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남북전쟁
(앙드레 모로아의 미국사에서)
1) 남북전쟁 전야
북부 지역은 연방제를 찬성하는 분위기였고, 남부 지역은 주 정부의 차치를 선호하였다. 서로 자기의 의견을 주장하면서 감정의 골도 깊어졌다.
흑인 문제도, 백인과 흑인 간의 인종차별 문제가 아니었다. 남부인이라 하여 흑인에 악감정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경제 운용에 노예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신문의 논조는 감정을 부추기는 방향으로 기사를 썼다. 신문도 이념이기보다는 판매전략이었다. ‘노예를 학대한다.’였고, 노예주는 악마가 되었다. 목사의 설교도 이런 식이었다. ‘악마로부터 흑인 희생자를 구출하는 것은 신이 부여한 신성한 의무이다.’
북부에서도 지금 당장 노예를 풀어주라는 사람은 없었다.
2) 포토맥 강의 요새
링컨의 직전 대통령은 부캐넌이다. 전쟁을 싫어한다는 이유로 군비증강도 극도로 싫어했다. 워싱턴 외각을 흐르는 포토맥 강이 남과 북의 경계선이다. 포토맥 강의 요새는 남부의 공격을 방어하는 절대적인 요새이다. 사령관은 요새의 군비 강화를 몇 번이나 요청해도 번번이 거절당했다.
요새로 군량미로 싣고 가던 군함을 남군이 포 사격으로 격침시켰다. 요새를 공격받자 북군 사령관은 항복하고 철수했다. 이때 군가 ‘양키 두들’을 부르면서 행진하였다.
(포토맥 강을 경계로 남쪽은 남부군으로 들어가 사우스캐롤라이나와 경게이다.)
3) 링컨은
노예해방론자인 링컨이 대통령이 되자 남부는 흥분했다.
(미시시피, 플로리다. 엘라바마, 조지아, 루이지에나, 사우스캐롤라인 연방탈퇴)
링컨의 신념은 노예해방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의 신념은 연방제 존속이었다. 남부가 탈퇴하자 링컨도 전쟁으로 마음을 굳혔다.
”노예를 해방시키지 않고 연방을 수호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것이며, 노예를 해방시키고 연방제를 유지할 수 있다면 그렇게도 할 것이다.“
그를 위대한 인물로 만든 것은 ‘연방제 존속’이란 그의 신념이 어떤 경우에도 바꾸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얼굴도 못 생겼고, 옷을 입어도 촌티가 줄줄 흘렀으며, 덩치는 크나 어딘가 모자라게 보이고------, 당시의 미국인은 그가 미국 대통령이라는 것이 부끄러웠다고 하였다. 그때의 미국인은 겉이 번지르한 귀족 티를 내기를 좋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