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8년 9월 28일 오후 6시, 이집트 원정군 총사령관 나폴레옹 소장은 참모들과 함께 티볼리극장에 들
어섰다. 카이로를 점령한 뒤 3만 원정군과 5만 프랑스 이주민들이 여흥을 즐길 수 있도록 나폴레옹이
명하여 지은 극장이었다. 한창 연극을 관람하던 나폴레옹은 몇 좌석 건너 앉아 있는 젊은 금발미녀와
눈이 마주쳤다. 푸레스 중위의 아내 폴린 푸레스였다. 나폴레옹은 파리를 떠난 뒤 처음으로 눈에 띈
미녀에게 뿅 가서 각중에 강렬한 욕정을 느꼈다. 명랑하고 매력적인 폴린 푸레스도 나폴레옹을 마주
보며 고혹적인 미소로 그의 눈길에 화답을 보냈다. 이튿날 아침, 푸레스 중위의 소속 부대장은 봉투
를 하나 건네주며 명했다.
“제22기병대 푸레스 중위는 즉시 알렉산드리아로 가서 툴롱 행 여객선을 타라. 배가 출항하고 한 시
간이 지난 뒤 이 봉투를 열어보면, 그 안에 너에게 부과된 임무가 들어 있다.”
갓 스무 살인 폴린 푸레스는 선선히 부대에서 마련해준 집에 입주하여 매일 밤 나폴레옹을 기다렸다.
밤은 뜨거웠다. 카이로 시민들은 나폴레옹과 금발의 미녀 폴린 푸레스가 나란히 마차에 타고 다정하
게 산책하는 모습을 매일 볼 수 있었다. 프랑스 장병들의 시선은 따가웠지만 카이로 시민들의 눈길은
선망에 가득 차 있었다. 카이로 시민들은 폴린 푸레스를 ‘동방의 왕비’라고 부르며 반겼다. 늘 그랬듯
이, 나폴레옹은 누가 뭐래든 이 매력적인 금발의 아가씨를 평생 잊을 수 없을 만큼 깊이 빠졌다. 그녀
는 유쾌하고 재치가 넘쳤다. 무엇보다 그녀의 뜨거운 육체는 나폴레옹이 지금껏 누구에게서도 맛보
지 못한 열락의 화수분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푸레스 중위가 일찍 귀대했다. 알렉산드리아 앞바다에서 그가 탄 배를 나포한 영국
군이 전후사정을 듣고 나서, 나폴레옹과 푸레스 중위 간에 갈등을 유발하기 위해 순순히 그를 살려
보내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미처 손을 쓰기도 전에 폴린 푸레스가 먼저 남편을 거절하고
이혼을 해버렸다. 폴린은 이미 나폴레옹의 무한한 지적 자산과 다정다감한 언변, 그리고 무엇보다 잠
자리에서 자신을 극도로 만족시켜주는 청년 보나파르트의 인간적인 매력에서 헤어날 수 없었다. 폴
린은 티볼리극장에서 나폴레옹과 눈길이 마주친 순간, 그의 뜨거운 눈길에 벼락을 맞은 듯 감전되어
자신이 갈 길을 결정했던 것이다.
나폴레옹이 쓰던 이각모. 경매에서 어느 한국인 사업가에게 26억 원에 낙찰되었다고.
이후 나폴레옹은 공식만찬에도 떳떳하게 폴린과 동행했다. 장군들도 총사령관에게 무한한 에너지를
제공해주는 폴린에게 대체로 호의적인 태도를 취했다. 장병들도 폴린에게 우호적으로 돌아서서, 그
녀가 혼자 외출할 때는 자진해서 호위를 해주기도 했다. 나폴레옹은 귀국 즉시 부인 조세핀과 이혼하
고 이 매력덩어리와 재혼할 생각이었다. 조세핀은 희대의 바람둥이여서 가는 곳마다 남정네들을 침
대로 끌어들여 광란의 밤을 보냈다. 나폴레옹이 심부름을 보낸 부하장교들도 예외 없이 침실로 끌어
들였으며, 심지어 전장으로 찾아와 나폴레옹이 목숨을 걸고 전투를 벌이는 도중에도 매일 부하장교
들을 막사로 불러들여 낮이든 밤이든 욕정을 불태웠다. 나폴레옹은 조세핀 탓에 집안단속도 못한다
며 장병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영국의 넬슨 제독에 의해 봉쇄된 이집트를 탈출하면서 기밀을 유지하기 위해 폴
린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아무 설명 없이 금화 1천 프랑을 건네주었을 뿐이었다. 폴린은 평소
에도 나폴레옹이 돈이나 값비싼 선물을 자주 건네주었기 때문에 별 생각 없이 받았을 뿐이었다. 나폴
레옹은 이별의 순간 속으로 프랑스에 건너가 자리가 잡히면 그녀를 꼭 데려오겠다고 결심했지만, 프
랑스로 돌아간 나폴레옹은 끝내 폴린을 다시 찾지 않았다. 파리에도 그녀보다 젊고 아름다운 여인들
이 줄을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폴레옹은 이후에도 새로운 여인을 만날 때마다 평생 버리지 않겠다
고 다짐했지만, 실제로 그렇게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나폴레옹의 잘못이 아니라 그때마다 더 매
력적인 여인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영국 군인 피츠로이 서머셋(1788~1855)은 참으로 치열하게 일생을 살다 갔다. 17세에 소위로 임관된
서머셋은 중위 시절인 20세에 아서 웰즐리 장군의 전속부관이 됐다. 웰즐리 장군은 바로 워털루전쟁
의 영웅인 ‘웰링턴 공작’의 본명으로, 훗날 영국 총리를 역임했다. 서머셋은 어떤 직책을 맡든 용맹하
고 창의적인 장교였으며, 전투에 임할 때는 항상 선두에서 솔선수범하는 전형적인 군인이었다. 1815
년 워털루전쟁 때도 선두에서 부대를 이끌다가 총상을 입어 오른팔을 잃었다. 서머셋은 국방부의 전
역 권고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웰즐리 장군을 보좌하여 워털루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데 일조했다. 18
20년 장군으로 진급한 서머셋은 1827년 웰즐리 장군의 뒤를 이어 국방부장관이 됐다. 서머셋은 1853
년 크림전쟁이 발발하자 다시 현역으로 자원입대했다. 서머셋은 1854년 대장으로 진급하여 크림전쟁
을 이끄는 총사령관에 임명되었지만, 1855년 한창 전쟁이 치열할 때 진중에서 과로로 순직했다.
파타고니아는 남아메리카 대륙의 남쪽 끝부분 일대를 일컫는 지리적 용어다. 동쪽은 대서양, 남쪽은
코이그강, 서쪽은 안데스산맥, 북쪽은 남위 40도의 안데스산맥에서 대서양으로 흘러드는 콜로라도강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광활한 건조지대를 가리킨다. 대부분은 아르헨티나에 속하며, 서쪽 일부는 칠
레 영토에 속한다. 총면적은 67만 3천㎢로 한반도의 3배에 이른다. 파타고니아라는 말은 스페인어로
‘파타곤이 살고 있는 땅’이란 뜻인데, 파타곤은 마젤란이 이끄는 탐험대가 이 지역에 처음 발을 들여
놓았을 때 발견한 거인족을 이르던 말이다. 당시 유럽 성인남성의 평균신장은 155㎝ 정도였는데, 파
타곤족은 180㎝가 넘었던 것이다. 이들은 백인들이 몸에 지니고 온 각종 병원균에 감염되어 오래지
않아 멸종되었다.
파타고니아에는 50만 마리 이상의 마젤란펭귄들이 살아가고 있다. 마젤란펭귄은 이해찬처럼 성질머
리가 사납고 공격적인데, 남극에서 마젤란펭귄이 황제펭귄을 공격하는 장면을 보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황제펭귄은 몸길이 110~130㎝에 몸무게 22~45㎏, 마젤란펭귄은 몸길이 60~75㎝에 몸무게
3~6㎏가량 되는데, 황제펭귄은 체중이 8분의 1밖에 안 되는 마젤란펭귄에게 쫓겨 다니기 바쁘다. 사
람이나 펭귄이나 성질 더러운 놈을 이길 방법은 없나보다.
6월 27일,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 외야수 정진호가 올 시즌 리그 처음이자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2년
연속 장내홈런을 달성했다. 삼성 라이온스 우익수 구자욱이 낙구지점을 잘못 예측하여 공을 뒤로 빠
뜨린 사이, 정진호는 빠른 발을 이용하여 아슬아슬하게 홈을 파고들면서 진기한 대기록을 작성한 것
이다. 장내홈런은 상대 수비수의 실수가 동반되지 않으면 달성하기 어려운 행운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런데 장내홈런이라고 하면 유치원 아이들도 금세 알아들을 용어를 모든 TV 중계방송 진행자와 해
설자, 이를 신문에 보도하는 기자들이 하나같이 ‘inside the park homerun’이라는 미국용어를 그대로
쓴다. 왜국에서는 그라운드 홈런이라고 한다. 다들 우리말과 글에 대한 혐오증이라도 걸렸는지, 이
나라 언론 종사자들은 날이 갈수록 무슨 용어든 적당한 우리말로 바꾸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원어를
고집한다. @#$%^&*
출처:문중13 남성원님 글
첫댓글 상호 신뢰로 다져진 직장노사 관계의 원활은 업무의 효율 뿐 아니라 개인생활 의 편의성까지 함께여서 높이 평가 받고 있습니다. 직장 출퇴근 시간을 임의로 조정할수 있어 아이들 교육 및 가정사 까지도 배려하는가 하면 직원 역시도 8시간 근무를 철저히 이행하는 정신이 그러 합니다. 외식 점심시간 만큼은 더 있다 퇴근 하지만 간단한 간식으로 근무중 식사를 하게되면 8시간만 일 합니다.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한 노사관계는 효율성을 극대화 하고 있는 미국 직장상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