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운문록 실중어요(室中語要) 41. 그대는 그저 불법승(佛法僧)에 귀의하면 될 뿐이다.
[스님께서 어느 땐가 말씀하셨다.
"보리, 열반, 진여, 해탈을 설명하라면 이는 풍향(楓香)을 태우면서 공양(供養)하는 것일 뿐이라 하겠다.]라고 향상일구를 날렸습니다.
그럼 왜 운문선사같은 당대의 큰 스승이신 도인이 이른 말을 했을까? 불교에서는 배움의 없는 수행자는 없습니다.
불교에 입문하면 제일 번저 배우는 것이 바로 계정혜(戒定慧) 삼학입니다. 제일먼저 배우는 것은 계율이며 이 의식과 행위를 제일 먼저 배움니다. 이 계를 율법(律法)이라 하지만 이것은 제일 먼저 배워야 행동과 품위와 행주좌와 어묵동정의 스님으로써의 처세와 자질을 배우는 것입니다.
승으로로써의 대중들이 함께 모여 수행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율이 제일 일단을 사람같은 풍위와 행위를 배우는 것입니다.
이 율을 배우지 않는 재가신도들이 바로 참선이다. 명상이다 하여 비록 한 소식한 입장이라고 본다면 하고 있는 짖이란 미친사람처럼 별의별 괴이한 행동을 하는 것을 많이 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말이라고 하는 것이 행설수설 근본이 잘못배워서 그런 행동과 말과 행동을 합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계를 배우고 그러고 나서 경전공부를 배우는 것입니다.
경전을 모르면 불교의 용어나 불교에서 사용하는 문자나 문맥을 모르기 때문에 동물적 본성으로 자기 스스로 공이다 허무다 아무것도 없다 삶도 없다 등 단멸적 행동을 하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이것은 경전공부를 안해본 사람이 마음 공부를 아무리해도 괴상하고 희안한 공상 망사 허상 괴상에 시달려 사실 공부가 아니라 미친 사람으로 변해 감을 너무나 많이 보아집니다.
이렇게 단계젹으로 정식적인 방법으로 대중생활를 한 수행자와 홀로 하신 선지식은 너무 다른 면을 자주 보게 됩니다.
강원에서 경전공부를 하고 나서 선원에서 참선수행을 배운 사람은
수행하기도 슆게 배우고 빠른 방법으로 계정혜 삼학을 배우는 경우도 있지만 재가 수행자는 사실 그렇게 배워서 행하기는 슆지 않으니 지금 운문선사의 이 말씀은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를 설파하시는 것입니다.
“보리, 열반, 진여, 해탈을 설명하라면”이라고 하신 것은 보리는 반야지혜이고 열반은 모든 것에서 벗어난 어디에도 걸리지 않는 자유로움이고 진여(眞如)는 진실 혀상한 여래인 자연의 법칙을 따름을 말하는 것이고 해탈은 모든 법과 나라는 모든 상을 벗어난 정신적 형상에 억매이지 않는 있는 그대로를 누리고 펼치는 자체를 말하는 것이지만 이렇게 설명을 해 보아야 상대는 그런 마음의 안목이 없는 사람에게는 아무른 말도 행동도 통하지 않기 때문에 굳이 이렇고 저렇고를 설명해 보아야 수행의 척도에 따라 알아차리지를 못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붙여서 이어지는 말씀인
“이는 풍향(楓香)을 태우면서 공양(供養)하는 것일 뿐이라 하겠다.”
여기서 풍향은 단풍나무인데 향기가 많이 나는 향같은 나무를 말하는데 이것을 태워 밥을 지어 공양하는 것일 뿐이라고도 하겠다라고 하시어 공양을 올리는 일이나 공양을 먹는 일이나 그 모든 과정이 사실 수행이요 도인 것이라고하십니다.
여기에서 선원이나 사암에서 스님들의 계율역시 다 수행의 단계를 배워 익혀야만 행해지는 것이다 승가에서는 공양에 대하여 육법공야에 대하여 좀 알아보고 공양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두어야 할 것같아 육법공양에 대하여 공부를 좀 하고 들어 가겠습니다.
육법공양(六法供養)과 청정한 제자
부처님께서는 불과를 이룬 청정한 제자(비구, 비구니)의 공양만 받으신다. 부처님께서는 아무나 부른다고 해서 가시는 것이 아니다.
육법공양은 부처님을 모신 상단에 향, 등, 꽃, 과일, 차, 쌀 등의 여섯 가지 공양물을 올리는 중요한 의식으로 어떠한 공덕보다 수승하며 최대의 공덕이 된다.
여섯 공양물 중 향은 해탈향(解脫香)이라고 해서 해탈을 의미한다. 자신을 태워 주위를 맑게 하므로 희생을 뜻하기도 하고 화합과 공덕을 나타내기도 한다. 등은 반야등(般若燈)이라고 하며, 지혜와 희생ㆍ광명ㆍ찬탄을 의미한다. 꽃은 만행화(萬行花)로서 꽃을 피우기 위해 인고의 세월을 견딘다고 해서 수행을 뜻하며, 장엄ㆍ찬탄을 의미한다. 과일은 보리과(菩提果)로 깨달음을 나타낸다. 차는 감로다(甘露茶)라고 해서 부처의 법문이 만족스럽고 청량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쌀은 선열미(禪悅米)로서 기쁨과 환희를 나타낸다. 육법공양이란 향, 등, 꽃, 과일, 차, 쌀의 여섯 가지 공양물을 말한다. 불자 여러분들이 꼭 이해하여야 하는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공양물이 상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부처님께서 받으신다는 것이다. 경전에서 부처님(법신불이 아니라 절대적인 능력을 지닌 초월적 인격체 곧 원만보신불)께 공양드리는 공덕은 무한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대승경전에서 볼 수 있는 그 어떠한 공덕보다 진짜 부처님인 보신불(報身佛)께 드리는 공덕은 수승하다. 그러나 화신이 아니라 본불께 그런 공양을 드린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공양을 청할 때 반드시 불과를 이룬 청정한 수행승이 발원해야 그 공양을 받으러 강림하시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부처님은 물론 보신 개념으로 이해하여 주시기 바란다. 부처님의 세 개의 몸 중 보신불(圓滿報身)은 초월해 있으나 인격적 실존이기 때문에 법·보·화 삼신 가운데 중심(中心)이다.
모든 욕계하늘 신들 중 왕격인 옥황상제님도 매일 아침 일본에 있는 자기 제자의 공양만 받는다. 부처님께서도 아무나 부른다 해서 다 가시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 경우 화신(천백억확신)이 가신다.
옥황상제도 영적으로 자신과 연결되어 있는 제자의 공양만 받는다. 아무나 올리는 공양은 받으러 가지 않는다.
본불(원만보신)은 붓다 이룬 이 혹은 불과를 당대에 이룰 이가 청해야만 공양을 받는다. 불세존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겁에 한 번쯤 남섬부주 사바세계에서 붓다 될 이가 불과를 이루는 기간 동안에만 거기에 와 계신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개념이므로 다시 한번 말씀드린다. 보신부처님께서는 붓다 될 이가 불과를 이룰 때까지 그 수행자의 수행처에 상주하신다. 부처님 가시는 곳에는 꼭 좌우보처가 바늘과 실처럼 동행하며 모신다. 언제나 문수ㆍ보현 두 보살님이 함께 하신다는 말이다. 뿐만 아니라 남섬부주에서 보살행하시는 관음ㆍ 지장보살님도 그곳에 함께 상주하신다. 그리고 모든 붓다의 어머니이신 준제보살님도 와 계시게 된다. 불과를 이룰 수행자의 건강을 보살펴 주실 약사부처님이 와 계신다. 준제보살님은 붓다가 출세할 때 그 어머님 역을 담당하기 위해 와 계신다. 준제보살님은 관세음보살님이 아닌 별개의 인격체이다.
부처님께는 계율을 지키지 않은 제자의 공양은 받지 않으신다.
부처님께 한 끼 공양만이라도 드릴 수만 있다면, 그 중생이 받는 복은 무척이나 크다. 지난 번 어떤 이의 이름으로 공양을 올려드렸는데, 그 사람이 조만간 중풍을 맞을 죄보가 씻어진 것을 보았다.
중생이 악업을 지으면 그 사람의 영혼체에 그가 지은 죄업이 대못이나 족쇄, 쇠사슬이 되어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박히거나 옥죈다. 불안(佛眼)으로 보면 중생의 업력을 그렇게 볼 수 있다. 과보를 받을 때가 되어 식물인간이 되거나 중풍 맞을 때가 되면 꽁꽁 묶인 쇠사슬 망이 영혼체의 피부 밖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이것은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끊을 수 있다. 세상의 많은 종교 수장들 중 오직 부처님만이 중생들의 나쁜 인연, 악연도 잘라 주시고, 탁하고 사악한 기도 씻어 주신다. 악습도 뽑아 주시며 영혼(영혼체)를 깨끗하게 닦아 주신다. 이 말은 대단히 중요한 말이다. 지옥이나 짐승 몸을 받아 갈 사람의 영혼체의 빛깔은 검은 빛이 강하며 거무튀튀하다. 마치 똥통에서 막 건져낸 사람과도 같이 그동안 지은 지중한 죄업의 오물이 더덕더덕 붙어 있다. 부처님께서는 선근공덕을 크게 지은 사람의 더러운 영혼체를 깨끗이 닦아 주신다. 그러면 악도에 떨어지지 않는다. 본불(本佛)인 원만보신부처님께 공양드리는 공덕은 진실로 희유하다. 지옥에 떨어질 과보가 소멸될 수도 있다.
여러 붓다님의 비유 말씀을 여기에서 소개한다. 화두타파의 법위는 중등학생, 무루대아라한은 대학생, 보살과를 이룬 이는 박사 수준으로 보며, 불과를 이룬 대성자는 노벨상을 수상한 사람으로 보면 된다고 말씀하신다. 삼계지존 부처님은 노벨상 제정 이후 모든 노벨상 수상자를 합친 것 이상, 훨씬 이상으로 본다. 이 비유는 확실하므로 꼭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부처님은 위대하시고 희유하신 삼계의 지존이시다. 중생은 다겁생 지은 죄업 때문에 지옥에 가고, 갚지 못한 빚 때문에 축생 몸을 받는 것이다. 돌아가신 부모 · 조상님을 천도해드리고 성불하신 큰 스님이 세상에 나셨을 때 부처님께 공양드리는 큰 복을 짓는다면, 삼악도에 떨어지지 않는다.
지난날의 은혜와 빚을 갚고 지은 악업이 씻어져 악도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당대에 붓다 이룰 큰스님 회상의 대작불사에 크게 시주하는 이는 다음생 혹은 세세생생 정법의 큰 스승을 만나 윤회에서 벗어나 해탈을 이룰 수 있다. 다겁생에 지은 지중한 업장을 씻고 과거생의 빚을 갚는 일이다.
인격적 실존이신 보신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것은 과거에 지은 죄와 업장이 소멸되는 공덕이 된다.
다시 말하지만 초월해 계신 인격적 실존이신 보신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것은 과거에 지은 죄와 업장이 소멸되는 공덕이 된다. 또한 돌아가신 부모와 조상님을 붓다 회상에서 천도해 드리면 전생의 빚을 갚게 되어 다음생도 그 다음생도 오래오래 수승한 공덕을 누릴 수 있다. 계율은 생명이다. 계율은 수행자에게는 매우 중요한 규범이며 생명처럼 지켜야 할 덕목이다.라고 논사님들의 성명이듯이 계육또한 참으로 중요한 부분이며 선적으로도 평상심시도를 설파하고 계신다고 알아차리는 것이 바른 도일 것입니다.
다음으로 운문선사는 이렇게 말씀을 이어가십니다.
[만일 불조(佛祖)를 설명하라면 황숙향(黃熟香)을 태워 공양(供養)하는 것일 뿐이라 하겠다.]라고 하시는 말씀도 위와 똑 같은 말씀으로 받아 들이는 것이 바르게 비추어 보는 안목일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다시 말후구를 날립니다.
[또한 불조(佛祖)를 뛰어넘는 도리(道理)를 설명하라면 병향(甁香)을 태워 공양(供養)하는 것일 뿐이다.]라고 하십니다.
불조를 뛰어 넘는 도리란 바로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인 제법실상론의 중도정견(中道正見)임을 밝히는 부문이면 결론은 바로 이 말씀인 것입니다.
[그대는 그저 불법승(佛法僧)에 귀의하면 될 뿐이다.]라고 하시면서 법문을 마칩니다. 불법승은 부처님과 그 역대 조사와 지금의 스님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오직 일진법계에서 화엄의 세계임을 직시하여 모든 행위나 말씀이나 숭고한 수행승들이 많이 있으니 제가 신도자들은 이 삼보를 믿고의지하여 처음도 끝도 다 믿음입니다.
믿지 않으면 이룰 것도 없고 배울 것도 없습니다.
오직 삼보를 의지하여 믿고 신봉하며 따르고 행하면 평상심 그대로가 다 제법실상이니 오직 믿음만이 신의도원공덕모인 것입니다.
성불인연 맺으소서 옴 바아라 믹~~~!!!!!!!!!
조사선(祖師禪) 운문록(雲門錄)을 들어시어
인연성불(因緣成佛) 하시어서 붓다(佛陀) 같이 살아가소!
일승법문을 시절인연삼아 인연성불 하옵시고 대원성취 하옵소서 !
원오선원 명상쉼터 천안시 두정동 611_1번지 5층(041)551 8546
무명 납승 원오선사 010 8748 6006 옴~바아라 믹!!!_()_
탁발성원 보시구좌 농협 351 1042 1598 93 대한불교 정토회

첫댓글 운문록을 통하여 인연성불 요인성불하시어서 본불본락 하옵소서 옴~바아라 믹!!!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