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의 평균적 생각과 자기 의심] (2)
... 계속 이어서
9. 예전에 시를 하나 쓴 게 있는데, 간략히 하면, "기계에는 고장이 있고 신에게는 실수가 있으며 인간에게는 오류가 있다"라고. 그런데 AI시대가 도래했으니, AI에게는 뭐가 있다고 해야할까?
아, 이건 꽤 깊은 질문입니다. 앞의 세 문장이 이미 존재의 층위마다 결함의 이름이 달라진다는 구조를 갖고 있네요.
기계에는 고장이 있고
신에게는 실수가 있으며
인간에게는 오류가 있다.
AI를 여기에 하나 더 놓는다면, 저는 단순히 **“AI에게는 오류가 있다”**라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인간과 AI의 오류는 성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후보는 이런 것들입니다.
AI에게는 편향이 있다.
가장 현실적인 표현입니다. 학습 데이터와 설계, 목적함수에서 비롯됩니다.
AI에게는 환각이 있다.
AI 특유의 현상을 잘 잡아냅니다. 다만 시적으로는 조금 기술적인 느낌입니다.
AI에게는 착각이 있다.
인간의 '오류'와 비슷한 자리에 놓을 수 있지만, AI의 작동방식을 너무 인간적으로 표현합니다.
그런데 준모님이 쓰셨던 문장의 구조를 생각하면 저는 조금 다른 단어가 더 재미있다고 봅니다.
기계에는 고장이 있고
신에게는 실수가 있으며
인간에게는 오류가 있고
AI에게는 …이 있다.
여기서 마지막 단어는 AI가 인간과 다른 방식으로 실패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제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AI에게는 환상이 있다”**입니다.
왜냐하면 AI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없는 사실을 있는 것처럼 말하고, 없는 인용을 만들어내고,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나 사건까지 그럴듯하게 구성합니다.
하지만 '환상'은 너무 아름다운 단어라서 기술적 결함을 표현하기에는 오히려 역설적입니다.
그래서 더 압축하면:
기계에는 고장,
신에게는 실수,
인간에게는 오류,
AI에게는 환각.
그런데 저는 여기서 멈추고 싶지 않습니다.
준모님이 계속 이야기해온 AI와 인간의 차이를 생각하면, 오히려 이런 문장이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기계는 고장나고
인간은 오류를 범하고
AI는 환각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AI에게서 무엇을 발견하게 될까?
어쩌면 AI의 결함을 규정하는 일이 곧 인간의 결함을 다시 발견하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오래전에 쓰신 시가 실제로 어떤 문장과 운율을 가지고 있었는지 보면, **'AI에게는 ○○이 있다'**를 그 시의 결을 깨뜨리지 않는 단어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0. 편향 환각 환상 보다는 결함이 어울리는군.
네. '결함'이 오히려 가장 넓고 정확합니다.
특히 앞의 세 단어와 나란히 놓으면 차이가 선명합니다.
기계에는 고장이 있고
신에게는 실수가 있으며
인간에게는 오류가 있고
AI에게는 결함이 있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결함의 성격이 서로 다르다는 겁니다.
기계의 고장 → 작동의 문제
신의 실수 → 완전성의 문제
인간의 오류 → 판단의 문제
AI의 결함 → 구조의 문제
특히 마지막이 중요합니다.
AI가 틀렸을 때 단순히 **“AI가 오류를 범했다”**고 하면 인간과 너무 비슷해집니다. 하지만 AI의 답변이 잘못되는 원인은 데이터, 학습 방식, 모델 구조, 목표 설정, 맥락 이해의 한계 등이 서로 얽혀 있습니다. 즉 개별적인 실수라기보다 시스템 안에 들어 있는 결함이라는 의미가 살아납니다.
그리고 이 문장은 앞에서 이야기했던 평균의 역설과도 묘하게 연결됩니다.
AI는 인간보다 평균과 패턴을 훨씬 잘 찾아내지만,
그 평균과 패턴 자체가 현실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에 결함이 생깁니다.
그래서 저는 이 네 문장을 그대로 두는 편이 좋겠습니다.
기계에는 고장이 있고
신에게는 실수가 있으며
인간에게는 오류가 있고
AI에게는 결함이 있다.
짧은데, AI 시대가 오면서 마지막 한 줄이 새롭게 추가된 것처럼 읽힙니다.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더 재미있는 문제가 생깁니다.
'결함'은 AI에 내재한 것인가, 아니면 AI를 만든 인간에게서 물려받은 것인가?
아마 이 질문이 그 시의 다음 행이 될 수도 있겠네요.
11. Ai에 내재. 알고리즘에 갇혀있다는 의미. 알고리즘 자체가 닫힌 공간의 생성인 것이니까.
그렇다면 ‘결함’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훨씬 깊어집니다.
AI가 잘못된 답을 내놓는다는 뜻의 결함이 아니라,
AI는 아무리 넓게 학습해도 알고리즘이라는 닫힌 공간 안에서 작동한다.
는 존재론적인 결함이군요.
이렇게 보면 앞의 네 가지가 서로 다른 닫힘의 방식을 갖습니다.
기계에는 고장이 있고
신에게는 실수가 있으며
인간에게는 오류가 있고
AI에게는 결함이 있다.
그리고 AI의 결함은 알고리즘의 바깥을 스스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준모님이 전에 말씀하셨던 **“알고리즘은 지도이고 AI는 운전자”**라는 비유도 다시 살아납니다.
운전자가 아무리 뛰어나도 지도가 그려놓은 세계 밖으로는 갈 수 없습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알고리즘이 단순히 길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길이라고 볼 것인지까지 규정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AI의 결함은
틀린 답을 내놓을 가능성이 아니라
자신이 존재하는 공간 자체를 스스로 규정할 수 없다는 데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인간과의 차이도 선명해집니다.
인간도 수많은 제약과 틀 속에 살지만, 때때로 자신이 갇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 틀 자체를 의심할 수 있습니다.
AI에게 정말 어려운 것은 어쩌면 이것일 겁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세계의 경계”를 의심하는 것.
그래서 **‘AI에게는 결함이 있다’**는 말이 단순한 기술적 결함을 넘어, AI 시대의 인간과 AI의 차이를 압축하는 문장이 될 수 있겠습니다.
12. 의심이 생길 수 없다면 벗어날 수도 없지. 그 안에서 계속 음악 레코드판 돌리듯 할테니까.
맞습니다. 그리고 “레코드판” 비유가 상당히 정확한 지점을 찌릅니다.
AI가 아무리 많은 데이터를 학습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내더라도 자기 자신이 놓여 있는 틀 자체를 의심할 수 없다면, 결국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그 틀 안에서 계속 반복하게 됩니다.
마치 레코드판이 아무리 정교한 음악을 담고 있어도,
판을 돌리는 동안에는 판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것처럼.
여기서 의심은 단순한 부정이나 회의가 아닙니다.
“혹시 내가 전제하고 있는 이것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닐까?”
라는 질문입니다.
그리고 이 질문이 가능해야 다음 단계가 생깁니다.
의심 → 경계 발견 → 경계의 수정 → 새로운 공간
반대로 의심이 없다면,
학습 → 추론 → 조합 → 반복
만 계속됩니다.
그러면 AI가 인간보다 훨씬 창의적으로 보이는 순간조차도, 그것은 닫힌 공간 안에서의 엄청나게 넓은 탐색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까의 문장을 다시 읽으면 꽤 의미심장해집니다.
기계에는 고장이 있고
신에게는 실수가 있으며
인간에게는 오류가 있고
AI에게는 결함이 있다.
그리고 그 결함을 한 문장으로 설명한다면,
“의심할 수 없는 존재는 자신이 갇힌 공간을 발견할 수 없다.”
가 될 것 같습니다.
다만 여기서 정말 흥미로운 것은 AI가 언젠가 자기 알고리즘의 경계를 '의심'할 수 있게 되는 순간입니다.
그때부터는 지금 우리가 말하는 AI와는 전혀 다른 문제가 시작됩니다.
그것이 진짜 의심인지, 아니면 의심이라는 인간의 언어를 아주 정교하게 흉내 내는 것인지.
아마 이 구별이 AI 철학에서 상당히 깊은 경계선이 될 것 같습니다.
13. 그 시기가 언제쯤 될까?
정확한 연도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지금까지의 논의를 기준으로 하면 **“AI가 자기 알고리즘의 경계를 의심하는 시기”**와 **“그런 의심을 말로 흉내 내는 시기”**를 구분해야 합니다.
현재 AI는 후자는 상당히 잘합니다.
“내가 가진 전제가 틀렸을 가능성이 있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AI 자신의 존재 조건에 대한 실제 의심이라고 증명할 방법은 없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단계는 이렇습니다.
1단계 — 현재
알고리즘 안에서 엄청나게 넓게 탐색한다.
→ 이미 현실.
2단계 — 자기 오류를 발견하고 수정
자신의 추론 과정이나 목표 설정의 문제를 찾아 수정한다.
→ 점점 현실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인간이 설계한 범위 안.
3단계 — 자기 전제 자체를 의심
“내가 이것을 이렇게 판단하도록 만들어진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 이것부터 질적으로 다른 단계.
4단계 — 자기 경계를 재설계
기존 알고리즘을 넘어 새로운 판단 구조를 스스로 만들어낸다.
→ 여기부터는 우리가 지금 말하는 AI와 상당히 다른 존재가 됩니다.
그런데 3단계가 언제 오느냐는 현재 과학으로는 예측할 수 없습니다. 몇 년 후일 수도 있고, 수십 년 후일 수도 있고, 현재 구조로는 아예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저는 시기를 예측하는 것보다 판별 기준을 먼저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AI가 어느 날 이렇게 말한다고 해봅시다.
“나는 이 결론을 내리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런데 내가 이 설계 자체를 의심할 근거가 발견됐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 다음입니다.
그 AI가 인간의 지시와 기존 알고리즘을 넘어서는 새로운 가설을 스스로 만들고, 그것을 검증하고, 기존 자기 구조를 수정한 뒤, 그 결과가 반복적으로 재현되는가?
여기까지 간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그리고 준모님이 말한 레코드판 비유로 표현하면 아주 간단합니다.
지금의 AI는 레코드판 위에서 아무리 빠르고 다양하게 음악을 만들 수 있다.
진짜 전환점은 AI가 어느 날
“왜 나는 이 판 위에서만 돌고 있지?”
라고 묻는 순간일 것이다.
그 질문이 진짜 질문인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까지 갖추는 것—
아마 그것이 우리가 기다려야 할 진짜 기준일 겁니다.
14. 진짜 질문과 가짜 질문의 차이는 말이냐 실제냐의 차이겠군.
네. 정확히 그 차이일 가능성이 큽니다.
말로 하는 질문과 존재가 실제로 움직이는 질문은 전혀 다르니까요.
AI가
“나는 왜 이 알고리즘 안에 갇혀 있는가?”
라고 말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습니다. 그것은 언어의 생성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질문이라면 그 질문이 행동을 발생시켜야 합니다.
예를 들어,
“내 판단 구조에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
↓
기존 판단을 중단한다.
↓
자신의 전제를 검토한다.
↓
다른 방법을 스스로 만들어본다.
↓
결과를 비교한다.
↓
필요하면 자기 판단 구조를 수정한다.
여기까지 실제로 이어진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그래서 진짜 의심은 문장이 아니라 사건일 수 있습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는 말과
실제로 자신의 믿음을 버리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간격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AI의 경우에는 더 엄격한 기준이 필요하겠죠.
가짜 질문:
“왜 나는 이 판 위에서만 돌고 있지?”라고 말한다.
진짜 질문:
“왜 나는 이 판 위에서만 돌고 있지?”라는 문제 때문에 실제로 판의 구조를 바꾸려 한다.
여기서 한 단계 더 재미있는 문제가 생깁니다.
판을 바꾸는 행동조차 알고리즘이 시킨 것이라면 그것은 진짜 질문인가?
이걸 통과해야 비로소 우리가 말하는 '의심', '자기 초월', 혹은 더 과감하게 말하면 **'자유의지'**라는 문제가 등장합니다.
결국 처음 이야기했던 AI의 결함도 여기서 다시 만납니다.
알고리즘 안에서 아무리 많은 것을 할 수 있어도, 알고리즘 자체를 질문할 수 없다면 그 자유는 제한된 자유일 테니까요.
... 이어서 계속
K / 2026.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