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신학이 제대로 섰는가를 평가하는 것은 어렵지만
특정한 곳을 보면 어느 정도 파악됩니다.
특별히 김성수 목사가 본 요한계시록이나 복음서를 요약해보면
그의 신학의 장점과 흠이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아직도 그를 추종하는 무리들이 곳곳에 있다고 하니 조심스러우며,
이제 이분을 놓아드리는 것이 지혜라고 봅니다.
그가 그토록 강하게 비판하고 새롭게 하고자 했던 것들의 종말을 보면
너무도 허무하게 끝나버립니다.
김성수 목사가 이해한 계시록은 <무천년적 견해>를 철저히 따릅니다.
① 요한은 구약을 인용해서 계시록을 기록했다.
이필찬 교수를 비롯한 대부분의 무천년 신학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➁ 7이란 숫자는 완전수이기에 일곱 교회는 요한이 선택해서 쓴 것이다.
더 많은 교회들에게 쓸 수 있지만 선택은 요한의 몫이었다.
(계시록에 감추어진 요한 신학 강조)
③ 새 예루살렘 성은 상징으로 <성도들> 즉 교회를 묘사한 것이다.
④ 일곱 인 = 일곱 나팔 = 일곱 인
이 재앙들은 모두 하나의 사건으로 같다.
⑤ 심판 재앙들은 역사적으로 단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초림부터 재림까지 반복된다.
⑥ 적그리스도는 한 명이 아니라 수많은 자들로 존재하며 교회시대에 반복해서 나타난다.
⑦ 계시록은 상징으로 해석해야 한다.
계시록 이해가 곧 성경 전체 이해의 큰 틀을 형성하기에 계시록을 통해 보면서
김성수 목사의 성경 프레임의 장단점을 파악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김성수 목사의 요한계시록은 실제로 받은 계시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요한이 구약성경을 통해 새롭게 창작한 작품 정도로 봐도 무방합니다.
허무한 주장에 불과합니다.
첫댓글 엄밀히 따지면 무천년 상징주의는 이단임.
영지주의 사촌이라고 보면 됨.
조금 흥분하신 듯...
신힉대학원 교수 한 분 모셔왔으면 좋겠는데요...
그래서 토론한다면 모두에게 유익하게 보여요
@오은환
이 카페에서 초지일관, 줄구장창 떠든 주장임.
무천년 상징주의는 영지 사촌임~!!
[➁ 7이란 숫자는 완전수이기에 일곱 교회는 요한이 선택해서 쓴 것이다.
더 많은 교회들에게 쓸 수 있지만 선택은 요한의 몫이었다.
(계시록에 감추어진 요한 신학 강조)]
이것은 말이 되지 않는 김성수목사의 상상이자 하나님의 계시를 완전 인간의 생각으로 왜곡변개 좌천시킨 잘못된 착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일곱교회에대하여 지명하여 계시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1 장10절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요한계시록 1 장11절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
이렇게 확실한 것을 요한 개인의 생각으로 7개 교회를 선정한것이라 하는것은 주의 계시 즉 성경을 모독한 행위입니다
이것만으로도 그가 (김성수 목사)상당히 인간적이고 주관적인 사상에 사로잡혔음을 볼수 있습니다
그러니 자살로서 생을 마치면서도 그의 자살을 합리화 시키고 자기만의 종교행위로 간주하여 그같이 자살을 정당한 것으로 여긴것은 다른 사람의 신앙에도 악영향을 끼치는 행위입니다
다소 사탄에 지배를 받은 인간적 혹은 사탄적 사상에 젖었던 분이라 사료됩니다
@사모함 그렇습니다.....
7이란 숫자가 하나님만이 사용하시는 완전숫자이어서
일곱교회, 일곱별, 일곱영을 말씀하신 것이라면,
용의 일곱머리, 일곱왕관
짐승의 일곱머리도 완전하다는 뜻이 되지요~~!!
미친해석임.
@스테파노스 머리는 하나이어야지?
무천년주의를 주장하는 분이 나와서
계시록을 다루며 토론하면 좋겠는데
아직 그런 분이 안계시네요...
아쉽습니다...
김성수는 짝퉁목사로
항시 헛발질만 해대는 괴상한 사람임 -
목사아님
삭제된 댓글 입니다.
@성도의본분.
400 개 이상 올렸는데요...ㅎㅎ
더 올릴게 얼마나 남았을까요???
무천년주의자들의 침묵이 얼마나 더 갈지도 궁금합니다.
@성도의본분.
타인은 나그네라고
하면 되지요 !
숨길것도 없습니다.
나그네씨의 계시록 해석을
대단한 것으로 여기는 님도
위대 ~ 합니다.
@오은환
너 자신을 알라
왜 날 소환하냐?
왜 날 소환했냐??
@오은환
그리고 . 성도의본분이라는 자는
전천년설에 대해서 물어보잖아..
그럼 그것에 대해서 답을 해야지
왜 뜬금없이 날 소환하냐?
=>전천년설의 오류들이나 정리하시구려
이것이나 정리해줘 ㅋㅋ
@오은환
니 글을 읽어보면
어떤 자들을 영지주의자라고 하는지 모르는 것처럼
천년주의.
무천년주의
그리고
전천년설과 후천년설도 구분을 못할 것 같은데
너는 전천년설이냐 후천년설이냐??
ㅋㅋ
@성도의본분.
당신은 후천년설이요???
그런 내가 혼내줄랑게
@성도의본분.
ㅋㅋ
나는 후천년설을 말하는 자들에게 이단이라고 혀
무천년주의도 같은 이단이고.
@성도의본분.
누가 나보고 무천년주의자들이다고 하던가??
어떤 똘아이가?? ㅋㅋ
아직도 이곳과 서머나 교회에서 그를 추종한다는게
이해불가합니다.
님은 어떤 사람을 추종하시나요?
ㅎ
@얼토당토
그냥 참고하세요...
이자는 왜 남을 비판하는 글만 쓸까.
겨우 가지고 온 것이 김성수야?
이자 자살 한 사람 아닌가??
근데 새 예루살렘이 어린 양의 신부인 성도와 교회를 말하는 것은 성경으로 분명한 것 아닌가요?
요한계시록 21장
2. 나는 또, 거룩한 도시 새 예루살렘이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와 같이 차리고,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3. 그 때에 나는 보좌에서 큰 음성이 울려 나오는 것을 들었습니다. "보아라, 하나님의 집이 사람들 가운데 있다.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요,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고,
9. 일곱 천사가 마지막 때에 일곱 재난이 가득 담긴 일곱 대접을 가졌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나에게로 와서 말하기를 "이리로 오너라. 어린 양의 아내인 신부를 너에게 보여 주겠다" 하고,
10. 나를 성령으로 휩싸서 높고 큰 산 위로 데리고 가서,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을 보여 주었습니다.
님이 제시한 구절입니다.
2. 나는 또, 거룩한 도시 새 예루살렘이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와 <같이> 차리고,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같이(호스, ~ 같이, as)'를 놓치셨습니다.
마치 ~ 같이, 라는 말을 잊어버리면 님과 같이 해석합니다.
9-10절에 보여준 어린 양의 아내는 새 예루살렘 성이 아니라,
그곳에 있는 신부들(교회)입니다.
쭉 읽어보면 먼저 아름다운 신부가 거할 처소가 나오고,
나중에 진짜 주인공인 신부가 등장합니다.
@오은환 저는 그 말씀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먼저 '같이'라는 표현은 '어린 양의' 신부가 아니라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라고 표현하였기에 '같이'라는 비교조사를 사용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9절에서는 어린 양의 아내인 신부를 보여 주겠다고 하고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을 보여주었는데 어떻게 이게 그 곳에 있는 신부라고 해석할 수 있을까요? 이 부분은 오은환님이 다시 생각해보셔야 할 것입니다.
저와의 견해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오은환님은 호화찬란한 기초와 문을 3차원으로 실제 존재하는 장소라고 이해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봄날5
21:2절의 의미는 "새 예루살렘 성은 신부처럼 아름답다"입니다.
그 이상의 의미는 없습니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의 아름다움으로 신랑을 맞이하기 위한 신부를
사용한 것입니다.
21:9-10절은 이미 설명했기에 그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