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못의 둑에 있는 노거수의 원경이다.
나는 최근에 이 나무의 수종(樹種)을 신갈나무로 추정했다.
나무가 많이 자라서 그 가지가 아래로 더욱 쳐졌다.
수면은 예전에 비해 올라갔으나 수심이 깊어진 것이 아니라 준설하지 못한 영향으로 보인다. - 이영수 사진
'나체수영을 금합니다'
신기사람들은 이 말을 다들 기억할 것이다.
이 것은 다름이 아니라 신기냇가의 철뚝 축대에 흰 페인트로 쓰여 있던 글이다.
지금도 그 자리에 빛이 바랜 채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는 어려서 나체라는 한자말을 모를 때 그 뜻이 사뭇 알쏭달쏭했다.
그 것은 주로 저학년 때의 일로, 그래도 한글은 깨우쳐 혹시 '낮에 수영을 금합니다'를 발음 나는 대로 잘못 써서 나체로 쓴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 것은 '나제'가 되어야 하고 또 낮에 수영을 금하다니 밤에 수영을 하란 말인가...것도 아닌 듯싶었다.
그 후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야 그 것이 나체(裸體)란 한자말이고 아랫도리는 대충 가리고 물놀이를 하라는 뜻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그 뜻을 모를 때는 안다고 하여도 나체로 물놀이를 했고 그 뜻을 알게 되어서는 발가벗고 하래도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수영복이 따로 없었던 그 시절에는 입고 있던 빤스가 그냥 수영복이었다. 낡아서 탄력이 떨어진 검정 고무줄을 끼운 빤스는 물속으로 한번 자맥질을 하면 물의 저항으로 쉽게 내려가서 걷어 올리기에 바빴다.
유년시절만을 고향에서 보낸 나는 어려서 궁금한 것이 많았고 그러한 것들은 차차 성장하며 해결되기도 했지만 더러는 그렇지 못한 채 나중에 고향을 떠나서 비로소 알게 되기도 했다. 그리고 아직도 궁금증이 해소되지 못한 채 남아 있는 것도 있다. 또 어려서는 몰랐으나 고향을 떠난 뒤에 새로운 의문이 생긴 것도 있었다.
앞에 올린 나의 詩 '창리들판'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겨울에 덤벙에서 줏던 말밤이란 것은 신기를 떠난 한참 뒤에야 그것이 수초의 한 종류인 마름의 영양뿌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철길 옆에 있던 찬물샘에 서식하던 메기는 일급수에만 사는 미유기로 추정하게 되었다. 그러한 것들은 성장하면서도 그 궁금증이 남아 관심을 갖고 있던 중 그 의문을 해결한 것이다.
틀못 방죽에 서 있던 그 크고 오래된 나무는 무슨 나무일까... 신기를 떠난 뒤에도 나는 오랫동안 궁금해 하다가 이 곳에 고향에 관한 글을 올리며 신기 생각에 골똘하던 중 문득 그 나무에도 도토리가 열렸다는 것을 기억해 내었다. 도토리가 열린 것이 기억하기 어려웠던 것은 그 나무는 참나무와 같이 도토리가 많이 열리지는 않아서 잊혀졌었나 보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참나무는 그 수형(樹形)이 미루나무의 모양과 흡사하여 길이 성장을 많이 하나 그 노거수(老巨樹)의 수형은 길이 성장을 많이 하지않고 위의 사진처럼 오히려 느티나무처럼 둥근 모양을 하고 있었다. 도 일반적으로 참나무는 그렇게 오랜 수령으로 자라지 못한다.그런 것으로 미뤄볼 때 참나무는 아니고...그렇다면 그 나무는 십중팔구 신갈나무일거다고 나는 추정하고 있다.
신갈나무는 참나무과에 속하나 그 열매가 많이 열리지않고 또 주로 큰 산의 5부능선 위의 산지에서 주로 자란다.
1995년경 나는 그해 최초로 학자들에게 공개된 동부전선 간성 부근의 건봉산에서 향로봉에 이르는 민통선 안 지역을 답사하며 왜 곰이 신갈나무가 있는 깊은 산에 사는지 그 연유를 알게되었다. 곰은 월동장소로 신갈나무 수동(樹洞)을 제일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 곳의 원시림에는 지름이 1M가 훨씬 넘는 대형의 신갈나무가 우점하고 있었다.
틀못 방죽의 그 나무도 역시 눈높이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조금 올라가서 보면 2미터 위쯤에서 아래로 난 수동(樹洞)이 있었다는 것을 나는 최근에 기억해냈다. 그래서 신갈나무일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앞에서 말한 창리 들판 철길 옆에 있던 참물샘에 살던 메기 역시 당시에는 당연히 메기로 생각했으나 나중에 메기는 진흙 뻘 바닥을 좋아하는 등 그 서식환경이 다름을 뒤늦게 알게 되었고 나는 메기와 그 모습이 아주 흡사한 미유기란 물고기를 추정하게 된 것이다.
미유기는 일급수가 흐르는 인제군 방동면의 조경동(朝耕洞,아침가리) 계곡에서 초저녁 으스름 두어 시간에 낚시로 한 코헬 가득히 잡았던 적이 있었다. 그 날 나는 찬물샘의 고기를 생각해내곤 바로 이 고기였을 것이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의문은 신기를 떠난 뒤에 생긴 것이고 나는 다만 옛 기억을 되살려 최대한 근접하게 추정했을 뿐이다. 또 앞에서 글로 올린 '틀못과 뱀장어'의 이야기 역시 그러하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들은 아직 확정적이지는 못하다. 현지에 가서 마지막 확인하는 작업을 남겨두고 있기 때문이다.
또 우리가 어린시절에 소위 '피에스판'이란 것이 있었다. 그 이름이 정확한지는 모르나 흔히 그렇게 불렀다. 남자들은 혹 기억할런 지 모르겠다.
그 것은 가로 약 50센티 정도에 세로는 4~5미터에 이르는 긴 철판을 이르는 말이다. 철판은 밋밋한 게 아니라 중간 중간에 펀칭으로 가공된 둥근 구멍이 있어 어린아이의 주먹이 들어갈 크기였고 또 프레스 같은 것으로 눌러 일정한 요철이 난 모양이었다. 제법 단단하고 무거워 논 사이의 도랑에 가로지르는 나무를 대고 그 위에 깔아 널판의 대용으로 사용하곤 했다. 또 헛간이나 외양간, 돼지우리 등의 축사에도 사용하였다.
그 모든 쓰임은 그 모양의 생김을 이용하여 사용했지만 어디까지나 대용품으로서 그 원래의 쓰임은 아니었다. 나는 그 판의 원래 용도가 몹시 궁금했다. 그러나 누구하나 아는 사람이 없었고 일제시대나 6.25 전쟁 통에 군수물자로 쓰였다는 정도의 정보만 얻을 수 있었다.
그 피에스 판은 고등학교 시절 우연히 2차대전을 다룬 영화를 보다가 비로소 그 용도를 알게 되었다. 그 것은 비행장의 활주로 임시 보수용으로 쓰이는 철판이었다. 폭격 맞은 활주로의 움푹 파인 구덩이를 그 판으로 이어 덮어 복구하는 장비였다. 그래서 그 판의 테두리에 여러 장이 서로 맞물릴 수 있는 장치가 붙어 있었던 것이다.
오늘 날 공항이나 군비행장에도 그러한 판이 있어 가끔씩 전시를 대비하여 정기적으로 판을 까는 복구훈련을 한다. 다만 현재의 그 판은 요즘 비행기의 제트엔진에 걸맞게 표면이 깨끗하고 요철이 없는 개량형으로 바뀌었다.
또 어려서 신기에 흔했던 것으로 삐삐선이란 것이 있었다. 그 것은 군용 전화선으로 당시 전화가 없던 시절에 신기 사람들은 그 것을 전선으로 이용하였다. 사택과 인접한 지역의 일반 가옥에서 사택의 전기를 끌어다 쓰는 도전(盜電)이 흔했는데 일반화 된 일로 여겨져 크게 문제삼거나 적발해내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 때 이 삐삐선을 전선으로 이용하였다.
삐삐선은 속을 까보면 여러 가닥의 금속선이 있었고 그 선은 두 가지의 재질로 이뤄져 있었다.
잘 휘어지고 쉽게 끊어지는 알루미늄선이 대부분이었으나 그 속에는 두 가닥의 강철선이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어려서 그 까닭이 궁금하였다. 강선이 들어가 있는 것은 선의 인장강도를 높여주고 탄력을 유지시켜 주는 역할을 하겠거니 추정을 했고 그 예상은 맞았다는 것을 나중에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두 가닥의 강선은 특별한 쓰임이 있었다. 그 것은 다름이 아니고 당시에 많이 사용된 카바이트를 이용한 칸델라 불을 켜는데 꼭 필요한 것이었다. 카바이트 불은 카바이트가 산화될 때 찌꺼기가 많이 발생하여 오래 사용하면 그 찌꺼기가 칸델라불의 노즐을 막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 때 그 강선을 구멍에 끼워 막힌 곳을 뚫는데 이용하였다. 그 구멍은 그와 같은 가는 강선이 아니면 딱히 사용할 적당한 것이 없었다. 당시 불정탄광의 탄부들은 허리춤에 예의 그 칸델라를 차고 출퇴근하였고 칸델라 옆에는 항상 그 삐삐선 조각이 묶여 있었다.
또 밤 낚시갈 때는 삐삐선을 꼭 잘라 가지고 다녔다. 반사경이 무거운 낚시용 칸델라는 쉽게 넘어졌고 노즐이라도 막히면 삐삐선의 강선이 없으면 낚시는 그 것으로 끝이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그 흔했던 삐삐선도 귀해졌다.
누구나 어려서는 작은 것에도 관심이 많고 또 모르는 것이 있으면 쉽게 의문을 갖게 된다. 나 역시 그랬던 것 같다.
그러한 것들은 다행히 대부분 그 의문이 풀렸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 내 고향과 관련된 몇 가지의 의문을 갖고 있다.
(下)편에서 그 궁금증을 다루어볼까 한다.
※흘러 나오는 음악은 arthur's theme (best that you can do)로 christopher cross의 목소리입니다. 1981년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한 영화 'Mr. arthur'의 주제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