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항의
원제 ; Dangerous
1935년 미국영화
감독 : 알프레드 E 그린
출연 : 베티 데이비스, 프랑코트 톤, 마가렛 린지
앨리슨 스킵워드, 존 엘드리지, 딕 포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작
'베티 데이비스' 하면 1930년대를 대표하는 명배우입니다. 1931년에 데뷔한 유성영화 1세대 배우입니다. 미국 배우들의 연기력 척도를 가늠하는 대표적 표본중 하나인 아카데미 주연상 후보에만 무려 11차례나 올랐고 그 중 두 번 수상합니다. 캐서린 헵번과 함께 그 시대의 대표적 연기파로 분류되며, 유난히 큰 눈이 특징이라 '베티 데이비스 eyes' 라는 팝송까지 만들어졌을 정도입니다. 인기 여배우가 나이가 들면 활동이 줄어드는데 베티 데이비스는 50대의 나이가 된 60년대에 음산한 연기를 하는 괴작들을 통해서 또 나름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베티 데이비스가 첫 번째 아카데미 주연상을 수상한 영화가 우리나라에 '청춘의 항의'라는 제목으로 개봉된 영화입니다. 1935년 작품이지요. 그 전에 출연한 '인간의 굴레'로 첫 후보에 올랐고 두 번째 후보만에 수상을 한 것입니다. 베티 데이비스 자신은 '인간의 굴레'의 연기를 더 선호하였지만. 함께 경쟁한 후보들이 '캐서린 헵번' 멀 오베론' '클로데트 콜베르' '미리암 홉킨스' 등 치열했습니다.
남자의 동정과 바람에 관한 내용입니다. 한물간 여배우를 동정하여 호의를 베푼 남자가 약혼녀를 버리고 그녀와 사랑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하여 벌어지는 사건들을 다루고 있지요. 제법 흥미로운 남녀관계의 이야기입니다.
연극배우로 한때 명성을 날린 조이스 히스(베티 데이비스), 하지만 그녀에게는 주변 남자를 망친다는 징크스가 있었습니다. 그런저런 이유 때문이지 과거의 명성을 뒤로 하고 술에 찌들어 비참하게 사는 상태입니다. 유능한 건축가 돈 벨로우스(프랑코트 톤)는 좋은 가문의 게일 이라는 약혼녀를 사귀고 있었고, 거액의 투자를 은행으로부터 약속받은 잘 나가는 사업가입니다. 돈은 어느날 술집의 구석에서 폐인처럼 술을 마시는 조이스를 발견합니다. 자신이 예술계통이라 할 수 있는 건축가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 과거 조이스의 연극을 보고 자신감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고, 그래서 망가진 조이스의 모습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돈은 연민과 동정심에 조이스를 주말에만 가는 자기 시골집에 데려다 주고 보살핍니다.
뭐 여기까지는 한 때 우상같았던 인기 연예인에 대한 동정심에 의한 호의라고 볼 수 있죠. 어려운 사람 도와주는 선행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젊은 남녀가 함께 있다보면 당연히 남녀간 로맨스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지요. 더구나 잘 나가는 호남 건축가와 한때 인기 여배우였다면? 실제 관객의 예상대로 그런 일이 벌어지고 돈은 그런 사실을 약혼녀에게 고백하면서 게일과 헤어집니다. 대신 돈은 조이스의 재기에 모든 것을 걸고 올인하기로 하지요. 그는 극단대표를 설득해 신작 연극에 조이스를 출연시킬 것을 제의하고 8만달러의 거액을 투자합니다. 조이스는 모처럼 자신에게 다시 찾아온 기회를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해 연습합니다. 만족스러운 리허설이 끝나고 사람들은 연극의 성공을 예감합니다. 돈은 조이스에게 내친김에 빨리 결혼해 버리자고 밀어붙이는데 웬일인지 조이스는 망설입니다. 돈을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그의 조급한 청혼에 뭔가 당황해 합니다. 조이스에게는 말하지 못한 비밀이 있었던 것입니다.
베티 데이비스는 좀 늦다면 늦다고 할 수 있는 23살에 영화에 데뷔했는데 일찌감치 주연급 스타가 되면서 화려한 20대를 보냅니다. 이 영화는 27살 한창때 출연한 작품입니다. 초췌한 모습의 한물간 여배우에서 남자를 은근 유혹하는 순진한 요부 같은 모습, 그리고 삶의 전환을 위해서 아주 간절한 모습 등을 연기합니다. 특히 후반부의 간절한 연기가 아카데미상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을 듯 싶을 정도로 자신의 손에 쥔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은 애처로울 정도로 간절한 모습을 보입니다.
베티 데이비스의 상대역으로 출연한 배우는 30-40년대 훈남 배우 프랑코트 톤, 약간 우리나라 배우 정진영의 느낌을 주는 듯한 배우인데 클라크 게이블, 찰스 로톤이 열연한 작품 '바운티호의 반란'에서 비중있는 역할로 공연했고, 로레타 영과 공연한 '한밤중의 처녀'에서 핸섬한 변호사로 등장합니다. 빌리 와일더의 초기 걸작 '열사의 비밀(카이로까지의 다섯무덤)' 같은 인생작을 남기기도 했지요. 50년대 이후에는 주춤하면서 TV에서 주로 활동하여 우리나라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30-40년대에 왕성하게 활동했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유능한 건축가로 등장하여 과거 영향을 주었던 몰락한 여배우를 만나서 연민과 동정-> 호의 -> 사랑 -> 증오 등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겪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후반부에 영화가 좀 예기치 않는 방향으로 끝나는데 어떻게 보면 제대로 번지수를 각각 찾아간 결말이기도 합니다. 다만 남자의 바람은 한때의 이기심으로 그냥 묵인될 수 있고 버려지는건 결국 여성이라는 다소 씁쓸한 듯한 결말입니다. 후반부 내용을 보면 상당히 색다른 영화입니다. 결국 주어진 운명의 굴레는 벗어나기 힘들다는 결말이기도 하고요. 한편으로는 애초에 진실하지 못한 사랑은 이루어지기 어려다는 설정이기도 하고.
1시간 20분도 안되는 짧은 영화인만큼 상당히 진행이 시원시원하고 잘 압축되어 있는 영화입니다. 감독 알프레드 E 그린은 무성영화 때부터 많이 활동한 감독인데 많이 생소한 이름입니다. 베티 데이비스와 프랑코트 톤이 좋은 호흡을 보여주었는데 두 사람은 영화 촬영도중 실제로 로맨스를 벌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시 프랑코트 톤은 조안 크로포드와 약혼한 사이였고 그래서 조안 크로포드와 베티 데이비스의 악연이 시작되었다고 하네요. 두 사람이 60년대에 '베이비 제인에게 무슨 일이?' 라는 영화에서 앙숙같은 역할로 불꽃튀는 연기대결을 보이는데 오히려 그 영화에서는 베티 데이비스가 조안 크로포드를 괴롭히는 역할이지요. 정작 혼이 났어야 하는 사람이 혼을 내준 셈이죠. 프랑코트 톤은 '청춘의 항의' 촬영이 끝나고 결국 조안 크로포드와 결혼하는데 본인은 첫 결혼이었고, 조안 크로포드는 두 번째 결혼이었습니다. 그리고 몇년 살다가 아이를 갖지 않은 상태에서 헤어집니다.
'청춘의 항의'는 국내 개봉제목이지만 별로 어울리는 제목이 아닙니다. 일제시대에 개봉되었으니 일본 제목이겠죠. 원제목도 Dangerous 로 좀 애매하고 성의 없는 제목입니다. 여러가지 제목이 논의되었다고 하는데 베티 데이비스가 '악마 스타(Evil Star)' 라는 제목을 제안했다는데 오히려 훨씬 어울려 보입니다. '위험한 여인'이 가장 어울리는 제목 아닐까 싶네요. 제법 흥미롭게 볼만한 30년대 드라마장르 수작입니다.
ps1 : 베티 데이비스의 출연작 중 못 본 영화가 더 많지만 '사랑의 승리(Dark Victory, 39)'를 능가할 영화가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그 영화의 연기는 응당 아카데미 상을 수상하고도 남을만 했지만 경쟁자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비비안 리 였고, 베티 데이비스는 이미 두 차례 수상을 했기 때문에 놓쳤다고 봐야 합니다.
ps2 : 베티 데이비스는 3년뒤 '제저벨'로 다시 아카데미 상을 수상하여 1930년대에 두 번 주연상을 수상한 배우가 되지요.
ps3 : 남녀의 연애에서는 무엇보다 솔직한 것이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거짓말이나 숨김이 결국 나중에 더 큰 화를 불러 일으키니까요. 물론 끝까지 거짓말할 자신이 없다면.
[출처] 청춘의 항의(Dangerous, 1935년) 베티 데이비스 아카데미상 수상작|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