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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록 실중어요(室中語要) 46. 빛과 경계(境界) 양쪽 다 잊으니 그 무슨 물건인가?
["빛이 경계(境界)를 비추지 않고 경계(境界)도 존재(存在)하지 않아서 빛과 경계(境界) 양쪽 다 잊으니 그 무슨 물건인가" 하신 반산스님의 말씀을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
지금 여기서 거론한 운문선사의 향상일구(向上一句)는 마조스님에게 법을 깨친 반산스님의 향상일구를 거론하여 법을 보여셨다.
이 반산스님의 향상일구에 숨어 있는 현지(玄旨)는 무엇일까요?
"빛이 경계(境界)를 비추지 않고 경계(境界)도 존재(存在)하지 않아서“라고 하신 것은 빛과 경계라는 양변을 둘어 말씀을 하시는 상대성원리에서 빛이 없으면 아무른 현상은 감각(感覺) 할 수 없습니다.
형상을 드래는 것은 오직 빛이 그 물체에 부딪혀 반사되는 빛그림자에 위해서 만이 드러낼 수 있듯이 형상이 본다는 눈동자에 직접 들어 와 버린다면 눈동자가 망가져 버릴 것입니다.
우리가 본다 즉 감각(感覺)은 오직 밝음이라는 빛이 있으니 형상을 알음알이인 여래장의 화현으로 인해서 이것이다 하면서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알아차리는 것은 만약 찻잔에 비유하면 그 형상은 그 본질인 흙까지 알아차리는 것이 아니라 표피인 형상만을 비추일 뿐입니다. 이것을 도완으로 드러납니다. 그것을 사량분별하여 찾잔이다라고도 할 수 있으며 물을 떠 마시는 물컵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며 물을 담아 꽃아 꽃을 곱을 수 있는 화환으로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형상으로는 그 찾잔의 실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표피적 형상만을 보았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찾잔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한 생각이 가지가지로 분별하여 받아들이지만 그 본질을 흙이라는 본질을 아는 것이 바로 그 성품을 아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도자기를 만드는 과정을 다 보고 느낀 것이 있는 여래장으로 알아 차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알아차린 빛그림자를 보고 이것을 알아차리는 놈은 누구입니까?
“빛이 경계(境界)를 비추지 않고 경계(境界)도 존재(存在)하지 않아서 빛과 경계(境界) 양쪽 다 잊으니” 그러므로 “빛과 경계라는 형상도 존재하지 않았어“라고 하신 것은 그 빛 그림자로 드러난 형상은 그 실체가 없다는 것입니다. 빛그림자가 찰라간에 비추이고 이미 빛은 찰라간에 사라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기에 무슨 일이 있었든 것입니다. 여기서 이 형상이 일어난 것은 찰나간에 일어났다가 찰라간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알아차리는가? 참으로 신통묘용(神通妙用)인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 납자들은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고 찰라간에 형상으로 드러낸 이것을 보고 어떻게 사량분별하고 그 근원까지 밝혀서 알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이것을 파악하는 이것이 무엇일까? 이 뭣 꼬?
여기에 등장하는 것이 여래장인 아뢰야식인 것입니다.
여래장은 찰라간에 기억된 것이 우리의 뇌에 저장된다하여 저장식(貯藏識)이라고 하며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창고와 같다고 하여 함장식(含藏識)이라고 하는 아뢰야식(阿賴耶識)이 있어 이것을 사량분별하는 말라식(末羅識)이 있으니 지금의 찰라간의 비추인 빛그림자를 여래장에 기억된 여래장에서 찾아 서로를 비교 분석하여 제칠식인 말라식에 의하여 사량분별을 한 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기에서 오직 발생한 일은 전부 마음의 심의식(心意識)이 있었어 이루어 진 것입니다.
그러니 이 향상일구는 오직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을 알아차려 이것이 마음의 일으키는 진공묘유(眞空妙有)임을 깨달기를 유도하여 이른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진공묘유(眞空妙有)에 대하여 불교사전적 기록을 통하여 진공묘유의 진정한 사상적으로 뒷받침하고자 한다.
불교의 근본 교리 가운데 하나인 공(空)은 이 세계의 만물에 고정 불변하는 실체가 없음을 표방하는 개념이다. 대승불교 중관학파의 용수(龍樹)는 초기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緣起)가 바로 공의 뜻임을 천명하였다. 연기는 이 세계의 만물이 다양한 인(因)과 연(緣)의 조합에 의해 생기하는 것이지, 고정 불변의 실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뜻한다.
이와 같은 공에 대해 옛부터 몇 가지 잘못된 이해 방식이 있었는데, 중국 화엄종의 승려 법장(法藏: 643~712)은 『반야심경(般若心經)』의 주석서인 『반야바라밀다심경약소(般若波羅蜜多心經略疏)』에서 이를 세 가지로 분류하였다. 첫째는 공이 사물과 다르다는 견해이다. 이는 공을 사물과 다르다고 보기 때문에 구체적인 사물을 떠나 별도의 공을 구하는 것이다. 법장에 따르면, 이런 견해에 대처하기 위해 『반야심경』에서 ‘색이 공과 다르지 않다는 색불이공[色不異空]’라고 하였다. 둘째는 공이 사물을 소멸시킨 것이라는 견해이다. 이는 이 세계의 구체적인 사물을 소멸시킨 뒤 남는 빈 공간을 공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런 견해에 대처하기 위해 『반야심경』에서 ‘색이 곧 공이다 즉 색즉시공[色卽是空]’라고 하였다. 셋째는 공을 어떤 특정한 사물로 여기는 견해이다. 이는 공을 이 세계의 다양한 사물들과 마찬가지로 있는 존재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런 견해에 대처하기 위해 『반야심경』에서 ‘공이 곧 색이다라는 공즉시색[空卽是色]’라고 하였다. 공에 대한 이런 잘못된 견해들을 타파하기 위해 불교도들은 진공(眞空), 곧 참된 공이란 이 세계의 사물 그 자체의 존재 양상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보았다.
또한 이 세계에 있는 만물의 관점에서 볼 때, 만물은 고정 불변의 실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생성과 변화가 가능해진다. 다시 말해 만물이 공(空)하므로 비로소 생동감 있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이 세계의 만물과 공의 원리가 서로 장애함이 없는 관계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파악할 때, 진공 그대로 묘유가 된다는 관점이 성립한다.
이는 우리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관점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부파불교 시기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와 같은 부파는 무상(無常)한 현실을 벗어나 무상하지 않은 열반의 세계에 도달하려는 사유 체계를 세웠다. 이에 따르면 열반은 무상한 현실과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진공묘유의 관점에 따르면, 진정한 열반이란 이 세계의 현실 속에서만이 실현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세계의 만물 자체에 공의 이치가 온전히 구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 ‘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과 같이 대승불교에서 제창된 내용 역시 이러한 진공묘유의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럼으로 진공묘유의 의와 평가로 본다면 대승불교의 영향이 강한 동아시아 불교에는 진공묘유의 관점이 보편적으로 수용되었다. 이를 통해 대승의 불교도들은 기존의 염세적이고 소극적인 세계관으로부터 이 세계를 보다 긍정하는 적극적인 세계관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중국의 다양한 불교 종파들, 가령 화엄종, 천태종, 선종 등은 모두 일상을 떠나지 않고 불교의 진리를 구현하고자 시도하였고, 이러한 경향은 우리나라에 전래된 불교 종파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다고 논설하고 있다.
이런 논서를 통하여 찰라간에 일어나는 형상에 대하여 반산스님의 향상일구를 예시하시고는 운문선사는 이 향상일구를 조금 다르게 표현을 하십니다.
["온 누리가 다 큰 빛인데 무엇을 자기라고 하겠느냐?]라고 하십니다. 이 향상일구(向上一句)를 이해를 돕기위하여 사족을 달아 봅니다. “온 누리가 다 큰 빛인데”라로 하시는 것은 우리가 감감(感覺)하는 삼천대처세계(三千大千世界)에 대하여 어떻게 감각 할 수 있는가 오직 빛이 있어 이 광활한 세계를 감각(感覺)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럼 이 빛으로 인하여 경계를 비추일 수 있으니 이 대경을 통하여 나를 밝힐 수 있는가 빛과 경계를 통하여 내 마음의 작용과 형상을 인지 할 수 있지만 빛과 경계를 볼때는 자기는 드러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운문선사는 “무엇을 자기라고 하겠느냐?라고 묻게 계십니다. 이것이 경계와 자기라는 대대법(對對法)에서 자기라는 실체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자기가 없느냐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대대법이라 그러니 이 때 느껴지는 감각(感覺)하는 자기가 없다면 경계가 아무리 빛에 의하여 드러나도 이것을 감각하는 자기가 없다면 또 전체가 다 찰라간에 사라짐으로 둘은 함께 하면서도 자기는 드러나지 않고 오직 빛 그림자에 위한 경계만 드러난 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또 법문을 이어 가십니다,
[그대가 빛을 알아버렸다면 경계(境界)도 성립(成立)하지 못하는데 무슨 똥 같은 빛이니 경계(境界)가 있으랴]
이 말을 핵심을 따라가 보면 “그대가 빛을 알아버렸다면 경계(境界)도 성립(成立)하지 못하는데”에서 그대가 빛을 알아버렸다면“이라고 하는 것은 빛은 공(空)입니까 색(色)입니까?
빛은 자기 스스로 일초에 34만 키로로 우주로 향하여 달려 가 버립니다. 잡을 수도 없고 따라 갈 수도 없이 찰라간에 사라지는 에느지이니 바로 공(空)입니다. 그럼 경계는 무엇입니까? 바로 색이라고 합니다. 그럼 색은 그 실체가 있느냐? 색은 쪼개고 나누어 보면 분자에서 원자로 원자에서 양자로 그 그본은 실체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원리를 알고 보면 공이 그대로 색이고 색이 그대로 공인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니 무엇이라 하겠습니까? 그레서 “그대가 빛을 알아버렸다면 경계(境界)도 성립(成立)하지 못하는데”는 말이 그대로 들어 맞아 버립니다. 그래서 운문선사는 이렇게 법문을 이어 갑니다.
[빛과 경계(境界)가 이미 성립(成立)될 수 없다면 그것은 무슨 물건인가."]라고 하십니다.
즉 “빛과 경계(境界)가 이미 성립(成立)될 수 없다면”은 즉 빛도 있다 할 수도 없다 할 수도 경계 또한 있지도 않고 없다고 할 수도 없는데 “그렇다면 그것은 무슨 물건인가?"라고 묻고 계신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것을 소소영영(昭昭靈靈) 지각(知覺)하는 이것이 무엇일까? 이 뭣 꼬? 즉 시십마(是什磨)인 것입니다.
무엇이 있었습니까? 여기서 바로 이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다.
라고 소리치면 한 소식한 것입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인 것입니다, 그렇게 한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없자 운문선사는 다음과 같이 말후구를 날립니다.
[다시 말씀하셨다. "이는 옛사람이 자비심(慈悲心)으로 중언부언하신 말씀이니 여기에서 매우 분명히 알아야 하리라.]
“이는 옛사람이 자비심(慈悲心)으로 중언부언하신 말씀이니”라고 하시는 말씀은 “이는 옛사람이 이라고 하신 것은 석가모니불부터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전해온 역대 조사들을 칭하시어 이 불법이란 다 부처님의 마음을 전해 받은 것이며 오직 유식이란 것을 알려 주기 위하여 직설적으로 마음이라고 가리켜 주면 알아차릴 수가없음으로 수행이란 마음을 볼 수 있는 참선수행을 통하여 자기 스스로 마음의 작용과 형상을 투득할 때까지 수행을 시켰든 것이며 말씀을 통한 경전을 바탕으로 경전의 본래지(本來智)를 스스로 투철히 깨닫도록 수행을 시켰으며 이 향상일구(向上一句)도 전도몽상(轉倒夢想)에 집착하는 중생들에게 향상일구를 역설적으로 설하시어 스스로 회광반조하여 뒤잡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선기방편인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자비심(慈悲心)을 발하여 중언부언(重言不言)이라 직설적으로 부정화법으로 즉 순료와 역순으로 말을 하여 차별과 분별심이 없이 양변을 스스로 벗어 날 수 있게 단련하는 것이 선기방편인 것이라고 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이렇게 부연하여 다시 말씀을 이어가십니다.
[놓아버려서는 안되거니와 놓아버리지 않는다면…" 하더니 다시 손을 들면서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놓아버려서는 안되거니와는 본래공이지만 없다고 놓아버렸어도 안되고 그렇다고 법집에 집착하여 잡고 있었어도 안되며 하시다가 이렇게 말을 하면 알아 듣겠는가 슆어 ["소로 소로."] 천천히 천천히 깊이 사유하고 사유하라고 하시면서 법문을 마칩니다.
성불인연 맺으소서 옴 바아라 믹~!!!!!!!!!!
조사선(祖師禪) 운문록(雲門錄)을 들어시어
인연성불(因緣成佛) 하시어서 붓다(佛陀) 같이 살아가소!
일승법문을 시절인연삼아 인연성불 하옵시고 대원성취 하옵소서 !
원오선원 명상쉼터 천안시 두정동 611_1번지 5층(041)551 8546
무명 납승 원오선사 010 8748 6006 옴~바아라 믹!!!_()_
탁발성원 보시구좌 농협 351 1042 1598 93 대한불교 정토회

첫댓글 운문록을 통하여 인연성불 요인성불하시어서 본불본락 하옵소서 옴~바아라 믹!!!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