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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록 실중어요(室中語要) 51. 두렷한 빛은 색(色)이면서 색(色)이 아니네"
["여섯 가지 신통묘용(神通妙用)은 공(空)하면서 공(空)하지 않고 한 덩이 두렷한 빛은 색(色)이면서 색(色)이 아니네" 하신 일숙각의 게송(偈頌)을 들려주고는 불자를 잡아 세우더니 말씀하셨다.]
한 때 운문선사가 법을 보이셨다.
오늘에 거한 향상일구는 영가 현각스님의 화두화 된 향상일구를 거론 하셨습니다.
여기서 거론 하신 일숙각의 게송인
“육반신용공불공(六般神用空不空)이요, 일과원광색비색(一顆圓光色非色)이로다 즉 여섯 가지 신통묘용은 공(空)하면서 공하지 않음이요 한 덩이 둥근 빛은 색(色)이면서 색이 아니로다.하는 게송에 대하여 납승이 사족을 다는 것보다 이 게송에 대한 조사이신 성철스님의 거하신 보설을 먼저 소개하고자 합니다.
육반신용(六般神用)은 여섯 가지 신통묘용(神通妙用)을 말하는데, 이것은 육신통(六神通)이라 해도 괜찮지만 육신통을 따라 세울 것은 없고, 안(眼)ㆍ이(耳)ㆍ비(鼻)ㆍ설(舌)ㆍ신(身)ㆍ의(意)의 육근(六根)의 작용을 말하는 것입니다. 진여불성(眞如佛性) 가운데 마니주(摩尼珠)를 찾으니 육근(六根) 이대로가 전체로 신통이며 모두가 진여대용(眞如大用)이라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여래장(如來藏)을 열어서 마니보주를 얻지 못하면 육근이 모두 여섯 가지 도적인 육적[六賊]이지만, 여래장을 열어 마니주를 얻어 진여자성(眞如自性)을 깨치면 육근 전체가 육신통 즉 진여대용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眼)ㆍ이(耳)ㆍ비(鼻)ㆍ설(舌)ㆍ신(身)ㆍ의(意)를 통한 전체 진여대용 이것이 공(空)이면서 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공(空)이란 일체 명상(名相)이 다 떨어진 쌍차(雙遮)를 말하고, 공하지 않다는 것은 단공(斷空)이 아니라 거기에 묘유(妙有)가 있다는 것으로 쌍조(雙照)를 말합니다. 그래서 여섯 가지 신통묘용(神通妙用)이 공했으면서 공하지 않고 공하지 않으면서 공했으며, 진공(眞空)이면서 묘유(妙有)고 묘유이면서 진공이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쌍차(雙遮)이면서 쌍조(雙照)이며 쌍조이면서 쌍차하여 차조동시(遮照同時)가 되는 것이니 중도(中道)의 참 정의를 우리가 여기서 체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론으로써만 그런 것이 아니라 마니주를 완전히 얻고 보면 '육반신용(六般神用)' 가운데서 중도의 대용(大用)을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여섯 가지 신통묘용'이라고 하여 여섯 가지가 각각 다른 길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근본은 하나입니다.
비유하면 속에 불덩이는 하나인데 구멍이 여러 개 있어서 하나의 불이 여러 개의 구멍으로 비치는 것과 같으니 그 구멍마다 딴 불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한 덩이 둥근 빛'이란 자성(自性)을 말함이니 자성의 진여본성(眞如本性)은 똑같아 둘이 아닙니다. 안(眼)ㆍ이(耳)ㆍ비(鼻)ㆍ설(舌)ㆍ신(身)ㆍ의(意)의 육문(六門)을 통해서 비치는 신통묘용이 바로 자성이라는 한 덩어리 광명이 발하는 여러 가지 작용이라는 것입니다.
'여섯 가지 신통묘용[六般神用]'이 '한 덩어리 둥근 빛'이요, '한 덩어리 둥근 빛'이 '여섯 가지 신통묘용(神通妙用)'인 것입니다.
'한 덩이 둥근 빛은 색(色)이면서 색(色)이 아니다'란 말은 긍정을 먼저하고 나중에 부정을 한 것이라면 앞에 말한 '공하면서 공하지 않다'는 것은 부정부터 먼저하고 나중에 긍정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앞에서는 막고서 비추고 즉 차이조(遮而照), 뒤에서는 비춰서 막은즉 조이차(照而遮)인 것입니다. 이것은 곧 막고서 비추며 비춰서 막으니 막음과 비춤이 한 때인 차조동시[遮照同時]인 중도정의를 여기서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자성을 바로 깨쳐서 여래장(如來藏) 속에서 마니주(摩尼珠)를 얻게 되면 중도정각(中道正覺)을 완전히 성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라고 보설하였습니다.
"여섯 가지 신통묘용(神通妙用)은 공(空)하면서 공(空)하지 않고 한 덩이 두렷한 빛은 색(色)이면서 색(色)이 아니네"라는 게송을 무비스님은 이렇게 보설을 하였습니다.
육반신용공불공(六般神用空不空)이요
여섯가지 신통묘용은 공하면서 공하지 아니하고
여섯 가지 신통묘용(神通妙用)이 공하면서 공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여섯 가지 신통묘용이란 육근(六根)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눈[眼(안)]은 보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귀[耳(이)]는 듣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코[鼻(비)]는 냄새를 맡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혀[舌(설)]는 맛을 보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피부[身(신)]는 감촉을 느끼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뜻[意(의)]은 기억하고 판단하고 추리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가 전부 나름의 능력을 발휘합니다. 그것이 신통하고 오묘한 작용입니다.
뭐가 있어서 육근이 그런 능력들을 발휘하는 것인지 신비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제각기 소임을 잘 수행하지만 정작 그렇게 하는 놈을 찾아보면 찾을 수가 없습니다. 공(空)합니다. 그렇다고 없는 것인가? 없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현전에서 엄연히 여섯 가지 능력이 발휘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물에 소금을 풀어놓은 것과도 같습니다. 찍어서 먹어 보면 분명 짠맛이 있습니다. 하지만 짠맛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짠맛이 없는 것인가? 눈에 포착되지는 않지만 짠맛은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귀·코·혀·피부·뜻에서 발현하고 있는 능력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자를 찾으려면 찾을 수 없지만 분명히 그런 능력들이 펼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불공(空不空)’이라 한 것입니다.
‘신통묘용’이라 해서 보통 사람은 할 수 없는 어떤 초인적인 능력을 두고 한 말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촉감을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신비하고 오묘한 마음의 작용입니다.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이런 작용들이 바로 신통묘용이란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간혹 보면 불교 공부를 하다가 초능력을 얻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고, 또 그런 것을 배우겠다고 절에 오는 사람도 더러 있는데, 그건 참 위험천만한 발상이고 잘못된 생각입니다. 부처님과 조사 스님들께서 말씀하신 신통묘용은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고 초능력을 과시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물론 불전을 읽다 보면 여러 성인들이 보통 사람은 할 수 없는 신비한 능력들을 발휘하는 경우가 더러 있지요, 목련존자도 신통제일이라고 칭송받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그런 목련존자 역시도 외도들에게 폭행당해 순교하셨습니다. 만약 우리가 상상하는 식으로 신통을 마음껏 부렸다면 그렇게 돌아가셨을 리 있겠습니까?
불교도들이 정말 소중하게 생각한 신통은 그런 신기한 마술이나 요술을 부리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 역시도 제자들에게 그런 초능력은 발휘하지 못하도록 금하셨습니다. 복잡하게 펼쳐지고 있는 세상만사 온갖 현상들의 핵심을 꿰뚫어 보는 능력, 그런 지혜를 바탕으로 갖가지 욕망과 집착을 버리는 능력, 그렇게 해서 뒤죽박죽 헝클어진 망상과 번뇌로부터 훌쩍 벗어나는 능력이 부처님께서 일러 주신 진짜 신통력입니다.
당나라 때 방온(龐蘊)이라는 유명한 거사가 계셨습니다. 그분이 석두(石頭) 선사를 찾아뵙고 대뜸 이렇게 물었답니다.
“만법과 짝하지 않는다는 사람이 도대체 누굽니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석두 스님이 방거사의 입을 틀어막았답니다. 그때 방거사가 깨달은 바가 있었습니다. 그 후 어느 날 석두 스님이 방거사에게 물었습니다
“자네는 나를 만난 뒤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내는가?”
그러자 방거사가 이런 게송을 지어 석두 스님에게 바쳤습니다.
일용사무별 유오자우해(日用事無別 唯吾自偶諧)
두두비취사 처처몰장괴(頭頭非取捨 處處沒張乖)
주자수위호 구산절점애(朱紫誰委號 丘山絶點埃)
신통병묘용 운수급반시(神通甁妙用 運水及搬柴)
날마다 하는 일 특별할 것 없으니
오직 저 자신과 마주칠 뿐이지요
어느 것도 취하거나 버릴 것 아니고
어느 곳도 잘되거나 잘못된 곳 없습니다.
붉은색 자주색은 누가 붙인 이름일까?
세속이건 청산이건 티끌 한 점 없는데
그 가운데 신통하고도 오묘한 작용은
물 긷고 나무하는 것이지요.
신통묘용이란 무엇인가? 산에 가서 나무해 올 줄 알고, 우물에 가서 물 길어 올 줄 아는 것이라 했습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씻고 싶으면 수도꼭지 틀어서 물을 받고 방이 어두우면 전등 스위치를 켜는 것이 되겠지요. 지금 일상생활에서 하고 있는 그런 행동이 바로 신비하고도 오묘한 작용이란 것입니다. 누가 부르면 대답할 줄 알고, 배고 고프면 먹을 줄 알고, 피곤하면 잠잘 줄 아는 것, 이것이 진짜 신통이고 이것보다 뛰어난 신통은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눈·귀·코·혀·피부·뜻에서 발현하고 있는 일보다 신비한 작용은 없습니다. ‘누구야~“하고 부르면 ”네~“하고 대답합니다. 그렇게 소리를 틀어서 알고 ”네~“하고 대답할 줄 아는 자가 어디에 숨어있습니까? 안에 있습니까, 밖에 있습니까, 안과 밖의 중간에 있습니까? 아무리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누구야~“하고 부르면 ”네~“하고 대답할 줄 압니다. 이보다 신통하고 신비로운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라고 보설하였습니다.
두 스님의 보설을 통하여 신통묘용(神通妙用)대하여 예시한 후에 이제 운문선사는 이 향상일구를 읊었습니다.
["이것이 색(色)이면서 색(色)이 아닌 두렷한 빛인데 무엇을 색(色)이라 부르느냐? 내게 한번 가져와 보아라."]라고 게송을 하셧습니다. 먼저번 예시한 “여섯 가지 신통묘용(神通妙用)은 공(空)하면서 공(空)하지 않고 한 덩이 두렷한 빛은 색(色)이면서 색(色)이 아니네"에서 뒷부분인 ”한 덩이 두렷한 빛은 색(色)이면서 색(色)이 아니네"를 두고 “여기서 무엇을 색이라 부르느냐? 내게 한 번 가져와 봐라”라고 하시는 것은 “공(空)하면서 공(空)하지 않고 한 덩이 두렷한 빛은 색(色)이면서 색(色)이 아니네”에서 이 신통묘용이 공하면서 공하지 않고라고 하는 곳에서 색이 무엇이냐고 묻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색은 물질이라고 하고 형상도 드러난 형상을 색이라고 하는데 그럼 그 색은 색이면서 공이고 공이면서 색이란 것이 되는데 그럼 공과 색은 색즉시공 이요 공즉시색이라고 한다면 신통묘용이라는 이 것은 그럼 공입니까 색입니까?
즉 마음에 감각(感覺)되는 이것은 공이냐 색이냐라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눈으로 본다라는 것은 빛의 화현인 빛그림자를 인식한다는 것이요 소리는 공기의 파장인 메아리를 듣는다하고 코로 향기를 맏는다 할 때 향기는 무엇이라고해야 합니까 음식을 먹어며 맛을 안다고 하는데 이 맛은 무엇입니까 몸으로 느낀다는 감촉(感觸)은 무엇이라고 해야 합니까 한 번 사량분별해 보십시오?
이것은 사실 스스로 느끼고 감각(感覺)할 뿐 그것을 어떻게 알아차리는가는 자기 스스로 밖에 모름니다. 이 형상과 소리와 향기와 맛과 감각(感覺)과 생각(生覺)을 느끼고 감각하였으니 드러남이요 인식론에서는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나에게 가져오라는 운문선의 말에서 어떻게 전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 인식되였으니 색은 색입니다. 그러나 그 형상이나 모양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형상과 모양이 없으면 공입니다. 그러니 이 육감으로 느껴지는 것이 무엇일까?
그래서 공이면서 공이 아니요 색이면서 색이 아닌 것이 무엇입니까? 이것을 우리는 성품(性品)이라고 합니다.
그럼 그 성품은 색입니까 아니면 공입니까?
ㅎㅎㅎㅎㅎㅎㅎㅎ스스로 느낀 그대로일 뿐인 것입니다.
성불인연 맺으소서 옴 바아라 믹 ~~~!!!!!!!!!!!!!!!
조사선(祖師禪) 운문록(雲門錄)을 들어시어
인연성불(因緣成佛) 하시어서 붓다(佛陀) 같이 살아가소!
일승법문을 시절인연삼아 인연성불 하옵시고 대원성취 하옵소서 !
원오선원 명상쉼터 천안시 두정동 611_1번지 5층(041)551 8546
무명 납승 원오선사 010 8748 6006 옴~바아라 믹!!!_()_
탁발성원 보시구좌 농협 351 1042 1598 93 대한불교 정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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