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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들기 전 서울에서 자라고 학교를 다녔던 나는 군 복무 기간 3년이야말로 자연과 접할 수 있었던 유일한 기간이기도 하였다.
계절이 바뀌는 바다와 산 그리고 들판을 두루 살필 수 있었고 논과 밭이 바로 곁에 있어 새마을 사업이 한창인 가난한 농어촌의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았다.
바다를 터전으로 지내는 어촌의 어부들, 온전히 자연에 맡겨진 삶은 어쩔 수 없이 파도에 휩쓸려 생을 놓쳐버린 사람이 많아 남겨진 과부들과 아이들이 궁핍에 찌들고 바닷가 좁디좁은 밭 자락과 넓지 않은 하늘에 의지하는 천수답의 소출에 목을 매는 농민들 역시 궁핍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린 아이들은 영양부족과 열악한 위생관리로 얼굴이 누렇게 뜨고 각종 부스럼에 온전치 않았다.
당시에 새마을 운동과 산아제한을 병행했는데 가난한 벽촌은 홍보에도 불구하고 오락거리가 없는지라 초가엔 고만 고만한 연년생의 아이들이 꼬물대는 그야말로 가난한 흥부네 집을 보는 것 같았다.
계집아이들은 초등학교를 나와 식구들과 농사를 짓거나 바닷가에서 바지락, 김 등을 채취하여 식솔의 살림을 도왔다.
어찌하여 중학교를 나오기도 하였지만 고등학교를 간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무더운 초여름 덥고 습한 땅김을 쐬며 밭을 매다가 호미자루 내 던지고 야밤에 도망가는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었으며 대부분 서울에 가서 무역회사의 미싱공 또는 이제 막 눈을 뜬 각종 산업의 여공생활을 했고 남겨진 아이들은 호시탐탐 도회지로 나갈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녀들이 노리는 수단 한가지는 전투경찰 대원들을 유혹하는 것도 있었다.
이들과 부대끼고 있는 우리들은 젊음이 한참 물오른 청년들이었으며 학력이 출중한(당시 전투경찰대는 학력이 고졸 이상 제한을 두었고 대부분 대학교 재학중의 병력이었음.) 그야말로 훤칠한 군인들이었다.
통제 못하는 젊음은 종종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는데 한 밤중 해안 순찰 시 이제 갓 어린아이 티를 벗으려는 여자 애들과의 몰래하는 연애질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달이 휘영청 한 밤중에 철모와 총을 여자아이에게 들리고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며 힘든 바닷가 교통 호를 버리고 해안 도로를 따라 순찰 입네 하며 낭만을 즐기다 감찰 순찰차에 걸려 감방에 간다던가, 임신을 시켜 복무 중에 강제 결혼 당한 고참도 있었고 일을 저지르고 쉬쉬하다 전역할 날짜가 되어 몰래 근무하던 초소를 빠져 나오다 길목을 지키던 계집아이의 식구에게 걸려 본가에 같이 동행을 하는 선배들도 속출하였다.
군 생활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또 한가지는 다양한 먹거리를 접해 봤다는 것이다.
수색 훈련 시에 산에서 냄새로 더덕을 채취한다던가 잠시의 휴식시간에 잡은 각종 뱀들은 금방 구워져 심심풀이 간식거리가 되었다.
나도 구워진 뱀 토막을 시식해 보았는데 꼭 바싹 구워진 명태의 싱거운 맛이 났다.
봄이면 고참들은 지천에 피운 진달래를 따 모아 소주로 술을 담가 관물 함에 숨겼는데 이 술은 독해서 잘못 먹으면 큰일을 낸다고 하였다.
이 술의 효능을 살필 기회가 있었는데 해경으로 입대하여 발전기 수리공의 특기로 우리부대에 배치된 고참이 같은 전경 동기보다 늦게 전역(해경은 전경보다 복무기간이 2개월 길다) 하게되자 몇 달 전에 담갔던 이 술을 먹고 뻗어버렸는데 정말 진달래술이 독한 것인지 술을 너무 마셔서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산골이나 농촌 출신 대원들의 끔직한 기식(奇食)도 목격했다. 숲에서 말랑말랑한 뱀 알들을 발견 즉시 꿀떡 삼켜버려 보는 사람들을 놀라게 했는데 혹시 녀석의 뱃속에서 뱀이 부화될 것 같아 걱정되기도 하였다.
근처에 얼씬대는 독사를 잡아 술을 담그고 마땅히 가져갈 방법이 없으면 구워 먹는다거나 껍질을 훌러덩 벗겨 생식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루는 숲에서 발견한 꿩알을 삶아 깨 보니 노른자가 배꼽에 붙어있는 병아리였다. 이게 또한 최고의 보양 식이라며 소금을 찍어 눈 깜작할 사이에 먹어치웠다.
도대체 이런 괴상한 것을 먹으면 정력이 좋아진다 하는데 써먹지도 못하는 정력에 대해 기를 쓰는 것이 애처로웠다.
이것은 지휘관도 마찬가지여서 주위에 흔한 것이 뱀인지라 대장이나 소대장의 당번 병은 언제나 뱀탕을 끓일 약탕기를 갖추어 수시로 뱀탕을 다려 진상하기 바빴다.
실지로 그 효과는 있는 것 같았는데 어촌의 과부들과 춤바람에 휩쓸렸고, 술이 만취되는 날이면 새벽에 부대에 돌아와 뱀 눈처럼 작은 눈을 번득이며 비상을 걸어 술이 깰 때까지 갖은 행패를 부렸다.
부작용도 있었다. 어떤 소대장은 얼굴에 버짐 비슷한 꽃이 피더니 급기야는 부스럼으로 전개되었고 얼굴 전체가 부스스 해져서 병원에 가게되었는데 원인은 뱀탕을 상용하여 얻은 결과란다.
본부에서의 기동 타격대 근무가 이골이 날 무렵 나는 고참이 되어 초소에 다시 배치되었다. 그때서야 바다의 아름다운 정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바람 한 점 없이 잔잔한 바다의 고요함을 천둥소리처럼 뒤흔드는 커다란 농어가 뛰는 소리도 귀 기울였고 해질 녘 불타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전역 후의 인생 설계도 했다.
초소에서 내려다 보는 달 밝은 밤바다도 신비스러웠으며 가끔 이른 아침 떠오르는 햇살을 가득 담은 돛이 커다란 범선이 지나는데 무척 낭만적이었다.
퍼붓는 폭우 속에 우의를 집어쓰고 순찰을 돌며 등을 때리는 비 소리에 취해도 보았다.
분대장과 소대장도 고참 대접을 해줘 질곡 없는 느슨한 세월을 보내고있었으며 졸병시절에 빳다와 노역에 고달팠던 시절을 생각하여 하급 자에게 되도록 잘 해주려고 했다.
이들도 내 뜻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몸짓이 역력했다. 때때로 마을에 내려가 남아도는 보리쌀이나 비상식량인 건빵, 라면을 처지가 딱한 집을 찾아 나눠주기도 했다.
초소에서도 휴일은 소중하다. 어느 일요일, 소대장과 분대장이 외출하였고 나도 역시 이발을 해야했기에 격포에 있는 이발소로 가기 위해 초소를 내려왔다.
초소를 내려오자면 보리밭 사잇길을 한참 지나 내려와 바닷가와 이장 집의 축대를 지나쳐야하는데 축대는 천연기념물인 후박나무 군락 지를 보호하려 쌓아 놓았다.
바다가 만조가 되면 축대 아래까지 물이 찰랑거려 좁은 축대 위를 지날 수밖에 없었지만 물이 빠지더라도 습관대로 축대 위로 지나다녔다.
꽤 높은 축대여서 긴장하며 걸음을 옮겼다. 이때 무슨 소리가 들렸다.
따르르르르....
무심코 지나쳤지만 그냥 지나치기에는 꽤 큰 소리였다.
뒤 돌아서서 주위를 살폈으나 별 다른 기척이 없었다.
오던 길을 되 집어 몇 걸음 띄자 다시금 소리가 들렸다.
따르르르....
분명히 뭔가가 있었다.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후박나무는 바닷가 축대를 끼고 뿌리가 엉켜있었는데 엉성한 뿌리와 바위 사이에서 나는 소리임을 알 수 있었다.
굵직하게 들떠있는 뿌리의 후미진 틈 사이에서 뭔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순간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엄청나게 커다란 구렁이가 나를 노려보며 엄지손가락 보다 굵은 꼬리를 떨며 똬리를 틀고 있었다. 꼬리를 떨며 머리를 세워 노려보며 혀를 낼름대는 기세에 얼른 그 자리를 피했다.
그러나 이내 마음이 변하였다. 얼마나 큰 구렁인지 확인해 보고 싶었고 생포하고싶은 생각이 들었다.
마을에 들어가 평소에 잘 아는 청년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도와 줄 것을 부탁했다.
청년은 지게작대기를 집어들고 내 뒤를 따랐다. 후박나무 군락 지에 도착하여 위치를 알려 주었더니 청년은 이내 꼬리를 따르륵거리며 위협하는 구렁이의 소리를 듣고 작대기로 들쑤셔 밖으로 나오도록 유도하여 똬리를 풀고 머리를 치켜세우는 구렁이를 간단하게 작대기로 머리를 눌러 다른 한 손으로 머리를 잡아 제압했다.
구렁이의 머리를 잡아 쳐드니 늘어지는 구렁이는 청년의 가슴까지 오는 엄청 큰 것 이였다.
이내 모여들어 구경을 하던 동네 사람들은 청년에게 주의를 주었다.
“야- 야- 꼬리가 바닥에 닿지 않도록 주의해라.”
“꼬리가 바닥에 닿으면 튄다!”
순간 청년이 잠깐 방심하는 사이 꼬리가 바닥에 닿는가 싶더니 구렁이가 땅을 박차고는 크게 꿈틀댔다. 청년이 휘청하며 구렁이를 놓쳤다.
손에서 벗어난 구렁이가 쏜살같이 도망가기 시작했는데 바다 쪽으로 방향을 잡아 자갈밭을 지나 바닷물로 돌진하였다.
구렁이가 헤엄을 쳐 달아나자 다시금 청년이 첨벙거리며 물에 뛰어들어 작대기로 구렁이를 제압하여 손으로 대가리를 움켜쥐고 자갈밭으로 올라왔다.
이 소동을 초소에서 내려보고 있던 후임들이 내려와 통일화 끈으로 구렁이의 머리를 옭아매어 초소로 옮기게 되었다. 초소의 후미진 교통 호에 말뚝을 박아 구렁이를 매어놓았다.
구렁이를 잡아놓고 고민에 빠졌다.
우선 소대장이 불교 신자여서 뱀을 싫어했고 뱀을 잡는다든지 뱀탕에 대해 극히 혐오하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분대장 역시 뱀을 싫어했다. 또한 용이 될 만큼 커다란 구렁이를 잡았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분대원들은 구렁이를 생포한 것에 대해 쉬쉬하며 숨겼다.
그리고 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의논했다. 구렁이를 그대로 죽여 썩힌 다음 구더기가 슬면 이것을 닭에게 먹여 닭을 잡아먹자는 안이 있었는데 구더기를 먹인 닭은 꽁지가 다 빠질 정도로 약발을 받아 최고의 보양 식이라는 것이었다.
현실성이 없었고 시간이 지체되면 발각될 우려도 있었다. 또 다른 안은 그대로 삶아 먹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구렁이를 끓일 약탕기가 없었고 구렁이가 너무 커서 이에 맞는 약탕기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며칠이 흘렀다. 틈틈이 구렁이를 보러갔는데 배가 불룩하게 부푼 것 이외엔 변함이 없었고 기세는 여전해서 머리를 치켜세우고 표독스럽게 노려보았다.
마침내 기회가 왔다. 소대장이 본부에 회의 소집 차 외출하였고 분대장은 앞서 휴가를 갔다.
우리는 빠른 처리 방법을 택했다. 부대원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선 11명의 밥을 짓는 솥에 물을 넉넉히 잡아 물을 끓일 준비를 했다.
구렁이를 모기장으로 망을 만들어 집어넣고 입구를 단단히 매어 물에 몇 번 담가 대충 목욕을 시켰다.
망 속에 담긴 구렁이를 솥에 집어넣고 불을 때며 구렁이가 튈 우려가 있어 솥뚜껑을 무거운 돌로 눌러놓았다.
어느 정도 온도가 오르자 구렁이가 죽었음을 확인하고 망을 벗겨낸 다음 나뭇가지를 잔뜩 아궁이에 집어넣어 불길을 세게 하자 김이 솟으며 끓기 시작했다.
구수한 냄새가 초소에 가득 넘쳐났다. 물이 어느 정도 줄자 솥뚜껑을 열었는데 하얀 곰국이 펄펄 끓는 것이 보기에도 진국이었다. 기름을 대충 걷어낸 후 국그릇에 첫 탕이라며 가져왔는데 구수한 냄새와 아울러 흙 냄새도 났다.
한 모금 훌훌 마셨으나 약간 비릿하기도 하여 비위가 상했다. 소금을 찾았으나 그러면 약효가 없어진단다.
도저히 먹을 수 없어 포기하자. 분대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어 한 사발씩 퍼먹는 모습이 가관이었다.
한 녀석이 들이키다만 그릇을 살피더니 국물에 털이 떠있다고 했다.
“웬 털?”
“털 난 구렁이도 있냐?” 하며 키득거렸다.
바로 밑 후임인 김 상경이 국물도 웬만큼 먹고 해서 이번에는 젓가락을 들고 솥 안을 헤집기 시작했다.
구렁이 고기를 먹자는 수작이었다.
김 상경이 소리쳤다.
“야- 이거 들 쥐 잡아 먹은 구렁이였구나!”
“이거 그야말로 최곤데?”
그렇다. 국물에 떠 있는 털은 들쥐의 털이었다.
구렁이를 잡을 당시 윗배가 불룩하더니 쥐를 잡아먹고 휴식을 취하다 나에게 걸린 것이었다.
구렁이는 절대 죽은 동물은 잡아먹지 않는단다. 더구나 들쥐를 잡아먹은 구렁이는 최고의 보양 식이란다.
희희낙락하며 저마다 달려들어 구렁이와 들쥐의 고기는 게눈 감추듯 사라졌다. 기가 막힌 광경이었다.
나는 사용한 그릇과 솥을 깨끗이 닦아 놓을 것을 지시했다. 소대장이 비린 냄새라도 맡는다면 낭패일 터였다.
이 사건 이후 나는 부대원들을 주시했다.
혹시 젊은 녀석들이 정력이 뻗쳐 무슨 사단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아울러 야생동물을 함부로 해쳤을 때 일어난다는 괴담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특이한 점은 없었지만 부대원들이 무척 게을러졌음을 알 수 있었다.
근무가 해이해지고 느슨해진 것이 눈에 거슬렸다. 무더워지는 계절 때문일 것이다.
하루는 갓 배치된 말단 병을 데리고 마지막 시간대의 순찰을 돌았다 어둠이 짙은 순찰함이 있는 산 속 숲은 사위가 고즈넉했다. 순찰함에서 순찰 기록지를 꺼내 시간과 이름을 적고 싸인을 해야했다.
말단 병에게 손전등을 비추도록 지시하고 기록지에 싸인을 하려하자 불빛이 아래로 스르르 떨어졌다.
“야! 박 이경! 똑바로 비춰!”
반응이 없었다. 이상하게 생각하며 내 손전등을 키고는 박 이경에게 비췄다.
순간 나는 질겁했다. 불룩한 턱에 큰 눈을 끔벅대는 박 이경은 우둔하면서도 슬픈 모습이었는데 불빛에 들어 난 녀석의 모습은 눈이 풀어져 초점이 없고 입은 헤 벌어져 맛이 간 모습이었다.
귀신이 있다면 아마 그런 모습일 터였다. 머리카락이 솟구쳤다.
"야 임마! 정신차려-“
깜짝 놀라며 제 정신으로 돌아오는 박 이경, 녀석은 서서 눈을 뜬 체 졸고있었던 것이었다.
순찰을 마치고 초소에 돌아왔다. 한데 초소에서 경계근무를 해야할 경계병이 기척이 없었다.
이상하게 생각하며 써치라이트 실의 문을 열어보고는 기가 찼다.
한 놈은 커다란 써치라이트를 껴안은 체 잠들어 있었고 한 놈은 의자에 앉아 벽에 기대어 널 부러져 코를 골고 있었다.
이것은 문제가 심각했다, 소대장이나 분대장에게 걸리면 낭패이거니와 병기와 탄약을 항상 휴대하고 근무를 하는 대원들에게 방심은 자칫 큰 사고를 유발한다.
나는 즉시 소대장과 분대장이 깨지 않도록 조용히 분대원들을 기상시켰다.
“난 너희들에게 나의 쓰라린 전철을 밟지 않도록 구타라던가 기합은 절대 없도록 했다. 너희도 이런 내 뜻을 잘 알고 따라주었는데 웬일인지 요즘 나사가 풀려버렸구나. 이는 필시 우리가 잡아먹은 구렁이의 저주일터 이를 풀어야겠다.”
나는 경계병으로 소대장 당번병을 남기고 분대원들을 오리걸음으로 초소를 벗어나 보리밭 사이로 몰아 내려가도록 했다.
후박나무 자생지에 도착한 대원들은 헉헉대며 숨을 몰아쉬었다. 바닷가 자갈밭에 일렬로 나란히 세운 다음 구렁이가 잡혔던 후박나무 쪽으로 향하도록 했다.
그리고 심각하게 말했다.
“자- 이곳이 구렁이가 우리에게 생포된 곳이며 이로 인해 우리는 저주를 받아 큰 혼란에 빠져 우리의 임무를 망각하고 말았다.”
“구렁이에게 사과하며 명복을 비는 의미에서 구령 없이 경례를 올린다.”
“ 경례!”........
누가 이 상황에서 웃을 수 있겠는가! 분대원들은 자신들의 잘못도 시인하는 터라 겁먹은 체 나의 명에 따르고 있었다.
“뒤로 돌앗!”
“높은 포복 준비!”
순간 녀석들은 갑작스런 내 명에 어리둥절하며 엉거주춤 엎드리며 높은 포복의 자세를 취했다. 나는 재차 ‘일어서’ ‘높은 포복준비’의 동작을 반복하며 동작의 기민성을 요구하여 얼을 차리게 한 다음 명을 내렸다.
“포복 앞으로!”
자갈밭을 팔쿰치와 무릎으로 기는 높은 포복자세는 녀석들에게 엄청 난 고통을 주었으리라. 내처 나는 녀석들을 바닷물 속으로 쳐 넣었다. 첨벙대며 포복이 아니라 수영하는 꼴이 되었다. 구렁이가 탈출하려던 모습이 떠올랐다.
되돌려 자갈밭에 집합을 시키고 물이 옷에서 뚝뚝 떨어지는 녀석들에게 일갈했다.
“이로써 너희들은 구렁이의 저주를 몸에서 몰아내었다. 앞으로 정신 바짝 차려 자신들의 임무에 소홀함이 없도록 한다. 알았나?”
“이-예! 알겠습니다”
기합이 잔뜩 들어간 분대원들의 우렁찬 고함소리에 어둠이 저만치 달아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