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람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잘 지내고 아껴주다 보면... 문득 나아질 줄 알았다. 불치에 가까울 고독이나 아귀맞춤 - 사람과의 통로, 그 연결고리를 찾아 마냥 넋나간 듯 헤매일 일 같은 것도 줄어들 거고 까라질 듯한 어둠에의 이끌림은 각자가 가진 주광성으로 인해 희석되는 기적일랑 쉽게 일어나는 건 아니라 해도. 오랜동안 노력하다 보면 정도 붙이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그 중 몇은 진정을 다해 [사랑]해서 다시금 살아가게 되는 꿈을 오래도록 꾸었다.
보잘 것 없는 인생이라 해도 안간힘을 다해 살면...
마음 속 진실은 굳건히 영글고 그것이 믿음이 된다고...
어떤 용기를 가지고 차근히... 하나, 둘... 다가오는 것들을 받아들이고 그렇게.
하지만 덜컥, 직소퍼즐 하나가 빠져나가면서 보이는 끝없는 암흑은 어쩔 수 없는 것인지. 가끔은 분명한 목소리 하나가 있어 <암시>를 던진다. 네가 원하는 건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어. 영원은 커녕 단 100년, 그것도 길지. 사람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고작 40년에 불과하다며? 여튼... 그만큼도 지속되는 것이 있을까? 넌 분명 분할되고 갈라져 산산조각 날 꺼야. 그들과 함께 했던 기억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여정 속에서 홀로 남겠지... 다가왔던 만큼 가는 것 또한 빠르게.
그래도 아직 젊으니까, 뭐 특별히 손에 쥔 것이 없어도 그저 행복하게... 누리고 있잖아. 조금만, 조금만 더 욕심 내어 보는 게 어때서? 하는 심사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친구는 애써 가라앉혀놓은 표면에 돌을 던졌다. 선선히 웃으며 평소와 같이 약간은 들뜬 목소리로 '저녁은 뭐 먹었니?' 같은 일상어 말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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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나, 암이래."
사무실로 찾아와 차 한 잔 마시고 인절미 몇 개 집어먹으며 태연하게 내뱉은 말에 작업하다가 "어, 그래?" 해버린 나도 같이 미쳤다. 한 5초 지났나? 머리 속에서 쪼개지는 비명이 울렸다. 그게 내가 낸 목소리더라.
"...뭐?!"
"3월에 수술이야. 병문안은 올꺼지?"
"너, 지금 뭐라고 했어? 뭐!!!!!!!"
쩝쩝거리다가 헤벌쭉 웃는 얼굴에 기가 막혔다. 저번 달엔가, 밤 10시에 전화해서 불안하다고, 들러달라고 해서 늦게나마 갔던 사당역에서 뭐라고 했더라?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병원 의사 따위 다 돌팔이니까 큰 데서 진단 받으면, 나이가 아직 새파랗게 젊은데 벌써부터 쫄기는... 담배나 술도 안하는 애니까 아마 약이나 몇 개 주워먹고 끝내지 않을까 하고 말았는데. 이건 복장 뒤집힌 내 속일랑 아랑곳 없다.
"난 말야, 선고 받으면 뭐 인생에 대해 엄청나게 반성하고 분위기 짱! 잡아가면서 눈가에 그늘 잡힐 줄 알았다? TV 드라마에서 나오는 거 다 뻥이야. 참 나~ 아무렇지도 않더라. 봐라, 봐!"
하늘이 일그러진다는 게 이럴 때 쓰는 말이다. 붓을 집어던지듯 내려놓고는 구석에 놓인 회의용 테이블을 노려보았다. 끄트머리에 앉아서 보이차를 홀짝이는 친구가 환영같았다. 믿을 수도 없고 - 보고 들은 모든 것을 부정해버리고 싶었다. 여기가 회사도 아니고 혼자 꿈꾸는 거야. 이럴 수는 없어... 휘청이듯 다가가 손으로 잠간 만져봤다. 까칠한 머리카락과 두피에서 타고 올라오는 온기를 어떻게 아니라고 할 것인지. 누구에게 향한 화풀이인지 모르고 그 넘 등짝을 몇 대 갈겼다. 아프다고 징징대는 친구를 꼭 안고는 한동안 부들거리고 있었나보다.
"야야, 네가 그러니까 나 진짜 뭐 대단한 거 걸린 거 같잖어. 괜찮어!"
정말 아무렇지 않은 바람소리였다. 늘 여행자의 마음으로 살고 어느 한 곳 뿌리 내리지 않은 채로 외국 여럿 쑤시고 돌아다니던 아이였다. 어디 정착하는 순간 무게가 현실이 된다며, 나그네일 때의 자신은 16살 소녀의 마음으로 언덕에서 책을 읽으며 울었다나? 붙잡을 수는 없어도 근방에 사니까, 종종 스치면서 반기고 그냥, 평상을 살아주기를 얼마나 바랬던지. 최근 들어 무대조명 일 외에도 몇 개의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 많이 지친 것 같기는 했는데... 그게 [무게]이고 [현실]이니까 견뎌야 하겠지, 놀아주기는 했지만 들어주려고는 하지 않았는데.
"아무 것도 아니니까 평소대로 가자... 나 다음 주 생일이야. 밥이나 사 줘~"
하느님... 손끝이 부들거리는 것을 어떻게 추슬렀는지 생각도 안난다. 내 친구, 아직 서른도 안 되었는데. 도대체 얼마나 힘들었으면... 차라리 외국으로 전전하며 살았으면 괜찮았을까? 저 좋아하는 방랑자 계속하라고 등 떠밀었으면? 속이 쥐어뜯기는 것을 외면하고 평소대로 놀아주었다. 리마리오 흉내 - 한 번도 보지 않았지만 얼추 짐작으로(라틴계 마초냄새 팍팍 나는 느끼버전일 것이다!) - 도 내서 씽긋 웃어도 주고 별별 농담 다 지껄였다.
워낙 민속음악 같은 것을 좋아해서 무슬렘 수피음악을 각 나라마다 다른 버전으로 틀어주고 그것에 맞춰 다국적(?) 춤도 선보였다. 작업 중간에 벌인 생쇼에 둘은 깔깔대며 웃었다. 팔목 돌아가는 건 도저히 흉내 못 내겠다길래 '찌~ 인하게 블루스나 춰 볼까~' 했더니만 기겁이다. 지하에 <봉천무도장>있으니 한 바퀴 돌아볼까, 하며 폼을 잡긴 했다. 문득 시간이 26살 여름으로 돌아간다.
...
광화문 네거리였을 거다. 교보문고도 있고, 또 어디더라... 잘 기억은 안나는데 날이 후더워서 둘 다 얇은 옷을 입었다. 친구는 완전히 집시 스타일이다. 요즘은 몇 번의 유행을 거쳐서 그럭저럭 괜찮은 평상복이지만 그 때만 해도 한 번씩은 쳐다볼 옷이었다. 화려하니 치렁치렁 늘어진 옷 같은 건 아랑곳 없이 이어폰을 한 쪽 씩 나눠끼고는 요한 스트라우스의 왈츠 -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 - 에 맞춰서 춤을 추었다. 왈츠 스탭을 가르쳐 주고 삼박자에 이끌려 우아하게 휘돌았는데 정신 차려보니까 엄청 쑥쓰러운 짓이었다. 그 애는 그런 아이였다. 이전에도... 미친 척 하고 같이하는.
...
진짜 친구였다. 혜영이는 친구로 시작해서 지금은 가족에 가까운 사감을 가지고 있고 여러 그룹에서 얽힌 관계들 속에서 동갑도 거의 없는 데다가 한 살이라도 더 든 '어른들' 은 어려웠고 후배들도 그다지 절친하지 않다. 그 속에서 '나' 라는 사람을 그대로 긍정하며 받아들이고 고스란히 안기는 아이는 그 뿐이었다. 선량함 속에는 걷잡을 수 없는 바람이 있어서 헤 벌어지는 웃음과 함께 떠돌았는데 그것 때문에 같이 지낸 시간이 거의 없는 것이 아쉬웠지 다른 것은 글쎄... 커피(둘 다 에스프레소!)를 같이 마시고 음악을 같이 듣고 연극을 같이 보고... 그 무엇을 해도 편안했다.
많이 놀아주고는 다독여 보낸 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고 머리는 무겁다. 일은 자꾸 겉돈다. 잠을 설치고 새벽에 깨지 못해 지각까지... 무엇보다 무서움에 사로잡힌 것이다. 기가 막혔다. 기껏 불러들인 [평화]는 아무 것도 아닌 껍데기에 불과했다니. 끔찍한 잡념들을 떨치려고 애써봐도 그 자리이다. 악몽을 불러낸 자리... 고통이 시작된 자리... 이것이 현재이다. 여기까지, 단지 어떤 가능성이었을 거다! 걱정하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단지 시험에 불과한 거니까 마음 굳게 먹고.
이건 아니다... 자꾸만 흐트러지는 정신을 추슬러본다. 오늘만이다... 정신없이 바빠야 할 와중에 잠시 뜸을 들이고 타인의 안부에 염려하는 것은. 그리고... 다시금 깨어진 자리를 맞추고 어둠을 지우는 거다. 오로지... 동화일 뿐이다. 해피엔딩이 난무하는 판타지, 아무리 유치찬란해도 좋으니 내가 가진 주문, <혜영이의 리틀 윤미>로 찍혀 있는 이마의 낙인을 믿어보자. 아이가 가진 낙원... 오로지 밝음만이 가득하게... 그깟 목에 들어앉은 몇 센티미터 짜리 암세포의 자존심이 아무리 뛰어나도 방사능보다 더 강한 희망의 언저리나마 디뎌보는 거다.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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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 아이가 싫어할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위의 친구는 브람스 회원이신 "쟌느" 님입니다. ㅠ..ㅠ 갑상선암이라는 이야기 듣고 이틀 간 일은 커녕 잠이 안 오더라구요. 올릴까 말까 수없이 자반뒤집기를 거듭한 끝에 쓰는 이유는 많은 이들의 염력이 조금이나마 한 사람에게 기적을 부를 수 있지 않을까 해서입니다. 힘내셔요, 쟌느님... 3월 7일 수술날까지 하루라도 빼놓지 않고 님을 위해 하나님 전에 빌어 볼 생각입니다. 님들께 꼭... 부탁드립니다. 낫게 해 달라고... 기도해 주셔요! ㅠ..ㅠ
첫댓글 힘내세요...두 분다..기도 하시는 다른 분들도..모두요.^^천천히 한줄한줄 읽고 천천히 마음으로 좋은일을 빌다갑니다.
그래요...다 잘 될거에요~여기 브람스님들이..기도하고 있을거니깐요,,믿어요...저두 기운내서 기도 할거에요~~!!!!!
다들 힘내셔요! 쟌느님, 이 글 보고 울트라 파워 내서 그깟 병 얼른 떨치고 낫기를... 아잣~~~~~~~~~~~~~
지난 번에 같이 오신 그 잔느님?..... 정말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모르겠네요.. 힘내시라는 말 밖엔... 잔느님 수술.. 꼭 잘 될 겁니다... 희망 잃지 마세여....
프리윌님... 감사합니다. ^^* 잘 되겠지요... 잘 살 겁니다. 그 넘...
저도 기도드릴께요~~힘내세요!
간절하게 원하면 이루어질거에요. 나중에...아주 먼훗날에 웃으면서 이야기할수 있는 그날이 올거라고 생각합니다.
바비님, 애니님... ,Thanks! 쟌느님께 연락해봤더니... 마음 잡고 치료할 생각인가봅니다. 검사도 더 받아보고 공기 좋은 곳에 가서 요양도 하고... 수술날짜는 조금 미룰 생각이라지만요. 님들~ 감사합니다. 그저... ㅠ..ㅠ 미래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