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우 마진 (The Narrow Margin)
1952년 미국영화
감독 ; 리처드 플라이셔
출연 : 찰스 맥그로, 마리 윈저, 재클린 화이트
퀴니 레너드, 데이비드 클라크
'Narrow Margin' 을 사전적으로 직역하면 '간발의 차이' '근소한 차이' '좁은 여백' '적은 이익'등등으로 할 수 있는데 장사꾼이 거의 안남기고 판다고 할때 사용할 수도 있고 운동경기에서 간신히 이길때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가까스로 위기를 벗어난다 뭐 그렇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근소한 차이' '미세한 차이' '간발의 차이' 등 멋없는 영화제목으로 쓰이기는 부적절하니 그냥 '내로우 마진' 이라고 하는게 나을 듯 합니다. 국내 개봉되지 않은 영화라서 우리나라 제목이 없습니다. 다만 1990년 진 해크먼 주연으로 리메이크 된 영화가 '익스프레스'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는데 그렇다고 이 원전 영화까지 그 제목을 쓸 수는 없지요. 진 해크먼 영화를 보진 못했는데 대강 스토리를 훑어보니 많이 각색이 들어갔고, 특히 결졍적 반전은 아예 제외시킨 것 같더군요. 그냥 쫓기는 자와 쫓는 자의 서스펜스 위주로 그려낸 것 같으니 급행열차를 의미하는 '익스프레스'라고 제목을 쓴 것 같은데(실제 열차에서 벌어지는 내용 위주입니다.) 50년대 원전은 스피드 보다는 치열한 머리싸움이 벌어지거든요.
50년대의 잘 만든 고전영화 치고 이렇게 유명배우가 안 나오는 영화도 드물 것입니다. 필름 느와르 영화들이 유명 배우보다 감독과 탄탄한 시나리오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은데 제작비가 덜 들어가는 장르다 보니 비싼 배우를 잘 안쓰는 경향이 많기도 합니다. '우회' '건 크레이지' 같은 영화도 그렇잖아요. 더구나 영화가 발표된 1952년 당시는 아직 리처드 플라이셔 감독이 유명해지기 전이고 이 영화 촬영은 1950년에 이루어졌으니 더욱 그렇죠. 이 영화 이후부터 리처드 플라이셔는 '해저 2만리'를 비롯하여 메이저 감독으로 많은 활약을 하게 되지요.
증인호송을 소재로 한 필름 느와르 입니다. 프랭키 닐 이라는 갱이 살해당하고 그의 목록을 갖고 있는 아내 닐 부인을 경찰과 악당들이 모두 노립니다. 경찰은 닐 부인을 증인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무사히 호송해 오려고 하고 두 민완형사에게 임무를 맡깁니다. 그들은 닐 부인을 LA까지 호송해 오기 위해 찾아가서 데리고 나오지만 벌써 낌새를 눈치챈 악당 중 한 명의 기습으로 경찰 한 명이 죽고 범인을 놓칩니다. 결국 브라운 형사(찰스 맥그로)와 닐 부인(마리 윈저)은 앞으로도 공격해 올 적들의 추적을 단 둘이서 뿌리쳐야 하는 상황입니다. 겨우 열차에 탄 그들은 추적자들도 분명 함께 열차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경계를 합니다. 다만 추적자들은 닐 부인의 얼굴을 모른다는 것. 브라운이 경찰 이라는 것을 악당들이 직감한 듯, 브라운이 닐 부인을 숨겨주고 있는 객실에 여러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총을 가진 킬러, 회유하려는 자, 방을 바꾸자고 요구하는 뚱보 등등...강약을 조절하면서 압박해 오는 사람들, 그들로부터 닐 부인을 지키려는 형사의 필사적인 머리싸움과 숨바꼭질이 계속됩니다. 그런 와중에 브라운 형사는 식당칸에서 만난 싱크레어 부인(재클린 화이트)과 그녀의 철없는 어린 아들로 인하여 정체가 탄로날 위기를 맞기도 하는데 더 큰 문제는 악당들이 브라운과 자주 접촉하는 싱클레어 부인을 닐 부인으로 오해하게 된 것입니다. 그 덕분에 주의를 딴 데로 돌릴 수도 있지만 애꿎은 아이 엄마를 악당의 희생양이 되도록 방치할 수는 없는 것, 브라운 형사는 닐 부인 한 명 지키는 것도 벅찬 상황에서 이제 싱크레어 부인의 안위까지 걱정해야 합니다.
1시간 11분 밖에 안되는 짧은 영화입니다. 그중 초반부 몇 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열차에서 벌어지는 내용입니다. 두 사람이 함께 지나가기에는 비좁은 열차의 복도, 그리고 침대칸으로 나누어저 있는 객실, 식당칸, 화장실 등 달리는 열차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서스펜스 넘치는 추적극 입니다.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 외부에서 누가 들어올 수도 없는 특급열차, 결국 그 안에 있는 사람들끼리의 추격전은 그 한정된 공간 안에서 서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 스피디한 서스펜스 보다는 서로 치열하게 머리싸움을 벌이는 내용이 볼만합니다.
중요한 증인을 저런식으로 허술하게 호송하나 싶기도 할 정도로 신분마저 사실상 노출된 형사 한 명이 몇 명인지, 누군지도 모르는 적들과 맞서야 하는 어려운 상황으로 전개가 되는데 나중에 경찰이 그리 호락호락하게 작전을 수행하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후반부에 가서 기막힌 반전이 있기도 하지요. 마치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노웨이 아웃'이 연상되기도 하는. 열차 라는 공간에서 비밀 경찰이 어떤 임무를 수행한다는 점에서 찰스 브론슨이 주연한 '군용열차'가 연상되기도 합니다.
주요 핵심배우 3명이 별 매력없는 배우들이긴 한데 오히려 현실성이 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세상 어디나 늘 매력적인 인물들만 살고 있는건 아니니까요. 특히 형사 같은 인물은. 중간에 대체 저 여자는 쓸데없이 왜 자꾸 나오나 싶게 전개되기도 하는데 오히려 후반부에 여주인공이 사실상 바뀌는 듯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이라서 전보를 활용하는 내용도 그 시대의 상황을 반영하기도 했고. 그러고 보면 휴대폰의 등장이 범죄를 줄이는데 많은 도움이 되기도 하겠습니다. 위험한 상황을 신속히 알릴 수 있으니.
열차를 무대로 벌어지는 영화들이 제법 많고 그 중 흥미진진한 작품들도 많습니다. '오리엔트 특급살인' '군용열차' '언더시즈2' '공포의 수학열차' '설국열차' '실버 스트릭' '폭주기관차' '카산드라 크로싱' '호러 익스프레스' '야간열차(59년 폴란드 영화)' 등등이 거의 열차안에서 전개되는 영화들입니다. '내로우 마진'은 그중에서도 꽤 우수한 영화에 속하고 좁은 공간에서 공격과 방어를 위한 치열하고 팽팽한 접전이 숨가쁘게 이어지는 내용을 밀도있게 잘 압축한 수작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리처드 플라이셔가 이런 느와르 작품이 아닌 다른 장르로 돌아선 게 아쉽게 생각될 정도입니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50년대 필름 느와르 수작이지요.
평점 : ★★★☆ (4개 만점)
ps1 : 핸드헬드 카메라를 많이 사용한 초창기 영화입니다. 실제 달리는 열차가 아닌 세트 공간에서 촬영했기 때문에 흔들리는 효과를 낼 수 없어서(당시 제작비도 열악해서 그런 장치를 하기 어려웠다죠) 그렇게 들고 찍기 촬영을 했다는군요.
ps2 : RKO 사장 하워즈 휴즈는 로버트 미첨과 제인 러셀을 기용해 다시 만들기를 바라기도 했다는군요. 별 기대 안했던 영화가 너무 잘 뽑혀져 나오다보니 유명 배우가 아니었던게 좀 아쉬웠던 것이겠죠. 더구나 13일만에 촬영을 끝냈다고 합니다. 하워즈 휴즈가 이 영화를 깜빡 잊는 바람에 촬영기간보다 수십배가 긴 2년동안이나 묵혀있다가 1952년에야 공개가 되었습니다.
ps3 : 진 해크먼 주연으로 1990년 '익스프레스'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 되었는데 내용을 상당히 많이 바꾼 것 같습니다. 나중에 확인해 봐야겠네요. 1990년이었으니 그 시대에 뻔한 스타일, 몇 번 죽을 고비를 넘기고 쫓기고 뭐 그런 내용이 듬뿍 추가되었겠죠.
ps4 : 초반부에 기가 막히게 인상적인 촬영이 나오는데 여자가 목걸이를 만지다 떨어뜨려 흩어지고 그 알을 주우려는 형사가 계단으로 몸을 숙이고, 그 사이로 몇 알이 아랫층으로 가는데 그 아래층에 총을 든, 얼굴이 보이지 않는 남자가 서있는 모습입니다. 앞으로 뭔 일이 일어날지 관객은 아는데 형사 둘과 여인은 모르는, 긴장된 상황을 이 장면으로 만들어내지요.
[출처] 내로우 마진(The Narrow Margin, 52년) 열차안의 쫓은 자와 쫓기는 자|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