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도 이야기한 바와 같이 하동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차를 직접 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동에 내려오자마자 제일 먼저 한일이 바로 녹차를 만드는 법(= '제다'한다고 하죠)을 배울
곳을 찾았습니다.
우리에게 땅을 소개시켜 주신 분도 녹차를 만들고 계시기에, 처음에는 그분께 배우려 했지만 그분의
소개로 지리산에서 십여년간 홀로 수행하시며 차를 만들고 계신 분을 소개받았습니다.
체구는 자그마하지만 강단있어 보이는 범상치 않은 기세에, '혹시 저분이 우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쩌나' 하며 가슴을 졸였습니다.
다행히 우리 부부의 이야기를 들어 보시더니 한번 같이 해보자고 쾌히 승락하셨을때 얼마나 안심이 되던지요
2002년 4월5일
하동에 내려온지 십일만에 몇가지 옷만 챙겨 그분의 수행처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그리고 그 분과의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쑥에 대하여 체험하다
'우리 가족의 쑥예찬'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그 분은 쑥으로 수행중 생긴 고질병을 모두 고치고 쑥을
보급하기 위해 <쑥차>를 만들어 주변의 아는 사람들과 나누고 계셨습니다.
우리가 갔을때는 한창 <쑥차>를 만드는 중이었습니다.
쑥이란 것이 마르면 하얀 분이 엄청나게 날립니다.
그리고 서로 엉키어 그것들을 뜯어 주어야만 골고루 차로 만들 수가 있습니다.
잘말린 쑥 약 1Kg을 솥에 넣고 한시간반은 족히 불앞에서 앞도 안보이게 뽀얗게 날리는 쑥의 하얀분을
마시며 손가락으로 힘을 주어 잘 떨어지지도 않는 엉킨 쑥을 뜯어내며 쑥차를 만드는 일이라니...
육체노동은 한번도 해본적 없던 당시의 우리 부부로서는 하루 열두시간의 중노동(?)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쑥차를 만들때 '이걸 차로 마시는 모든 사람들의 병을 고치는 약'을 만든다는 자세로 온 신경을
다 쓰며 심혈을 기울이는 그분의 자세에서 우리 부부는 하동에 내려온지 불과 한달도 안되어 흔들리는
마음가짐을 다잡을 수 있었고, 실제 차만드는 법보다 더욱 귀중한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큰 수확은 쑥의 놀라운 효능을 직접 몸소 체험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구요.
육체적으로는 도저히 견디지 못할 만큼 고된 나날의 연속이지만 정신적으로는 뭔가 채워져가는
기간이었습니다.
머리속으로만 생각하며 살아오다가 몸으로 느끼게 되니 거기서 오는 만족감은 도시에서 살때에 비할바가
아니었습니다.
*. 녹차를 만들다.
녹차는 찻잎을 따는 시기에 따라 통상 우전/세작/중작/대작등으로 나뉩니다.
보통 4월 10일경부터(지역에 따라, 또 기후에 따라 며칠씩 다르기도 합니다.) 찻잎을 따기 시작하는데
이때의 찻잎은 연두빛의 어린 새싹입니다.
숙련된 사람도 이시기에는 하루종일 7~800g 따는게 고작일 정도입니다.
생잎의 가격도 이 시기가 가장 비쌉니다.
하루 하루 지날수록 생잎의 가격은 많이 떨어지구요.
슬프지만 생잎을 판매하는 일부의 농민들은 좀더 일찍 찻잎을 따기 위해 화학비료를 많이 씁니다.
농민들을 비난할 수만 없는 것이 옆의 밭은 화학비료를 줘서 수확량도 많고 시기도 빨라 좋은 값을 받고
파는데 비료를 하지 않은 밭은 수확량도 적고 무엇보다 시기도 늦어져 제값을 받기 힘듧니다.
(생잎의 가격은 매일 바뀌는 <화개농협>의 수매가를 기준으로 삼습니다. 상품/중품/하품으로 나뉘어
가격이 책정됩니다.)
그러니 해가 갈수록 화학비료로 수확량을 늘리고 시기를 앞당기는 게지요.
다행히도 그분은 몇몇 녹차 재배농가와 계약하여, 절대 요소비료는 쓰지 않고 복합비료나 유기질 퇴비를
쓰며 시비(비료를 주는일)도 봄이 오기 전에 미리한다는 조건으로 전량 수매하여 차를 만들고 계셨습니다.
(아주 정도가 심한 몇몇의 경우는 녹차 생잎채취가 한창 때에 비가 오기 전날 요소비료를 온 차밭이
허옇게 될 정도로 뿌립니다.
날이 개이고 나면 시퍼런 찻잎이 올라 오죠. 그런 분들에겐 차밭에 비료 한알 하지 않는 우리가족이
무척이나 게으르고 걱정스레 보이나 봅니다. -.- )
당연히 비료를 많이 한 녹차는 맛과 향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좋은 차를 만드는 첫번째가 바로 좋은 차밭을 만나는 것이라는 가르침으로 녹차 만드는 공부가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