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부터 국가대표 경기를 직관하러 다녔는데, 의문의 승리였던 부산에서의 3:1승리(對 독일)
이후 가장 기분이 좋았던거 같습니다.
서울 집에 오는데만도 2시간 30분이 걸리네요.
선수들만큼이나 저의 체력도 힘들었습니다.
한국은 왜 이길 수 있었나? 에 대한 느낌을 적어보겠습니다.
1. 축구는 실수의 게임
오늘 손흥민의 첫 골을 보면서 가장 떠올랐던 장면은 2006 독일월드컵 프랑스전입니다.
프랑스 선수의 슈팅을 잘 막았으나 그 튕겨나온 볼이 하필 앙리에게 갔고, 1:1 찬스가 나와 단번에 실점한 장면말입니다.
경기장에서도, TV로 지켜보신 분들은 의문의 전개였다면서 운이 좋았다고 하지만 이 역시 따지고 보면
손흥민을 놓친 콜롬비아 수비의 실수였습니다.
후반에도 다시 한번 손흥민을 놓친 콜롬비아의 수비의 실수, 골키퍼의 실수가 어우러져 득점을 했습니다.
전체적으로 콜롬비아는 실수가 더 잦았고, 한국은 딱히 이렇다할 패스미스 조차 없을 정도로 완벽한 경기를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실점장면은 우리의 실수도 있었지만, 상대방의 세트피스가 워낙 좋았다고 봅니다.
킥이 저렇게 수비와 골리 사이로 날카롭게 강하게 날아오고, 장신의 수비수가 좋은 타이밍에 들어온다면
막아 낼 팀이 별로 없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한국의 명백한 실수는 전반 모레노에게 내줬던 단독찬스였습니다. 8번이 페널티박스로 공을 띄워주고,
수비가 완전히 놓쳐버린 키 큰 20번 선수가 잘 받았으나 김승규에 부담을 느낀 나머지 공을 높게 띄워버린 장면입니다.
이 장면 외에 우리는 강력한 집중력으로 우리의 실수를 줄이면서 상대의 실수를 잘 이용해 득점했고,
상대는 잦은 실수로 우리에게 여러 찬스를 내주면서 무너졌습니다.
2. 무미건조해보이는 4-4-2를 잘 이용하는 방법 (포메이션은 그냥 껍데기일 뿐이다)
포메이션은 포메이션일 뿐, 선수들이 어떻게 움직이냐에 따라 그 결과는 천차만별입니다.
축구인과 축구팬, 그리고 언론이 모두 이 포메이션의 함정에 빠져 경기 결과가 안좋기라도 하면
포메이션이 맞지 않아, 그 싸움에서 진 것이 패인이라 비판합니다.
하지만 오늘 경기를 본다면 포메이션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4-4-2는 다음과 같이 단순하게 적어볼 수 있고,
실제로도 단순하게 게임하다 질 수도 있는 전형이었습니다.
선발 (4-4-2)
손흥민 - 이근호
이재성 - 기성용 - 고요한 - 권창훈
김진수 - 권경원 - 장현수 - 최철순
김승규
오늘 경기 선수들이 어떻게 움직였냐고 이야기를 한다면
'약속' 과 '협력 플레이' 입니다.
써놓은 것은 손흥민과 이근호가 플랫하게 써놨지만,
실제로는 이근호가 전방에서 매우 많은 활동량으로 생쥐처럼 돌아다니고,
손흥민은 그 밑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며 골을 노렸습니다.
미드필더에서 고요한은 경기 시작부터 하메스를 강하게 푸쉬하며
정신을 흔들어놨고 매우 많은 활동량으로 중원을 장악했습니다.
기성용은 완벽한 레지스타의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권창훈은 조금 더 공격적으로 안쪽으로 침투하는 움직임이 많이 있었고,
이재성은 권창훈보다 올라가진 않았지만 역시 안쪽으로 많이 움직이며 수비와 볼키핑에서
매우 좋은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콜롬비아 입장에서는 이재성과 권창훈은 윙이라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권창훈과 이재성 모두 중앙 성향을 보이며 중원을 빽빽하게 가져갔고
이는 콜롬비아가 우리측 중원에서 공을 거의 제대로 가져가지 못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실제 콜롬비아가 생각하는 그 '윙'은 후반 교체투입 된 염기훈의 롤입니다.)
후반들어 페케르만 감독도 한국의 미드필더 4명이 모조리 중앙성향으로 움직이는 것을 알고
오른쪽 윙백을 적극적으로 전진시켜 순간적인 숫적 우세를 활용해보려 했고, 실제로도
위협적인 상황이 있을 뻔 했지만 그때마다 엄청난 활동량으로 공간을 커버해내며 잘 막아냈습니다.
W석 한국팀 벤치 뒤에 앉아 그동안 문제가 됐던 수비라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집중적으로 살펴봤는데,
최종예선의 그 어떤 경기보다 많은 소통을 하며 라인 컨트롤에 매우 공을 들이는 모습이었습니다.
신태용이나 선수들이나 콜롬비아 선수들이 우리 선수들보다 개인기량이 월등한 것을 인식하여,
매우 조직적으로 잘 짜여진 축구를 집중력있게 90분 내내 한 것은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또한 많이 이야기하고, 서로가 약속된 플레이를 하고, 서로의 롤을 철저하게 수행하려 노력하는 모습은
선수들의 개인기량이 월드컵 32위권인 우리가 살아갈 방법이라 느꼈습니다.
3. 우리도 거칠게 경기하는 법을 알아낸 경기 & 본선에서 조심해야 할 것
고요한이 경기시작부터 하메스를 강하게 몰아붙이는 것을 보고 얼마전에
입국한 스페인 코치의 말을 선수들이 의식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너무 얌전하게 게임한다"
우리처럼 상대적으로 기량이 떨어지는 팀은 월드컵 본선에서 다른 방법으로 경기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마라도나에 대한 허정무의 태클을 보고 '태권축구' 라고 했지만, 사실 그동안 한국 선수들의 이미지는
심판에게 좀처럼 항의하지 않고, 먼저 거친 태클을 하지 않고, 신경전을 좀처럼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습니다.
먼저 몸을 날리며 강하게 태클하는 모습은 콜롬비아를 어렵게 했습니다.
옐로카드를 안받을정도나(어렵지만), 인당 하나씩 받을 정도의 거친 게임을 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전력이 열세인 팀이 할 수 있는 경기 방식 중 하나입니다.
오늘 콜롬비아 선수들을 보면서 느낀 생각은 참 영악하다는 것입니다.
헐리웃이 일상화 되어 있고, 심판을 속이려들며, 지저분하게 게임하며 본인들 흐름으로
게임을 가져오려고 합니다. 거칠게 하되 부디 발 밟기, 손 휘두르기는 자제하는 것이 맞습니다.
본선에서 상대방의 헐리웃에 빨간 카드를 받으면 한국 사람들은 일제히 욕을 하겠지만
반드시 경기는 내주게 될 것입니다.
4. 콜롬비아 선수들의 마음가짐
개인기량은 확실히 콜롬비아 선수들이 우세했던터라 경기를 치르는 자세가 간절함이 앞섰던 우리와는 달랐습니다.
축구를 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우리보다 개인기량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많이 덤벼들고
라인을 올리면서 조직적이라기 보다 개인기량에 많이 의존하게 됩니다.
바로 이점이 간절함이 앞선 우리 선수들에게 경기를 내준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마 저 수준의 팀은 본선에서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플레이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만약 오늘과 같이 플레이한 콜롬비아에게 선제골을 내줬다면, 흥이난 콜롬비아를 어찌 막지 못해
경기결과는 그동안 봐온 경기처럼 2~3골을 실점하고 패했을 공산이 큽니다.
부디 오늘 경기를 이겼다는 것에 너무 연연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잃어버렸던 자신감을 찾고, 우리가 잘했던 부분, 실수했던 부분만 잘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집에오면서.. 우리 선수들이 과연 얼마나 많이 몸을날려 헤딩 클리어를 시도했나 생각해봤습니다.
정말 많은 숫자였던 것 같습니다.
옛날에 우리가 한국축구 하면 항상 떠올렸던 '투지', '정신력'을 오랜만에 느낀거 같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최종예선 때 왜 저 부분을 느낄 수 없었던 건지.. 좀 아쉽다는 생각도 드네요.
첫댓글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말씀처럼 오늘같은 경기가 강팀을 상대하는 우리나라에겐 정답이라고 보여집니다.
퍄 필력 굳.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글 잘쓰시네요 분석도 좋고 잘봤습니다
와 분석좋네요...잘읽었습니다
정독했습니다
좋은 분석! 잘 감상했습니다~
잘 봤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