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2. 24. 성탄 큐티
시편 150:1 ~ 6
할렐루야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관찰 :
1) 성소에서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 1절. “할렐루야 그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 “할렐루야” 찬양의 마지막 편이자 시편 전체의 마지막 편인 시편 150편의 찬양이다. 시편기자는 하나님을 성소에서 찬양할 것을 선포하고 있다. 이 성소는 하나님이 계신 곳을 의미한다. 그런데 시편 1편에서부터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온 세상에 편만하신 하나님의 임재이다. 그렇기에 이 의미는 단지 성전, 혹은 지정된 장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그곳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장소는 정해져 있지 않다. 도리어 하나님을 부르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곳이 성소가 되는 것임을 시편에서는 누누이 말하고 있다. 그렇기에 시편 150편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모든 곳에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바로 그곳이 성소가 된다는 것을 함축적으로 의미하고 있다. 그런 의미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권능의 궁창” 역시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세계를 의미한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곳은 하나님의 다스림의 영역에서는 모두 이루어져야 함을 말하고 있다.
2) 하나님의 큰 일을 찬양할지어다
- 2절. “그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따라 찬양할지어다” =>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은 크게 두 가지가 된다. 하나는 하나님의 이름, 즉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에 대한 내용이다. 그리고 또 하나가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통해서 일하신 것을 찬양하는 것이 시편의 주된 내용들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사랑하심에 대한 칭송이 주된 내용들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스케일과 품격이 있으시다. 그것을 피조물은 찬양해야 한다.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어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궁구해서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한 인간은 마땅히 하나님이 행하신 큰 일을 찾아서 기억하며 찬양해야 한다고 시편 기자는 가르치고 있다. 그것은 과거의 일 만이 아니라 오늘날도 동일하게 하나님이 행하시는 큰 일을 찬양해야 한다.
3) 모든 악기로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 3절.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 시편 기자는 악기를 통해서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선포하고 있다.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악기로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유일하신 분이시다. 나팔, 비파, 수금은 대표적으로 이방 신들에게 제사드리며 사용되던 악기들이다. 그러나 이 악기들을 찬양의 천재 다윗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도구로 사용했고, 최고의 연주자들을 키워냈다. 그로 인해서 아삽, 헤만, 여두둔 같은 이들이 등장할 수 있었다. 그들은 또한 솔로몬 성전에서 최고의 찬양대를 만들어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최고의 연주를 통해서 경배했다. 그것이 과거의 일로 끝날 일이 아니라 영원히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져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시편 기자는 선포하고 있다.
- 4절. “소고 치며 춤 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 소고는 손으로 두드리며 사용하는 리듬악기이다. 현악은 줄로 튕기거나 비벼서 진동을 일으켜 소리를 내는 악기이다. 퉁소는 입으로 바람을 불어 넣어서 소리를 내는 악기이다.
- 5절.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 => 제금은 심벌즈처럼 생겨서 한손에 하나씩 잡고 두드려서 소리를 내는 악기이다. 큰 소리를 내는 큰 제금, 높은 소리를 내는 조그만 제금이 있었다. 솔로몬의 찬양대는 이 제금을 가진 이들이 수백 명이 한꺼번에 제금을 두드려서 크고 높은 소리를 내어 하나님을 찬양했다. 수 km 밖에서도 이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고 하니 엄청난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사용되었다.
- 3절 ~ 5절에서 사용되는 악기는 그 악기로만 찬양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여기서 언급하지 않은 악기라 할지라도 모든 악기로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선포하는 것이다. 그리고 악기로만이 아니라 삶의 모든 상황과 정황을 동원하여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선포하는 의미이다.
4) 모든 일들은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 6절.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 시편 기자는 이제 최종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호흡이 있는 자의 책임이요 특권이라는 것이다. 호흡이 있는 자, 곧 산 자는 누구나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시편 기자는 상당히 상기되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장엄하게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선언하며 할렐루야로 끝맺음을 맺는다. 물론 시편 150편을 쓴 시편 기자는 자신이 시편의 마지막 찬양을 하게 되리라는 것을 염두에 놓고 이 시를 쓴 것은 아닐 것이다. 시편이 편집되는 과정에서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이 시편이 맨 마지막에 놓여지게 된 것일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이 성령의 역사하심이 있었기에 시편 150편의 기자가 이 시를 작사할 때, 시편의 마지막에 오는 찬양으로서의 영감으로 기록되었을 것이라 믿는다. 성령의 역사하심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 할렐루야는 할랄의 찬양으로 열정을 넘어서는 광기를 품은 용어이다. 전쟁에서 승리한 장수가 상대편 장수의 목을 발로 밟고 그 목을 끊어내면서 외치는 소리가 할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할렐루야는 조그맣게 소리를 죽여서 낼 수 있는 외침이 될 수 없다. 장엄하고 큰 소리로 할렐루야를 외치며 시편 150편은 마무리 되고 있다.
가르침 :
1) 시편 1편 ~150편의 시편에서 다루는 주제들은 다양하다. 인생의 질곡과 아픔을 노래하기도 하고, 환희에 차서 하나님을 찬양하기도 한다. 그리고 전쟁 중에, 고난 중에, 인생의 고민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의문 중에, 축복 속에서 다양하게 하나님을 만나고 찬양한다. 그리고 이제 결론이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해야 한다고 내려지고 있다. 하나님은 참으로 참으로 참으로 찬양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다.
2) 하나님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모든 장소에서 찬양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아도 되는 장소가 있는가? 하나님은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분이시다. 그렇기에 하늘 위, 깊은 바닷속, 땅 위나 땅 속 어디서든지 하나님은 찬양이 받으셔야 한다. 이것은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선택의 요소가 아니라 선언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이 불리워지는 곳에 임재하시는 분이시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곳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그것이 옳고 언제나 옳다.
3) 하나님은 모든 악기로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다. 그것은 시편에서 거론하고 있는 나팔, 비파, 수금, 소고, 현악, 퉁소, 제금만 사용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악기로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 더 나아가 악기 뿐만이 아니라 인생이 접하게 되는 모든 상황과 형편 속에서도 하나님은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다.
4) 하나님은 호흡이 있는 자마다 모두 찬양해야 하는 위대하고 전능하신 유일하신 분이시다. 호흡이 있는 이유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시편 기자는 소리 높여 선포하고 있다.
적용 :
1) 하나님을 찬양하라. 그것이 인생의 존재이유이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함이다. 이 사실을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내가 어떤 상황을 만나고 힘들고 어렵다고 하더라도 바뀔 수 없는 원칙이다. 하나님은 나의 상황과 형편을 넘어서서 찬양을 받으셔야 하는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다.
2) 내 삶의 정황에서 하나님을 찬양함이 멈추지 말도록 하자. 쉬지 말고 주님을 찬양할 수 있는 존재가 되기를 소망한다. 시편은 삶의 모든 정황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가르친다. 시편을 통해서 하나님을 찬양하자. 김태수의 시편을 만들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하나님을 찬양하자.
3)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는 기뻐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평화가 되는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는 절기에 시편의 마지막 파트 할렐루야 시편은 하나님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것에 우리의 중심이 맞추어져야 함을 다시금 깨닫게 해 준다. 주님의 은혜를 찬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