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골프를 처음 접했던 때가 75년 26살 해군 중위로 제대하고 일본 왕래 컨테이너 피더선 제2인왕호에
승선하였을 때다. 그때가 골프 붐이 일기 시작하여 좀 산다 싶은 집 마당에는 줄에 메단 골프공을 치거나
자그만 네트를 설치해서 드라이브 스윙 연습을 하거나 응접실에서는 아이언으로 홀 넣기 연습을 하곤 했다.
그때 처삼촌 선장은 상당한 수준에 있었는데 배의 갑판 위에 줄을 메단 골프공을 네트로 치는 연습을 하고
있었고, 일본에 입항하면 인도어 연습장에 드나 들며 촬영을 해 주는 비디오 테이프를 찍어 와서는 영상을
보며 자세를 수정하기도 했고, 웨이스트 볼(골프장에서 파손된 공)을 몇 박스 씩 사서는 항해중 갑판에서
바다를 향해 쳐서 날려 보내는 등 열성파였다.
1등항해사 였던 나에게
"인제 골프가 널리 유행하게 될거니까 가장 기초가 되는 드라이브 치는 걸 가르쳐 줄테니 연습해 보자."
그러시며 골프 채 잡는 법부터 시작해서, 스윙 자세, 시선 고정등 일일이 코치해 주시어 갑판에서 줄에 메단
골프 공을 치기 시작했는데 자세에 신경쓰면 시선이 틀어 지고 시선에 집중하면 자세가 틀어 지고 참으로
섬세한 동작에 애 먹었지만 피봇이 되는 왼팔이 조그만 굽혀져도 야단을 치고 스윙 자세가 틀어지지 않도록
감독하는 바람에 기초는 확실히 닦았던 것 같다.
부산서 인도어 연습장은 부산역 광장 옆에 유일하게 있었는데 오며 가며 들러 빌려주는 골프채로 연습을
했는데 요즘 같이 자동으로 티에 올려주는 기계가 없어 국민 학생 또래의 계집애가 작은 양철 바케츠에 담아
온 공을 쭈그리고 앉아서 손으로 티 위에 하나씩 올려주는 공을 쳐야만 했다,
허리라도 펼라고 잠시 쉴라치면 바로 앞에서 빤히 쳐다보는 눈이 애처로워 보여 후딱 한 바케츠 치고 말았는데
바케츠당 700원이었고 팁 300원 해서 천원을 주었다, 그때는 버스비 토큰 하나가 30원 하던 시절이었는데,
그때 그 애들이 지금쯤 할머니가 되어 있겠지 싶으니 무상한 세월을 느끼게 한다..
그러다 컨테이너 고박을 점검하러 컨테이너 위에 올라 갔다가 떨어지는 바람에 척추 연결 고리가 부러지는
사고로 한 2년 치료 받고는 몇 해를 허리 벨트를 차고 다녀야 해서 골프는 인연을 끊게 되었다.
그 후 선장이 되니 선장 사무실에는 골프채 하프 코스가 선용품으로 비치되어 있었는데 당시 미국과 호주 등
에서는 필드 퍼블릭 코스기 5불 가량으로 싸서 다른 선장들은 다니기도 했지만, 유람선도 아니고 선원들이 하역
작업이야 당직으로 일하고 있는데 내 양심으로는 그 앞에서 골프채를 지고 다니기 싫어 그러지 못했다.
그대신 일본에 들리면 웨이스트 볼을 몇 박스 씩 싣고 다니며 항해 중 바다로 날리기도 했고, 선체 갑판 길이가
약 350미터, 400야드 정도라 가늠하고 슬라이스를 수정해 가며 날리기도 하며 몸을 풀기도 하였다..
그후로 여유도 시간도 안나서 골프를 치러 못다녔지만 어쩌다 한번씩 골프채를 잡노라면 나이들어도 그래도
자세가 제대로 나온다고 하는 것은 아마도 젊을 때 하드 트레이닝 한 탓에 몸이 기억하고 있나 싶다. 나이들어 뒤늦게
골프 배워 치는 사람들 보면 게이트 볼 치는거 같이 어째 좀 엄성한 것은 허리야 팔이 굳어서 제대로 밀을 안듣기
때문이지 싶다,
스포츠는 뭐니뭐니 해도 폼이 좀 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