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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 마태복음 25:1-30
오늘 말씀에는 인류 종말의 날에 대한 두 가지 비유의 말씀이 나옵니다. 이 비유를 보면 두 종류의 사람들, 곧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 착하고 충성된 사람과 악하고 게으른 사람들이 대조되어 나옵니다. 이 비유들은 우리 믿는 자들이 이 땅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한번 밖에 없습니다. 이 한번 밖에 없는 고귀한 인생을 어떻게 사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성도님들은 짧게 주어진 생애동안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하는가를 깊이 깨닫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첫째. 껍데기만이 아닌 내용이 있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주유소가 없는 긴 사막을 차를 타고 간다면 아무리 좋은 차라도 기름이 조금밖에 없다면 가다가 멈출 것이요, 멈추게 되면 죽게 될 것입니다. 열 처녀 비유는 이스라엘의 결혼 풍습을 가지고 예수님께서 심판에 대해 말씀해 주십니다.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1) 이스라엘의 결혼은 저녁에 하였는데 신랑이 신부 집으로 올 때 신부의 친구들은 등불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갔습니다. 예수님은 이 모습을 성도들이 예수님을 맞이하는 것에 비유하신 것입니다. 1절에서 '그 때'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종말의 때를 말하고, 신랑은 그리스도, 열 처녀는 우리들을 가리킵니다.
열 처녀 중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가 있었습니다.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은 가지지 아니하였으며, 슬기 있는 자들은 등도 가질 뿐만 아니라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습니다. 기름을 준비한 여부에 따라 미련한 자와 슬기로운 자로 나누어졌습니다. 미련한 자들은 어떤 점에서 미련합니까?
첫째로, 그들은 신랑이 이렇게 빨리올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고 그래서 미래를 예비하지 않았는 것입니다. 그들은 현재의 일에만 얽매어 앞날을 내다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골프채나 보험등은 많이 준비하였으나 미래를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죽음너머의 세계를 위해 투자하는 것을 손해 본다고 생각하고 현재의 이익에만 급급하였습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먼 장래를 내다보고 죽음너머의 영원세계를 예비하였습니다.
둘째로, 미련한 자들은 사명은 부담스러워하고 세상 재미를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등과 함께 기름도 가져간다는 것은 번거롭고 힘든 일입니다. 그들은 등만 들고 다니면서 신앙생활이란 이렇게 쉽고 편리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등과 함께 무거운 기름통을 들고 낑낑거리며 가는 자들을 보고 “나는 저렇게까지는 못해, 도대체 내 삶이 없쟎아, 저들은 너무 보수적이야”하고 거부하였습니다. 십자가 없이 편안하게 신앙생활하고자 하고 주일예배 지키는 것으로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큰 문제는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신랑을 맞이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들이 신랑을 맞이하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였더라면 철저하게 만반의 준비를 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반면 지혜로운 자들은 앞을 내다보고 미래를 준비하는 준비성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십자가를 사랑하였기 때문에 기름을 들고 가는 것을 부담으로 여기지 않고 기쁨으로 감당했습니다. 기쁨으로 양떼들을 초청하여 식사를 대접하였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신랑을 사모하고 신랑을 맞이하는 것을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이상의 비유에서 등은 신앙생활을, 기름은 신앙의 내용을 가리킵니다. 기름을 준비한 자들은 믿음을 준비했다는 것이요 다시말해서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로 죄사함을 받고 거듭났다는 믿음이 있는 참된 그리스도인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늘 깨어 기도하고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애쓰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의 믿음은 살아있고 생명력이 넘치고 은혜가 충만합니다. 반면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자들은 살아있는 믿음이 없이 종교생활을 하는 형식적인 신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런 자들은 성령을 따라 살지 않고 자기 생각을 따라 사는 자들입니다.
한 밤중이 되었을 때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이 죄악의 밤이 깊어갈 때 예기치 않게 갑작스럽게 임한다는 것을 배웁니다(롬 13:11,12). 처녀들은 다 일어나 등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기름이 다 떨어져 등불이 가물가물 꺼져가고 있었습니다. 슬기 있는 자들은 즉시 준비한 기름으로 등불을 밝힐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미련한 처녀들은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미련한 처녀들은 그때야 헐레벌떡 기름집으로 달려 갔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와서 예비하였던 자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꽝!' 하고 닫혔습니다. 여기서 혼인 잔치는 어린 양의 혼인 잔치로서 구원의 잔치요 기쁨의 잔치입니다. 계시록 19:7,9절은 말은 말합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뒤늦게 구원을 준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젊었을 때에는 인생을 즐기다가 죽기 전에 회개하고 천국가야지 합니다. 그러나 죽음은 어느날 예기치 않게 오게 되고 그때서야 준비하고자 하면 정신이 없어서 준비할 수 없습니다. 미련한 처녀들이 그때서야 간청합니다.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그때 주께서 대답합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결국 그들은 축복된 혼인 잔치에 참여하지 못하고 밖에서 슬피 울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결론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13) 아무도 우리개인의 종말을 알지 못합니다. 그 날은 갑작스럽게 우리에게 임할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 그 날이 임하더라도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어느 집에 하인이 한 사람 들어왔는데 주인이 보기에 너무나 우직하여 어리석어 보였습니다. 주인은 그에게 지팡이를 주면서 "밖에 나가서 돌아다니다가 너보다 더 어리석은 자가 보이거든 지팡이를 그에게 주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하인은 지팡이를 받자마자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주인님,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세상을 떠날 때에 어떻게 해놓고 가실 건지 모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주인은 그 질문에 당황하여 "아니, 그거야 아직 준비하지 못했지"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하인은 "아니, 사람들이 하루 여행길도 완벽하게 준비하고 떠나는 법인데 영원을 위해 준비한 것이 없다뇨?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주인님이니, 여기 이 지팡이를 가지세요" 라며 되돌려 주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의 삶만 생각하고 영원을 위해서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도록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에베소서 5:14절은 말씀합니다.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둘째, 충성해야 합니다. (14-30) 이 달란트 비유의 목적은 사는 날 동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맡은 바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천국은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습니다. 주인은 종들에게 각각 그 능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었습니다. 각각 그 재능대로 준 것은 능력에 맞게 공평하게 주었다는 것입니다. 금 한 달란트는 6천 데니리온이며, 한 데나리온은 일군 하루 품삯에 해당되기 때문에 10억 정도되는 액수입니다. 주인은 이것을 종들에게 주며 누가복음을 보면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고 명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장사할 수 있는 충분한 밑천을 주셨습니다. 인생은 장사입니다. 장사를 해서 남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장사밑천으로 고귀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건강을 주셨고 또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독특한 재능을 주셨습니다. 재능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자기에게는 아무런 잘하는 것이 별로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 보면 자기에게도 장점이 많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장점을 잘 개발하여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것들을 주신 것은 자기 자랑을 하거나 자기 자신을 위해서 쓰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께 이익을 남기는 복된 인생을 살도록 주신 것입니다(창 1:28).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를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두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주인의 돈을 감추었습니다(16-18). 19절을 보면.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결산할 새 “여기서 우리는 주인이 반드시 돌아온다는 것과 또 와서 결산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생 개개인의 행위를 천국용 비디오로 녹화해 놓으셨다가 그것을 기초로 심판하십니다. 세상 많은 사람들은 넓은 길로 갑니다. 그들은 육신이 원하는 대로, 내 마음대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살아서는 안되는 까닭은 반드시 인생의 결산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후서 5:10절은 말합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첫째 종이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이에 주인은 심히 기뻐하고 그 종을 칭찬했습니다.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둘째 종은 두 달란트를 남겼다고 보고했습니다. 주인은 첫째 종보다 왜 많은 유익을 남기지 못했는가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주인은 그 마음의 충성심을 보시고 첫째 종과 동일하게 칭찬해 주셨습니다. 주인은 그들이 남긴 유익으로 인해 기뻐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주인에 대한 충성심을 인해 기뻐했습니다.
첫째 종과 둘째 종은 장사를 잘하여 이익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들이 이익을 많이 남길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일까요?
그들은 작은 일에 충성했습니다. 장사를 잘하는 사람은 작은 것을 귀히 여깁니다. 작은 일에 충성된 자는 큰일에도 충성됩니다. 작은 일이나 큰일이나 충성심의 본질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신 사람들은 한결같이 충성된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은 어릴 때 아버지의 심부름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다가 형들에 의해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또 보디발의 집에 있을 때나 감옥에 있을 때도 맡은 바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충성심을 보시고 애굽의 총리로서의 큰 일을 맡겨 주셨습니다. 다윗도 아버지의 양떼들을 지키는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스라엘을 인도하는 큰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
그러면 충성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내 인생의 목적을 분명히 알고 그것을 중심으로 열의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바로 예배, 전도, 목양하는 것 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이런 일에 얼마나 충성하는가 입니다. 어떤 분은 자기 인생의 목적을 목양이라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충성하지는 않습니다. 이런 분들은 먹는 것에는 돈아끼지 않고 씁니다. 그런데 후원이나 헌금에는 인색합니다. 먹으러 갈 때는 먼거리도 마다않고 가면서도 아주 가까운 이웃에게 전도하러 가기를 꺼려합니다. 이유는 많습니다. “저 오늘은 남편이 있어서.. 먼저 선약이 있어서.. 우리 애가 아파서... 등등 변명으로 일관합니다. 그러고도 인생목적이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산다고 할 수 있습니까?
충성이란 내게 맡겨진 사명을 귀히 여기고 그것을 열심히 감당하는 것을 말합니다. 충성에는 진실성과 지속성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맡은 바 사명을 묵묵히 변함없이 책임감을 가지고 감당할 때 충성되다고 합니다. 몸이 좀 아프다고 빠지고 시간이 바쁘다고 모임에 빠지는 것은 충성이 아닙니다. 이런 일 저런 일 때문에 예배에 빠지는 것은 충성이 아닙니다. 충성이란 이래도 참석하고 저래도 감당하는 변함없이 중심을 지키는 것이 충성입니다.
캐나다 벤쿠버의 작은 도시 보스턴 바에 살고 있는 11살된 오스틴 포먼은 집 뒷마당에 나갔다 퓨마와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너무도 놀란 포먼은 집으로 도망을 쳤고, 퓨마는 포먼을 뒤쫓았습니다. 그런데 이때 이것을 목격한 애완견 ‘엔젤’은 주인을 구하기 위해 퓨마에게 달려들었고 죽음을 무릅 쓴 혈투를 벌였습니다. 그 사이에 포먼은 집안으로 도망을 쳤고 경찰에 신고를 했습니다. 경찰이 와서 퓨마를 사살했을 때 애완견 엔젤은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퓨마를 사살한 경찰은 “현장 도착 당시 퓨마가 개의 목을 물고 있던 상태였다.”고 하였습니다. 포먼은 애완견 엔젤이 아니였으면 자기가 퓨마에 물려 죽었을 것이라며 울며 감사했습니다. 순둥이였던 애완견이 주인이 위급할 때는 죽음을 무릅쓰고 충성하였습니다.
주인으로부터 사랑받는 것만 좋아하고 주인이 필요할 때는 도망치는 애완견은 사랑스럽지 못합니다. 그러나 평소에는 사랑받다가 주인이 위급할 때 자기목숨을 걸고 주인을 지키는 개가 사랑스럽습니다. 왜냐하면 충성하였기 때문입니다. 개도 주인의 마음을 감동주는데. 우리가 충성할 때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드리는 것입니다.
책임을 맡았으나 무책임하는 것을 충성되지 못하다고 합니다. 충성되지 못한 자는 사랑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는 그 어떤 것보다도 충성심이 요구됩니다. 디모데후서2:2에서는 말씀을 머리좋은 사람에게 부탁하라고 하지 않으시고 충성된 사람에게 부탁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충성하기를 원한다면 다음세대 아이들 한명이라도 귀히 여기고 전도해야 합니다. 또한 충성의 의미는 자원하는 뜻이 있습니다. 목사님이 시키는 것만 하는 것이 아니라 늘 사명을 주업으로 여기고 열심히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는 돈버는 일에는 밤을 새워 고민하면서 다른 영혼들이 교회나오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별고민없이 잠을 잘잡니다. 돈을 손해보면 밥도 못먹고 속상해 하면서 영혼들이 교회 잘 나오지 못하고 있는데 별로 가슴아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충성하고자 할 때 하기 힘든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자아가 강해서 전도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아이들은 학원이나 학교 때문에 만날 수가 없어서 전도가 힘들다고 말합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잘하는 사람들에게는 핑계가 없습니다. 이들에게는 힘든 상황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사역을 잘 하는 데에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작은 일부터 충성하면 되는 것입니다.
셋째 종은 어떠했습니까? 24,25절을 보면.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그는 주인을 심지도 않는 데서 거두는 지독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주인을 율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는 주인에게 대한 충성심도 없었습니다. 그는 주인을 잘 몰랐습니다.
그는 두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는 두려움 때문에 순종이나 충성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 달란트를 땅에 감추었습니다. 두려움은 그를 소심하게 만들었고 그의 손과 마음과 생각을 마비시켜 쓸모없는 자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26절에서 주인은 그를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했습니다. 그는 주인의 달란트를 받고도 주인을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자기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는 주인에게 불순종했고 불충성했습니다. 또한 그는 게을렀습니다. 그는 주로 남과 비교하여 열등감을 느끼고 아무것도 안하고 귀중한 인생을 낭비했습니다. 인생을 낭비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큰 죄입니다. 그는 주인에게 무익한 종이었습니다. 주인은 그에게서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며 말씀하셨습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충성된 자는 축복을 더 받게 되고 충성치 못한 자는 받은 축복마저도 빼앗기고 맙니다. 무익한 종은 결국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됩니다(30).
죄악의 밤이 깊어 가고 있습니다. 주님 오실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또 곧 우리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도록 깨어 기름을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힘써 사명을 잘 감당하여 많은 유익을 남겨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인생을 결산할 때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여" 하는 주님의 칭찬과 함께 예비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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