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원주에서 충북 충주로 넘어가는 양안치 고개 초입에 박경리 선생을 기리는 ‘토지문화관’이 있습니다. 본관 1층에 선생의 유품이 놓여 있지요. 원고 몇 묶음과 낡은 펜, 밀짚모자, 닳아빠진 호미, 안경 같은 것들입니다. 그 소박한 물건만 가지고도 그토록 큰 작품을 써낸 선생의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그의 유품이 그를 빛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작품이 그 소소한 유품들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이지요.
“그대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에 있는 가보의 집에 두고 온 외투를 가져오고, 또 책들은 특히 양피지에 쓴 것들을 가져오십시오.”(딤후 4:13, 새번역)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간곡하게 부탁하는 말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세상을 떠날 때가 됐다고 말하지요.
이제 곧 겨울이 닥쳐오듯 바울의 마지막 때가 다가온 것입니다. 이 비감한 때에 아들 같은 디모데에게 바울은 무엇을 부탁했을까요. 외투 한 벌과 책 몇 권입니다. 바울에게는 추위를 막아줄 여벌의 외투조차 없었다는 말입니다. 겨우 옷 한 벌에 책 몇 권밖에 남길 것이 없었다는 것이지요. 바울은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으면서, 우리에게는 예수의 이름을 남겨줬습니다.
서재경 목사(수원 한민교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1731906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