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힘] 1부 힘든 시절 ㉛이유 있는 아픔
생의 마지막 순간 마주하게 되는 것들
셔터스톡
모든 병에는 이유가 있다. 우울증 같은 마음의 병도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 속에서 이유를 찾고 해결책도 발견한다.
약물치료가 끝난 후 의사는 내게 과거를 돌아보라고 권유했다. 그리고 책 한 권을 주었다. 당시 베스트셀러로 회자되던 기 코르노의 암 투병기 《생의 마지막 순간 마주하게 되는 것들》이었다. 그 책은 인상적인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었다.
바로 치료는 의사의 몫이고 치유는 환자의 몫이며, 그렇기에 치유는 환자의 내면에서 비롯된다는 것. 즉 질병은 곧 하나의 초대장일지 모른다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공감과 함께 내 인생의 어떤 통찰을 느꼈다. 나 역시 내가 진짜 원하는 내 모습(삶)이 아니라 다른 모습(삶)으로 살아온 데서 결국 병(우울증)이 발생한 것이다.
나는 평생 나를 억압했다. 이제부터는 이를 극복해 진정 행복한 삶을 영위해야 한다. 그러려면 결국 내 내면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나다운, 내가 원하는 모습일까. 그것을 찾을 수 있다면 우울증은 내게 축복임을 틀림없다!
우울증을 겪은 이가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다. 우울증 자체가 자기 내면과 소통이 되지 않아 발생한 병이며, 내면 곳곳에 심리적 방어기제가 이미 설치돼 있기 때문이다.
또 자신에게 관심을 집중하다 보면 자칫 간신히 진정돼 있던 심리적 상태를 다시 혼란에 빠뜨려 우울증을 악화시키거나 또 다른 신경증의 발생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지만 나는 내면 탐색을 통해 우울증의 근본 원인을 추적하기로 결심했다. 만약 내면의 갈등이 커진다면 탐색을 중지하거나 속도를 늦추는 등 안전장치를 가동하면서 말이다.
나를 돌아보는 일은 내게 낯설지 않았다. 평생 일기를 써온 데다가 내 생각을 정리한 몇 권의 저술 작업도 했었다. 나아가 아내와 몇몇 친지들과의 대화 채널이 있었다. 권위 있는 기관의 심리검사도 받기로 했다.
‘이번 기회에 진정한 나를 찾자. 그래서 행복한 인생을 살자.’
나는 심리상담 전문의를 알게 됐다. 그는 프로이트 등 정신분석 이론에 정통한 인물이었다. 그는 “정신분석에서는 어린 시절, 특히 유년기 경험을 중시한다”고 했다.
그때 겪은 상처가 잠복해 있다가 이후 삶의 무수한 과정 속에서 겪는 아픔과 상처 등과 섞여서 어떤 일을 계기로 바깥으로 표출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의 과거를 돌아보면 어린 시절을 관통하는 한 가지 확실한 단어가 있다. 바로 ‘외로움’이다.
나는 부모 형제 없이 조부모 손에서 컸다. 내가 돌을 지난 지 얼마 안 돼 아버지는 사고로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얼마 후 재혼했다.
워낙 어릴 때 일이라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으며, 어머니 품 안의 추억도 없다. 어린 시절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아무도 없는 방에 혼자 누워 마구 울던 모습이었다.
부모 없이 자란 사람 대부분이 그러하듯 내 심리 기저에는 ‘외톨이’란 생각이 단단히 박혀 있다. 어려서부터 혼자서 모든 것을 헤쳐가며 살아가야 할 운명이라고 여겼다.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짊어지고, 해결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은 독립성, 개척성, 견인력 등 성격 면에서 긍정성도 주었지만 한편으로는 불안, 콤플렉스, 고립, 독단 같은 부정성도 가지고 왔다.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6세가 되기 전 경험이 그 사람의 성격과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설파했는데 적어도 내게는 맞는 듯싶다.<계속>
출처 : 마음건강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