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4일부터 6일 까지 충남 홍성군 장곡면에 있는 지인의 생가에서 휴가를 하였습니다.
모처럼 밟는 서해안 고속도로는 여전했고, 머드 팩 축제로 유명한 보령을 아쉽게 지나 광천 IC를 빠져나가자 광천 시장을 먼저 찾아갔습니다.
5일 장이 끝나고 한산한 장은 크게 주목을 끌게 없었지만 어리굴젓 좀 사고 목살과 갈비살도 넉넉히 챙겼습니다.
약 10 Km를 더 가니 목적지 부근에 다다랐는데 이미 해는 기울고 땅거미가 짙어 오고 있었습니다. 조심스레 집안으로 차를 대니 주인장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요란스럽게 울던 매미 소리가 잠시 멈추고 풀벌레 소리도 잦아들더니 개구리들이 합창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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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아내도 시골에서 성장하여 마치 고향을 찾은 듯이 편안한 마음으로 여장을 풀었습니다. 동행한 제 친 누님은 64세의 나이를 잊은 듯이 만면에 미소를 머금곤 앞마당에 심어 키운 토마토, 옥수수, 들깨, 대파 등을 넋 놓고 쳐다보았습니다.
아내가 밥을 지어 딸과 아들 그리고 집 주인까지 둘러 앉아 정겨운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오랜 만에 먹어보는 시골 밥상이 더없이 맛있었습니다.
이튿날 일어나니 무궁화 꽃도 보이고 호박 넝쿨도 이어지더니 세타콰이어 나무 세 그루가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나는 주인장의 안내를 받아 누님을 모시고 아들과 함께 주류산성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뒷집에 사시는 할머니와 인사를 나누자 바로 산등성이가 눈에 들어오고 길 양 옆으로는 그토록 찾던 씀바귀, 쇠비름, 쑥, 뽕잎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습니다.
누님은 산행에 관심이 없고 벌써 손에는 매형에게 해드릴 효소 생각에 쇠비름과 씀바귀 한 움큼을 쥐고는 담을 포대를 찾고 계셨습니다. 저는 주인장의 도움을 받아 아들을 시켜 쌀 포대 몇 개를 갖고 와 효소가 될 만한 약초를 같이 뜯었습니다. 다섯 포대 정도를 채우니 누님께서 만족하신 표정을 지으시기에 비로소 백제 부흥로를 따라 홍성 장곡산성을 향해 올라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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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차례 효소 재료로 추천하던 엉겅퀴는 모두 말라 시들어 버렸다며 안타까워하시는 주인장이 담배를 한 개피 입에 물어 피우셨습니다. 주인장 45세 때 몹쓸 암과 투병하다가 42세 젊은 나이에 먼저 세상을 떠난 부인, 자신의 지난 날 아픔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조강지처의 산소와 일찍이 돌아가셔서 얼굴도 모르지만 잘 단장해 놓은 주인장의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도 들리고, 눈 아래로 예산군과 광천시가 보이는 정상에서 호흡을 고른 뒤 하산하였습니다.
집으로 내려와 찐 옥수수와 감자로 점심을 해결한 후, 오서산 계곡을 찾아가기 위해 청소면을 네비게이션에 찍었습니다. 펜션형으로 지은 듯한 검은색 기와집 다섯 채 아래 주인장이 가르쳐 준 계곡이 나타나 우리는 그곳에서 오전에 딴 씀바귀, 쇠비름, 쑥, 뽕잎과 계곡 옆으로 불거져 나온 칡넝쿨을 꺾어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어 채반, 큰 소쿠리나 바위 위에 펼쳐 널었습니다
그리고는 오서산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다가 사진도 찍으며 모처럼 헌거로운 시간을 보내는데, 여우비가 내리는 바람에 황급히 돌아와 돗자리를 펴고는 차의 트렁크에 모두 실었습니다.
다행히 큰 비가 아니어서 농협에 들려 설탕과 수박을 산 후, 숙소로 돌아와 그늘에 조금 더 말리니 항아리에 넣을 만 했습니다. 설탕과 약초의 비율을 1:1 로 하여 가지와 뿌리가 센 것은 가위로 자르며 큰 항아리에 재는 일 또한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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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너 시간이 지나 약재들이 숨이 죽는 듯 했으며, 그렇게 발효가 되서는 100일 후에 인체에 큰 도움이 될 효소가 탄생한다는 기대감에 저녁은 너무 맛있었습니다.
그런데 딸아이가 밤새 배가 아파 토하고 설사를 하며 고생하였습니다. 동네 슈퍼에서 사온 소화제도 먹이고 손도 바늘로 따 주었는데, 열까지 나는 것을 보니 아마도 급성 장염 같았습니다. 아침에 일찌감치 딸을 태우고 급히 군내 의료원을 찾아 갔습니다. 몇 가지 검사 후에 내과 선생님이 입원을 해야 한다기에 수속을 밟고는 병실에 누워 링거 주사를 맡고 있는 아이를 뒤로 하고 예산군에 점심 약속을 지키려고 숙소로 급히 돌아갔습니다.
가족들을 태우고 약속 장소로 가는 30여 Km의 길은 멀고도 험했습니다. 다행히 선배가 베푸는 점심 갈비 정식은 일품으로 모처럼 육식으로 한 끼를 해결했습니다. 다시 군내 의료원으로 돌아가 병상에 있는 딸을 위로하며 갈비 냄새는 풍기지 않았습니다. 38도 5부까지 올랐던 열은 내려가 다행인데 금식을 해야 하며 하루 더 입원해야 한다는 지시를 어기고 5시 30분 경에 퇴원이 가능하다기에 수속을 밟아 막내 처남이 일하고 있는 태안으로 핸들을 꺾었습니다.
땀이 비 오듯 하는 열기가 서서히 식어가고 하루 일과를 마친 처남이, 창고에서 나와 이마를 닦으며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같이 일하시는 분과 인사를 나누고 근처 생선 횟집으로 갔습니다.
아픈 딸을 위해 죽을 끓여 먹이고는 깻잎과 상추 마늘까지 넣어 싼 도미 회를 미안한 심정으로 잘 먹었습니다. 후식으로 커피까지 먹고는 또 서둘러 서산 IC로 들어서 서해안 고속도로를 탔습니다. 줄곧 운전을 하는 내가 너무 피곤해 행담도 휴게소에 들려 냉커피를 마시며 호흡을 조절하고는 집까지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여름 휴가가 그렇게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시골에 담근 효소는 잘 발효되고 있겠지요? 어려서 집 주변에 널려있던 효소를 멀리한 무지가 회한이 되어 뒤통수를 아리게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