸다.
몇 분이 “법에 위반된 일”이니 빨리 지우라고 했다. 하지만, 단톡방에 올린 메시지여서 삭제가 제대로 안 된 모양이다. 결국 그 일로 그분은 벌금형을 받았다. 그런데 자성하기는커녕 그분은 “이 단톡방에 있는 사람이 아니면 누가 이 일을 고자질할 사람이 없다”며 단톡방 전체 대중을 향해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표현들을 공개적으로 올렸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대꾸하는 분이 없었다.
다혈질인 필자가 참지 못하고 그 부당성을 지적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그분으로부터 모욕을 넘어서는 비난과 공격을 공개적으로 받았다. 필자도 공개적으로 그분의 잘못을 지적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할수록 상대방의 비난과 공격은 더 거칠고 세졌다.
결국은 어떤 어른과 상의한 뒤 무대응하기로 했다. 그 뒤로도 혐오에 가까운 상대방의 공격이 몇 차례 더 있었지만, 가까스로 참아냈다.(필자는 정의를 정의라고 말하기 위해 그분의 위법 사실을 지적했다고 하지만, 나중에 곰곰이 생각하니 결국은 필자의 진애[瞋碍. 화]가 그 원인이었다. 필자의 진애가 정의로 둔갑해 있는 대로 구업을 다 짓고 만 것이다.)
그러던 중 해담치익 선사의 이 선시를 만났다. 해담치익 선사 시절에도 ‘입만 산 놈’이 많았던 모양이다. (절간에서도) ‘입만 살아서’ ‘입으로 망한 놈’이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작금의 우리나라에서도 아무짝에도 ‘쓰잘데기없는’ ‘입만 살아서’ ‘입으로만 떠들다’ ‘입으로 망한 사람’을 자주 본다.)
붓다께서 ‘아가리 파이터’들의 구업 유형에 대해 ‘천수경’ 십악참회에 자세히 밝혀 놓으셨다.
이 가운데 구업[口禍之門(구화지문)]에 관계된 죄가 4개로 가장 많다.
“妄語衆罪今日懺悔(망어중죄금일참회)/ 綺語衆罪今日懺悔(기어중죄금일참회)/ 兩舌衆罪今日懺悔(양설중죄금일참회)/ 惡口衆罪今日懺悔(악구중죄금일참회)”
이처럼 구업은 한 모양으로만 오지 않는다. 망어·기어·양설·악구가 한꺼번에 작동한다. 비단, 해담치익 선사 시대만 그렇게 ‘입만 산 놈’이 많았던 것은 아닌 모양이다. 송운유정(松雲惟政, 1544~1610) 선사도 당대의 ‘입만 산 놈’들을 경계하여 다음과 같은 선시를 남겼다.
“다른 사람의 장단점은 말하지 말게/ 무익할 뿐 아니라 재앙을 부른다네/ 자신의 입을 물병처럼 지킬 수만 있다면/ 이것이 몸 편히 할 으뜸가는 방편일세(休說人之短與長(휴설인지단여장)/ 非徒無益又招殃(비도무익우초앙)/ 若能守口如甁去(약능수구여병거)/ 此是安身除日方(차시안신제일만)”
‘입만 산’ ‘아가리 파이터’들은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맹활약 중이다. 필자 역시 예외가 아니다. 우리들이 구화지문을 할 때마다 위 선시들을 음미하며 진애를 다스리는 것도 좋겠다.
해담치익 선사는 19세에 통도사로 출가했으며 1929년 선교양종칠교정(禪敎兩宗七敎正)의 1인으로 추대되었다. 계율을 잘 지켜 율사 칭호를 들었으며, 보살계법회 수계사로 활동하다 1942년 양산 통도사에서 입적했다. 저서로 문집인 ‘증곡집(曾谷集)’이 있다.
승한 스님 빠리사선원장 omubuddh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