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1935년 처음 나왔고, 그 후 스무 차례 넘게 재출간되었지만
처음 나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여전히 참신하다.” - 마이클 루스(과학철학자)
러셀은 이 책에서, 과학이 맹신에 질문을 던지고 독단과의 갈등을 자처하며, 지난 4세기 동안 돌파해온 주목할 만한 국면들을 펼쳐 보인다. “진리를 찾아 나선 인류의 지적 모험에 건네는 러셀의 나침반”이라는 부제처럼 과학을 매개로 세상을 이해하려 인류가 도전해온 분야들로 차근차근 안내하고 있다. 천문학, 생물학, 의학, 심리학 등을 아우르며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풍성한 내용들 덕분에, 질문 그리고 갈등 속에서 진보해온 흥미진진한 과학사로 읽기에 부족함이 없다.
중세 과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첫 장은 먼저 종교가 어떻게 물리학자들에게, 이어서 생물학자들에게 패해 퇴각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하면서 출발한다. 코페르니쿠스 논쟁, 즉 태양계의 중심이 지구인가 태양인가를 둘러싼 논쟁은 과학과 종교 사이 최초의 갈등이었다. 케플러, 갈릴레오, 뉴턴 등 과학자들은 새로운 우주관을 내놓을 때마다, 기존 권위에 도전했다는 이유로 탄압을 감내해야 했다. 세계가 절대자에 의해 단번에 창조된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발전되어 왔다는 인식은, 우리가 살아온 지구를 탐색하는 지질학과 생명의 탄생을 추적하는 생물학 그리고 그 토대 위에서 꽃핀 진화론으로 확장되면서 편견을 하나씩 깨부숴왔다.
의학이 발전할수록 갈등은 정치적인 영역으로 확장된다. 여성은 〈창세기〉에 쓰인 한 문장, 즉 “너는 고생하지 않고는 아기를 낳지 못하리라”고 신이 이브에게 한 말 때문에 한때 출산의 고통을 경감하기 위해 마취제를 쓰는 일을 금지 당했다. 또한 전염병을 저지할 예방접종은 죄를 지었으면 천벌을 받아야 마땅한 인간이 “신의 심판을 좌절시키려 시도”한다는 이유로 반대에 부딪쳤다. 낙태는 신학계에서 제기하는 윤리적 문제 때문에 여전히 진화론 못지않은 뜨거운 감자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영혼과 영혼 불멸, 그리고 자유와 결정론에 대한 논의다. 영혼이라기보다는 이제 마음이라고 불릴 만한 모든 정신 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과학 법칙들에 예외 없이 지배 받는 우리 인간은 맹목적인 운명의 손아귀에 놀아나는 꼭두각시인가? 육체와 마음의 관계 그리고 자유의지에 대한 전통적인 담론들부터 러셀의 신중한 의견까지 폭넓게 들어볼 수 있을 것이다.
우주가 존재하는 데 어떤 궁극적 의미가 있는가를 묻는 장은 지금 읽어도 현재진행형으로 느껴질 만큼 타당하다. “전능한 힘과 그것을 실험할 수 있는 수백만 년의 시간을 허락받는다면, 나는 내 모든 노력의 최종 결과물로서 인간을 그렇게 큰 자랑거리로 여기지는 않을 것 같다”라는 러셀의 냉소는 우리 인류에게 여전히 뼈아프다.
이 의문은 과학과 윤리를 다룬 마지막 장과 연결되어, 과학은 과연 ‘가치’에 대해 그 어떤 것도 주장할 수 없는가 하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철학자답게 ‘양심’ ‘선과 악’ ‘욕구와 행복’ ‘죄와 미덕’ 등 철학과 도덕의 문제를 깊이 있게 파고든다. 비록 과학이 온전히 답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더라도, 과학적 전망의 확장이 지금까지 인간의 행복에 기여해왔다는 데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보는 러셀의 입장을 확인할 수 있다.
“과학은 본연의 과학적 정신을,
과학자는 공정한 지적 자유를 회복해야 한다.” - 버트런드 러셀
러셀은 과학적 정신, 즉 자기가 모든 진리를 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검증을 거친 지식조차 전적으로 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태도를 높이 샀다. 그가 이 책을 쓰던 당시는 기존 권위에 도전했던 과학이 400년 투쟁사를 지나 사실상 승리를 거머쥔 시대라 할 법했다.
하지만 그는 과학의 탈을 쓰고 뒤따라 등장한 독선과 아집을 간파하고 경고했다. 과학기술이 전쟁 무기의 파괴력을 높이고 정부나 대기업과 담합하여 오히려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현실을 고발한 것이다. 신중하고 잠정적이고 점진적인 과학적 정신보다 과학기술이 더 중요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태에 대한 우려였다.
낙관과 비관의 전망이 교차하는 현실은 러셀의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책의 마무리를 장식한 그의 말이 우리에게 여전히 희망의 단초인 이유이기도 하다. “새로운 진리는 때로는 불편하다. 권력을 쥔 사람들에게는 특히 더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진리야말로 잔인함과 편협함으로 물든 기나긴 역사 속에서 지적이고 총명하면서도 어디로 튈지 종잡을 수 없는 우리 인류가 일궈낸 가장 중요한 성과물이다.”
* 사회평론에서 출간한 러셀의 『과학이란 무엇인가』는 국내에서 절판된 도서 『종교와 과학』을 새롭게 번역한 것입니다. 특히 이번 판본에는 과학철학자 마이클 루스가 새로이 서문을 덧붙여 책의 현재적 의의를 찾는 데 길잡이가 되어줍니다. 그는 회의적 무신론자이자 과학주의자인 러셀의 영향을 받은 리처드 도킨스, 에드워드 윌슨, 크리스토퍼 히친스 등과 함께 오늘날 무신론의 대표주자로 꼽힙니다. 저서로 『진화의 탄생』『다윈주의자가 기독교인이 될 수 있는가』『생물학의 철학적 문제들』 등이 있습니다.
코페르니쿠스 체계가 최종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과학 지식의 발전에 필수적이고 매우 중요한 단계였다는 점은 이제 보편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갈릴레오를 상대로 ‘승리’를 얻어내기는 했지만 그로 인해 재앙에 가까운 결과를 받아들이고 만 사건 이후, 신학자들은 그때처럼 공식적으로 명확한 태도를 드러내는 일은 피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한 과학에 대해 반계몽주의적 반대를 계속해 나갔다.
- 60쪽 ‘코페르니쿠스 혁명’ 중에서
다윈주의는 코페르니쿠스주의와 마찬가지로 신학에 강력한 타격을 주었다. 다윈주의는 종의 고정성을 비롯해 「창세기」가 주장하는 많은 창조 행위를 버리도록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생명의 기원 이후 시간의 경과를 가정할 필요를 만들어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교 정통 신앙의 입장에서 볼 때 매우 충격적이었다.
-91쪽 ‘진화론’ 중에서
질병은 신이 내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일부 존재했지만, 그들조차도 질병을 피하려는 노력이 불경한 행위라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그 결과로 얻게 된 건강 개선과 수명 연장은 이 시대의 가장 놀랍고도 감탄할 만한 특징이다. 설령 과학이 인류의 행복을 위해 다른 아무것도 하지 않았더라도, 이 점만으로도 우리는 과학에 감사해야 한다. 신학적 교리의 유용성을 믿는 사람들도 과학이 인류에게 가져다준 유익함에 필적할 만한 것을 교리에서 찾기는 힘들 것이다.
-122쪽 ‘악마학과 의학’ 중에서
두뇌가 소멸한 후에도 인격이 존속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크리켓 회원들이 전부 사망한 다음에도 크리켓 모임이 존속하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 … 심리학과 생리학의 현재 상황을 볼 때, 영혼 불멸에 대한 믿음은 어찌 됐든 과학의 지지를 받을 수 없으며, 이 주제와 관련한 논쟁은 죽음과 함께 인격이 사라진다고 여기는 쪽에 가까워 보인다.
- 154쪽 ‘영혼과 육체’ 중에서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역사에 대해서는 이미 이야기한 바 있다. 우리는 결정론이 물리학에서 가장 강력한 우군을 찾은 것을 보았다. 물리학은 물질의 모든 운동을 하나하나 통제하고 그것들을 이론적으로 예측 가능하게 만드는 법칙들을 발견한 것처럼 보였다. 기이하게도 현재 결정론을 반박하는 가장 강력한 논증 역시 물리학에서 나왔다.
- 158쪽 ‘결정론’ 중에서
나는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에 과학적 방법 말고 다른 어떤 방법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 하지만 감정의 영역에서 종교가 생겨나는 그런 경험의 가치까지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런 경험은 잘못된 믿음과 결합되어 선뿐만 아니라 많은 악을 낳았다. 이런 결합에서 자유로워진다면, 오직 선한 것만이 남으리라고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199쪽 ‘신비주의’ 중에서
자기 앞에 거울을 들고 서서 우주의 목적이 그 거울에 비치는 존재를 목표로 줄곧 진행되어왔을 만큼 자기들이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의 모습처럼 하찮고 우스꽝스러운 광경이 또 있을까? … 인간이 우주적 목적을 보여주는 충분한 증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겸허함을 인간에게 가르치고 난 후에야 코페르니쿠스 혁명의 과업은 비로소 완수될 것이다.
-231쪽 ‘우주적 목적’ 중에서
윤리학은 이처럼 정치학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윤리학은 우리의 일정한 욕구에 단순히 개인적인 것을 넘어서는 어떤 보편적인 중요성을 부여하려는 시도다. … 과학은 욕구의 원인과 이를 실현하는 방법에 대해 논할 수 있지만, 순수하게 윤리적인 문장은 다룰 수 없다. 과학은 진위와 연관 있기 때문이다. … 가치의 문제들은 지적으로 결정될 수 없으며 진위의 영역 바깥에 있다. 모든 지식은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서만 얻어져야 한다. 그리고 과학이 발견해낼 수 없는 것은, 인간이 알 수 없는 것이다.
-252쪽 ‘과학과 윤리학’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