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 탄핵 이어진 ‘국정농단 국조’… 가짜뉴스 확산 부작용도
[위클리 리포트]‘이태원 참사 국조’로 본 국정조사의 세계
세월호 참사-가습기 살균제 등… 굵직한 사건마다 국회가 나서
1993년 이후 총 12차례나 열려… ‘이태원 참사’로 6년만에 청문회
최순실 국정농단 증인만 132명… 방송 생중계로 국민들 관심 집중
2013년 8월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을 위한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국정원 직원들이 가림막 뒤에서 답변을 하고 있다. 당시 청문회장에는 국정원 직원들의 신분 노출을 막기 위해 증인들의 이동 통로와 좌석에 가림막이 설치됐다. 동아일보DB
“166명 구조, 2명 사망… 그러면은 202명이 사라진 거 아닙니까? 166명이라고요? 큰일 났네, 이거. VIP(대통령)까지 보고 다 끝났는데….”(청와대 관계자)
“(중략) 저희도 파악이 제대로 안 되어가지고 죄송하게 됐습니다.”(해양경찰청 관계자)
“아니, 그러니까 오차가 너무 커가지고, 지금…. 아까는 19명 구조했을 때 너무 좋아서 VIP께 바로 보고했거든. 이거 미치겠네.”(청와대 관계자)
2014년 7월 2일 해경 기관보고가 진행된 세월호 참사 국정조사장. 이날 여야 의원들이 공개한 해경 전화 녹취록에는 청와대가 실종자 안위를 신경 쓰기는커녕 대통령 ‘심기 경호’와 여론 대응에만 골몰하는 모습 등이 드러났다. 세월호 참사 두 달 반이 지난 시점에서 정부의 초동 대응 부실이 명백하게 밝혀진 것.
이 녹취록은 국정조사가 열리지 않았다면 영영 공개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해경은 기관보고 전날 밤에서야 여야 의원실을 찾아 이 자료를 제출했다. 국정조사를 시작한 지 한 달 반 만이었다. 당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위원이었던 더불어민주당 민홍철 의원은 “해경이 사고가 났을 때 통화 기록을 제출 안 하다 뒤늦게 제출하면서 많은 점이 드러났다”며 “국정조사로 해경과 소방 등이 유기적으로 협동하지 않아 초기 구조 활동에 혼선이 있었다는 것을 밝혔다”고 말했다. 녹취록 공개는 결국 해경 해체와 국민안전처 신설 등으로 이어졌다.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 근거한 국정조사는 국회가 가지고 있는 고유 권한 중 하나다. 중요한 현안에 대해 진상 규명과 조사에 나서는 국정조사는 4년의 회기 중 한두 차례밖에 열리지 않는다. 바꿔 말하면 전 국민적 관심이 쏠린 중대한 일에만 국정조사가 이뤄진다는 의미다.
여야가 이태원 핼러윈 참사에 대한 국정조사에 합의하면서 국정조사 청문회는 2016년 이후 6년여 만에 다시 열릴 예정이다. 다만 민주당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해임건의안을 준비하면서 여야의 갈등으로 국정조사가 여전히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 역대 사례를 보면 국정조사의 파급력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 대통령 탄핵으로까지 이어졌던 국정조사
2016년 이른바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는 청와대 주요 관계자와 15명의 대기업 총수 등 총 132명이 증인으로 채택됐다. 대규모 증인 채택에 대해 당시 국정조사 위원들은 “범국민적 공분을 바탕으로 국정조사가 진행됐기에 집권 여당도 협상에 전향적일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국정조사 특위는 최순실 씨와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 등이 청문회장에 나오지 않자 구치소를 찾아 ‘감방 청문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는 1997년 한보사태 이후 19년 만이었다.
특위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 등 증인 12명을 위증 혐의로 무더기 고발하는 등 진상 규명을 위해 위증죄도 적극 활용했다. 이 중 정기양 세브란스병원 교수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미용 시술을 하려고 계획한 적이 없다”고 위증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국회의 위증죄 고발로 실형이 나온 것은 17년 만이다.
또 특위는 언론에 활동을 공개한다는 원칙을 정해 청문회 생중계가 이뤄졌다. 특위에 참여했던 김경진 전 의원은 “국정조사는 수사에 비해 사실관계를 밝혀내기 어렵지만 국민들에게 이슈가 환기되며 우리 사회 전체가 학습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말했다. 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국정조사를 계기로 여론이 분출하면서 특검에 폭발적인 관심이 쏠렸다”고 평가했다.
○ 가습기 살균제, 여야 합심해 진상 규명… 특별법 제정 이어져
주요 현안에 대해 국회 차원에서 조사를 벌이는 국정조사는 여야의 협조 여부 등에 따라 성과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2016년 열린 가습기 살균제 사고 국정조사는 현장조사, 청문회 등을 통해 기업들의 문제점을 밝혀냈고, 관련법 제정으로까지 이어졌다. 2016년 8월 29일 국회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사고 국정조사 청문화에서 주요 증인들이 선서를 하는 모습. 동아일보DB
여야가 합심해 진상 규명에 성공한 국정조사로는 2016년 가습기 살균제 사고 국정조사가 꼽힌다. 당시 국정조사 특위는 옥시 영국 본사 방문 등 현장 조사와 관계자 면담, 청문회 등으로 관련 기업들이 살균제의 인체 위해 여부에 대한 안전 점검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 등을 밝혀냈다.
특위에 참여했던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은 “당시 피해자들의 분노는 옥시 등 회사로 가 있었고 회사가 주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게 명확했다”고 말했다. 민주당 이훈 전 의원은 “여야가 이견이 적다 보니 국정조사 목표가 왜곡될 가능성이 낮았다”며 “위원들이 힘을 쓰면 쓸수록 자료가 더 나왔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국정조사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법 제정안(가습기 특별법) 입법이라는 성과로 이어졌다. 국정조사 결과 보고서가 나오자 그간 계류됐던 법안에 대한 논의가 탄력이 붙어 2017년 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 2011년 질병관리본부가 가습기 살균제와 폐 손상의 인과관계를 인정한 후 6년 만이었다. 또 화학물질 사전신고 및 등록이 필요하다는 국정조사 결과 보고서의 내용을 반영한 화학물질등록평가법 개정안도 공포됐다.
○ 해외자원개발 국정조사, 여야 이견으로 청문회 무산
반면 이명박 정부의 해외자원개발을 들여다본다는 목적으로 시작된 2014년 해외자원개발 국정조사는 여야 간 강경 대치로 국정조사의 한계를 노출한 사례로 꼽힌다. 박근혜 정부 때 시작된 국정조사지만 여당의 전 정권 의혹과 관련된 내용인 탓에 여야의 협조는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증인 채택 무산으로 청문회는 열리지 않았다. 야당이던 새정치민주연합(현 민주당)은 이명박 전 대통령, 이상득 전 의원,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의 증인 채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여당인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은 문재인 전 대통령, 정세균 전 국무총리 등의 출석을 요구하며 맞섰다. 여야는 활동기한을 25일 연장하면서까지 증인 채택 협상을 벌였으나 끝내 합의에 실패했다.
국정조사 특위에 참여했던 국민의힘 김상훈 의원은 “자원개발은 장기적 관점에서 성과 유무를 판단해야 하는데 이명박 정부가 끝나자마자 잘못됐다고 들여다보는 건 무리가 있었다”고 말했다. 반면 당시 야당 간사였던 민주당 홍영표 의원은 “앞선 국정감사에서 몇 가지 문제가 드러나면서 국정조사로 연결됐다”며 “투자 의혹과 부실이 드러나니 여당에서 증인 합의를 안 하려 했다”고 했다.
○ 가짜뉴스 재확산 부작용도… “재발 방지 초점 맞춰야”
또 일부 의원이 국정조사에 정파적으로 접근한다는 점도 국정조사의 부작용으로 지적된다. 국정농단 국정조사 때 박 전 대통령 탄핵 움직임을 부추기는 과정에서 근거가 희박한 선동적인 주장도 횡행했다는 것. 당시 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국정조사 과정에서 최순실 씨의 수조 원대 재산 은닉 의혹을 꾸준히 제기했다. 안 의원은 마무리 발언에서도 “최순실이 은닉하고 돈세탁을 한 그 규모는 전문가에 의하면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돈세탁일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다”고 했지만 현재까지 재산은 발견되지 않았다. 최 씨는 허위사실 유포로 안 의원을 고발해 법정 공방이 진행 중이다. 하 의원은 “지나친 마녀 사냥에 가짜뉴스가 남발됐다”고 지적했다.
또 국정조사가 책임 소재 규명에만 집중하다 보니 ‘희생양 찾기’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문제다. 실제로 세월호 참사 국정조사 뒤 해경은 해체됐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이 이어지면서 문재인 정부에서 해경은 부활했다. 세월호 참사 국정조사에 참여했던 국민의힘 이재영 전 의원은 “돌이켜보면 여론과 감정에 휩싸여 잘못된 결정을 한 건 아니었을까 싶다”며 “책임을 지우기 위해 난도질하는 일은 그쳐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당 김명연 전 의원도 “세월호 사고가 주는 교훈을 배워 매뉴얼을 만들고 대비하는 등의 측면에서는 개선된 게 없고 사회적 갈등만 키웠다”고 말했다.
결국 국정조사의 목적이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이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 전 의원은 “책임 소재 규명보다 재발 방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제도 개선과 관련해 명확한 대안 제시가 필요하다”고 했다.
정쟁 위한 주장은 이제 그만… 명확한 팩트만으로 제도개선 논의 집중해야
“국정조사 성공하려면…” 정치권 원로-전문가들 조언
“정쟁을 하더라도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 국정조사는 미래 지향적인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더불어민주당 정대철 상임고문)
“명확한 근거 없이 책임만 덮어씌우는 식의 질문 공세는 진실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목요상 전 대한민국헌정회장)
여야가 이태원 핼러윈 참사 국정조사가 본격 시작되기도 전부터 정쟁을 이어가는 가운데 정계 원로와 전문가들은 성공적인 국정조사를 위해서는 흠집 내기식 정쟁이 아닌 건설적인 대안 경쟁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정조사의 목표가 참사의 재발 방지인 만큼 제도 개선에 대한 논의도 폭넓게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 “참사 재발 막을 제도 논의 필요”
정 상임고문은 최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국정조사는 정치적으로 여야 입장을 달리하는 사람들끼리 사안을 더 객관적으로 조사하는 것”이라며 “참사의 책임을 따지는 일도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해선 안 된다는 재발 방지를 위한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각기 다른 생각을 갖고 토론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싸워야 국회”라면서도 “육박전이 아니라 서로 지향하는 바를 갖고 다투는 것이 정치이고 여야의 존재 이유다. 진상을 오도하지 말고 정당성 있는 국정조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2의 참사를 막기 위해 관련 제도를 깊이 있게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김성수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참사를 해결할 수 있는 건 결국 제도”라며 “과거 국정조사에서는 야당 의원들이 증인을 불러 야단치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사람을 흠집 내는 것이 아니라 제도의 문제점을 파헤쳐야 한다”고 말했다.
청문회 증인 채택을 둘러싼 제언도 있었다. 국민의힘 상임고문인 목 전 회장은 “확실한 근거에 바탕을 두고 관계된 인물을 증인으로 채택해야지, 정치적 책임을 묻기 위해 필요 없는 증인을 불러내면 오히려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김형준 명지대 특임교수도 “군중 밀집을 연구한 전문가 등 제도 개선에 도움을 줄 증인들을 불러야 한다”며 “정쟁을 위한 폭로성 증인 채택은 삼가야 한다”고 말했다.
○ “국정조사 실효성 고민해야”
강제성이 없는 국정조사의 실효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단계라는 의견도 나왔다. 목 전 회장은 1999년 ‘고급 옷 로비 의혹 사건’에 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진상조사를 언급하며 “당시 청문회 증인들이 서로 책임을 전가하고 진술이 엇갈려 진실을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언론에서도 당시 청문회 증인이었던 디자이너 앙드레 김의 본명(김봉남)을 밝힌 것이 유일한 성과라고 비웃을 정도였다”며 “검찰, 경찰과 달리 강제 수사권 없이 진술에만 의존하다 보니 증인이 거짓말을 해도 진실을 밝혀낼 길이 없다”고 지적했다.
정 상임고문도 “청문회를 열면 피조사기관들이 출석도 잘 안 하고 출석해서도 적당히 대답하는 경향이 있다”며 “출석하지 않거나 위증하는 증인들은 적극적으로 고발해 조사가 흐지부지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언론의 역할에 대한 당부도 있었다. 정치학자인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여야 간 건전한 대안 경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언론이 여야 간 다툼이나 개별 위원의 어긋난 행동보다는 핵심적인 의제 위주로 보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권형 기자, 황성호 기자, 김은지 기자, 권구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