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스타로 누가 있을까요? 바로 펠레(1940~)입니다. 펠레는 무려 세 번이나 고국 브라질을 월드컵 우승으로 이끌었어요. 이는 월드컵 대회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이죠. 그 때문에 이미 은퇴한 지 오래되었지만, 펠레의 이름은 많은 사람에게 전설로 기억되고 있어요.
펠레는 1940년, 브라질의 작은 마을에서 가난한 축구 선수의 아들로 태어났어요. 가난했지만, 펠레는 낙담하거나 좌절하지 않았어요. 펠레가 살던 마을에는 펠레 또래의 친구들이 많아 구두를 닦는 도중 틈나면 축구를 하며 놀 수 있었거든요. 펠레는 변변한 운동화 하나 없이 뛰어야 했지만, 그 누구보다도 축구를 사랑했죠. 그는 상파울루 주(州) 바우루 클럽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출전한 경기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어요. 이런 펠레의 실력은 많은 이로부터 인정받아요. 이후 브라질에서 가장 유명한 산투스팀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죠. 산투스에서 펠레는 16세의 어린 나이로 리그 득점왕을 차지하는 등 놀라운 활약을 선보여요. 그 덕에 1958년 스웨덴 월드컵에서 열일곱 살의 어린 나이에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처음 출전한 월드컵에서 무려 여섯 골을 넣죠. 브라질은 월드컵 우승국이 되었고, 펠레는 브라질을 세계 제일의 축구 국가로 거듭나게 한 선수로 우뚝 섰어요.
▲ 브라질을 세 차례 월드컵 우승으로 이끈 '축구 황제' 펠레. /조선일보 DB
하지만 이런 펠레에게 곧 시련이 찾아왔어요. 믿었던 동업자의 잘못된 투자로 사업이 실패하고 큰 빚을 지게 된 거예요. 경기 중에는 부상을 당하기도 했고요. 또 1966년 영국 월드컵에서는 예선 탈락을 할 정도로 참패하며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축구에 대한 의지만은 꺾이지 않았어요. 그리하여 1969년, 909경기 만에 1000번째 골을 달성하면서 세계를 놀라게 했고, 그다음 해인 1970년에는 스물여덟의 나이로 멕시코 월드컵에 출전하여 우승을 이끌며 축구 역사에 한 획을 그었어요.
이후 펠레는 후배들이 더욱 클 수 있도록 축구계를 은퇴하고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지만, 펠레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또다시 사업 투자에 실패하여 큰 빚을 지게 된 것입니다. 그 때문에 펠레는 미국에 진출하여 미국 코스모스 팀에서 뛰게 됩니다. 하지만 당시 미국에서 축구는 너무나도 인기 없는 스포츠였어요. 펠레는 코스모스를 강팀으로 만들기로 다짐하고, 팀을 훈련해요. 그리고 1977년, 코스모스 팀을 북미 축구 리그에서 우승시키고 나서 완전히 그라운드를 떠났죠. 축구에서 은퇴한 펠레는 전 세계의 수많은 축구 선수의 권익을 향상시키기 위해 힘쓰기로 마음먹어요. 축구 선수도 직업인인데, 부상을 당하면 생계가 막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때문에 부상으로 은퇴할 시 퇴직수당을 주고 법적으로 생활을 보호해 주어야 한다며 대통령을 설득했죠. 몇 년간의 설득 끝에, 브라질의 축구 선수도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이끌었어요. 이후 펠레는 세계의 축구 발전과 봉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답니다. 펠레는 1999년, IOC(국제 올림픽 위원회)가 뽑은 '20세기 최고의 운동선수'로 뽑혔어요. 펠레에 이어 2위에 선정된 농구 선수 마이클 조던은 "펠레라면 기꺼이 농구 황제보다 위대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해요. 이렇게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눈부신 그의 성공이 더 의미 있는 이유는, 그가 많은 고난을 이겨냈기 때문일 거예요.
[1분 상식] 국제 축구 연맹(FIFA)?
국제 축구 연맹(FIFA)은 세계 축구 경기를 통솔하는 국제단체예요. 국제적인 축구 경기를 총괄할 단체의 필요성을 느낀 사람들이 만든 단체죠. FIFA가 만들어진 덕분에 어느 나라에서든지 똑같은 규칙을 가지고 경기를 진행할 수 있게 됐답니다. 국제 축구 연맹에서 주최하는 대표적인 경기가 바로 4년에 한 번씩 열리는 월드컵이에요. 월드컵은 1930년 최초로 개최된 이후 발전을 거듭하여 현재는 세계인의 축제로 자리 잡았답니다. FIFA에는 현재 우리나라를 포함해 200여 개의 국가가 가입되어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