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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가해 2월28일 화요일 [(녹) 연중 제8주간 화요일]
[수도회] 버리고 비우고 떠나 발견하는 행복의 나라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제1독서 집회 35,1-15
† 복음 마르 10,28-31
◈ 오늘의 묵상
‘선물’과 ‘뇌물’의 차이를 아십니까? 선물은 주는 사람의 마음에 기쁨과
사랑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집회서의 말씀대로, “기꺼운 마음으로”,
“언제나 즐거운 얼굴을 하고” 상대방의 기쁨을 내가 먼저 맛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뇌물’에는 그 안에 상대방이 아닌 나의 이기적
욕심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돌아올 이익을 계산하고, 행여
기대한 만큼의 대가가 돌아오지 않으면 분노와 원한을 갖는 것이
선물과는 다릅니다.
물론 아무런 조건 없는 순수한 선물이란 없습니다. 내가 순수하게 전한
선물이라도, 언젠가 상대방이 다른 방식으로라도 자신에게 그 선물에
대한 보답을 줄 것을 기다리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니, 사실 우리는 뇌물
같은 선물을 주고받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확신하고 모든 것을 버리고
그분을 따랐지만, 동시에 그에 상응하는 세속적 대가를 은근히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노골적으로 자신들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묻습니다. 과연 제자들이 얻고자 했던 것과 진정 그들이 얻게
될 것 사이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조건을 걸고 당신을 따라나선 제자들에게 새로운 조건을
제시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모든 것을 버린
사람이 얻는 놀라운 상급을 말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예수님을 가장
측근에서 따른 제자들만이 아니라, ‘누구든지’ 예수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사는 이들에게 약속된 축복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통하여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을 필요가
있습니다. 혹시 우리가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와 선행, 교회 봉사들이,
때로 조건이 너무 많이 달린 뇌물은 아니던가요? 우리의 셈법과 다른
하느님의 셈법 때문에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
가운데, 나는 어느 쪽에 있게 될까요?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 매일 미사 -
◈ [인천] 주님 안에서 기쁨을 찾는 우리
2017년 가해 2월28일 연중 제8주간 화요일
제1독서
<계명에 충실한 것이 구원의 제사를 바치는 것이다.>
○ 집회서의 말씀입니다. 35,1-15
복음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복을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28-31
몇 년 전, 동창 신부들과 유럽 여행을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유럽 여행이었기 때문에, 유럽의 멋진 장면들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전부터 관심을 두고 있었던 당시 유행하던
DSLR(Digital Single Lens Reflex) 카메라를 구입했습니다. 이
카메라를 통해서 멋진 사진들이 나올 것을 생각하니 생각만으로도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유럽에 도착한 뒤부터
열심히 사진을 찍었습니다. 하지만 목에 걸고 다녔던 카메라의 무게
때문인지 목이 너무 아팠고, 목의 통증이 심해질수록 점점 소중한
사진기가 아니라 애물단지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지금 현재 이 DSLR 카메라는 제 조카에게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거나 아주 작은 디지털 카메라를 가지고 다닐
뿐입니다. 솔직히 아름답고 멋진 장면은 좋은 사진기로 찍어야 할 것
같지만, 전문 사진가도 아니기 때문에 휴대전화나 작은 디지털
카메라를 가지고도 충분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좋은 장비를 가지고 사진을 찍는 것이 중요할까요? 아니면 여행 자체를
즐기는 것이 중요할까요? 당연히 후자인데, 전자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여행 자체를 제대로 즐기지 못했던
기억을 갖게 된 것이지요.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안다면, 지금 현재를 더욱 더 충실하게 보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에만 중요성을
더할 때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또한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것에 목숨을
내어놓듯이 생활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중요한 것을 쫓아서 생활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을 통해, 우리 구원에 방해가 된다면 재산을 기꺼이
버리듯이 심지어 가장 사랑하는 가족마저 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재산이나 가족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구원의 삶이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믿음의 삶을 살아간 사람들은 혈연관계인 가족을
넘어 온 세상 가족이라는 선물로 축복을 받았습니다.
지금 내 자신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가족도 또 재산도 분명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께서는 이러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은 기쁨 없이는 살 수가 없다. 그래서 영적인 기쁨이 없는 사람은
세속적인 쾌락에 중독된다.”
기쁨을 찾아 나서는 우리들입니다. 그 기쁨을 주님 안에서 찾지 못하니
세상의 것 안에서 그렇게 신나게 찾고 있나 봅니다. 주님 안에서 기쁨을
찾는 우리, 그래서 참으로 구원이라는 큰 기쁨을 얻을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일상을 특별한 날로 만드는 것은 늘 예상치 않았던 혹은 계획하지
않았던 시간이다(파우스토 브리치).
동창모임을 했던 인천의 부개2동성당입니다.
똑똑한 아이
아빠가 딸에게 물었다.
“우리 딸,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그러자 딸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아빠!”
그러자 아빠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이때 옆에 있던 엄마가
딸아이에게 다시 물었다.
“우리 딸, 아빠가 얼마큼 좋아?”
그러자 아이가 엄마 품으로 안기면서!
“엄마만큼!”
이런 방법도 있었네요. 사실 조금만 더 생각하면 가장 적합한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생각 없이 내뱉는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
어떤 말을 하고 계십니까? 상처 주는 말, 부정적인 말을 할 바에는
차라리 침묵을 지키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2월의 마지막 날인 오늘입니다. 그리고 내일 3월 1일은 재의 수요일로,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사순시기가 시작됩니다. 이 시기 동안
주님의 뜻을 마음에 새기면서 진정으로 주님의 똑똑한 자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맛있는 고기입니다.
- 인천교구 갑곶 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 -
◈ [수도회] 버리고 비우고 떠나 발견하는 행복의 나라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017년 가해 2월28일 연중 제8주간 화요일 마르 10,28-31
"나 때문에 버린 사람은 백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마르 10,29-30)
버리고 비우고 떠나 발견하는 행복의 나라
예수님께서는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10,23)는 말에 놀란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그런 것들을 백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10,29-30)
다소 과장된 것으로 보이긴 하지만, 베드로의 말대로라면 제자들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10,28) 예수님께서는
보상을 요구하지도 않은 제자들을 향하여, ‘누구든지’(10,29) 종말의
보상, 곧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는 축복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을
가르치십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포기입니다. 포기는
하느님을 소유하기 위한 버림이요, 주님의 영과 진리와 사랑을 채우기
위한 비움이며,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만나기 위한
떠남입니다. 따라서 포기는 희생과 고통을 가져다줄 수도 있지만,
행복의 나라로 들어가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요 전제조건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포기해야 할까요? 예수님께서 몇 가지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십니다. '집’을 포기한다는 것은 삶을 유지하고 가족들과
함께하는 공간마저도 포기하는 것을 말합니다. '토지’를 버린다는 것은
인간적인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근거마저도 포기하는 것을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형제나 자매, 부모나 자녀를 버린다는 것은 뗄 수 없는
끈끈한 인간적 관계마저도 포기하는 것을 뜻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런 포기가 너무 냉정한 것이거나 비인간적인
것이라 할 수 있을까요? 그저 아무런 이유 없이 그렇게 행동한다면
비난 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는 동기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복음 때문에” 포기할 때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버리고 비우고 떠나는 포기의 여정은 늘 고통과
박해가 따르는 길입니다. 그토록 어려운 제자의 길이기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위로하며 끝까지 추종하도록 부르시는 것이지요. 누구든지
제자들처럼 고통과 박해를 감수하며 포기하고 희생하며 예수님께서
걸으셨던 길을 기쁘게 걸어가야겠습니다.
우리는 현세의 보상을 바라지 말고 오직 주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갈망해야 합니다. 현세의 모든 것에 대한 애착과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버리고, 가난하고 자유롭게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발걸음보다
더한 축복은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주님께서는 내가 청하기도 전에
나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계시지요.
우리 모두 성부의 뜻을 따라 죽기 위하여 가장 가까운 제자들마저
떠나셨고,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그들을 포기하신 예수님의
‘구원적 떠남’을 본받아야겠습니다. 주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과 사랑을
지니고, 버리고 비우고 떠날 때 주님께서는 나를 당신의 것으로 삼으실
것입니다. 그보다 더한 보상이 있을까요? 주님과의 거룩한 관계 안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한 축복과 선물이 있을까요?
오늘도 주님께 뇌물이 아니라, 계명에 대한 충실성, 은혜 갚음, 자선,
악과 불의를 멀리함, 의로움을 기쁘게 봉헌함으로써(집회 35,1-14),
하느님 나라로 다가가는 복된 날이길 기도합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
◈ [수도회]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마르 10, 28) 한상우 바오로 신부|오늘의 강론 묵상
2017년 가해 2월28일 연중 제8주간 화요일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마르 10, 28)
버려야할 것을 버리지 못해 더욱 힘든 우리들의 삶입니다.
버려야 성장할 수 있고
버려야 제대로 들을 수 있고 버려야 주님안에 머물수 있습니다.
내 것을 버려야 하느님의 것으로 채워질 수 있는 까닭입니다.
버리지 않고서는 한발자국도 옮길수 없는 우리들입니다.
버려야 보이고 버려야 바뀔수 있습니다.
허망한 욕심을 버려야 우리 삶의 순간순간이
아름답고 새로울 수 있습니다.
버려야 살 수 있습니다.
버려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주님을 만나게됩니다.
버려야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임을 선명히 깨닫게 될 것입니다.
버려야 믿을 수 있는 신앙의 신비입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수원] 모든 것 포기에 대한 보상 /
조욱현 토마스 신부|오늘의 강론 묵상
2017년 가해 2월28일 연중 제8주간 화요일: 모든 것 포기에 대한 보상
복음: 마르 10,28-31: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오늘 복음말씀은 어제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청년은 재산에
대한 집착 때문에 슬픈 표정으로 예수님을 떠나갔다. 예수님께서는
재물을 가지고 영생을 준비할 줄 모르고 재물에다 자신의 삶을
의지하는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시면서 슬픈 얼굴로 돌아가는 청년을 안타깝게
바라 보셨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은 재산의 번영, 부자가 되는 것이 하느님의
축복의 표지라고 믿고 있었고 어떤 사람이 재물이 많고 번영하면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그를 축복해 주신 것이 틀림없다고 믿었던
제자들은 그 말씀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부자가
되는 것은 하느님의 축복이라고 믿었는데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성미가 급한 베드로가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28절)라고 한다. 그러자 예수님은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버린 사람은 백배의 보상을 받을 것이라고
하신다. 무엇을 버리는 것일까? 그것은 나를 버리는 것이다. 나의 능력,
나의 재물 이 모든 것을 이기적인 마음으로 나 자신만의 안위와 쾌락을
위하여 사용하여 하느님께서 원하지 않으시는 모습으로 살려고 하는
나의 인간적인 모습을 버리는 것이다.
여기서 이렇게 나를 버리는 것이지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버리라는 말씀이 아니다. 신앙 안에서는 부모와 형제들 가족들까지도
믿음에 방해가 되거나, 신앙생활에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견디어야 한다. 그러므로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내가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하다. 이에 대한 보상은 이 세상에서도
갚아주시고 또한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초대교회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현세의 보상을 많이 체험하였다.
여기 저기 다니면서 박해도 많이 받았지만 자신이 쉴 수 있는 집들과
교우 형제자매들과 어머니 같은 여 교우들, 자녀들을 대신하여 대자
대녀들,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들을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토지를 버린 사람은 교우들의 토지에서 필요한 것을 얻었던 것이다.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은 재물이란 ‘사용하다’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지, ‘주인이 되다’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예수님께서도
이미 재물이란 자기의 것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사용하고, 또 다른 사람을 위해서 봉사하기 위해 주어진 것으로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뜻보다는, 또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봉사보다는
그 재물에 대한 집착 때문에 그 재산이 그를 불행하게 한다고 하셨다.
지금 이 순간, 이 세상에 살게 해 주시고, 나에게 베풀어주신 모든
은혜에 감사드리며, 나의 재능과 내가 지금 잠깐 관리하고 있는 것들을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사용하고 있으며 그렇게 노력하고 있는지 반성하고
첫째가 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 수원 교구 상하 성모세 성당 조욱현 토마스 신부 -
◈ [서울] 연중 제8주간 화요일
2017년 가해 2월28일 연중 제8주간 화요일 (마르10,28-31)
달력을 보니 2월은 28일까지만 있습니다. 문득 생각해 봅니다. 왜
2월은 28일만 있는 것일까? 다른 달에 비해서 2일 또는 3일이 작습니다.
과학자들이 정한 것이겠지만 2월의 입장에서는 서운할 것 같습니다.
상황에 따라서 짧은 것이 좋을 수도 있고 아쉬울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옥에서 지내는 사람들에게는 짧은 달이 좋을 것입니다.
군에서 제대를 기다리는 사람에게도 짧은 달이 좋을 것입니다. 방학을
즐기는 학생들에는 짧은 것이 아쉬움일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하는 사람에게는 짧은 것이 괴로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2월은 아무런 불평 없이 다른 달에 비해서 짧은 날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어진 시간을 충실하게 보내는
것입니다.
가끔씩 목이 아플 때가 있습니다. 침술원에 가면 선생님께서 침을 놓아
주시고, 지압으로 시원하게 목을 풀어 주십니다. 목이 아픈 것은 걷는
자세가 나빠서 인 경우도 있고, 수면 자세가 좋지 않아서 인 경우도
있고, 컴퓨터를 너무 가까이 해서 인 경우도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목 운동을 자주 하라고 하셨는데 그렇게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몸이
아픈 대부분의 이유는 잘못된 생활 습관에서 시작된다고 합니다.
예전에 ‘건강한 남자와 부실한 남자의 하루’를 텔레비전에서
보았습니다. 건강남과 부실남은 하루의 시작이 달랐습니다. 먹는 것도
달랐고, 일하는 것도 달랐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니 건강남은 더욱
건강하게 되었고, 부실남은 더욱 부실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둘
모두 건강한 모습이었습니다.
건강남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운동을 하고 밥을 먹습니다. 담배는
끊었고, 술도 적당히 마십니다. 주어진 일은 기쁘게 하고, 동료들의
일도 도와줍니다. 가끔씩 명상도 하고, 책도 읽습니다.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사고를 지니고 있으며, 월급은 잘 관리해서 적금도
들어 놓았습니다. 앞으로의 진로를 위해서 자격증을 따 놓았고, 외국어
학원도 등록했습니다. 시민단체에 가입을 했으며 정기적으로 후원금도
보냈습니다. 얼굴 표정은 늘 밝았고, 또래 젊은이들보다 젊어
보였습니다.
부실남의 하루는 이렇습니다. 아침은 먹지 않습니다. 전날 술을 많이
먹었기 때문입니다. 낮은 층수도 엘리베이터를 이용합니다. 입에 좋은
컵라면을 즐겨 먹습니다. 운동보다는 컴퓨터의 게임에 몰두합니다.
회식자리에서는 빈속에 먹어야 좋다며, 안주를 거의 먹지 않습니다.
2차는 기본이고, 기분이 좋으면 3차, 4차까지 가서 술을 마십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속이 쓰리니, 또 라면을 먹고, 컴퓨터 게임을 합니다.
부실남은 점점 건강이 나빠지고, 허리도 아프고, 얼굴에 윤기가
없어집니다. 아직은 젊기 때문에 몸이 버티지만 둑이 무너지듯이 언제
건강이 나빠질지 모르는 상태가 됩니다. 주변으로부터도 좋은
이야기를 듣지 못하니, 어른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부모님께 용돈을 타려니 미안하기는 한데, 달리 돈을 구할 방도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지내고
있습니다.
건강남과 부실남은 원래 정해진 것이 아닙니다. 지금 나의 선택이 나를
건강하게 할 수도 있고, 부실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몸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은 우리의 마음에 의해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집회서의 이야기입니다. 건강한
신앙생활을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 계명에 충실한 것, 은혜를 갚는 것, 자선을 베푸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 했다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을
삶으로 실천하는 사람은 결실을 맺을 것이고, 말만 앞서는 사람은
결실을 맺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인이 가야할 길에 대한 좋은 글이 있어서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수도자들이 착복식, 허원식을 할 때 당부하는 글이었습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서 영적으로 새로이 태어났기에 우리 모두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라 생각합니다.
"수도생활을 시작하겠다는 것, 수도자의 옷을 입는다는 것은
신분상승의 표시가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세상의 옷을
벗고 수도복으로 갈아입는다는 것은 세상을 벗고 그리스도란 예복으로
갈아입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를 입는다는 것은 뭔가
획득하겠다는, 뭔가 상승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 아니라 기꺼이 이
세상에서 손해 보겠다는 의지의 표명입니다. 착복하겠다는 것은 가장
아랫자리로 내려가겠다는 다짐입니다. 서원하겠다는 것은 내 의지대로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내 의지를 온전히 하느님께 묶어두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수도자들이 물 좋은 자리 찾기 시작하면 그 수도생활은 이미 볼 장 다
본 생활입니다. 수도자가 떠나라는데도 안 떠나고 버티기 작전으로
나오면 그것처럼 불행한 일은 다시 또 없습니다. 수도자가 고상하게
꾸며진 넓은 사무실에 애착을 느끼고, 안온한 독방에 갇히기 시작하면
그걸로 끝장입니다. 주님의 옷으로 갈아입은 여러분! 늘 버리십시오.
용기를 내고 떠나십시오. 고상한 곳, 살 맛 나는 곳, 때깔 나는 곳이
아닌 저 시끄럽고 악취가 풍기는 세상의 한가운데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십시오. 거기에 주님께서 계십니다."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신부 -
◈ [청주] 비우는 만큼 채워주신다|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7년 가해 2월28일 연중 제8주간 화요일 (마르10,28-31)
비우는 만큼 채워주신다.
세상 사람들은 소위 출세를 하려고 애를 씁니다.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이 지배하며 권력을 누리려고 합니다. 부정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자기 잇속을 챙기려 합니다. 그러나 그 출세라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베드로는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을 따랐습니다”
(마르10,28).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구원 받는다는 것을 출세하는
정도로 생각하였나봅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렸다고 자랑 삼아 말한 것입니다. 그야말로 ‘내가 모든 것을 버렸으니
한자리 주십시오.’하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수난과 부활에 대해 두 번째 예고하셨을 때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길가에서 논쟁한 것에서 드러났고, 세 번째 예고를 하셨을
때에도 ‘스승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도록 해주십시오.’ 하고 청하는 것에서도 나타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모든 것을 버린 이유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버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수님 때문에,
복음 때문에 버려야지, 자신을 위해서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가르침과 복음을 위해서 살려면 자신을 버려야 하고,
자신을 위해서 살려면 예수님을 버려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많은 것을
가진 것을 소유하고 지배하는 권력을 지닌 것을 첫째로 여기지만,
하늘에서는 많은 것을 어떻게 사용하였는가를 봅니다. 무엇을 위해
썼느냐가 소중합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 내가 잘 먹고 잘 입고 편하게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과 이웃을 사랑하기 위하여
사용해야 합니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들이 아무리 많아도 그것이 영원한 생명, 구원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장애가
됩니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 모든 것을 완벽하게 이룰 수는 없지만
버려야 할 것을 하나씩 기쁘게 버릴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려고 내가 버린 것은 무엇인가요? 아니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인지요? 재물, 권력이나 명예. 자식이나 건강을 첫째라고
생각한다면 그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주님 마음에 드는 꼴찌의
자리를 차지하여 마침내 천상에서 첫째가 되시기 바랍니다. 지금 눈에
보이는 인간관계나 소유물이 영원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말합니다. “모든 것에서 마음을 비우고 주님만을
찾으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얻을 것입니다. 비우는 만큼 그분께서는
채워주실 것입니다.”
1베드1,13-15의 말씀으로 마무리합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차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받을 은총에 여러분의
모든 희망을 거십시오. 이제는 순종하는 자녀로서, 전에 무지하던 때의
욕망에 따라 살지 말고, 여러분을 부르신 분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모든 행실에서 거룩한 사람이 되십시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미루지 않는 사랑, 미룰 수 없는 사랑에 눈뜨기를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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