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시아귀는,
원래는 몸이 나빠서 일하지 못하거나,
생활능력이 없는 불쌍한 사람들에게 보시 봉사를 하여,
그들에게 삶의 희망을 주는 자비와 사랑의 행위였었다.
요컨대 살아 있는 자에 대한 봉사였던 것이다.
그것이 어느 새에, 죽어서 방황하는 무연불(無緣佛)에 대한
공양으로 변하고 말았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오랜 역사의 과정에서, 죽은 자들 가운데에는,
법(法)을 깨닫지 못한 채 가혹한 지옥계로 떨어진 자들이 수없이 많다.
게다가 그들은, 무덤이나 절간 등이
자신의 집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자들이다.
오랜 세월을 경과하는 동안에,
지상계에서 살고있는 사람들에게 잊혀져서,
공양받는 것도 없는, 무연불(無緣佛)이 되고 말았다.
갖가지 원망으로, 그들은,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빙의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황하는 영(靈)들에게는,
올바른 법을 가르쳐 줌으로서,
그들의 집착심을 제거하고, 자각시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이 세상에, 마음을 잃은 자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지옥령들도 날뛴다.
따라서 이 지상계가 혼란해지는 것이다.
살아 있는 인간들이, 신의 자식으로서의 자각에 눈뜨면,
그들 지옥령들도 반성할 실마리를 잡을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말법의 세상이 되면, 살아 있는 인간들이,
인생의 가치에 대한 인식을 잃어 버리고 있다.
지옥령들은, 과거에 이 지상계에서 생활했던 자들이며,
지상계의 연(緣)으로 말미암아 지옥계로 떨어져 간 자들인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언제나 지구상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스스로 괴로움을 만들어, 어두운 영위기(靈圍氣)를 조성하고 있다.
결국은 지옥계도, 그들의 어두운 상념에 의해 만들어진 세계이다.
시아귀(施餓鬼)란 ,
이러한 방황하는 혼에게 정법을 가르쳐주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주;
내가 정법에 따른 생활을 하는 것이,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좋은 일이군요.
고마움을 아는 생활, 고마움을 표현하는 생활.
내 육신의 은인인, 이 대자연의 은혜에 대해서,
내 육신을 보존할 수 있도록, 살신공양하여 주는,
생명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먹도록 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
영혼의 영원불멸을 깨달아, 성불하도록 축원합시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주변의 모든 만물들이,
내 육신의 유지를 도와주는 은인으로 보는 것이,
바로 정견(正見)이군요.
정견의 뜻풀이로,
'올바르게 보는 것'이란 말만으로,
정견을 이해하라고 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다카하시 선생님의 가르침으로 생각하나이다.
인연있는 이여, 참고하소서.
** 자비와 자비마에 대하여
자비는 넘어진 사람이 일어나려고 해도 일어나지 못하고 버둥거릴 때
일어나도록 도와주는 것은 자비입니다.
하지만 넘어져서 스스로 일어나려고 하지 않고
일으켜 달라고 손을 내미는 것을 일어나도록 도와주는 것은 자비마입니다.
몸이 불편하여 노동 능력이 없어서 굶는 사람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것은 자비입니다.
몸이 멀쩡하여 노동 능력이 있는데도 일하지 않고 놀고 있는 사람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것은 자비마입니다.
4. 우란분재(盂蘭盆齋). 피안회(彼岸會)의 의미
우란분재; 음력 7월 15일 조상의 영혼을 제사지내는 불교 행사.
피안회; 춘분, 추분 전후의 7일간에 행하는 불교행사.
“불교에는 우란분재(盂蘭盆齋)라든가
피안회(彼岸會)라고 하는 불사(佛事)가 있는데,
여기에는 어떠한 유래가 있는 것입니까.”
어느 종교대학 학생의 질문이다.
이 두 가지는 불교의 행사 중에서 대표적인 것들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다 같이 선조 공양과 연관된다.
조상을 숭배하는 국민성이 생활 속에 녹아들어,
어느새 자연스런 행사가 되어버린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백중날, 곧 음력 7월 보름날에는 조상의 영(靈)이 집을 찾아오므로,
음식을 차려 공양하고 등을 켜고 춤을 추어 그들을 위안하는 한편,
자신들도 마음의 평안을 얻고자 하여,
오늘날과 같은 떠들썩한 행사가 되고 말았다.
스님들의 대목철이기도 하여 경문(經文)도 공양된다.
이와 같은 습관을 경험하고 이승을 떠난 자들 중에는,
백중날을 큰 낙으로 삼고 기다리고 있는 자도 있다.
자손과 조상과의 인연을 소중히 하기 위해서,
오늘날 우리들이, 일정한 계절을 정하여 조상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는 행위는 좋은 일이다.
우란분재(우란분재)의 참 유래는 다음과 같다.
* * * * * * * *
지금으로부터 2,500여 년 전,
고타마 붓다가 38세 때의 일이다.
고타마 붓다의 최초의 제자로서,
카피라 바스투에서 붓다를 호위하기 위해서,
따라 왔던 5인의 무사중의 한 사람인, 아사지가,
마가다국의 라자그리하 근교를 유행하고 있을 때의 일.
바라문의 우바뎃사(훗날의 샤리푸트라)가 말을 걸어 왔다.
그러나 아사지는, 지적(知的)인 종교 논쟁을
다른 종파에서 걸어오는 일이 있더라도,
거기에 응해서는 안 된다고,
붓다로부터 주의받고 있었으므로, 그것을 피하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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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