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설국--눈의 꽃처럼 아름다운 유민과 중년남성의 절망끝의 사랑노래
신설국--눈의 꽃처럼 아름답고 달콤했던 사랑의 요정 유민
참으로 다양하고도 복잡한 기분을 선사한 영화였다. 시간부족으로 자제하려 노력하였으나 감상평을 남길 수 없는 영화가 되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국경의 긴 터널을 지나자 설국이었다.] 1968년 일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장편소설 [설국]은 이렇게 시작된다. 가와바다 야스나리 탄생 1백주년을 맞아서 지난 2000년, 사사쿠라 아키라는 [신설국]이라는 소설을 발표한 것이 이 작품의 원작. 아류작이 이토록 아름답다면 원작은 어떤 작품일까 새삼 궁금증이 일었다.
눈으로 시작해서 눈으로 끝나는 눈의 이미지를 극대화한 영화였다. 온 세상이 순백의 설경으로 가득찬 세상은 순결하고 정결한 아름다움의 극치였고, 세상의 모든 더러움과 위선을 씻어내는 자연적 본능의 인간미를 살려냈으며 순수하고도 아름다운 사랑을 돋보이게 하는 뛰어난 여백이었나 보다.
일본은 따뜻한 나라라는 선입견이 있고 눈을 보기 힘든 나라라는 편견이 있었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일본땅이 남북으로 만만치 않게 긴 나라라는 것을 실감하였다. 홋카이도가 무대인가보다 싶어 지도를 찾았지만 쯔키오카(月岡)을 끝내 찾을 수 없었다. 그곳이 니가타(新潟) 현에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곳에도 그리 많은 눈이 내릴 수 있다는게 신비롭기까지 했다. 일본의 태평양지구는 따뜻한 난류가 흐르고 동해쪽은 냉기가 흐른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산이 많은 이 고장은 푀엔현상의 영향을 받아 그리도 많은 눈이 내리는 것일까. 한국의 태백산맥근처처럼.
놀라운 아름다움이었다. 영혼을 정화하는 듯한 순백의 세계를 감상하는 기분만으로도 값싼 겨울여행을 했다는 감사함이 가득했다. 쯔키오카(月岡)의 겨울풍경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낙원처럼 보이기도 했었다.
그리고 하얀 눈의 꽃처럼 아름다운 여자 모에꼬(후에키 유우코(夕子) 분--한국 예명 유민)의 눈부시도록 청순한 아름다움은 또 얼마나 대단했던가. 그런 아름다운 여자의 눈처럼 하얀 속살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산소같은 깨끗하고 부드럽고 달콤한 그녀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제값을 하고도 남았다.
국경의 긴 터널같은 세상의 풍상을 지나온 중년의 여행자는 세상이 모두 하얀색으로 뒤덮인 눈부신 설국에 들어서자 머무를 여관을 찾아나선다. 낯선자에게는 방을 주지 않은 관습이 모종의 사건가능성 때문이라는데 설원의 아름다움은 미의 극치요 인간감성의 극한을 자극해 충동적인 사건을 부를 수 있다는 암시였는지 모른다.
그도 다분히 그런 남자였다. 암흑같은 터널을 지나오듯 모든 희망을 버리고 이 세상에서 마지막 행복감을 안고 떠나려는 자의 본능이 잠재되어 충동질받는 남자였다. 그에게 남은 자금 200만엔은 세상을 정리하는 마지막 여행자의 저승길 노자돈이었던 것이다.
죽음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충동질하는 마지막 터널과도 같다. 인간은 죽음이 두렵기에 2세를 생산하고 죽음을 각오하는 자는 마지막 욕망을 충동받는다. 전쟁터로 떠나는자 마지막 사랑의 불꽃을 연소하고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는자 유독 성적욕망에 휩싸여 전장에서는 강간의 비명소리가 그칠날이 없다.
인생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려는 자에게도 성적 욕망을 화려하게 터트리고싶은 잠재욕망이 내재되어 있을 것이다. 그의 본능은 작은 만남에서도 모에꼬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마지막 남은 젖어버린 장작을 태우려는 남자와 그 장작을 품에 안아 따스히 덮이고 같이 타오를 짚단의 여자가 운명적으로 만난 것이다.
마지막 남은 돈 200만원이 그가 세상에서 태울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그들의 만남은 본능적 감성의 부빔이었고 장작과 짚단은 마찰렬처럼 타오르기 시작한다. 그들의 사랑과 열정의 레이스는 장작 200만원만큼 진행될 것이었다. 사랑의 불꽃이 화려할수록, 강렬할수록 그 레이스의 종말은 빨리 오고야마는 시한부 사랑이었다.
사랑의 문이 열리고 그 힘찬 돌진의 레이스에 가속이 붙으면 충돌의 관성은 지속적인 사랑의 불꽃을 요구한다. 원초적으로 모든 사랑이 비극적 속성을 안고 있는 것은 사랑의 강도와 관성이 커갈수록 그 에너지원은 고갈해가는 경제적 법칙 때문이다.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처럼 욕망의 불꽃은 언제가 더 강한 공급을 요구한다. 그래야만이 더 강한 만족의 효용을 느끼며 따오르는 황홀감을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 그 어디에도 무한한 자원이 없듯이, 사랑의 에너지원도 언젠가는 고갈의 순간으로 전전하고야 마는 것. 거기에 인생과 사랑의 비극이 숨어있지 않겠는가.
하물며 겨우 200만엔만 가진 그로선 그 레이스가 얼마나 찰라처럼 짧으며 아쉬움과 안타까움의 연소마감이겠는가. 마지막을 보는자 비극을 안고있다. 마지막을 상상할 수 있는 인간의 힘이 화려함과 절망감 사이의 비극적 좌절감을 배가시키는 것이다. 더이상 태울 수 있는 무엇이 없다는 것, 그리고 안타까운 사랑의 상실감, 그것은 관성의 법칙으로 돌진하는 인간들이 돌부리에 걸려 쓰러지는 것과 같은 좌절감이요 메울 수 없는 상처감일 것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레이스의 기권과도 같은 인생의 죽음과 닮았다.
사랑의 불꽃은, 사랑의 레이스는 본질적으로 영원히 전진할 수 없는 고독한 장거리 레이서들이 언젠가는 쓰러지고야마는 인생마라톤과도 같다. 보폭과 속도가 각기 다른 인간들이 인생레이스에서 같이 달릴 수 있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다. 다른 출발점에서 다른 목적지로 다른 속도로 달리는 인간들이 순간적으로 같이 만나 달릴 수 있는 우연하고도 신비롭기까지한 운명의 선물이다. 그래서 인간의 만남과 우정과 사랑과 이별은 모두 운명의 선물이요 아픔이리라. 긴 인생 레이스에서 사랑의 불꽃은 찰라의 불꽃과도 같기에 누구에게나 황홀한 꽃이요 잊을 수 없는 추억이리라. 눈꽃도 벚꽃도 영원할 수 없기에 더 애뜻한 인생의 축제요 추억으로 남으리라.
눈부신 첫사랑의 불꽃을 모두 태우지 못한 모에코도, 사업파탄을 맞는 50세 중년남성 시바노 쿠니오(오쿠다 에이지 분)도 희망을 잃고 죽음의 터널로 들어선 인생길이었다. 서로 다른 인생 레이스에서 같은 시간 같은 좌절의 터널에서 운명적으로 만난 이들은 동병상련의 동행자들이었고 위로자들이었다.
다른 터널을 빠져나온 그들이 눈꽃의 철로길에서 만나 서로를 위로하는 사랑의 축제를 벌인다. 서로의 아픔과 욕망을 알기에 그들은 눈부시게 타오를 수는 하얀설원의 한쌍의 백로와도 같이 아름다울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동행 레일은 길지 않았다. 그들은 새로운 터널로 각기 나뉠 수밖에 없는 분기점에 이르게 된다. 사랑의 관성은 둘이 함께하라고 요구하지만 철로운임이 바닥난 그는 무임승차인생을 차마 할 수는 없었다. 둘이 같이 힘겨울 수밖에 없는 반칙여행은 차마 할 수 없었다.
사랑의 힘은 얼마나 위대할 수 있을까. 다른 레이스의 그들 인생을 하나로 묶을 수 있을까. 위대한 사랑의 힘이 그들 인생을 하나로 묶고 마지막 그 순간까지 타오를 수 있기를 빌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힘겹고 고통스러운 길임을 두 연인은 그리고 영화는 설파한다. 사랑의 설원지대는 그들의 영원한 사랑의 보금자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인간역사는 아프게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설원사랑은 삶의 일상이 아니요 극단적인 일탈 여행길의 짧은 축제였음을 나이는 알고 있었다. 도시의 일벌은 텅빈 꿀단지를 채워야 삶의 연장이 가능하기에 도시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도시노동의 동물이었다.
겨울에 더 아름다운 설원의 꽃은 관광여행자 일벌들의 꿀을 채집해야 삶이 이어지는 눈속에서 피어나는 꽃이었다. 일벌과의 사랑은 일상이 아니요 직업이었으며 서비스였던 것이다.
사랑의 불꽃을 영원히 태우고야 말리라던 모에코는 결국 운명과 타협한다.
"다시 돌아오지 못해도 좋아요. 언제까지나 나를 기억해주세요."
그의 심금을 마지막까지 태워버렸던 모에꼬의 마지막 사랑노래. 더이상 더 태울 수 있는 그 무엇이 없는 영원한 작별의 촛불이었기에 그 안타까움과 애절함은 영원의 기억으로 남으며 슬픈 황홀함으로 타올랐을 것이다. 마지막이기에 모든 것을 한점 남김없이 연소하고야 말리라는 힘없는 촛불의 슬픈 타오름이었으리라.
그들의 사랑의 축제가 200만엔 꿀단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듯이 연소할 장작이 다해가는 그들에겐 더 태울 무엇이 남지 않았던 것이다. 순결처럼 아름답고 요정처럼 달콤했던 사랑의 불꽃은 영원히 타오르기를 갈구하건만 지진처럼 이별의 운명을 요구하는 인생의 운명길은 사랑의 불꽃을 작별의 계곡으로 던져 추억의 잔상에 담았다.
"쌓인 눈은 겨울만 지나면 없어지잖아요. 하지만 내 슬픔은 없어지지 않았어요"
다 태우지 못한 첫사랑 추억을 그리는 모에코의 안타까움이었다. 연인은 떠나보냈지만 사랑의 추억은 영원처럼 남았다. 누가 사랑은 짧고 인생은 길다고 말했던가. 짧은 것은 축제의 연인이요 긴 것은 사랑의 추억. 축제는 끝나도 사랑은 추억으로 영원히 제 생명력으로 타오르고 있지 않던가. 짧고 아쉬웠기에 그 미련의 촛불은 깊이 숨쉬는 본능안에서 더욱더 타오를 수 있는 것.
축제는 짧지만 그 황홀한 열정은 연인들의 가슴을 태우며 인생길을 타오르게 하리라.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예찬하고 추억하며 노래하리라.
사랑이여, 사랑이여, 사랑이여 !
그 황홀하고도 숨파팠던 정열이여, 눈물이여 !
그 숨결과 아픔과 아름다움을 그리워하기에, 그를 추억하기에 !
우리네 인생 살만했다고, 다름다웠다고 !
그래서 지금도 살고 있다고 !
노래 하리라 !
아름다운 사랑노래를 !
추억의 인생노래를 !
2004 4 27 화 오전
글을 마치면서 더 진한 아쉬움와 미련의 여운을 지울 길이 없다. 얘기하고 싶은 너무나 많은 것들을 풀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추가해본다.
눈의 꽃처럼 아름답고 달콤했던 사랑의 요정 유민
인간세상이 저토록 아름다울 수 있던가. 온 세상을 순백으로 물들인 하늘의 선물, 자연은 참으로 위대한 선물이요 인간이 받은 최대의 축복이었다.
그런데 여기 한 인간, 순백의 요정처럼 아름다운 한 여인이 있었으니 후에키 유우코(유민) ! 설원의 딸처럼 순수의 영롱함으로 빛나던 그녀. 누가 자연을 아름답다 했던가, 위대하다 했던가. 아름다운 것은 유민, 위대한 것도 유민이었다 ! 자연은 배경이었을 뿐이었노라. 자연은 유민을 낳은 어머니였을 뿐, 아름다움의 주인공은 유민이 있을 뿐이었다 !
산소처럼 해맑은 미소로 거닐던 하이얀 얼굴, 세상을 모두 안을 것 같은 부드러운 눈길, 귀여운 애교로 발랄하던 노오란 가벼움, 버들잎처럼 나긋나긋 부드러운 허리와 탐스런 히프의 율동, 봉숭아처럼 달아오른 사랑의 열정, 벚꽃처럼 황홀하게 피어나던 눈부신 속살, 사랑의 불꽃처럼 타오르던 뜨거운 숨결, 안타까운 사랑의 미련에 오열하던 자주빛 연정, 영원의 추억을 그리는 보라색 슬픔, 알 수 없는 미래를 재회의 희망으로 푸르게 웃던 웃음. 인간의 아름다움이 이토록 다양한 빛깔을 낼 수 있다니 !
모두가 설레이도록 황홀한 기쁨이요 희망이요 축복이었다. 인간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음에 삶은 축복이요 구원이었다. 한 여인이 이토록 많은 남성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니 그녀는 사랑의 요정이요 인생의 보람이었다. 그녀를 담을 수 있었기에 영화는, 예술은 인류의 구원이요 축제였다.
아, 하고픈 얘기는 참으로 많건만 시간이 허락되지 않아서 유감.
다음기회를 고대해봅니다. 일단 약간만 보충.
영화초반에 나오는 노래 --논의 꽃 ?--이라는 노래가 너무 멋지더군요.
이 영화의 메시지를 강하게 암시하는 듯 했습니다. 메모 못한게 아쉽네요.
어느 정사신에선가 참으로 아름다운 음악이 깔렸었지요. 아...정말 죽였어요.
마지막 정사신, 기모노에 드러난 하복부에 그의 모든 걸 쏟는 장면.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들(빨강 무지개 다리를 무대로 주로 게이샤모습이 아쉬움, 더 아름다운 모습들도 많았는데. )을
떠올리는 그의 기억들-- 그는 지금의 그녀만이 아닌 기억에 간직된 그녀의 모든 아름다움을 영혼에 각인시키는 듯한 혼신의 사랑, 그 정사신을 잊을 수 없네요.
나도 그런 기억이 있습니다. 바로 아래 그녀만이 아닌, 기억과 추억속의 모든 그녀를 안고 영원히 영혼에 담다두고픈 혼신의 정사... 아마도 작가의 안타깝고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의 장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지막 장면이 뭘 암시하는지 정확한 해석이 어렵더군요.
과연 그들은 재회할 수 있을지. 그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절망끝의 안타까운 추억에 오열하지 않았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