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16일 묵상 본문 : 역대상 9장 35절 - 10장 14절 - 날마다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 생명의 풍요함을 누리고 전하는 자로 살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주의 은혜 가운데 오늘도 새로운 하루를 시작합니다.
날씨는 이제 가을의 정취를 선명하게 드러내고 긴팔 옷을 입도록 만듭니다.
변함없이 찾아오는 계절의 변화는 신실하신 주님의 성품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증거입니다.
주님의 신실하심에 감사하며 주어진 일들에 성실한 자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죄와 부정함으로 더러워진 마음과 영혼을 오늘도 주님 앞에 내어드립니다.
주의 보혈로 정결하게 씻어 주시고 새 영과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서게 하옵소서.
날마다 주님을 만나는 기쁨이 삶을 주관하게 하시고 죄를 이기는 힘이 되게 하옵소서.
지체들의 삶도 주님께서 친히 이끌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선한 일에 힘쓰며 주와 교제하는 기쁨을 누리는 모습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주님을 알아가는 영생을 누리도록 도와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과 주해
35 기브온의 조상 여이엘은 기브온에 거주하였으니 그의 아내의 이름은 마아가라
36 그의 맏아들은 압돈이요 다음은 술과 기스와 바알과 넬과 나답과
37 그돌과 아히오와 스가랴와 미글롯이며
38 미글롯은 시므암을 낳았으니 그들은 그들의 친족들과 더불어 마주하고 예루살렘에 거주하였더라
39 넬은 기스를 낳고 기스는 사울을 낳고 사울은 요나단과 말기수아와 아비나답과 에스바알을 낳았으며
40 요나단의 아들은 므립바알이라 므립바알은 미가를 낳았고
41 미가의 아들들은 비돈과 멜렉과 다레아와 아하스이며
42 아하스는 야라를 낳고 야라는 알레멧과 아스마웻과 시므리를 낳고 시므리는 모사를 낳고
43 모사는 비느아를 낳았으며 비느아의 아들은 르바야요 그의 아들은 엘르아사요 그의 아들은 아셀이며
44 아셀이 여섯 아들이 있으니 그들의 이름은 아스리감과 보그루와 이스마엘과 스아랴와 오바댜와 하난이라 아셀의 아들들이 이러하였더라
35절부터 44절은 앞선 8장 29절부터 38절의 내용과 거의 유사하다. 이러한 내용을 반복하여 기록한 것은 8장에서는 베냐민 지파가 다윗 왕조 아래에서 번성하였음을 보여주기 위함이며 9장에서는 10장의 사울 왕의 기사와 연결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그 예로 9장은 아셀의 자손으로 끝나지만 8장은 아셀의 아우 에섹의 후손까지 기록하고 있다. 이는 베냐민 지파의 번성을 의미하고 있다. 9장을 끝으로 이스라엘의 족보는 마무리 되고 이제 신정 왕국의 정통성을 가지는 다윗 왕을 소개하는 내용으로 넘어간다. 그 가교 역할로 10장에 1절부터 14절에서는 사울 왕의 죽음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1 블레셋 사람들과 이스라엘이 싸우더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다가 길보아 산에서 죽임을 당하여 엎드러지니라
2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과 그 아들들을 추격하여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죽이고
3 사울을 맹렬히 치며 활 쏘는 자가 사울에게 따라 미치매 사울이 그 쏘는 자로 말미암아 심히 다급하여
4 사울이 자기의 무기를 가진 자에게 이르되 너는 칼을 빼어 그것으로 나를 찌르라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이 와서 나를 욕되게 할까 두려워하노라 그러나 그의 무기를 가진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행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매 사울이 자기 칼을 뽑아서 그 위에 엎드러지니
5 무기 가진 자가 사울이 죽는 것을 보고 자기도 칼에 엎드러져 죽으니라
6 이와 같이 사울과 그의 세 아들과 그 온 집안이 함께 죽으니라
7 골짜기에 있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그들의 도망한 것과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다 죽은 것을 보고 그 성읍들을 버리고 도망하매 블레셋 사람들이 와서 거기에 거주하니라
8 이튿날에 블레셋 사람들이 와서 죽임을 당한 자의 옷을 벗기다가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길보아 산에 엎드러졌음을 보고
9 곧 사울의 옷을 벗기고 그의 머리와 갑옷을 가져다가 사람을 블레셋 땅 사방에 보내 모든 이방 신전과 그 백성에게 소식을 전하고
10 사울의 갑옷을 그들의 신전에 두고 그의 머리를 다곤의 신전에 단지라
11 길르앗야베스 모든 사람이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에게 행한 모든 일을 듣고
12 용사들이 다 일어나서 사울의 시체와 그의 아들들의 시체를 거두어 야베스로 가져다가 그 곳 상수리나무 아래에 그 해골을 장사하고 칠 일간 금식하였더라
사울 왕의 죽음에 대한 기록은 사무엘상 31장 1절부터 13절의 내용과 거의 유사하다. 손서 저자는 솔로몬 이후의 역사를 기록함에 있어서 정통성이 없는 북이스라엘의 열왕들은 무시하고 남유다의 왕들만 소개한다. 즉 다윗 언약의 당사자인 다윗의 통치부터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본문에서는 사울이 전쟁이 패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과 그의 아들들의 비참한 최후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울 가문의 완전한 몰락은 다윗 왕가의 새로운 등장이 필연적인 것임을 의미하고 있다. 한편 사울의 매장 장소에 대해 사무엘서는 에셀나무 아래로 기록하고 있고 본문은 상수리나무 아래로 기록하고 있다. 에셀나무는 사울의 통치를 상징하는 장소로 사울이 왕의 예후를 받으며 장사되었다는 긍정적 의미를 전달한다. 그러나 상수리나무는 일반인들의 장례 장소를 의미하는 곳으로 사울에 대한 평가를 달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마도 사울의 매장 장소에는 에셀나무와 상수리나무가 함께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래서 두 평가가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평가를 위한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13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라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14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 주셨더라
역대기 기자는 사울의 죽음에 대한 원인과 결과를 언급하고 있다. 사울의 죽음은 신접한 여인에게 묻는 일을 통해 하나님께 범죄함 때문이며 그가 신정 왕국 이스라엘의 정통성을 상실한 왕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반대로 하나님의 관심은 사울에게서 다윗에게로 향하게 됨을 보여준다.
나의 묵상
역대기 기자는 베냐민 지파가 다윗의 치세 가운데 번성했음을 족보를 통해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베냐민 지파의 모습은 사실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처참한 상황까지 나아간 이후에 나타난 모습임을 보여준다.
그 심판의 과정이 바로 사울이 왕이 되었으나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의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 뜻을 구하는 죄악으로 인한 결과임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종말은 심판이며 처절한 죽음으로 끝나게 됨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사울 자신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들도 모두 죽임을 당했으며 가문이 몰락으로 향하게 되었음을 역대기 기자는 분명하게 증거 하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다윗과 맺은 언약을 통해 죽음과 절망의 자리로 나아가 사울 가문, 베냐민 지파를 놀랍게 회복시키시고 변화시켜 주신다.
그 내용인 바로 9장 35절부터 44절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울 가문의 남자들은 죽임을 당했으나 그 가운데 요나단의 아들 므립바알(므비보셋)은 생존하게 되었고 그는 다윗의 그늘 아래에서 번성하는 은혜를 경험하게 된다.
므립바알(므비보셋)은 어릴 때 다리가 부러져 장애인이 되었지만 다윗은 그를 왕궁에서 지내게 했으며 사울에게 속한 땅까지 소유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자기를 죽이려고 하던 원수의 손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요나단과의 맹세를 통해 요다난의 자손에게 선대하는 모습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인생에게 베푸신 사랑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다.
죽어야 마땅하고 죽여야 할 대상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자비의 은혜는 죽어가던 자를 살리고, 멸망으로 향하던 가문을 다시 일으키는 능력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과 그 언약을 통해 나타나는 생명의 역사는 구약에서도, 그리고 신약에서도 동일하게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나는 열매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언약 가운데 거하도록 사람들을 이끌어 주고 권면하는 것은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 되며 하나님의 은혜를 얻게 만드는 비결이 됨을 가르쳐 준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권면하며 이끌어 주는 것이 성도가 서로에게 권면해야 할 모습임을 제시한다.
10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에게 노하여 이르기를 그들이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11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였느니라 12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히3:10~14)
죄의 본질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지는 것을 의미하며 하나님이 아닌 사람을 의지하고 사람을 두려워하며 땅의 것에 목적을 두고 살아가는 모습이다.
자신을 위한 삶의 태도와 그에 따른 삶의 방식은 교만을 가져오게 하며 하나님의 말씀과 언약을 가볍게 여기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사울의 모습이 그러했으며 모든 인생의 모습이 이러한 것을 경험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러한 모습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히브리서 3장 14절 이후에서 제시한다.
15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격노하시게 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으니 16 듣고 격노하시게 하던 자가 누구냐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온 모든 사람이 아니냐 17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 누구에게 노하셨느냐 그들의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범죄한 자들에게가 아니냐 18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 19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히3:15~19)
성도가 죄에서 자유함을 얻기 위해서 필요한 삶의 태도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며 그 음성을 따라 순종하는 모습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말씀에 대한 순종은 인간적인 의지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자비를 아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열매이기에 성도는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기를 힘써야 함을 보여준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성도들을 향한 권면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6)
성도가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야 할 이유는 다른 것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인생을 향해 베푸신 은혜를 깨달아 순종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삶의 모습을 베냐민 지파가 보여주었으며 다윗을 통해서는 그리스도의 은혜와 자비와 긍휼과 사랑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그 은혜를 힘입어 살아가는 백성이 되기 위해 주의 음성을 듣는 자리로 나아가기를 힘쓰고 그 은혜를 힘입어 순종하는 자로 서는 모습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지체들도 이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기를 힘쓰며 순종의 기쁨을 누리는 모습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베냐민 지파에게 베푸신 은혜는 다윗의 언약을 통해 나타난 열매임을 보게 됩니다.
죄로 인해 심판당하고 죽음과 멸망으로 향해야 할 자들이 긍휼과 자비와 은혜를 얻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다윗 왕을 통해 나타난 열매이며 궁극적으로는 주님이 맺으신 복음을 통해 생명의 열매임을 고백합니다.
이 은혜가 있어야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가 될 수 있으며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인간의 의지와 노력이 아닌 은혜로만 들어가는 은혜의 보좌로 날마다 들어가게 하옵소서.
또 은혜를 얻고 누리며 기쁨과 감사함으로 말씀에 순종하는 생명의 역사를 경험케 하옵소서.
그러한 삶을 살아가며 다른 이들에게도 은혜의 역사를 증거 하는 것이 사명임을 고백합니다.
오늘 하루도 사명을 감당하는 하루가 되도록 이끌어 주시고 선한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
날마다 은혜와 진리로 생명의 은혜를 누리고 전하도록 이끌어 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