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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오선사 유튜브로 바로가기 https://youtu.be/8he2dnwR3Po
운문록 실중어요(室中語要) 47. 온 누리가 물결이 아니다
["선하(禪河)는 물결 따라 고요하고 정수(定水)는 파도를 쫓아 맑다" 한 부 대사(傅大士)의 게송을 들려주고는 주장자로 등불을 가리키면서 말씀하셨다.]
한 때 운문선사가 한 법을 보였으니 여기서 들고 있는 향상일구(向上一句)는 부대사의 게송을 예시하여 거 하셨습니다.
부대사의 향상일구를 무엇을 이야기 하는 말을 인용하였을까요?
부대사는 재가신도로써 이지만 진리를 밝히는 말에는 출세간과 세간이 차별이 없습니다.
여기에 인용한 향상일구를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선하(禪河)는 물결 따라 고요하고 정수(定水)는 파도를 쫓아 맑다“에서 ”선하(禪河)는 물결 따라 고요하고“라고 하신 것은 선하란 우리가 말하는 선수행을 말하고, 선수행을 하는 강물이니 세상사에서 선수행을 하는 사람은 출세간이나 세간이 따로 없고 수행을 하는 사람에서 본다면 거대한 강물처름 누구나 진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 하고 있는 하나의 강물처름 도도히 흘러간다는 표현일 것이다.
그러한 “물결 따라 고요하고”라고 말한 것은 강가에 서서 본다면 물결이 흐르는 것 같지만 그 강물에 배를 뛰워 타고가는 선수행자라는 강물은 함게 흐름으로 강물이 흐르는 것을 모르고 요즘 같으면 자동차를 타 고 달리면 자동차가 나와 일체가 되어 달리기 때문에 차가 달리는 것은 알수 없듯이 모든 것은 둘이 아니고 하나가 될 떼에는 고요하다고 하는 것이니 이것은 선수행을 한지 않는 사람이 본다면 수행을 하는 것으로 알지만 사실 선수행을 하는 그 당체인 납자는 선수행이 아니라 참선이나 명상이나 하고 있는 사람은 그 수행자체가 내의 삶이고 선수행 삶속에 살다보면 수행하지 않는 사람들은 밖이고 나는 안이 되는 차별상이 지만 항상 안심입명 속에 살아가는 사람은 사실 아무일이 없는 것이라는 말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 말도 같을 뜻입니다.
“정수(定水)는 파도를 쫓아 맑다”라고 하신 말도 정수(定水)란 편안한 물이란 뜻이니 물이라는 그 안으로 들어가 본다면 폭포수가 흘러도 물의 입자자체에서 본다면 흘렸다는 것이 사실 없습니다.
바다에서 바닷물이 출렁이지만 물 자체에서 본다면 수파불이(水波不異)라는 말이 됩니다. 파도가 치고 있지만 그 파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바람이 물을 휘몰아쳤어 일으나는 형상이지만 천년 만년이 흘러도 언제나 물이지 물은 수증기고 안개가 되어 하늘을 향하여 올라가나 구름이 되어 하늘에 떠 있어도 또 비가 되어 내려 오고 산에서 내려 오면 개울물, 우물에 들어가면 우물물, 흙속으로 들어가면 지하수, 샘으로 들어가면 샘물, 고량으로 들어가면 고랑물 강물로 들어가면 강물, 호수로 들어가면 호수물, 등 등 이렇게 수만가지로 부르지만 다 그 인연처를 붙여 지어진 이름이지 이 이름은 사실 허망한 명색(名色)이라는 것입니다. 물은 물 그대로 물일 뿐이지 붙여진 이름은 사실 다 허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선하(禪河)는 물결 따라 고요하고 정수(定水)는 파도를 쫓아 맑다"
라고 하신 것은 사실 물은 있는 그대로 물일뿐이듯 선수행도 하고 있는 그대로가 있을 뿐이라는 말이며 차별과 분별심을 발하는 순간 마음은 흔들리는 파도에 불과한 것이지 차별적 파도가 있은 것이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이 부대사에 대하여 좀 알아 보기로 하겠습니다.
부대사(傅大士 497∼569) 속성이 부씨로 위진남북조 시대 양(梁)말 진(陳)초의 재가불자다.
그가 '부대사(傅大師)'로 불리지 않고 부대사(傅大士)'라 일컬어짐은
출가하지 않았던 그의 신분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높은 법력과 선기(禪機)는 당시 출재가를 막론해 추앙의 대상이 됐다. 그는 24세때 인도스님 '승두타'를 만나 불도에 귀의했다고 전해진다.
중국 선종의 제2조가 되는 혜가스님과 동시대인으로 부대사가 10년 연하가 된다.
절강성 무주출신으로 무주 선혜대사로 불리기도 하며, 송산정의 쌍수간(雙樹間)에 토굴과 같은 사암을 지어 지냈으므로 쌍림대사(雙林大士)라고도 이름한다. 또는 동양거사라고도 했다.
그는 낮에는 밭을 일구며 영작(營作)했고 밤에는 참선행도(參禪行道)를 하면서 법력을 내외에 떨쳤다.
이로 인해 불심천자(佛心天子)로 칭송되던 양무제가 귀의해 올 정도였다.
부대사가 지은 심왕명은 진리의 계송으로써 너무나 유명함으로 소개해 본다면
심왕명(心王銘) /부대사(傅大士)
觀心空王(관심공왕)
마음을 보면 텅 비었으면서도 왕노릇하니,
玄妙難測(현묘난측)그윽하고 묘(妙)하여 헤아리기가 어렵다.
無形無相(무형무상)모양도 없고 구별도 되지 않으나,
有大神力(유대신력)크게 신통한 힘을 갖추었네.
能滅千災(능멸천재)온갖 재난 소멸시키고,
成就萬德(성취만덕) 온갖 공덕 이루는구나.
體性雖空(체성수공)본바탕 성품은 비록 비었으나,
能施法則(능시법칙) 법칙(法則)을 잘 베풀 수 있네.
觀之無形(관지무형)바라보면 모양 없으나,
呼之有聲(호지유성) 불러보면 소리 있구나.
爲大法將(위대법장)크나 큰 법의 장군되어,
心戒傳經(심계전경)마음의 계로 경을 전하네.
水中鹽味(수중염미)물 속의 소금맛이요,
色裏膠淸(색리교청)단청 속의 아교라.
決定是有(결정시유)틀림 없이 있기는 한데,
不見其形(불견기형) 그 모습을 볼 수는 없으니,
心王亦爾(심왕역이)마음[心王]역시 그러하다.
身內居停(신내거정)몸 안에 머물러 있으면서,
面門出入(면문출입) 이목구비(耳目口鼻)로 출입한다.
應物隨情(응물수정)사물에 응하여 정식(情識)을 냄에,
自在無碍(자재무애)스스로 존재하며 걸림이 없어,
所作皆成(소작개성)행하는 것마다 모두 이루어진다.
了本識心(요본식심)근본을 밝히면 마음을 알고
識心見佛(식심견불)마음을 알면 부처를 만난다.
是心是佛(시심시불)이 마음이 바로 부처이고,
是佛是心(시불시심)이 부처가 바로 마음이다.
念念佛心(염념불심)생각생각이 부처인 마음이니,
佛心念佛(불심념불)부처인 마음이 부처를 생각한다.
欲得早成(욕득조성)공부를 빨리이루고 싶다면,
戒心自律(계심자율)계율로 마음을 깨끗이 하라
淨律淨心(정율정심)계로 마음을 깨끗이 하면,
心卽是佛(심즉시불)그 마음이 바로 부처이다.
除此心王(제차심왕)이 마음을 제외하고,
更無別佛(갱무별불)다시 다른 부처는 없다.
欲心成佛(욕심성불)마음이 부처되길 바란다면,
莫染一物(막염일물)한 물건에도 물들지 말아라.
心性雖空(심성수공)마음의 본성은 비록 텅 비었지만,
貪瞋體實(탐진체실)탐진치 삼독의 실체는 참으로 있다.
入此法門(입차법문)이러한 법문(法門)에 들어오면
端坐成佛(단좌성불)단정하게 앉은채 부처가 된다.
到彼岸已(도피안이)이 경지에 이르면,
得波羅蜜(득바라밀)바라밀을 얻는다.
知佛在內(지불재내)도(道)를 받드는 참된 선비는, 자기의 마음을 스스로 본다.
不向外尋(불향외심)부처가 안에 있는 줄 알게 되면,밖으로 찾지는 않을 것이다.
卽心卽佛(즉심즉불)이 마음이 바로 부처이고,
卽佛卽心(즉불즉심)이 부처가 바로 마음이다.
心明識佛(심명식불)마음이 밝아지면 부처를 알게 되니,
曉了識心(효료식심)밝고 또렷하게 마음을 알아야 한다.
離心非佛(이심비불)마음을 떠나면 부처가 아니고,
離佛非心(이불비심)부처를 떠나면 마음이 아니다.
非佛莫測(비불막측)부처 아닌 것은 헤아리지 말지니,
無所堪任(무소감임)견줄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執空滯寂(집공체적)공을 붙잡으면 고요함寂에 막히니,
於此漂沈(어차표침)여기에서 떠돌다 가라앉아 버린다.
諸佛菩薩(제불보살)모든 부처와 보살은,
非此安心(비차안심)이렇게 편안하게 머물지 않는다.
明心大士(명심대사)마음을 밝힌 대장부는,
悟此玄音(오차현음)이 현묘한 말을 깨닫는다.
身心性妙(신심성묘)몸과 마음의 본성은 묘(妙)하여,
用無更改(용무경개)쓸 수 있을 뿐, 고칠 수는 없다.
是故智者(시고지자)이런 까닭에 지혜로운 자는,
放心自在(방심자재)구함을 놓고서 자재하게 지낸다.
莫言心王(막언심왕)마음을 일컬어,
空無體性(공무체성)텅 비어 실체가 없다고 말하지 말라
能使色身(능사색신)능히 육체(色身)를 부려서,
作邪作正(작사작정)삿된 일도 하고 바른 일도 한다.
非有非無(비유비무)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어서,
隱顯不定(은현부정)숨고 나타남이 일정하지 않다.
心性離空(심성리공)마음 성품은 비어 없는 것이 아니라,
能凡能聖(능범능성)범인 노릇도 하고 성인 노릇도 한다
是故相勸(시고상권)이러한 까닭에 서로 권하노니,
好自防愼(호자방신)스스로 방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刹那造作(찰나조작)잠깐이라도 조작한다면,
還復漂沈(환부표침)도리어 생사의 바다에서 흘러 다닐 것이다.
淸淨心智(청정심지)마음의 지혜를 깨끗이 하면,
如世黃金(여세황금)속세의 황금과 같을 것이다.
般若法藏(반야법장)반야지혜 진리의 창고는,
並在身心(병재신심)몸과 마음에 아울러 있다
無爲法寶(무위법보)함이 없는 무가의 보물은,
非淺非深(비천비심)얕지도 않고 깊지도 않다.
諸佛菩薩(제불보살)모든 부처님과 보살님은,
了此本心(요차본심)이 본래 마음을 밝혔다.
有緣遇者(유연우자)인연 있어 이 법을 만나는 이는,
非去來今(비거래금)과거도 미래도 현재도 아니라네.
심왕명(心王銘) /부대사(傅大士)를 원오선사
순수 우리만로만 게송으로 풀어본다.
한마음을 비추이면 텅비어서 심왕이다
그윽하고 현묘하여 혜아리기 어렵도다
모양없고 형상없어 구별되지 않지만은
넓고크게 신통하온 신묘함을 갖추었네
천제팔난 온갖재난 한순간에 소멸하고
무량무수 온갖공덕 한순간에 이루나니
본바탕의 본성품은 비록없이 비었으나
진리법칙 온갖법을 잘베풀수 있는거네
관하여서 바라보면 그모양은 없었으나
불러보면 허공속에 큰소리가 있었구나
위대하고 크나큰법 제법중에 장군이라
마음계율 마음경계 경전되여 전하였네
물속에의 소금맛과 단청속의 아교이라
틀림없이 있는것은 있기만은 한것인데
그모습과 형상만은 볼수조차 없는것이
마음심왕 이것역시 그러하고 그러하다
내몸안에 머물러서 분명히도 있으면서
눈과귀와 코와혀로 여섯군데 출입한다
온사물에 응하여서 바른식을 내는이것
제스스로 존재하며 걸릴것이 하나없다
행하는곳 처처마다 이모두를 이루이니
근본원천 밝히면은 그마음을 모두알고
한마음을 바로알면 부처님을 만나리라
이마음이 있는데로 그대로가 부처이고
이부처가 있는데로 그대로가 마음이다
념념생각 이모두가 부처님의 마음이니
부처님인 한마음이 부처님을 생각한다
마음공부 신속히도 이루려고 한다면은
청정계율 이마음을 깨끗하게 맑히고서
맑은율법 청정하게 한마음을 밝게하면
심즉시불 그마음이 그대로가 부처이다
지금여기 이마음을 제외하고 찾는다면
마음제한 별로다른 부처님은 없는거다
한마음이 지금여기 부처되길 바란다면
모든경계 한물건에 물들지를 말지니라
한마음에 그본성은 비록텅텅 비었지만
탐진치의 삼독심의 실체만은 진정있다
일승법문 그속으로 진정으로 들어오면
단정하게 앉은체로 그대로가 부처된다
도피안의 이경지에 어서속히 이르면은
보시지계 인욕선정 바라밀을 얻어지니
도받드는 참된선비 자기마음 바로본다
내부처가 안에있는 줄을알게 된다면은
내밖에서 부처찾지 않을것을 깊이안다
즉심즉불 이마음이 그대로가 부처이고
즉불즉심 이부처가 그대로가 마음이다
한마음이 밝아지면 부처님을 알게되고
밝고맑게 또렷하게 한마음을 알아진다
한마음을 떠나면은 제부처가 이아니고
제부처를 떠나면은 한마음이 이아니다
부처아닌 모든것은 혜아리지 말지니라
견줄만한 모든것이 본래없기 때문이다
일체공을 붙잡으면 고요함에 막히이고
지금여기 떠돌다가 가라앉아 버리니라
일체제불 부처님과 팔만사천 보살님은
이렇게도 편안하게 머물지를 않이한다
한마음을 모다밝힌 무사인인 대장부는
오차현음 이렇게도 현묘한말 깨닫는다
몸과마음 그본성은 현묘하고 묘하였어
쓰고쓸수 있었을뿐 고칠수는 전혀없다
이러하온 까닭에라 지혜로운 대장부는
구함모두 놓아버려 자재하게 지내니라
막언심왕 한마음에 심왕보여 일컬어서
텅비어서 실체없다 말하지를 말지니라
사대육신 육체들을 능히자재 일으키어
삿된일도 능히하고 바른일도 잘도한다
있는것도 아니면서 없는것도 이니라서
숨기우고 나타남이 일정하지 아니한다
마음성품 비었다고 없는것이 이아니라
범부같은 노릇하고 성인노릇 모두한다
이러하온 까닭에나 서로서로 권하노니
스스로가 방비하는 모든것이 좋으리라
잠시잠깐 한순간도 한마음을 조작하면
도리어나 생사바다 흘러다닐 것이로다
청전마음 청정지혜 깨끗이만 한다면은
지금여기 속세에서 황금같을 것이로다.
반야지혜 반야진리 진리들의 창고에는
사대육신 한마음이 아루러져 있는거니
함이없는 무가보의 보물들이 모두있다
얕지도오 않이하고 깊지도오 않이한다
일체재불 부처님과 팔만사천 보살님은
본래본불 이한물건 한마음을 밝히였다
시절인연 맞닿았어 이법만난 사람들은
과거세도 미래세도 현재세도 아니라네
나무 영산회상 불보살_()_
이제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부대사의 향상일구를 예시하여
[선하(禪河)는 물결 따라 고요하고 정수(定水)는 파도를 쫓아 맑다" 한 부 대사(傅大士)의 게송을 들려주고는 주장자로 등불을 가리키면서 말씀하셨다.]라는 선의 크나큰 강물은 물결 따라 고요하다는 것은 위에서 설파하였듯이 정수는 파도를 쫓아 맑다라는 움직임 자체가 있는 것 같지만 움직임은 오직 마음의 작용으로 일으나는 것이지 그 한 말건도 없다는 본래(本來) 무일물(無一物)인데 오직 내 마음의 작용임을 밝히는 대목에서는 수파불이(水波不異)를 말씀하고 있음을 예시하고는 이렇게 말씀을 “한 부 대사(傅大士)의 게송을 들려주고는 주장자로 등불을 가리키면서 말씀하셨다.”라고 하시어 여기서 주장자로 등불을 가리키면서는“는 이 본래무일물이며 수파불이라는 향상일구에 대하여 다시 이렇게 선기방편을 베풀고 있습니다.
["보느냐? 본다고 한다면 범부를 타파하는 것이며, 보지 못한다고 한다면 두 눈이 멀쩡한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하셨습니다. “보느냐? 본다고 한다면 범부를 타파하는 것이며”라고 하신 것은 보느냐?라고 하신 본래무일물에 무엇을 본다고 하느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선에서 본다면 본래무일물이며 본래공(本來空)에서 본다면 모든 형상은 그 실체가 없다는 것인데 어찌 본다는 형상이 어디에 있느냐고 하시는 말씀이고 금강경에서 본다면 석존께서는
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 이음성구아(以音聲求我)하면 시인행사도(是人行邪道)라 불능경여래(不能見如來)이라는 사구게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만약에 어떤사람이 나의 형상을 보고 부처라고 하거나, 내가 한 말을 듣고 부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자는 사된 법을 행라는 것이라 이런 사람은 여래를 볼 수 없다라고 하였듯이 모든 형상과 말과 행위는 다 본래공이요 본래무일물에서 본다면 헛것을 본것이라는 뜻이니 다시 회광반조하여 이 형상은 사실 그 실체가 없으며 오직 내 마음의 작용임을 안다면 그 즉시에 부처를 보는 것이니 마음이 부처요 부처가 마음이라는 것이 바른 안목(眼目)임을 대중들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보느냐? 본다고 한다면 범부를 타파하는 것이며”라고 하시어 본다고 그 형상이 진실로 있다고 한다면 제법실상(諸法實相)에서 본다면 마음의 작용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면 범부를 벗어난 여래의 경지에서 본다는 뜻이고,“보지 못한다고 한다면 두 눈이 멀쩡한 것이다.”라고 하시는 것은 본래공에서 비추어 본다면 그 형상은 마음의 작용에서 본다면 마음이 스스로 그려낸 향상임으로 두 눈은 사실 비추이는 거울과 같아 그 형상으로 인식하는 두눈의 인식론으로 본다면 눈의 실질적 기능이 잘 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니,
이것은 본다 보이지 않는다라는 양변을 거론하시어 이렇게 묻고 계십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양변을 거론 후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묻는 것은 그대들의 안목이 어떻한가를 묻고있는 것입니다. 자 그름 어디에 집착하는가를 판가름 하는 물음이니 우리 불자님들은 어떻한 말이 맞습니까? 틀립니까?
다 맞고 다 틀렸습니다. 이 때 회광반조하여 이 양변을 벗어나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일뿐]임을 간파하시어 말을 하던 하지않던 상관없이 이 형상을 감각(感覺)하는 그대로가 중도 실상인 것입니다.
대중이 아무도 대답이 없자 운문선사는 이렇게 말후구를 날립니다.
[한참 잠자코 있다가 다시 주장자를 잡고 말씀하셨다."온 누리가 물결이 아니다."]라고 하시어 사구백비로 부정해 버립니다.
성불인연 맺으소서 옴 바라라 믹~~~~~~!!!!!!!!!!
조사선(祖師禪) 운문록(雲門錄)을 들어시어
인연성불(因緣成佛) 하시어서 붓다(佛陀) 같이 살아가소!
일승법문을 시절인연삼아 인연성불 하옵시고 대원성취 하옵소서 !
원오선원 명상쉼터 천안시 두정동 611_1번지 5층(041)551 8546
무명 납승 원오선사 010 8748 6006 옴~바아라 믹!!!_()_
탁발성원 보시구좌 농협 351 1042 1598 93 대한불교 정토회

첫댓글 운문록을 통하여 인연성불 요인성불하시어서 본불본락 하옵소서 옴~바아라 믹!!!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