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들이 쓴 책을 즐겨 읽는 편이다. 고독한 수행 끝에서 나오는 말들은 치열한 자기검증의 과정을 거친 것 같아 마음을 울리고, 그들 역시 탐진치(貪瞋痴)의 사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모습은 평생을 수행하는 스님들도 우리들과 똑같은 인간임을 느끼게 만들기도 한다. 간혹 자기계발서의 범주를 넘나드는 듯한 글을 만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것보다는 나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경우가 더 많다. 불법(佛法)에 관한 것이든, 선문답이든, 아니면 자신의 수행기록에 관한 것이든 내가 쉽게 행할 수 없는 것들이기에 더 관심이 가는 것 일게다. 원래 인간은 자신이 가진 것보다는 남들이 가진 것에 더 관심이 끌리는 법이다.
이 책은 선방 수좌인 원제 스님의 자기수행 기록이다. [질문이 멈춰지면 스스로 답이 된다]는 책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나와 세상에 속지 않고 사는 법’이라는 부제가 마음에 걸렸지만 ‘세상’은 차치하고 ‘나’에 주목했다. 살다보면 세상에 속을 수도 있다. 나는 세상에 속지 않겠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기에 관심 없어 하는 편이다. 그러나 시도때도 없이 나 자신에게 속는 나를 보면서는 많은 갈등과 번민에 쌓이기도 한다. 나에게 속지 않기 위하여 원제스님은 어떤 질문들을 멈추고 어떤 답을 구했는지 알고 싶었다. 거창한 깨달음을 원한 것은 아니고, 단지 내 마음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랬다.
스님은 책에서 자신이 수행 하면서 겪었던 갈등과 성찰을 통하여 어떻게 삶에 대해 이해를 하고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스님의 수행이라고 하면 짜여진 틀 속에서 근엄하고 묵묵하게 자기절제를 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그러나 원제스님의 수행이 그렇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모습과는 조금은 동떨어진 느낌을 갖게 만든다. 게임을 하고, 문명의 이기를 마음껏 사용하고, 일 년에 한번은 집에 가서 부모님과 지내고,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고, 그리고 수행도 한다. 어쩌면 자유분방해 보이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질문은 더욱 많았을 것 같고, 당연히 자신에게 속으며 살아온 날들도 많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스님의 말이 더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답은 구하는 것이 아니라 멈추는 것으로 드러나기에.
‘우리는 보통 내가 모르면 아니라고 부정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치부하거나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말은 많이 들어왔고,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내 눈 앞에 보이는 것,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기에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 혹은 ‘내 생각이 맞고 네 생각은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고 판단한다. 즉 우리는 늘 자신에게 속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일상의 삶 속에서 만나는 수많은 문제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분별심에서 비롯되고 있음에도, 우리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스님은 그것이 잘못된 질문임을 알고 그 질문을 멈추는 순간 스스로 답이 된다고 말한다. 남들과 불화가 일어나고 자신의 불행을 타인의 탓으로 돌리게 되는 것 역시 잘못된 질문으로 스스로에게 속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스님의 글을 읽어가면서 수행이란 우리가 모르는 거창한 것을 찾아나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음에도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것, 때로는 여러 가지 이유를 핑계로 나 자신이 자발적으로 스스로에게 속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가 스스로 속박한 삶 속에서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은 어쩌면 내가 나의 일상을 이런저런 의미들로 규정하기 때문은 아닌지 돌아본다. 스님의 말 마냥 ‘나’에 대한 의미두기에서 벗어날 때 삶이 좀 더 자유롭지 않을까 싶다.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으로 남겨두라’는 스님의 글에 유독 마음이 끌린다. 굳이 아는 척 할 필요도 없고, 나의 삶과 관련이 없다면 알 필요도 없을 것이다. 평범한 말이지만 공허하게 들리지 않는 까닭은 스님의 수행이 그만큼 진정성있게 느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몇 날이 지나도 마음속에서 화두가 되는 글 한두 문장을 만나면 그것으로 족하다. 비록 그 후엔 잊어버릴지라도, 인연이 닿으면 다시 만날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