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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록 실중어요(室中語要) 49. 불자를 세우더니 말씀하셨다.
[스님께서 어느 땐가 불자(拂子)를 세우더니 말씀하셨다.]
운문스님께서 어느 땐가 이런 선기방편의 마음의 작용을 직접보여주시기 위하여 오늘은 불자(拂子)를 세우더니 말씀하셨다라고 여기서 불자(拂子)를 세우더니 말씀하셨다. 라고 하실 때 불자(拂子)를 드는 뜻은 선사나 종정스님이나 당대의 선지식들이 법상에 오를 때
끝에 털이 달린 지팡이를 들고 있는 모습을 흔히 본다.
이것은 불가에서 사용하는 법구인 불자(拂子)로 수행자가 마음의 티끌과 번뇌를 털어내는 상징적 의미로 사용된다.
불자 재료는 짐승의 털이나 삼 등을 묶어서 자루 끝에 매단 것으로
원래는 벌레를 쫓는데 쓰는 생활 용구였다.
생김새는 먼지털이와 비슷하며 불교가 시원한 인도에서는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기도 한다.
〈마하승기율〉과 같은 율에는 불가에서 비구가 불자를 사용하되 화려한 것은 금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불가에서는 흰 말의 꼬리로 만든 백불(白拂)을 귀중히 여긴다.
중국불교 특히 선종에서는 이러한 불자를 장엄구로서 사용하여 주지나 수좌가 불자를 잡고 법좌에 올라 대중설법을 했다.
이러한 영향을 우리나라도 계승하여 조사의 영정에 백불을 지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불자를 사용하여 법문한 예가 많은데 백장스님이 마조선사와 나눈 선문답을 소개해 보면
백장(百丈)스님이 마조(馬祖)를 친견하러 갔을 때 마조가 불자(拂子)를 꼿꼿이 세우자, 백장이 물었다.
“이것 그대로 마음을 씁니까? 아니면 이것을 떠나서 마음을 씁니까?” 하자 마조가 불자를 선상 귀퉁이에 걸어놓고 말없이 있다가 물었다.
“그대는 훗날 이렇게 두 입술을 함부로 놀리면서 어떻게 사람을 가르치려는가?” 이에 백장이 마조의 불자를 빼앗아 꼿꼿이 세우자
마조가 말했다.
“이것 그대로 마음을 쓰는가? 아니면 이것을 떠나서 마음을 쓰는가? 하니 백장이 불자를 들어 선상 귀퉁이에 걸으니 순간 마조가 우렁찬 할을 내질렀다.
백장은 그 소리를 듣고 삼일 동안 귀가 먹어버렸다.
마조는 일없이 불자를 세워 잠잠한 백장의 가슴에 파란을 일으키려
했으나, 백장은 스승의 의중을 간파하고 먼저 질문을 던진 것이다.
백장이 제기한 문제는 가문의 비밀을 백일하에 누설한 것이며
마조 자신의 보검을 탈취하여 휘두른 것과 같았다.
불자拂子를 우진愚塵 이라고도 한다. 수행자가 마음의 티끌, 번뇌를 떨어내는 데 사용되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불구(佛具)이지만,
“이뭣고”는 생활 속에서 반야지혜를 살려 쓰는 활용(活用)이며 찰나에 번뇌(煩惱)를 소멸시키는 금강보검의 마음의 작용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임제록에서 보면은 임제스님이 법좌에 오르니 어느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불법(佛法)의 대의입니까?”라고 물으니 임제가 불자(拂子)를 세웠다. 물은 스님이 할(喝)을 하니 임제가 바로 때렸다.“라고 하는데 불법의 대의를 물었는데 왜 임제스님은 불자를 세웠다라고 하는데 불자는 마음의 작용을 지금 여기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불자를 세운는 것이 바로 마음을 세운다는 것이 법을 세우는 것이라고 바로 회광반조하지 못하고 도리어 할을 하였으니 할이란 무엇입니까 이 또한 마음의 작용입니다.
마음을 일으키어 묻고 있는 스님이나 불자를 새워서 마음을 세운것이나 다 같은 뜻입니다. 그런데 바로 알아차리지를 못하고 임제스님이 항상 사용하는 할을 흉내나 내고 있으니 바로 임제스님은 불자로 그 스님을 때렸습니다. 보고도 모르면 어떻게 해야 겠는가 임제스님은 이 미련한 중생을 전신차려라 때리면 아프다 이 아프다라는 것을 직심으로 감각(感覺)이것이 바로 직접적으로 마음임을 알아 차리지는 못하니 때려서라도 오온이 개공이 지만 이렇게 한 대 얻어 맞음으로써 느겨지는 아픔이 이것이 무엇인가? 바로 마음임을 알아차리고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전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또 이렇게 묻습니다.
“또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입니까?”라고 처음 물은 것과 똑같이 묻고있습니다. 지금 여기서 묻고 있는 그대로가 마음임을 알아차리지를 못하고 습관적으로 훈습된 견문각지로 반복되게 묻고 있는것입니다. 그러니 임제스님은 또 이렇게 처음과 똑같이
“임제가 또 불자를 세웠더니 스님이 할을 했다.”라고 했습니다
같은 질문을 하고 다시 같은 불자를 세워 답하는데도 알아차리지를 못하고 이제는 이 스님이 도리어 임제스님한 “할” 그대로 할을 합니다. “임제스님이 또 할을 하니 스님이 머뭇거렸다.” 그러니 이 스님은 임제의 꼭두각시처럼 흉내만 내고 있는 꼴이 되이 아 이것이 아니지 선문답을 한다는게 자기적 주장만 하고 있으니 머뭇그릴 수 밖에 없는 꼴이 되어 버렸아 그 찰라에 임제스님은 번개같이 놓치지를 않고 임제스님이 바로 때렸다.라고 적고 있듯이 모든 것은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일 뿐이지 불법의 대의가 어떻고 할이 어떻고 때리는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것이 다 마음의 작용으로 그 마음의 실체인 영각성(靈覺性)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돌~!!!!!!!
본론으로 다시 돌아가 운문선사는 불자를 세우서 향상일구를 든지고 나서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여기에서 들어갈 곳을 얻으니 괴이하게 되었구나.]라는 운을 뛰움니다. “여기에서”라고 하신 것은 과거현제 미래의 삼세는 다 만들어 세운 헛것이며 오직 지금 여기라는 말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지금 여기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들어갈 곳을 얻으니”라고 하신 것은 들어갈 곳은 허공이 있어 내가 말을 할 수 있는 곳이란 바로 설법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여기 펼처져 있다는 뜻입니다.
이 허공이 없다면 말을 할 수도 없는 것이지요 법문은 하는 것는 말인데 말이란 소리이며 메아리 인 것인데 공기의 파장이 번저 나갈 수 있는 것은 공기(空氣)가 있으니 소리가 전달 될 수도 있고 상대가 듣기도 할 수도 있으니 이것이 정말 진공묘유(眞空妙有)인 것입니다.
진공묘유(眞空妙有)란? 논술적으로 풀어보면 진공묘유(眞空妙有)는 불교, 특히 대승불교의 중관(中觀) 사상과 유식(唯識) 사상을 통합하는 핵심 개념입니다. 이는 '참된 공(空)은 신묘한 존재(有)를 낳는다'는 뜻으로, '공(空)'과 '유(有)'라는 대립되는 개념이 실제로는 둘이 아닌 하나임을 나타냅니다.
각 용어의 의미 진공(眞空)은 참된 공 '공(空)'은 흔히 '아무것도 없음'이나 '허무'로 오해되곤 합니다. 하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공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진공은 모든 존재와 현상이 고정된 실체인 실유(實有)를 갖지 않고, 인연에 따라 임시로 존재한다는 진리인 연기(緣起)를 깨달은 상태를 말합니다. 모든 집착과 분별을 벗어나 '나'라는 아상(我相)이 사라진 텅 빈 마음의 경지입니다. 이는 단순히 무(無)가 아니라, 모든 가능성을 품고 있는 절대적이고 청정한 마음의 본체를 의미합니다.
묘유(妙有)란 신묘한 존재 '묘유'는 '진공'의 상태에서 나오는 신묘하고 오묘한 작용과 존재를 의미합니다. 진공의 상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텅 빈 마음에서 모든 것이 생겨나고 작용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거울이 맑고 투명하여 텅 빈 듯하지만, 온갖 사물을 비추는 작용을 하듯이, 진공의 마음은 중생을 구제하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지혜(智慧)와 자비(慈悲)의 작용을 펼칩니다.
진공묘유의 의의를 살펴보면 진공묘유는 공(空)과 유(有)의 관계를 명확히 설명하며, 다음과 같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둘이 아닌 하나라는 불이사상(不異事相)이라 진공과 묘유는 분리된 개념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진공이 아니면 묘유가 있을 수 없고, 묘유가 아니면 진공을 증명할 수 없습니다. 즉, 존재의 본질은 공이지만, 그 공의 작용으로 인해 세상의 모든 현상이 신묘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禪)의 핵심사상이며 선종에서 말하는 공적영지(空寂靈知)와도 통하는 개념입니다. 텅 비어 고요한 마음의 공적(空寂)이 모든 것을 신령스럽게 아는 작용인 영지(靈智)을 한다는 진리와 일맥상통합니다.
그럼으로 보살행의 근거에서 찾아보면 보살은 진공을 깨달아 아집에서 벗어나지만, 그 깨달음에 머물지 않고 묘유의 작용을 펼쳐 중생을 제도합니다. 이는 곧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인 깨달음과 중생 구제인 보살행(菩薩行)이 둘이 아님을 보여주는 중요한 교리적 근거가 됩니다. 결론적으로, 진공묘유는 모든 것이 공(空)하다는 진리를 깨달아 번뇌에서 벗어나고, 그 깨달음의 힘으로 현실 세계에서 신묘한 존재의 작용을 펼치는 불교적 이상을 가장 잘 표현한 용어입니다.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운문선사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일본에서 선(禪)을 설명하니 33천에서 어떤 사람이 나와서 '음음'하고 창고지기는 형틀을 걸머지고 죄상을 고백한다."]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운문선사가 일본에서 선(禪)을 설명하니 33천에서라고 하신 것은 일본의 경우는 선에서 돈오돈수(頓悟頓修)가 아니라 돈오점수(頓悟漸修)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33천은 욕계 6천의 세 번째이 도리천이니 불교의 우주관에서 본다면 욕계(欲界) 육천과 색계(色界) 18천과 무색계(無色界) 사천과 등각(等覺) 묘각(妙覺) 불지(佛地)에 도달한다는 3계 28천은 살펴보면
불교의 세계관에서 삼계28천(三界二十八天)은 중생이 생사윤회하는 세 가지 세계(삼계)와 그 안에 존재하는 28개의 하늘 나라를 의미합니다. 위로 올라갈수록 정신적 경지가 높고 즐거움이 크지만, 여전히 윤회의 굴레 안에 있는 곳들입니다.
첫째 욕계 (欲界) - 6천이 있으니 음욕과 식욕 등 본능적인 욕망이 남아있는 세계입니다.
사왕천, 도리천(제석천), 야마천, 도솔천, 화락천, 타화자재천의 육계(六界)가 있으며 우리가 사는 인간 세상은 이 욕계의 아랫부분에 속합니다.
두 번째 색계 (色界) 18천이 있으니 욕망은 사라졌으나 아직 '형체(색)'라는 물질적 요소가 남아있는 세계입니다. 선정(명상)의 깊이에 따라 4단계로 나뉩니다.
초선천 (3천): 범중천, 범보천, 대범천 이선천 (3천): 소광천, 무량광천, 광음천 삼선천 (3천): 소정천, 무량정천, 변정천 사선천 (9천): 복생천, 복애천, 광과천, 무상천 및 오정거천(무번천, 무열천, 선현천, 선견천, 색구경천)
세 번째가 무색계 (無色界) 4천이 있으니 물질적인 형체마저 사라지고 오직 '순수한 정신'만 남은 가장 높은 세계입니다.
공무변처천: 허공이 끝없음을 깨닫는 곳
식무변처천: 마음의 인식이 끝없음을 깨닫는 곳
무소유처천: 아무것도 없음을 깨닫는 곳
비상비비상처천: 생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삼계의 가장 꼭대기(유정천) 불교에서는 이 28천 또한 결국 인연이 다하면 다시 아래로 떨어질 수 있는 유한한 세계로 봅니다. 그래서 이 삼계를 벗어나는 '해탈'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지요.
세계 하늘 수 특징으로 욕계 6 욕망과 물질이 공존함 색계 18 욕망은 없으나 물질적 형체는 있음 무색계 4 물질마저 없고 순수한 정신만 있음 합계 28 중생이 윤회하는 모든 하늘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33천이라는 도리천을 표시한 것은 이렇게 전차적으로 수행을 해가는 것을 의미하신 말씀이며
“33천에서 어떤 사람이 나와서 '음음'하고 창고지기는 형틀을 걸머지고 죄상을 고백한다.”라는 것은 이런 3계 28천중에 욕계의 3번째 도리천을 예시한 것은 다 마음의 견처를 표시한 것이며 이렇게 수행단계를 미리 정하여 돈오점수(頓悟漸修)적으로 선수행을 한다고 하시면서 이를 잘못된 선수행임을 밝히는 대목인 것입니다.
성불인연 맺으소서 옴 바아라 믹~~~!!!!!!!!!!!!!!!!!!!!
성불인연 맺으소서 옴 바라라 믹~~~~~~!!!!!!!!!!
조사선(祖師禪) 운문록(雲門錄)을 들어시어
인연성불(因緣成佛) 하시어서 붓다(佛陀) 같이 살아가소!
일승법문을 시절인연삼아 인연성불 하옵시고 대원성취 하옵소서 !
원오선원 명상쉼터 천안시 두정동 611_1번지 5층(041)551 8546
무명 납승 원오선사 010 8748 6006 옴~바아라 믹!!!_()_
탁발성원 보시구좌 농협 351 1042 1598 93 대한불교 정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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