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스부르크 립】
15세기 이래로 유럽 대부분의 영토를 지배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합스부르크 왕가.
하지만 '합스부르크 가'를 공포에 떨게 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왕가 사람들이 유난히 돌출된 아래턱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
일명 '합스부르크 립' 으로 불리는 이 특이한 외모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막시밀리안 1세때 부터 시작되어 스페인왕 카를로스 2세까지 200여년 동안 왕가의 사람들은 '합스부르크 립' 때문에 여러가지 고통에 시달렸다.
16세기 스페인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합스부르크가의 펠리페 2세
합스부르크 립으로 이내 윗니와 아랫니의 교합이 잘 맞지 않던 그는 음식을 잘 씹지 못했고 때문에 소화불량으로 인한 위장장애에 시달려야 했을 뿐만 아니라 윗니와 아랫니가 제대로 다물어지지 않아 발음이 매우 부정확했기 때문에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펠리페 2세의 아버지 카를로스 1세는
아래턱이 심하게 돌출돼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잘 때마다 벌어진 입사이로 벌레가 들어가 제대로 잠을 잘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입사이로 계속 침이 흘러나와 침 닦아주는 사람이 옆에 늘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
펠리페 2세의 장손자인 카를로스 2세는 '합스부르크 립' 때문에 음식을 씹을 수 없어 모든 음식을 갈아서 먹어야 했다.
실제로 그는 평생 병약하게 살아가다가 39살의 젊은 나이에 이른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왕가의 저주라 불릴만큼 커다란 고통을 가져다 주었던 합스부르크 립
하지만 더 큰 고통은 바로 수치심이었다.
최고 권력을 가진 통치자였지만 남들의 시선이 늘 두려웠던 카를로스 1세
그는 합스부르크 립을 가리기 위해 수염을 길렀다
뿐만 아니라 왕가의 여자들은 추운 겨울에도 부채를 들고 다니며 ''합스부르크 립'을 가렸다.
그리고 턱에 집중되는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해 과도한 머리장식을 이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왕가의 사람들이 그 무엇보다도 신경을 썼던 것은 초상화.
사진이 발명되지 않았던 당시 자신의 모습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초상화를 남겼던 왕가의 사람들은 궁정화가에게 합스부르크 립을 미화해 그려줄 것을 요구했다.
합스부르크가 출신으로 프랑스의 국왕 루이 16세의 왕비였던 마리앙투아네트 역시 '합스부르크 립'이었다고 전해진다.
궁정화가들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벌어진 입을 작게 오므린 귀여운 입으로 표현, 그녀의 날카롭게 돌출된 턱은 둥글고 매끄러운 턱으로 미화했던 것이라고 한다.
극심한 고통과 수치심을 안겨준 왕가의 저주 ‘합스부르크 립’ 은 왜 발생하게 되었을까?
2009년 스페인의 알바레스 교수가 합스부르크가의 가계도를 토대로 분석을 거듭한 결과 왕가의 저주는 ‘근친혼’ 때문임을 밝혀 냈다.
형제 자매끼리의 혼인,사촌간의 혼인,숙부와 조카간의 혼인 . . . .
모두 근친혼에 해당 된다.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쥐었던 합스부르크가는 명문가의 혈통을 공고히 하겠다는 명목으로 근친혼 정책을 펼쳤다.
그 예로 카를로스 1세는 사촌누이였던 이사벨라와 결혼해 펠리페 2세를 낳았고 펠리페 2세는 조카딸인 안나와 결혼해 펠리페 3세를 낳았다
펠리페 3세 역시 육촌 누나인 마르가리타와 결혼해 펠리페 4세를 낳았다
펠리페 4세는 조카딸 마리아나와 결혼해 카를로스 2세를 낳았던 것이다
그들은 이러한 근친혼을 통해 권력은 유지할 수 있었지만 근친혼의 부작용으로 예상치 못한 유전병 , '합스부르크 립' 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합스부르크 립은 합스부르크 왕가 특유의 '열성 유전병'으로 유전인자가 부모 양쪽에 모두 있어야만 자식에게 유전되는 병이다.
합스부르크가의 경우 '근친혼' 정책으로 열성유전자를 갖고 있는 집안사람들끼리 결혼하면서 병이 계속해서 유전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