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함은 실패와 파멸로 이끈다
사무엘하 15:1~6
찬송가 446(주 음성 외에는)
다윗의 셋째 아들 압살롬은 많은 장점이 있었습니다. 그는 첫째로 외모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보적인 아름다움이 있었습니다. 그의 흑발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가장 훌륭하였습니다. 그의 외모는 한번 보면 반하지 않을 수 없는 조각 같은 얼굴과 탄탄한 몸매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모든 위험을 무릅 쓰고 자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질러버리는 남자다움이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와 함께 있으면 그의 화술에 말려 들어 그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일반 백성들의 환심까지 완전히 사로잡는 디테일한 리더쉽의 기술도 자연스럽게 갖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는 다윗의 수많은 왕자 중에서 다윗도 아껴보고 있고 인간적으로 보면 다윗 다음에 왕직을 이어받을 가장 물망에 오르는 사람이었습니다. 큰 아들 암논은 죄를 범하여 압살롬의 칼에 의하여 이미 죽었고 둘째 아들 다니엘 혹은 길르압은 어머니 아비가일의 조언 때문인지 권력에 대한 욕심을 다 내려놓고 조용히 지냈고 넷째 아들 아도니야가 권력욕을 갖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형 압살롬에 비하면 후순위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적으로만 생각하면 다윗 사후에 이스라엘의 차기 왕위에 오를 가능성은 압살롬이 가장 컸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나이가 차고 세상을 떠나게 되면 자연스럽게 왕위에 오를 수 있도록 압살롬은 아직 시간이 좀 있으니까 아버지 다윗 곁에서 국정 운영자로서 많은 일에 동참하면서 하나씩 나라를 다스리는 법을 배워가면 좋았을 것입니다. 그가 아버지를 죽이고 왕권을 잡으려고 쿠데타를 일으켰던 때가 그가 이미 결혼하여 아들만 셋이 있었고 딸이 하나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니, 이것을 보면 그는 그가 적어도 서른 살이 되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다윗은 나이 70살에 세상을 떠났으니, 압살롬은 약 10년에서 15년만 기다렸어도 자연스럽게 왕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압살롬은 조급했습니다. 그는 기다릴 수 없었습니다. 마음에서 야망이 커져갔고 그의 마음에는 잠재울 수 없는 구체적인 쿠데타 계획안이 짜여지고 있었습니다. 그 곁에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권력의 단 맛을 갈구하는 비열한 인간들이 어른거리면서 그의 야망의 불에 부채질을 했습니다. 결국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이 약 55세 내지 60세가 되었을 때쯤에 거사를 도모하였습니다. 그 이전에 은밀하게 백성들의 마음을 화려한 언변과 잘 꾸민 겸손함으로 하나씩 빼앗았고, 다윗 왕의 신하들을 조용히 초대하여 자기 편으로 끌어들였고 다윗 와 곁에 소외된 자들을 불러내어 관직을 줄 것을 제안하며 자기 사람으로 삼았으며 각처에 각처의 쓸만한 군인들을 자기의 사병들을 만들어서 잘 준비한 후에 그는 헤브론에서 거병을 하여 예루살렘을 향하여 대규모의 반란군을 이끌고 쳐들어왔습니다. 그는 단칼에 아버지 다윗을 제거하고 자기가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호령하고 싶었기에 패륜의 길을 담대하게 나아갔던 것입니다. 과거 기드온의 아들 중에 아비멜렉이라는 아들이 스스로 왕이 되려고 자기 형제 70명을 한 바위 위에서 다 잡아 칼로 죽인 것처럼, 이렇게 압살롬 역시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왕이 되고자 달려나왔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쿠테타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의 완벽한 계획대로 진행하여 거의 성공한 것 같았던 쿠데타는 서서히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압살롬과 그의 군대는 얼마 후에 에브라임 수풀에서 벌어진 다윗의 군대와 맞서 싸우다가 대패하고 압살롬 본인도 상수리나무에 그 자랑거리였던 무성한 머리카락이 걸린 채 대롱거리다가 다윗의 군사들에 의하여 무참하게 창과 칼에 찔려 죽게 되었습니다. 그의 시체는 큰 구덩이에 던져지고 그 위에 돌무더기가 쌓아져 버려진 신세가 되었습니다.
압살롬의 실패한 생애는 조급함이 낳은 파멸적인 결과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욕심과 야망은 다들 조금씩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 욕심과 야망을 이루기 위하여 노력하기 마련이지만 조급하지 않도록 주의한다면 자연스럽게 화를 면할 수 있습니다. 완급 조절이 되면서 패망의 길을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조급하면 불 붙은 욕심과 야망을 제어할 수 없어서 끝내는 모든 악을 다 허용하게 되고 불의의 불법도 저지르게 되어서 끝내는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 들여 패망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압살롬이 조용히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면서 정말 필요한 국정의 기본을 아버지 다윗에게서 배우고 그의 신앙 정신을 배우고 고난의 사람 아버지 다윗으로부터 인생의 고난을 견디어나가는 법도 배웠더라면 압살롬이 차기 왕권에 자연스럽게 가까이 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급하고 기다리지 못하였기에 그는 스스로 기름을 지고 불에 뛰어든 셈이 되었던 것입니다.
잠언 19:2 말씀에
“지식 없는 소원은 선하지 못하고 발이 급한 사람은 잘못 가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급히 행동하는 사람은 길을 잘못 드는 것입니다. 잠언 14:29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고난의 사람 다윗도 권면하기를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고 하였습니다. “조급함은 마귀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마귀 자체이다.”라고 리처드 포스터라는 미국의 기독교 영성 저술가가 말했습니다.
욕심과 야망이 우리를 끌어가고자 할 때라도 우리는 결코 조급하지 않도록 자기 마음에 재갈을 물려 놓고서 하나님의 성령께 우리 마음을 감추지 말고 우리의 생각들을 다 아뢰며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우리 삶을 맡기기를 늘 힘써야 합니다. 할 수 있거든 기다리고 기도 가운데 기다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에 우리는 조급함이 가져오는 파멸의 위험을 피할 수 있습니다. 모든 좋은 것들은 시간이 걸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주시는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축복들은 우리 인격과 기도가 깊이 숙성될 때라야 우리가 받아 누리게 됩니다.
주님께서 친히 이르시기를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요한복음 10:3~5)
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눈도 어두워 잘 보지 못하는 양들입니다. 우리 목자이신 주님께서 우리 앞서 가시면서 우리를 부르시는 음성을 들으면서 그의 뒤를 따라가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가장 평안하고 행복한 길입니다. 조급한 마음으로 우리가 앞서서 길을 정하고 달려가지 맙시다. 조급하지 말고 항상 주님께서 우리 앞서 인도하시도록 그를 기다리며 그가 우리를 부르시는 음성에 귀를 기울여 분별하여 주님의 음성일진대 즐거이 그의 뒤를 따라가는 복된 양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