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기적 끝났나 ─ 미국·일본 모방으로 성장한 경제모델의 한계 / 6/4(화) / 커리어 자폰
한때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까지 들었던 한국 경제의 실속이 눈부시다. 제조업 의존이나 재벌 지배 같은 과거의 성장 모델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스가 보도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 정부는 AI 특수를 예상해 서울 외곽에 거대한 반도체 집적지를 만들려고 하는데….
◇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클러스터
서울에서 남쪽으로 40km 떨어진 용인시 외곽에서는 한국 대통령이 세계적인 반도체 전쟁이라고 부르는 상황에 대비해 무수한 굴착기가 준비를 하고 있다.
굴착기는 하루에 4만 입방m의 토사를 운반해 산을 두 동강 내며 새로운 반도체 클러스터(집적지)의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 일각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3층짜리 제조공장도 들어설 예정이다.
반도체 제조업체인 SK하이닉스가 910억달러(약 14조엔)를 들여 건설한 이 1000에이커의 제조거점은 삼성전자의 300조원(약 34조엔) 투자를 포함해 총 4710억 달러(약 74조엔) 규모의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의 일부에 불과하다.
이 개발은 주력 수출산업이 아시아와 서구 경쟁국에 빼앗기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커지는 가운데 정부 주도로 진행되고 있다.
"우리는 SK하이닉스와 힘을 합쳐 한국 기업이 국제적인 반도체 클러스터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전력을 지원할 것입니다" 라고 안덕근 한국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3월 용인공장에서 열린 모임에서 SK하이닉스 고위 관계자에게 말했다.
업계 전문가 대다수는 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최첨단 메모리칩 시장에서 기술적 우위를 유지하고 향후 폭발적인 성장이 예상되는 AI 관련 하드웨어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용인공장 투자가 필수적이라고 보고 있다.
한편 이코노미스트들은 제조업과 대기업이라는 재래식 성장 드라이버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려는 정부의 결단이 이미 막혀 있는 경제모델을 개혁할 의사나 능력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우려하고 있다.
◇ 일본 '모방'으로 따라잡은 경제모델
한국은 1970~2022년까지 평균 6.4%의 경제성장을 이뤄왔지만 한국은행은 지난해 2020년대 성장률이 평균 2.1%, 2030년대 0.6%로 둔화하고 2040년대에는 0.1% 축소로 전환하겠다고 경종을 울렸다.
기존 성장 모델의 기둥인 값싼 에너지와 노동력에도 한계가 오고 있다. 국영 한국전력공사는 국내 제조업체에 거액의 보조금이 붙은 산업용 요금을 제공해 왔지만 이제는 1500억 달러나 되는 거액의 빚을 지고 있다.
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한국보다 노동생산성이 낮은 나라는 그리스, 칠레, 멕시코, 콜롬비아 뿐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경제학 교수는 한국은 미국이나 일본에서 발명된 반도체나 리튬이온전지 등 기존 기술을 상품화하는 데는 능숙하지만 새로운 기반기술을 개발하는 능력이 부족하고 중국 등 경쟁국이 기술혁신의 차이를 좁히면서 이 약점이 드러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밖에서 보면 한국은 매우 활기찬 나라로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모방을 통해 선진국을 따라잡는 것을 바탕으로 한 경제구조는 1970년대부터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박은 말한다.
저출산에 따른 인구위기도 미래 경제성장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50년에는 생산가능인구가 35% 가까이 줄어들 전망이며 국내총생산(GDP)은 2022년 대비 28%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과거의 성장 모델을 고집하면 한국 경제가 큰 어려움에 처할 것이라고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4월 초 본보에 말했다.
일각에서는 세계적인 AI 붐이 한국의 반도체 산업, 나아가 한국 경제 전체를 구하고 생산성과 인구 문제에 해결책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회의론자들은 한국이 출산율 급락, 시대에 뒤떨어진 에너지 부문, 침체된 자본시장 등 다양한 과제에 매달린 실적이 저조하다고 지적한다.
가까운 장래에 이 상황이 개선될 전망은 희박하다. 한국의 정치는 좌파가 지배하는 의회와 지지율이 낮은 보수 정권 사이에서 분열되어 있다. 4월 실시된 총선에서 좌파 정당이 승리함에 따라 2027년 차기 대선까지 3년 이상 꼬인 상태가 지속될 전망이다.
"한국 산업계는 구모델 탈피에 고전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2022년까지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을 맡았던 여한구다.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