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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어린왕자의 들꽃사랑마을 원문보기 글쓴이: 맑은시내[淸溪]
하회마을 전경
[하회별신굿탈놀이 전체 내용] 문화재지정 : 중요무형문화재 제 69호
800년을 이어온 신명 하회별신굿탈놀이는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마을에서 12세기 중엽부터 상민(常民)들에 의해서 연희(演戱)되어온 탈놀이이다. 이 탈놀이는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기 위하여 마을 굿의 일환으로 연희되었다.
5년 혹은 10년에 한번씩 별신굿은 매년 지내는 동제와 달리 일정한 주기(10년 혹은 5년 또는 신탁이 있을 때)를 갖고 정기적으로 열렸다. 이는 마을을 지켜주는 신의 힘도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영험이 줄어들게 되고 이렇게 되면 마을에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고 믿었다. 풍년이 들지 않고 흉년이 들어 거둘 곡식이 없고 , 돌림병이 돌아 마을 사람들이 죽게 되는 우환이 닥치면 이는 곧 신의 영험이 줄어들었거나 신의 노여움을 샀기 때문이라 생각하여 신의 힘을 북돋워 주며 노여움을 풀기 위하여 특별한 큰굿을 하게 되는데 이것을 별신굿이라 한다. 따라서 별신굿은 무당을 불러서 무당(巫堂)에 의해 굿을 하거나 또는 마을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큰굿을 하게 되는데 하회의 경우 후자에 속한다.
그러면 하회의 경우 왜 별신굿을 하면서 마을 사람들이 탈을 쓰면서 춤을 춘 것일까? 굿의 목적은 농사의 풍년과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데 있다. 서낭당(城隍堂)에서 신내림을 받는 강신(降神)이나 신을 마을로 맞이하는 무동(舞童), 상상의 동물인 주지 한 쌍을 등장 시켜 탈판(곧 마을)을 정화하는 것, 암.수의 싸움에서 암컷이 이기고 모의 성행위를 하는 것은 곧 생산을 북돋워 풍농을 기원하는 주술적인 행위인 것이다.
신을 즐겁게 해 드림 하회별신굿의 구조는
풍자와 해학 민속놀이는 그 시대의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다. 지배계층의 비판으로 일관된 탈놀이 별신굿 탈놀이를 통하여 상민들은 세상살이를 풍자(諷刺)하고, 자신들의 억눌린 감정을 거리낌없이 마음껏 발산 할 수 있었다.
삶을 이해하고 불만을 해소 이것은 상민들은 탈놀이를 통하여 자신들의 억눌린 감정과 불만을 해소할 수 있으며 양반들은 상민들의 비판과 풍자를 통하여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불만을 해소시켜 줌으로써 갈등과 저항을 줄여 상하간의 조화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모순과 갈등의 문제점들이 완충 따라서 별신굿이라는 마을공동체 신앙에 포함되어 연희되던 탈놀이의 과정을 통하여 공동체 내부에 내재되어 있는 계급간의 모순과 갈등의 문제점들이 완충과정을 거치게 되고 이것이 새롭게 공동체의 기존체계를 더욱 강화시키는 기능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하회마을의 역사 빼어난 지형적인 조건을 갖춘 하회마을이 언제부터 형성되었는지를 밝혀줄 문헌이나 기록이 없어서 자세한 내력은 알 수 없지만 마을에서 구전(口傳)되는 " 허씨 터전에 안씨 문전에 류씨 배판 " 이라는 향언(鄕言)과 하회탈의 제작에 얽혀있는 허도령의 애뜻한 전설로 미루어 대개 고려시대 초기로 알려져 있다. 초기 마을의 형성은 가장 먼저 입촌(入村)하여 터를 잡은 허씨들에 의해서이다. 허씨들은 화산자락의 따뜻하고 양지바른 거묵실골에 자리잡았으며, 그 뒤를 이은 안씨는 향교가 있었다고 전하는 향교골에서 모듬살이를 영위하게 된다. 현재와 같은 하회마을의 모습은 고려말 조선 초에 이르러 풍산 류씨 공조전서 류종혜공이 풍산 상리에서 길지를 찾아 이곳으로 옮겨온 후부터이다. 마을의 구성은 화산의 얕은 능선을 따라서 길이 나고 그 길을 중심으로 남촌과 북촌으로 나누어진다. 이 마을의 건축물들은 능선과 길을 등으로 하고 밖으로 향하여 지었기 때문에 동서남북향의 모든 좌향(坐向)이 나타나는 특색을 보인다. 이렇게 서로 다른 좌향(坐向)의 건물일지라도 한 가지 공통점은 모두 강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여름의 무더위를 식혀 줄 뿐 아니라 앞이 시원스럽게 트이고 강물이 흐르는 풍치를 즐기기 위함에서이다. 자연을 거슬리지 않고 순응하여 그 속에서 동화되고자 하는 선조들의 슬기로움이 잘 나타나 있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품성과 감성을 지니게 이 마을에서 태어난 인물로는 류종혜공이 입향한 이래 대유학자인 겸암 류운룡(1539-1601) 선생과 임진왜란시 영의정으로 국난극복에 큰 공을 세우신 서애 류성룡(1542-1607)선생 등 수많은 인물을 배출하여 영남의 대표적인 반촌(班村)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 ||||||||
하회탈춤별신굿은 10개 마당놀이로 구성되어 있으나 전부다 공연을 하면 관객들이 지루해하고 또한 당제등는 현장에 가서 실시하므로 4개마당은 줄이고 관객들에게 지루함을 없애고 재미있는 인상을 주기 위하여 6개 마당놀이로 구성하여 관객들에게 공연을 제공한다 다음은 10개마당내용을 서술하였으며 사진은 6개마당놀이로 공연되는 내용이다.
아래 사진은 2011년 8월 12일 공연시 촬영한 사진이다
1. 강신(降神)--일반공연시 생략 함 강신은 별신굿을 하기위한 신내림 과정으로 화산(花山) 중턱에 있는 서낭당(城隍堂)에서 진행되는 의례이다. 섣달 그믐날 내림대를 든 산주(산의 주인)와 서낭대를 멘 대광대(大廣大),제관(祭官)과 유사(有司) 그리고 나머지 모든 광대들이 행렬을 지어 풍물을 울리며 서낭당에 올라간다. 서낭당에 도착하면 서낭대를 당집에 기대어 세우고 산주는 내림대를 들고 당 안으로 들어가서 주문을 외우며 신내림을 기원한다. 이 때 서낭대에 메단 당방울이 울리게 되면 신이 내린 것으로 알고 산주와 모든 광대들은 재배(再拜)한다. 신내림이 되면 산주는 당방울을 내림대에서 서낭대로 옮겨 달고 이때부터 서낭대는 성황님의 신체(神體)가된다. 하산(下山-산을 내려옴)에 앞서 광대들에게 탈을 나누어주며 서낭대를 앞세우고 성황신으로 받드는 각시광대를 무동 태우고 풍물을 울리며 마을로 내려온다. 이 때부터 보름동안 마을을 누비면서 지신밟기와 탈놀이가 병행되는 별신굿이 이루어진다.
2. 무동마당 서낭당에서 신내림을 받은 놀이패가 마을로 내려온다. 이 때에 서낭대를 앞세우고 각시광대는 무동꾼의 어깨위에 무동을 탄다. 각시광대가 무동을 타고 마을로 들어오는 것은 마을 수호신인 성황신을 마을로 맞이하는 것을 상징하며 이는 곧 평안과 풍년농사를 기원하는 것이다. 또한 옷가지를 서낭대에 걸고 각시의 걸립에 응하는 것은 신의 힘을 빌어 덕과 복을 받으려는 신성(神性)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3. 주지마당 암수 한 쌍의 주지가 삼베 포대기를 뒤집어 쓰고 등장하여 서로 마주보며 춤을 추기도 하고 싸우기도 한다. 주지는 신성하고 무서운 상상(想像)의 동물로써 암 수 주지가 서로 어울려 격렬한 춤을 추는 것은 잡귀와 사악한 것을 쫒아내어 탈판을 정화하기 위함이며, 암수의 싸움에서 암컷이 이기는 것은 다산과 풍농(豊農)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4. 백정마당 백정이 도끼와 칼을 넣은 오장치를 들고 등장하여 춤을 춘다. 소의 배를 갈라 염통과 소불알을 떼어 구경꾼들에게 염통과 우랑(牛囊-소의 불알)을 사라고 희롱한다. 백정은 몽두리 춤의 거침없는 몸짓과 소를 단숨에 때려잡는 행위를 통하여 신분차별에서 오는 제도적 모순에 저항하고, "공자도 자식을 놓고 살았다"고 하면서 " 자식을 볼려면 양기가 있어야 되고 양기가 쎌려면 바로 이 소불알을 먹어야 한다"고 외치는 행동은 겉으로는 성을 금기시하며 은밀하게 성을 즐기는 유교체제의 도덕률과 양반들의 도덕적 위선을 비판한다.
5. 할미마당 쪽박을 허리에 찬 할미가 등장하여 를 짜며 궁핍하게 살아온 신세타령을 베틀로 읇는다. 베틀가의 내용은 시집간지 사흘만에 과부가 되어 겪는 고통과 삶의 애환이 절박하게 표현된다. 베틀가가 끝나면 영감과 할미의 청어 먹은 다툼이 벌어진다. " 할마이 내가 어제 장에서 사온 청어는 다 먹었나? "라고 물으면 " 어제 저녁에 당신 한 마리 내가 아홉 마리, 오늘 아침에 내가 아홉 마리 당신 한 마리 한 두름 다 먹었잖나 " 라고 반박한다. 청어 한 두름을 독식한 할미의 대응을 통하여 가부장적 권위를 부정하고 남녀간의 상하관계를 뒤집어 버림으로써 하회질서에 저항하는 민중의식을 표현하고 있다.
6. 파계승마당 부네가 등장하여 고운 자태를 뽐내며 매혹적인 오금춤을 춘다. 흥에 겨워 춤을 추던 부네가 갑자기 오줌이 마려워 주위를 살핀 후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치마를 살짝들고 소변을 본다. 이 때 우연히 길을 지나가던 스님이 이 광경을 보고 여인의 오줌냄새를 맡고 욕정을 이기지 못하여 종교적인 계율의 굴레를 떨치고 인간 본성으로 돌아가 세속적인 삶을 즐기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여보 각시 사람 괄세 하지마소 . 일가산에 사는 늙은 중이 이가산 가는 길에 삼로노상에서 사대부녀를 만나 각시 오줌냄새를 맡고 육정(肉情)이 치밀어서 칠보단장 안해도 팔자에 있는 동 없는 동 그거 구별할게 뭐 있니껴?..." 이 마당에서 고려말의 불교와 스님들의 타락성을 풍자하고 있다. 초랭이와 이메가 등장한다. < 파계승 마당 >
중 : "(몸짓으로) 나무아미 타불 관세음 보살, 나무아미 관세음 보살. 허허, 저게 머로? 거 참 이상하다. 저게 분명히 사람같은데, 거 참 이 상타?" (큰 소리로 부네를 가리키며 헛기침을 한다.) "어-흠"
중 : "나무아미 타불 관세음 보살, ... 에라 몰따, 중이고 뭐고 다 때라치우고 저쩌 있는 각씨하고 춤이나 추고 놀아야 될따."
중 : "(독백으로) 나무아미 타불 관세음 보살, 나무아미 관......., 어흠, 나도 이만 하면 사내대장부지."
초랭이 : "이메야, 중놈도 춤추고 노는 세상인데 우리도 춤추고 놀아보자." - 자진모리 - 이메 : -즉흥적인 대사로 관중과 어울린다.-
7. 양반, 선비마당 양반과 선비가 거들먹거리며 등장하여 춤을 추다가 서로 부네를 차지하기 위하여 다투게 된다. 양반과 선비는 서로 자기의 지체가 높고, 학문이 깊다고 다툰다. 백정이 소불알을 들고 나타나 "양기에 좋다"고 하자 소불알을 서로 차지하기 위하여 " 이건 내 불알일세 "라고 하며 다툰다. 이러한 대립구조를 통하여 지배층의 위선과 가식을 여지없이 드러내게 된다. 이 마당은 지체(신분)와 학식을 내세워 군림하는 당시 지배계층들의 사회적 근거를 하나의 웃음거리로 만들고 부정해 버림으로써 탈놀이의 전승 주체인 상민(민중)들의 억눌린 감정과 불만을 해소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탈춤은 우리 사회의 모순과 지배층의 권위를 탈잡아 비판하고 민중들의 억눌려 있던 숨구멍을 터주는 통풍구 기능을 갖고 있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며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 줌으로써 화합하고 협력을 통한 상생(相生)의 정신을 추구하였으며 공동체를 건강하게 지켜내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였다.
< 양반 선비 마당> 초랭이 : "양반요-, 양반요-, 얼른 나오소." 초랭이 : "양반요, 나온 김에 서로 인사나 하소." (인사하는 행동) 초랭이 : "헤헤..., 니 왔니껴?" 초랭이 : "지도 인사, 나도 인사, 인사하긴 마찬가진데 무슨 상관이니껴." 양반 : "어흠, 그래 내가 양반이 아니고 또머로? 여기에 내보다 더한 양반이 어디있노" 초랭이 : "양반요, 어깨 주물러 주까요?" 양반 : "아이쿠, 이놈 어깨 부서질따." 초랭이 : "양반요", "양반요", "아 양반어른요" 양반 : "허허, 이놈이 오늘 따라 왜이리 수답노." 부네는 이때 중을 유인하며 마당을 이끈다. 둘이 무대중앙에서 마주 보게되면 중은 부네와 함께 '노는 춤'을 춘다. 춤의 끝부분에 초랭이가 등장하여 둘이 노는 것을 유심히 살피다 중이 부네와 어울려 춤을 춘다는 사실에 배꼽을 잡고 웃으며 데굴데굴 구른다. 초랭이 : "헤헤헤... 우숩데이, 우수워 세사 이런 일이 다 있노. 어, 근데, 중놈하고 부네하고 어데로 갔노. 누가 중놈하고 부네하고 어데로 갔는지 본 사람있니껴? 초랭이 : (꽃신을 발견하고) "어, 요게 머로? (초랭이는 그것이 꽃신인 줄 모르고 무엇인가 살피다 살짝 건드려 보다 놀라 뒤로 물러난다. 두 번 정도 물건을 살피는 행동을 한 후 그제서야 꽃신인줄 알고 살며시 잡고) 아-, 중놈하고 부네하고 노다 빠자 넣고 간 꽃신 이구나! 아리고 고와래이-. (초랭이는 좋아서 꽃신을 꼭 껴안는 등 굉장히 아끼는 행동을 한다.) 초랭이 : "보소, 이거 이뿌지요? 이거 주까요? 안돼니더. (다른 이에게) 이거 니주까? 안돼 헤헤헤... (독백) 에이고 중하고 부네하고 춤추고 노는 세상인데 나도 이메나 불러 춤이나 추고 놀아야 될따. (이메가 입장하는 곳을 가서) 야야, 이메야- 이메야, 이메 이놈아야. 얼른 나오이라. 이메 : "왜 그노 이놈아야" 초랭이 : "이메야, 이놈아야. 니는 와 맨날 비틀 비틀 근노 이놈아야." 초랭이 : "에이, 등신아. (머리를 쥐어박고 일으켜 준다)", "이메야, 아까 중놈하고 부네하고 요래요래 춤추다가 내가 나오끼네 중놈이 부네를 차고 저짜로 도망 갔잖나." 이메 : "머라꼬, 아이구 우습데이....(웃음)" 양반 : "야야, 초랭아. 이놈 거기서 촐랑 대지만 마고 저기가서 부네나 찾아 오너라." 초랭이 : "부네 여 왔짠니껴" 초랭이 : "헤헤, 양반도 이가 다 있니껴?" 양반 : "오냐, 부네라, 어흠, 국추 단풍에 지체후 만강하옵시며 보동댁이 감환이들어 자동 양반 문안 드리오.' - 굿거리 - 선비 : "여보게 양반-" 초랭이 : "헤헤헤, 난도 아는 육경 그것도 모르니껴. 팔만 대장경, 중의 바라경, 봉사의 앤경, 약국의 길경, 처녀의 월경, 머슴의 세경 말이시더-" 선비 : "그래, 이것도 아는 육경을 양반이라카는 자네가 모른단 말인가?" 백정 : "샌님-, 샌님-." 할미 : "쯔쯔쯔, 소부랄 하나 가지고 양반도 지 부랄이라 카고, 선비도 지 부랄이라 카이께네 대관절 이부랄은 뉘 부랄이로? 내 육십평생 살았다만 소부랄 하나 가지고 싸우는 꼬라지는 처음 봤다. 처음 봤어. 에이, 몹쓸 것들아...." <이 말을 신호로 상쇠는 자진모리 가락으로 몰며, 모든 배역들은 서로 어울려 '노는 춤'을 춘다. 모든 갈등이 해소 된 상태에서 한 바탕 흥겹게 어울어져 춤을 춘다. 춤의 끝부분에 별체가 등장하여 큰 소리에 외친다.
[여기까지 일반 공연시 여섯마당으로 소요시간 1시간 정도로 공연을 종료한다]
8. 당제--일반공연시 생략 함 정월(正月) 대보름날 아침에 서낭당에 올라가 마을을 지켜주는 동신에게 올리는 동제사이다. 별신굿의 첫 과정인 강신(降神)과 마찬가지로 산주, 제관, 유사, 광대들이 제사에 참가한다. 그렇지만 그 의미는 강신이 별신굿을 하기 위하여 신내림을 받는 의례였다면 당제는 별신굿의 기간동안 함께 즐겼던 신을 본디 자리로 돌려보내는 송신(送神)의례이다. 제의 절차는 서낭대를 서낭당에 기대어 세운 후 정성껏 마련한 제물을 진설(陳設)하고 잔을 올리며 재배(再拜-두번 절)한다. 그 후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는 내용의 축문(祝文)을 읽고 소지(燒紙 소망이 적인 종이를 태움)를 올린다. 제사가 모두 끝나면 마지막으로 광대들은 풍물을 치며 탈놀이를 벌인다.
9. 혼례마당--일반공연시 생략 함 마을 입구에 있는 정결한 밭에서 혼례를 치른다. 양반광대의 창홀(昌笏-진행 사회를 보는 것)에 따라 혼례가 진행되는데 신부는 성황신의 현신으로 받드는 각시광대가 되고 , 선비광대가 신랑의 대역이다. 홀기(笏記)의 내용은 혼례과정을 간단히 줄여서 표현한다. 신랑 출(新郞 出) : 신랑 입장하세요 탈의 제작에 얽혀있는 전설에 의하면 하회탈은 허도령이 신의 계시에 의하여 만들었다고 전한다. 허도령은 자지를 사모하던 처녀에 의하여 신이 내린 금기를 어기게 되어 탈을 완성하지 못하고 죽게되고 처녀 또한 허도령의 죽음을 번민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니 마을 사람들이 서낭당을 짓고 신으로 모신 후 매년 제사를 받든다. 바로 이 혼례마당은 허도령과 처녀의 이루지 못한 사랑을 이루어 주기 위한 행위라 할 수 있다.
10. 신방마당--일반공연시 생략 함 홀기(笏記)에 의해 혼례가 끝나면 신방(新房)을 차리고 첫날밤의 의식이 진행된다. 신랑과 신부가 첫날밤을 격는 것처럼 신랑이 신부의 저고리 옷고름을 풀고 신부를 눕히는 행위를 연출한다. 혼례마당과 신방마당은 처녀의 몸으로 죽은 서낭신을 혼인시키는 일종의 신성혼(神性婚-영혼결혼)이다. 이는 곧 남성과 여성의 결합을 통하여 풍요로운 생산을 가져올 수 있다고 믿는 풍농기원굿의 의미를 담고 있다. 따라서 이 혼례와 신방마당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비의(秘儀-비밀스러운 의례)로 진행된다. 의례의 장소도 마을 어귀의 밭에서 거행함으로써 풍농을 기원하는 주술적 효과를 더 크게 기대하기 위함이다.
※ 정월초나 특별한 경우에는 두시간이 넘는 공연을 생략않고 전부다 실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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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마지막엔 탈을 벗고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공연장을 한바퀴돌면서 마지막까지 관객들과 한마음이 된다
공연이 끝나면 반드시 관객들에 대한 사진촬영 서비스를 실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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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두번째가 바로 저 淸溪입니다 아래 노래는 안동출신 저의 절친한 친구 김병걸이 화회마을을 배경으로 만든 [부용대연가]입니다
김병걸선생에 대해서 잠시 소개를 드리자면 김병걸은 우리 가요계의 중요한 위치에 있으며 그의 히트작을 생각나는데로 적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정종숙의 강변의추억, 임수정의 그대의침묵, 설운도의 다함께차차차, 이태호의 사는동안, 김세레나의 이대로영영, 현철의 서울아평양아, 인동초, 산딸기누이, 아낌없이주리라, 돌아서가세요, 송해의 나팔꽃인생, 강진의 삼각관계, 남자는영웅, 조항조의 사나이눈물, 편승엽의 그대와함께, 찬찬찬, 한동엽의 검정고무신, 이명주의 추억의도시락, 방실이의 청춘열차, 괜찮아요, 유해모의 정만주면어때서, 류기진의 그사람찾으러간다, 그랬다, 송대관의 큰소리뻥뻥, 나훈아의 분교, 발코니에앉아서, 원점, 염수연의 옹기여인, 오은주의 사랑의포로, 주현미의 흔들리는갈대, 그다음은 나도몰라요, 김용임의 스킨십이더좋아, 방어진의 동동구루무, 백형산의 별, 현당의 삼삼칠박수, 헤미의 미스차이나, 서주경의 벤취, 유갑순의 오빠는내남자, 들국화의 그것만이내세상, 이혜미의 군조, 도깨비방망이, 김지애의 남남북녀, 이자연의 장미를따는남자, 최진희의 사랑의빙점, 리화의 아자, 신웅의 남남으로가는당신 등등 수많은 곡을 만든분입니다 부용대연가(김병걸 작, 노래 허풍수(허범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