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 먹는 사람보다 우유 배달하는 사람이 더 건강하다고 했고 약초 먹는 사람보다 약초 캐러 다니는 사람이 더 건강하다고 했다. 많이 움직이면서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하루하루를 재미있게 사는 게 최대한 건강을 지키는 것이리라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말하는 사람을 보면 답답하다. 우유 배달할 시간적 여유가 없고, 산에 가서 약초를 캐려고 해도 어느 게 약초인지를 모르는 나로선 나만 보면 자꾸 운동하라고 말하는 의사처럼 다 아는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는 게 한심스럽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운동하는 것이 맞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삐딱선을 타는 난 뭘 믿고 이러는지 모르겠다.
병원에 가지 않고 주사나 약을 먹지 않고 병을 낫게 하는 여러 대안적 방법이 우리 주변에 아주 많게 된다. 양약은 속을 버려서 약초 사다가 달여 먹는다는 사람들이 예상외로 많다. 당뇨엔 여주 달여 먹고 돼지감자 갈아먹듯이 말이다. 아침마다 가래로 고생하는 내게 엄마는 비싼 도라지 사다가 갈아서 아침마다 내게 먹기를 권했다. 나중엔 먹기가 괴로워서 알약을 하나 처방받아 목 가래를 해소했더니 엄마는 도라지 효과라고 찰떡같이 믿고 계신다. 요즘은 가래가 없다. 십여 년 전에 담배를 끊었더니 가래도 목 아픈 것도 사라졌다.
왜 민간요법이 의학이 엄청나게 발전한 21세기에도 판을 펼 수 있을까? 수천 년 전 황제내경이 아직 우리 몸에 맞는다고 믿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용한 점쟁이의 성공비결은 인간의 사고 왜곡 경향이 큰 역할을 한단다. 애매하고 포괄적인 점괘를 내놓으면 사람들은 빗나간 점괘에 대해서는 별 관심 없이 그냥 넘어가지만, 적중한 점괘에 대해서는 ‘신통하다’는 반응을 보인단다. 듣고 싶은 것만 듣게 되어서 나오는 현상이리라. 그래서 애매한 묘사라도 비슷하면 자신에게 잘 들어맞는 것이라고 착각하게 되어 있단다.
이런 것을 바넘 (Barnum) 효과라고 전문가들은 말하는데 누구나 적용되는 말에도 얼추 비슷한 상황이 얽혀있다 싶으면 정말 나의 마음을 그대로 끄집어낸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혈액형으로 사람 성격 맞추는 것도 똑같다고 보면 된다. 혈액형으로 어떻게 성격을 알아맞힐 수 있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지만 B형은 아주 이기적이란 말에 사람들이 동감한다는 것이다. 자기 배우자가 B형일 땐 손뼉까지 치면서 동조한다. 자기도 이기적인 인간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말이다.
대충 성분을 보고 어느 질환에 적용되는지를 연관시켜놓고서는 이런저런 증상에는 어떤 성분이 몸에 좋은데 이것을 복용하면 증상이 서서히 낫게 된다는 논리에 사람들은 고통에서 빠져나가야겠다는 일념으로 이것저것 챙기게 된다. 이런 사람의 심리를 아주 잘 이용하는 것이 해외여행 가서 파는 건강식품이다. 팔랑귀인 난 정말 가는 곳마다 주섬주섬 챙겼다. 나노, 상황버섯, 굼벵이 등 만병통치약이라는 데 안 살 수 없었다. 이번 필리핀 여행 때는 무슨 나무 씨앗을 한 통 사서 왔다. 정력에 좋다고 해서.
“그곳에 가봐. 침 한 방이면 모든 게 끝나.”
어디 모처에 침 잘 놓는 사람이 있단다. 돈도 안 받고 그냥 침을 놔 주는데 신기하게도 온갖 병원에 다 돌아다녀도 낫지 않았던 고질적인 허리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단다. 한 친구가 직접 경험했다고 연락처랑 위치까지 가르쳐 준다. 이런 쓰레기 같은 이야기를 제일 싫어하는 성격을 아는지라 내 얼굴을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직접 경험담을 이야기한다. 허리가 아픈 또 다른 친구가 직접 경험을 해보고 이야기해 주겠단다. 얼마 후 연락을 했더니 진짜 많이 좋아졌는데 그렇게 완전하지는 않다고 이야기한다. 돈을 받지 않느냐는 질문에 둔통이 있어 알아서 대충 넣고 가는 시스템이라며 웃는다. 사실 제도권 의술이 다 괜찮은 효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마는 그래도 미신적인 의술보다는 신빙성이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온갖 종류의 대안 의술(alternative medicine, 대체 의학) 또는 민간요법이 현대의학을 대체하고 있음이 현실이다.
중국, 몽골이나 동남아 여행을 하면서 나의 관심은 그 나라 의술이 어떻게 국민에게 다가가는지를 항상 묻고 확인한다. 개 눈엔 똥밖에 안 보인다고 이상하게 그쪽으로만 눈이 간다. 형편없이 낙후된 의료시설이나 시스템에 머리를 흔들게 된다. 현지 가이드 말에 의하면 조금이라도 아프면 무조건 한국으로 온다는 말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그 나라에서 관광객에게 파는 만병통치약을 국민에게 뿌리면 더 좋은 효과를 볼 텐데 말이다.
허리가 자꾸 아프다. 병원에 가도 진통제만 처방한다. 한의원도 가 보고 안마도 받아보지만, 별 차도가 없다. 그래서 민간요법이라도 워낙 효험이 있다고 하니 자꾸 솔깃해진다. 남들에겐 그딴 짓거리하지 말라고 혼쭐을 내면서도 정작 내 몸뚱아리가 아프니 별생각을 하게 된다. 나이 먹어 이제 수술도 못 하는 정형외과 의사에게 한방에 허리 낫게 만드는 비책을 물었다. 그동안 임상경험으로 분명 뭔가가 있을 것으로 생각해서 물었다.
“살만 빼면 다 나을 병인데 살 뺄 생각은 안 하고, 허구한 날 처먹기만 하니 병이 낫나.”
비책은 없었다. 의사도 정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갑자기 든다. 살 빼란 이야기가 의사가 할 이야기인가. 객구 물린다며 칼 던지는 무당도 그 정도 말은 하겠다. 나쁜 놈.
(노병철 님의 수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