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 성안동 경찰청 맞은편 함월루에서 굽어보면 울산의 전망이 한 눈에 들어온다. 저 멀리 동구와 남구를 잇는 울산대교를 비롯해 왼편으로 무룡산 정상이 보인다. 가운데로 눈길을 돌리면 태화강은 도시를 남구와 중구로 양분하며 길게 드러누워 있고, 태화강 사방으로 촘촘히 들어선 오밀조밀한 건물들이 사열하는 군인처럼 늘어서 있다. 함월루 코앞에는 혁신도시에 들어선 공공기관 본사 건물들이 이곳저곳에서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울산 모든 지역이 그렇지만 종갓집을 자부하고 있는 중구의 구도심에도 재개발 붐이 불어 닥쳤다. 복산동 울산고 주변으로 신규아파트가 속속 들어섰고, 건너편은 일대가 대다수 철거돼 몇몇 건물만 남은 상태다. 서덕출 조각공원은 평창아파트 바로 옆 언덕에 자리하며 함월루를 올려다보고 있다. 이 공원은 그리 큰 면적을 지니지 않았지만 울산 중구 출신의 아동문학가 서덕출 선생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됐기에 의미가 남다르다. 서덕출(徐悳出) 선생은 1906년 울산 교동에서 부친 서형식과 모친 박향초 슬하에서 5남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6세 때 교동에서 학산동으로 이사했고, 집 마루에서 베개를 가지고 놀다가 미끄러져 왼쪽 다리를 다쳤다. 당시 울산과 부산을 오가던 의사를 불러 치료에 전념했지만 염증이 척추로 번져 등이 굽어져 영영 불구가 되고 말았다. 그는 시대일보 기자를 지냈던 부친에게서 지성을 물려받았고, 고성사또의 딸이었던 모친에게서 직접 한글을 배우게 되었다.
애로 인해 먼 곳을 다니기가 어려웠던 선생에게 문학은 운명처럼 다가왔는지 모른다. 선생이 19세였던 1925년에 아동잡지 `어린이`에 「봄편지」가 입선돼 공식적인 문단활동을 시작했다. 「봄편지」는 일제의 박해 아래 놓인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어린이들에게 강한 애국심을 고취하며 상당한 화제를 불러 모았다. 소파 방정환 선생이 중심이 돼 1923년 3월 16일 발족된 색동회는 그해 5월 1일 일본 동경에서 창립됐다. 색동회 회원들은 봄편지에 감동을 받아 돈을 갹출해 만년필과 함께 감사편지를 전하기도 했다. 서덕출 선생의 동시 및 작품은 동요로 작곡돼 아이들과 사람들에게 불려지며 큰 방향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다. 선생과 색동회의 교류는 계속 이어졌다. 선생은 1934년 11월 1일 병영에 살던 17세 전필남이라는 규수와 혼인해 1남 1녀를 두었고, 이듬해 약제사 시험에 합격해 `애생당`이라는 신약방을 열기도 했다. 암울했던 시대, 삶의 어두운 터널 저편의 희망을 동요로 노래했던 서덕출 선생은 그의 예명 신월(晨月)처럼 새벽달이 되길 희구하다 자택에서 34세의 젊은 나이로 별세했다. 지난 2011년 중구는 복산 공원에 서덕출 공원을 조성했다. 서덕출 선생의 전시관과 동상을 건립했고, 전국에서 출품한 조각 작품 15점을 뽑아서 공원 곳곳에 배치해 조각공원의 면모를 갖추었다.
지난 20일 12회째를 맞은 서덕출공원 문화제를 다녀왔다. 이날 행사에서는 선생의 작품을 기리는 시낭송이 있었고 어린이 합창단의 노래가 가을 하늘로 청아하게 퍼져나갔다. 이에 앞서 어린이 글짓기 대회와 그림그리기 대회도 성황리에 열렸다. 황혼 무렵까지 이어진 문화제에는 인근 500여 명의 주민들이 참석해 중창, 가요, 밸리댄스, 비보이 무대 등 다양하게 펼쳐진 각종공연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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