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17일 화요일(백) 한가위
-송 영진 신부
복음; 루카12,15-21 <사람의 생명은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15 사람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1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떤 부유한 사람 이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17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 하 고 생각하였다.18 그러다가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지. 곳간들을 헐어 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19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20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 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21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
1)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에서, ‘내가 수확한 것’이라는 말과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이라는 말은, 그 부자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과 얻은 것들을 모두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원래 ‘내 것’이란 없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전부 다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 부자의 첫 번째 어리석음입니다. 이 비유에서 ‘어리석음’은 곧 ‘죄’입니다. 그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전부 다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하느님께 감사드리지도 않고, 일꾼들에게 고마워하지도 않습니다. 모든 것은 다 ‘주님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겸손’이고, 겸손한 사람이 진정한 감사를 드리는 법입니다. 반대로, 모든 것을 다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이고, 교만한 사람은 은총을 받아도 감사드리지 않고, 자기가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꾼들에게는 주기로 한 품삯을 주었으니까 그것으로 자기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고, 일꾼들에게 고마워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비유에서,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라는 하느님 말씀은, 목숨의 주인은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목숨의 주인이 하느님이시니,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의 주인은 하느님이십니다. 인간의 인생 자체가 ‘내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잠시 맡겨 주셨다가, 때가 되면 주님께서 되찾아 가십니다. 인간은 각자 자기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 관리인일 뿐입니다. 그 관리는 ‘하느님의 뜻’에 합당하게 실행되어야 합니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는 교만에서 인생을 막 사는 어리석음이 생기고, 그 어리석음에서 온갖 범죄가 생깁니다. 2)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이라는 말은, ‘시간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생각하지 않는 어리석음을 나타냅니다. 그것이 그의 두 번째 어리석음이고, 죄입니다. ‘시간의 주인’은 하느님이십니다. “정녕 천 년도 당신 눈에는 지나간 어제 같고, 야경의 한 때와도 같습니다. 당신께서 그들을 쓸어 내시면, 그들은 아침잠과도 같고, 사라져 가는 풀과도 같습니다. 아침에 돋아났다 사라져 갑니다. 저녁에 시들어 말라 버립니다(시편 90,4-6).”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야고 4,14).” 인간은 하느님께서 허락해 주신 시간 동안에만 살아 있을 수 있는 존재입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알면 좋을 것 같은데, 거의 대부분의 인간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인간들은 시간이 아주 많이 남아 있다고 착각하거나, 아니면 아예 그런 것은 생각하지도 않고, ‘아무 생각 없이 오늘만’ 살고 있습니다. 비유에서, “오늘 밤에” 라는 말씀은, ‘시간의 주인’은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나타내고, 또 시작과 끝을 결정하는 권한은 하느님에게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누구나 예외 없이, 하느님께서 부르시면 즉시 떠나야 합니다. 3)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 라는 말과 “모아 두어야겠다.” 라는 말과 “쌓아 두었으니” 라는 말은, 그가 ‘나눔’과 ‘사랑 실천’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이기적인 인간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그것이 세 번째 어리석음입니다.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라는 말은, 그가 ‘몸의 쾌락’만 생각하고, ‘영혼 구원’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을 나타내고, 그것이 네 번째 어리석음입니다. 4)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라는 하느님 말씀에는 “아무도 차지하지 못한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이 세상의 재물은 때가 되면 사라질 것들입니다. 재물뿐만 아니라, 인간들이 자랑하는 것들, 무슨 학문이나 예술이나 업적 같은 것들도, 하느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영원히 남아 있지 못하고, 그냥 허무하게 사라집니다.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1요한 2,17).” <‘지나간다.’는 말은 ‘허무하게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한가위’는 겸손하게 감사드리는 날이고, 사랑을 더욱더 실천해야 하는 날이고,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를 더욱 깊이 묵상해야 하는 날입니다. <한 마디로 줄이면 ‘회개’인데, ‘회개’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참된 지혜를 얻는 지름길입니다.>
[전주교구 송영진 모세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