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留 머무를/남길 류, 齋 삼갈/집 재)는 남기고 삼가다, 또는 기교를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둔 집이라는 뜻이다.
낙선재는 본래 창경궁에 속해 있던 건물이었으나 근래에 창덕궁에 속한 것으로 취급하게 되었다. 이 건물은 헌종 12년에 건립한 것으로 본 건물에 접속된 석복헌(錫福軒)과 수강재(壽康齋) 등 3개의 건물을 총칭하여 낙선재(樂善齋)라 부르고 있다.
정문은 장락당(長樂堂)으로 낙선재 남행각(南行閣) 12칸에 설치되었다.
이 문을 들어서면 넓은 마당 뒤로 낙선재가 있다.
정면 6칸 중 우측 한 칸이 전면으로 돌출되어 누마루가 되었고 몸채는 장대석 기단 위에 방형(方形) 초석과 기둥을 한 일반적인 주택풍으로 세워졌다.
누마루의 아래 분구(焚口) 있는 주변은 불규칙한 선의 모자이크 장식이 독특하며 주간의 문짝의 무늬가 다양하다.
집 뒤로는 큰 석재로 쌓아 만든 화계(花階)가 있고 굴뚝과 각 단의 꽃나무, 괴석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조원(造園)이 뛰어나다.
낙선재에 연접한 석복헌은 역시 정면 6칸, 측면 2칸으로 안사랑에 해당하는 건물이다.
3급 장대석 기단에 계단이 둘 설치되어 있다.
사다리꼴 초석 위에 방주가 섰다. 전면의 주간에는 세장(細長)한 장지문이 달렸는데 그중 중앙 1칸은 머름을 하여 낮고 문살 모양도 다른 문과 다르다.
건물 주위로 행각이 둘렸으며 밖으로 외행각(外行閣)이 나 있고 이것이 수강재에 이어진다.
수강재는 15칸 규모이며 5량 가구(架構)의 홑처마 단층 기와지붕을 한 건물이다.
낙선재가 있던 창경궁은 동물원이 되었다.
창경원은 일제에 의해 1909년 조선시대의 궁궐 중의 하나인 창경궁에 설치되어 일반에게 공개되었는데, 이는 우리의 궁궐을 격하시키고 민족의 얼을 짓밟으려는 일제의 획책 가운데 하나였던 것으로 평가된다.
이곳에 있던 동·식물원은 창경궁 복원계획에 따라 1983년 경기도 과천시 막계동으로 옮겨 서울대공원으로 개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