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4월, 인천상륙작전 성공 이후 6‧25전쟁의 主전선이 3‧8선 이북으로 옮겨가면서 후방부대에는
다소 여유가 생겼다. 춘천에 주둔하고 있던 제11사단 헌병대장 김시진 중령은 강릉으로 출장 명령을
받았다. 출발신고를 하러 온 김 중령에게 사단장은 ‘귀대할 때 싱싱한 생물 좀 가져오라’며 은근한 부
탁을 했다. 당시 강릉에는 전국 각지에서 처녀들이 몰려들어 유일한 생계수단으로 몸을 팔고 있었고,
사단장은 여자를 매우 밝히는 것으로 유명했다.
김시진 중령은 귀대하는 길에 사단장이 부탁한 ‘싱싱한 생물(회)’ 한 접시 외에 양주까지 한 병 사서
우쭐한 채 사단장실로 들어갔다. 사비로 양주까지 사왔으니 칭찬을 받을 것으로 잔뜩 기대한 것이다.
참모들은 술을 입에도 대지 않는 사단장에게 웬 양주인가 싶어 사단장실을 향해 촉각을 곧추세우고
있었다.
“야 이놈아! 내가 싱싱한 생물 데려오라고 했지 회 먹고싶다고 했냐!?”
김시진 중령은 몹시 억울한 표정으로 회와 양주병을 들고 사단장실을 나왔다. 밖에 있던 참모들은 웃
음을 참느라고 전투할 때보다 몇 배는 더 힘이 들었다. 순수하기 짝이 없는 김시진 중령은 그때까지
도 ‘싱싱한 생물’이 여자를 뜻하는 말인 줄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5‧16혁명 직후 김시진 소장은 반혁명분자로 방첩대에 체포되었다. 평생 원칙대로만 살아온 김 소장은
군인이 본연의 임무를 저버리면 안 된다며, 혁명군의 부대 이동 요청을 단호히 거절했던 것이다. 혁
명재판에 회부되면 불명예제대가 뻔했다. 그때 혁명주체 중 한 사람인 제6관구 사령부 참모장 김재
춘 준장이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을 찾아왔다.
“김시진 소장은 싱싱한 생물이 여자인 줄도 모르던 순수한 사람 아닙니까? 김 소장처럼 강직한 군인
이라면 당연히 부대 이동 요청을 반대해야지요. 용서해서 우리 사람으로 씁시다.”
김재춘은 김시진이 회 한 접시와 양주 한 병을 들고 사단장실에서 쫓겨나올 때, 박정희와 함께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고 안간힘을 Tm던 참모 중 한 사람이었다. 박정희는 김시진을 사면한 뒤, 대통
령 취임 후에는 청와대 정보비서관으로 발탁하여 오랫동안 중용했다.
개발 전의 여의도. 긴 아스트는 비행장 활주로다.
서울의 인구 증가추이는 1940년 100만 명을 넘어선 이래 1955년 150만, 1958년 200만, 1968년 400만,
1979년 800만, 1988년 1천만 명을 넘어서는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정도(定都) 600년을 통틀어
서울의 발전에 가장 공이 큰 인물은 ‘불도저 시장’이라는 별명을 가진 제14대 김현옥(1926~1997) 시
장이었다. 5‧16혁명 주체인 김현옥은 1962년 부산시장을 거쳐 1966년 3월 서울시장으로 발탁되어
1970년 4월 와우아파트 붕괴사고로 물러날 때까지 4년 동안 서울의 지도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그가 이룩해놓은 업적을 보면, 이게 과연 시장 한 사람이 4년 동안 모두 이룩해낸 일들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엄청나다.
기자들에게 공사내역을 설명하는 불도저 시장 김현옥
그는 먼저 사직터널‧삼청터널‧남산1,2호터널‧강변북로‧북악스카이웨이‧서울역고가도로‧청계천고가도
로 등을 개설하여 교통의 흐름을 획기적으로 개편했다. 144개의 육교와 세종로 및 명동지하도를 만
들어 안전한 보행을 확보했고, 와우아파트를 비롯한 400동의 시민아파트를 건설하여 좋은 주거환경
을 제공했다. 한강‧여의도‧강남 등지의 계획적인 개발을 통해 환경을 개선하고 발전의 토대를 닦아놓
은 것도 김현옥이었다. 그는 지하철 건설계획을 수립하여 추진하기도 했다. 그 준비과정으로 전차선
로를 모두 철거하고 본격적으로 지하철 건설에 착수하려고 했지만, 단기간에 너무 많은 사업을 벌이
다보니 미처 재원을 확보할 수 없어 착공을 미루고 있었다. 지하철 건설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동분
서주하던 중, 와우아파트가 와르르 무너지면서 옷을 벗고 말았다. 서울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획기
적인 자취를 남겨놓은 김현옥은, 1981년 경남 양산으로 내려가 사립학교인 장안중학교 교장으로 봉
사하기도 했다.
다비치는 국내 최고의 2인조 여성 보컬그룹이다. 두 사람 사이가 너무 좋다보니 무대에서든 생방송
중이든 사소한 일로 한 번 웃음보가 터지면 웃음을 멈출 수 없어 노래를 망치기 일쑤다. 익숙한 팬들
은 오히려 함께 웃으며 박수로 두 사람을 격려해준다. 2008년에 결성되었으니 어언 12년째. 노래 잘
하는 듀엣은 많지만 오래도록 이처럼 화목하게 유지되는 멤버들은 드물다. 다비치 멤버 이해리(1985)
와 강민경(1990)이 어느 방송 프로에서 나눈 대화다.
사회자 ; 두 사람은 서로 다툰 적 없어요?
강민경 ; 네, 없어요.
사회자 ; 그래도 의견 차이는 있을 거 아니에요?
강민경 ; 있지요. 그렇다고 다퉈요? 상의해서 옳은 걸 선택하면 되지.
사회자 ; 강민경 씨는 이해리 씨에게 바라는 거 없어요?
강민경 ; 있어요. 죽으면 언니 곁에 묻히고 싶어요.
이해리 ; 뭐? 나보고 먼저 죽으라고?
강민경 ; 그럼 내가 언니보다 먼저 죽어?
이해리 ; 그건 안 되지.
이해리가 퀴즈를 맞히면 강민경이 ‘와, 우리 언니 천재!’ 이러고, 이해리가 노래를 부를 때면 강민경이
입술에 검지를 세워 갖다 대며 주변 사람들이 조용히 하고 경청해주기를 바라는데 어떻게 다툼이 일
어나겠는가. 사실 2008년 데뷔했을 때만 해도 두 사람은 외모도 투박하고 의상도 촌스러운데다, 노래
할 때 목소리까지 세련되지 못했다. 그러나 부르는 노래들이 히트하기 시작하면서 2011년부터 지금
처럼 세련된 목소리에 외모와 의상이 눈에 띄게 일신되었다. 아마도 다비치 덕분에 재정이 안정된 기
획사가 그때부터 최고 수준의 뒷받침을 하기 시작한 게 아닌가 싶다. 강민경의 노래 소리는 알맞게
잘 구워놓은 가래떡 맛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쫄깃쫄깃한 감칠맛이고, 이해리의 노래 소리는 거기에
조청을 찍어 먹는 맛이다.
갯가재는 앞다리의 펀치력이 매우 강력하여 몸무게의 2500배에 달하는 힘을 발휘한다. 그 힘으로 갯
가재는 눈 깜짝할 사이에 먹이를 죽이거나 기절시킨다. 두꺼운 조개껍질도 펀치 한 방으로 간단하게
깨뜨려 살을 발라먹을 수 있다. 갯가재의 앞다리는 특수한 분자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강력한 충
돌에도 전혀 손상을 입지 않는다. 미국 국방부는 갯가재 앞다리의 분자구조를 연구하여 강력한 힘을
지닌 가볍고 질긴 소재 개발을 앞두고 있다. 그러한 특수소재가 개발되면 무기뿐만 아니라 비행기‧자
동차‧선박‧기계류 등 민간영역에서도 매우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갯가재는 전 세계의
해역에 고루 서식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몸길이 1~30㎝의 갯가재가 250여 종 발견되었다. 우리나라
에서도 전 해역에서 많이 잡혀 식용으로 애호되고 있으며, 지방에 따라 딱새‧딱새우‧쏙‧털치 등으로
불리고 있다.
출처:문중13 남성원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