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현세와 내세의 차이
저승이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에 대해서, 대부분의 사람은, 이승뿐이다.
죽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다만 생명의 영원은,
육체의 자손을 통하여 보존되므로,
그런 의미에서의 영원성을 긍정한다.
이런 사람들은 유물적인 사고에 지배되어,
바른 생명의 전생(轉生)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조상이 혼-마음까지 주었다고 한다면,
어째서 같은 어머니한테서 태어난 형제자매가,
재산 문제로 다투고 있는 것일까.
부모와 자식의 부조화한 대립이 일어나서,
결국에는, 서로 죽이는 일까지 벌어지는 것일까.
자식이 부모의 마음과 같다면,
부모가 생각하고 있는 것 모두를,
이해하고 불효 따위는 범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 흔히 있는 보기이지만,
부모가 못했던 일을, 자식에게 맡겨,
‘공부! 공부!’하고 자기의 분신처럼 교육한다.
그 아이가 부모와 같은 혼-마음이면,
왜 노이로제가 되거나, 불효를 하겠는가.
그리고 그토록 뒷바라지를 해 주었는데도 배신했다고 넋두리하는 부모가 있다.
나는 이러한 이야기를 믿을 수가 없다.
부모의 연(緣)에 의해 인생항로의 육체주(肉體舟)를 받고 양육되었지만
부모는 혼-마음까지 준 것은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자식은 자식으로서의 개성을 가진다.
하물며 마음까지 단 하나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부모 자식은,
서로 대화를 통해서 이해하고, 서로 가까워지는 것이다.
부모로서는 섭섭한 일이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자식은 자식으로서의 인생을,
그리고 새로운 자기완성의 학습장으로서 현세를 선택한 것이다.
차원이 다른 저 세상에서 서로 약속한 것을, 잊고 있을 뿐이다.
'마음의 원점'을 잘 이해하고,
한 쪽에 기울어지지 않는 생활을 영위한다면
인간은 그 사실을 아는 것이 가능하다.
되풀이 말하지만, 저 세상을 물리적인 차원을 예로 들어 설명해 보면,
물질계인 이 현상계는, X축, Y축, Z축을 잇는 3차원적 입체의 세계이다.
비행기는 3차원의 공간을 자유로 날지만,
X,Y 축의 2차원적인 좌우상하의 세계에서는,
활동이 불가능하다.
공간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활동이 불가능하다.
다만, 3차원의 세계에서 투영된,
2차원의 스크린의 영상은 보는 것이 가능하죠,
텔레비전의 스크린도,
2차원 평면의 세계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화면의 주인공에게, 3차원의 세계에서 말을 걸 수가 있겠는가.
불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말을 걸더라도 영상의 인물에게 3차원에서 통신할 수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3차원을 투영하고 있는 4차원의 세계에서
3차원의 세계에 말을 걸어도 통화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2차원은 3차원의 투영이니
이 둘은 연속된 것임에 틀림이 없고,
3차원, 4차원의 관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말을 할 수 있다.
X. Y. Z. t 의 4차원의 세계가,
물질의 차원보다 고차원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물질은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물질의 질량 M과, 빛의 속도 C 의, 2승의 적(積)은 차원이 다른, 즉,
일을 할 수 있는 능력 E(에너지)와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4차원의 존재에 대해서, 보통은 인식할 수 없다.
인식은 못하더라도, 없다고는 말할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보면, 물질계는 분명히 3차원을 구성하고 있으나,
그 이상(以上)의 고차원의 존재를 부정할 수가 없다.
불교에 색심불이(色心不二)라는 말이 있다.
색이란,
우리의 오관에 감지되는 만생만물이며,
만생만물은 색채에 의해서 확인할 수가 있다.
마음의 세계, 의식의 세계도,
에너지의 차원과 같은 것으로,
3차원을 투영하고 있는 4차원 이상의 세계가 있다고,
생각해도 불가사의한 것은 아니다.
죽은 영(靈)들의 모습을 보거나,
염파(念波)에 의한 텔레파시, 예지 능력, 투시 능력,
거슬러 올라가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등도,
4차원 이상의 세계의 존재를,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마음의 문제는, 다분히 주관적이어서,
경험이 없는 경우는, 이해하기 힘든 면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경험이 없다고 해서, 이것을 부정하는 것은,
과학하는 현대인으로서는,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예로부터 많은 성자가,
보통의 상식으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기적,
덕행을 실천하여, 중생을 구제해 왔다.
오른 뺨을 맞으면, 왼쪽도 대어주라고 한,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은,
현대인에게는 쉽사리 이해되지 않으리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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