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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네팔 안나푸르나 9일차~히말라야 마지막 밤. 뱀부(2245m)-시누와(2,360m)-촘롱(2,170m)-지누단다(1,780m)
밤새 비가 내려 천장에서 빗소리가 두두둑....거기다 쥐가 들락거려 잠을 설쳤다고 하는데~~난 푹 잤다. 어제밤 8시 임선배가 술 마시려 우리방에 들렀는데 고히 자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냥 나갔다고 한다. 간난아기도 아니고 8시부터 잠 자냐고 타박이다. 난 한국식이여.
마차푸차레를 자주 보니까 가족 같다. 아침 문안 안사를 드리고 또 하루를 시작한다. 이제 이틀만 지나면 한국에 가야하다니~~안돼
오늘은 우리가 이틀전 올라왔던 곳에 대한 복습이다.. 올라오느라 신경쓰지 못한 네팔사람들의 삶을 중점적으로 볼 예정. 고산지대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다.
화장실 앞에 붙은 부적
아침은 육개장. 9일쯤 되면 똑같은 음식이 나올법도 한데~~자존심 센 쿡에게 한 한번도 겹치는 요리가 없는 것이 신기하다. 김밥천국만큼 다양한 메뉴를 가지고 있다. 메인 쿡이 한국에서 요리를 배워와 나머지 쿡에게 가르쳐 줬다는데 내 입맛에는 딱이다. 네팔 닭이 낳은 게란, 후라이까지 먹고 나니 속이 든든하다.
우리가 아침 밥을 먹고 나 설거지 하는데 어찌냐 요란하던지 그리고 신속하다. 한국의 빨리빨리를 배운 것 같다.
쿡은 설거지 하느라 바쁘고 우린 아침운동 하느라 바쁘고~~각자 맡은 일에 최선.
몸 풀기
요수님이 이틀간 투병했던 롯지에서 기념촬영.우리가 이곳을 오기 하루 전 하산해 병원에 입원했다고 한다. 성지순례 온 기분
그녀는 이렇게 바구니에 실려 왕비가 되어 하산했다. 이 바구니를 마을사람들이 즉석에서 만들었다고 하는데~~3인이 번갈아가며 날랐다.일반 등산객보다 더 빠르단다. 괴력의 소유자들^^
어쨌든 병원에 도착해 수액을 맞고 안정을 취한다니 다행~~대장이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모른다. 어쨌든 올라오는 트레커에게 재미난 볼거리를 제공해주었다. 하하
히말라야에서 이렇게 가마타고 유람한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헬기를 불렸다면 500만원이라는데~~한 생명을 살려주신 이 포터들이 눈물 겹도록 고맙다.
빛 그림자가 예뻐서
꼭대기는 바람이 엄청 부나보다. 눈보라가 휘날리고 있으니
발끝에 닿는 촉감이 참 좋다. 거기다 설산과 랄리구라스까지~
좀 더 어둡게 찍으니 설산이 더 선명하네 저 멀리 강가푸르나와 안나푸르나 3봉이 보인다. 세상에서 오르지 못할 신의 산이 3곳이 있는데 서티벳의 카일라스(6714m), 동티멧의 메리설산(6740m), 그리고 이곳 마차푸차례(6993m). 모두 불교, 힌두교에서 신성시 여기는 산이다.
우리가 차를 마셨던 도반이 숲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고 왼쪽 절벽을 위감아 돌면 데우랄리. 절벽에 자연발생 부처님의 흔적도 보인다.
평생 이런 길을 또 걸울 수 있을까.
신선의 세계로 들어가는 포터
이 양철판을 아래서 부터 이곳까지 이고 오다니~~앞으로 롯지 불편하다는 소리 하면 안돼.
저 속내를 다녀오다니 내가 대견하다.
숲속에서 랑구르 원숭이도 만났다.
확대를 해보니 퀵서비스 아저씨 헬맷같애
랑구르 원숭이.도반과 뱀부 사이에 있다고 하더니 정확하네
윗시누아 마을이 보이고
시누와 롯지의 경치는 100만불짜리
로지 주인 아들. 네팔 제발 3세쯤 되겠지
지각생을 위한 의식 ~밥 줘~NO....차줘.
레몬차 한 모금에 산 한번 쳐다 보고~~좋다.
롯지예약은 선착순. 그러니 위로 올라갈수록 경쟁이 더욱 치열하다. 특히 성수기 때(3~4월)는 abc롯지 방울 구하지 못해 하산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가이드를 먼저 보내 방을 잡는 경우도 있다.
시누와게스트 하우스. 알프스 카페 분위기가 물씬 ~~히말라야가 기분 나쁠까
시누아 고개 넘으면 다시는 못 볼 장면들이니 길이 길이 가슴 속에 새겨 넣어야지
모놀의 전사들이여. 칼을 뽑으시요. 난 이 흔한 칼도 안 가져왔네
항공기 여승무원 포즈
아내와 함께 갔던 알프스 융푸라우보다 100배는 더 멋지고 웅장하다.
친절한 네팔 소년~한국 유학오면 인덕원참새님이 보살펴 줄거다.
윗 시누아에서 다시 계단을 타고 촘롱콜라를 넘어야 한다. 계곡까지 가면 무시무시한 3천 계단이 기다린다. 촘롱에서 지누까지 급경사계단. 그리고 온천까지 내려오는데 도보 30분.
시누아에서 직선으로 길을 내면 반나절은 절약할 것이다. 하긴 히말라야에서 빨리 가면 무슨 의미 ^^조선인의 이 조급증
아래시누아에서 바라본 마차푸차례. 이 산이 성산인 것은 사방 어디에서도 보인다는 것. 포카라에서도 눈에 뛸 정도로 말이다. 신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라는 것을 보여주는 명산
아래 시누아는 유독 아이들이 많다. 수많은 이방인들을 등. 하산때 만나게 되니 더욱 친해진 것 같다. 마음껏 자연을 즐기는 이들이 부럽다. 학교, 학원, 시험에 시달리는 우리 아이들이 불쌍해.
아디다스 운동화인데 ...선이 하나 더 있어 비쌀 것 같다.
너무 예뻐 초코렛을 줬더니 고맙다고 화단에서 꽃을 꺾어왔다. 옷도 허름하고 손가락에는 때가 꼬질꼬질하게 끼웠지만 아이의 마음 씀씀이가 너무 고맙다. 저 맑은 눈망울을 보라.
요시님도 받았네
문명의 이기가 너무 신기해
초롱초롱 눈망울
아이고 행복해라.
나의 아이들
싸이춤이 히말라야까지 전염되다, 얼마나 행복해하는지 모른다.
이 꼬마는 시선을 끌려고 브레이크 댄스
엄마가 너무 젊어.
짐을 가득 싣고 산을 오르는 나귀. 현대인들에게 정신적 짐은 이것보다 더 무겁지.
무거운 가스통을 양쪽에. 갑자기 청계천 가스통 할아버지가 생각나네
서로 짐을 지고
빈 다랭이 논에는 꽃이 가득
촘롱 콜라. 다리에는 가타가 메달려 있다. 발 아래를 보니 까마득해.
경전에 새겨진 오색깃발이 휘날린다.
촘롱 마을 처녀가 설거지를
쉼터에는 이런 돌의자가 놓여 있어 짐을 놓을 있도록
금줄은 우리나라와 비슷해
가축에게 먹일 건초. 이것이 클수록 부자라네
곡식을 빻고 나서
한국인들이 석청을 많이 사는가보다. 공포의 3천계단. 중간에 그늘과 매점이
촘롱마을에서 바라본 풍경. 이곳을 지날 때마다 1시를 넘어서인지 두 번 다 설산 풍경을 놓쳤다. 우리가 머물렀던 아래 시누아. 다음에 온다면 촘롱에서 머물거나 윗시누아에서 여장을 풀 생각. 미리 도착해서 하루종일 설산만 봤으면 좋겠어
촘퐁에서 바라본 히말라야 풍경. 1시가 넘으면 설산은 구름에 숨어버린다.
독일빵집 테라스에서 바라본 풍경
히말라야는 강아지는 괜히 멋있어.
촘롱의 롯지에서 맛보는 김치볶음밥.
인도에서 고생하고 온 청년들에게 뉴브리지-지누-촘롱까지 올라왔다는데 이제 abc를 간다고 한다. 오늘 엄청 고생했겠네. 그 높은 곳을 올라간다니 불쌍해 보이기도 하고 일용할 양식 선물했다. 그동안 얼만 밥과 김치가 먹고 싶었겠는가. 부모 심정이랄까. 위에 롯지에서 먹으라고 밥과 반찬을 따로 싸주었다.
이제 지누로 내려가는길. 1시간이면 우리가 머물 숙소가 나온다.
바구니를 짜고 있는 아저씨.
계단식 논. 물빠진 갯벌의 모래처럼 보인다. 내일 저 옆길을 건너간다. 네팔사람들의 처절한 삶이 땅으로 표현된 것이 다랭이 논
실낱같은 꽃도 구경하고
전깃줄이 길게 이어졌다. 촘롱마을이 다른 곳보다 전기 사정이 나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마을을 지키는 고목을 지나서. 어찌나 경사가 심하던지 엄지 발까락이 아플 정도다. 오늘 하루는 롤러코스트
아이가 배가 아프다고 해서 우리 비상약을 주었더니 너무 고마워한다. 우리 의료봉사 했다.
드디어 오늘 우리의 안식처인 지누마을. 3채의 롯지가 있는데 우리는 제일 끝, 나마스테 호텔 호텔이란 이름이 기분 좋아.
여기서촘롱마을까지 2시간. 나야풀까지는 5시간 ^^
상가와 식당을 갖추고 있다. 테라스에 서면 경치가 죽인다.
그림같은 롯지,수다떨수 있도록 파라솔과 의자도 비치
온천 가기전에 인증샷~9일동안 감지 않는 머리. 데이비드 베컴 같네
나의 바지. 얼마나 처절한 투쟁이었는지 보여준다.
목욕 가는데 도보로 30분~~거기다 입장료를 50루피나 받는다. 8일동안 목욕한번 못했는데 그것도 감지덕지.
아이고~~목욕 한번 하기 힘들다.
모디콜라 바로 옆에 온천이 자리하고 있었다.
탕은 이렇게 생겼음. 세계인이 한 욕조에, 위쪽은 여자 아래쪽은 남탕 반칙한 여인 두 명, 아니면 혹 남자??
70세가 넘은 러시아 아저씨. 우리와 일정이 같았다. 캄차카 반도에서 왔다고 하는데 우리를 위해 포즈
빙하에서 흘러온 물속으로 들어가는 시범을~~
한국대표 웃는돌님~~너무 차가워요.
모놀의 남성회원들. 이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사건은 진주만 폭격처럼 평화로울 때 일어났지
갑자기 행복이님이 노천탕 아래 이끼를 밟고 미끄러져 팔이 부러진 것이다.
급박한 상황에서 미국인이 달려가 환자를 눕히고 응급치료를 하는 것이었다. 직업이 미국 의사란다. 슬러퍼를 잘라 고정대를 만들어 수건으로 동여맸고.자신이 가지고 있는 진통제를 먹였다. 그리고는 즉석에서 연필과 종이를 꺼내 소견서를 써준다. 이걸 가지고 병원에 가라고~~이런 분이 옆에 있었다니
이끼가 이렇게 끼여 있으니..넘어지기 쉽지 놀란 마음으로 달려온 김부장과 라나. 머리를 다치지 않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우선 롯지까지 갔고 거기서 대장, 김부장, 라나와 논의를 했다.
현재시간 오후 5시. 지금이라도 포카라로 후송을 시킬까. 가게되면 밤 10시가 넘을텐데 거기다가 밤에 산을 내려가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다. 아니면 내일 새벽 일찍 보낼까. 우리가 의사가 아니니 어떤 결론도 내릴 수 없었다.
결국 간호사인 산드라니과 콩나무님의 의견을 들었다. 오늘 응급치료하고 내일 새벽에 가는 것이 낫다고 한다. 밤 10시에 도착해도 의사가 없기 때문에 차라리 이곳에서 간호를 받는 것이 낫다고 한다. 그리하여 산드라님께 간호를 부탁드렸다.
한편 라나는 롯지를 돌아다니며 의사를 찾느라 수소문을 했다.
결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외과의사를 찾았고 그를 모셔와다. 시 붕대를 풀고 치료를 받았다. 국제적인 관광지답게 다양한 국가,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안나푸르나를 찾은 것이다. 의사가 너무 고마워 랜텐을 선물로 드렸더니 극구 사양해 주머니에 넣어 드렸다.
결국 행복이님은 미국, 남아공, 네팔, 한국까지 다국적 의사의 도움을 받은 셈이다. 슬러퍼로 지지대로. 이래서 세상은 살 만한 것 같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니 해가 뉘엿뉘엿 진다. 대장의 마음이 하늘에 전해지길~~
너무 놀래 입맛이 사라졌지만. 쿡이 정성스레 준비한 염소 수육을 어찌 마다하겠는가? 입에서 살살 녹는다. 거기다 시원한 맥주까지 들이킨다.
알콜이 몸에 들어오니~~나른하다.
히말라야의 마지막 밤. 조촐한 파티가 열렸다. 모놀식구들 너무나 고맙고 수고하셨습니다.
조금전에 팔이 부러진 행복이님도 참석해 우리를 안심시켜준다. 넘어진 그 순간에 떠오른 생각 1)머리를 다치지 않아. 다행이구나.
모놀식구들이 나를 위해 걱정해주는 것이 너무 고마워 그 순간 눈물을 흘릴 수가 없었다고 한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이 회식자리때 너무 아팠지만 자시이 빠지면 분위기가 식을까봐 일부러 참여했다고 한다.
완주를 자축하며
쿡 언니를 일부러 우리 자리에 모셨다, 술을 못해 콜라를~~
임인학 작가님의 소회...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뭐이런 재미난 조직이 있어~~'
처음에 무진장 고생했던 홀로여행님, 살아있네
실은 이번 여정에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가장 멋지게 임무를 수행해준 산드라님~너무나 고마운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는 여흥의 시간. 조용히 미소 짓던 포터와 가이드가 이리 끼기 많았던지 참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한국네팔 친교를 위한 광란의 시간입니다.
히말라야의 주인이면서도 가장 음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다름아닌 포터다.실은 이들과 눈을 마주칠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다.
새벽에 롯지 주변을 서성거리다가 우리가 짐을 싸고 카고백을 문밖에 내 놓으면 그들은 2개의 다시 묶고 홀연 떠나 버린다.
난 이들이 밥을 먹는 것 조차 본 적 없었다. 슬리퍼 하나에 몸집보다 더 큰 짐을 지고 도인처럼 히말라야를 누비는 모습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콩알 만한 가방과, 스틱에 의지해 하루종일 걸어야 할 거리를 이들은 반나절도 채 되지 않아 끝내 버린 것이다.
아침 10시쯤이다. 뱀부에서 요수님이 쓰러졌을 때 다시 카고백을 가져와야 했다. 전화로 확인하니 벌써 포터는 우리가 하루를 묵을 데우랄리에 이미 도착했고 우리 때문에 다시 하산을 한 것이다. 이틀 걸을 거리를 그들은 묵묵히 수행했다.
엄청난 짐을 지고 70도 게단을 단숨에 오르는 괴력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꽤 무게가 나가는 요수님을 바구니에 안고 큰 길까지 달려간 이도 포터들이다. 평생 달팽이집을 이고 살아도 이를 기쁨으로 여기는 이들이 경이롭다.
배낭 하나 달랑 들고 히말라야를 배경삼아 온갖 폼을 잡고 정복자인양 사진을 찍어대는 내 모습이 한없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우리에게는 걷는 것이 취미겠지만 이들에게는 생활이자 처절한 생존의 방편인 것이다. 슬리퍼의 의지해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얇은 옷을 걸치고 있지만 전혀 힘든 내색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우릴 격려해준다.
아무 불평없이 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히말라야의 순례자다. 우린 그들이 지나가면 길을 비켜주고 '단야밧'을 외치며 박수를 쳐주었다.
셀파가이드, 요리사, 포터에게 감사를 표시하는 자리를 가졌다. 셀파야 우리와 늘 함께 있었고 요리사도, 매일 고마움을 표했다. 그러나 포터는 거의 존재감이 없었다.
이들이 히말라야의 주변인이 아니라 주인임을 알게해주고 싶었고 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를 드리고 싶었다.
그리고는 깜짝이벤트~~ 바로 한국 최고의 예의인 큰 절을 바치는 것이었다. 포터대장은 우리가 허리를 숙이고 무릎을 끓고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에 적잖이 당황한 모습이었다.
몇 몇 놀란 포터들은 함께 맞절을 하기도 했다. 수 년동안 산을 오르내리면서 이렇게 멋진 인사를 받은 적이 있을까
히말라야에서 모놀식구들이 가장 낮은 마음을 품은 때가 바로 이 순간이다. 모놀인들은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꼈고 고용인이 아닌 친구임을 서로 확인한 순간이다.
헤어지면서 입던 옷을 몰래 쥐어주는 회원도 있었고 검정봉다리에 슬리퍼를 건내주는 모습도 보았고 먹을 것을 바리바리 싸주는 모놀 식구들도 보았다.헤어지면서 눈물을 그렁거리는 회원도 더러 보였다. 이런 인간적 교감이야말로 거대한 안나푸르나가 주는 참 선물이 아닐까.
라나에게 통역을 부탁했다. "인도에 갔더니 너무 인심이 좋지 않아 다시는 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여러분을 노고를 생각하니 네팔을 다시 오고 싶어졌습니다."
포터들의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 인도와 사이가 좋지 않거든~~
마지막 파티까지 끝내고 김부장과 따로 술 한잔 마셨다. 탈진에 2명 하산, 골절 1명...미안하기도 하고 너무 수고를 해서. "김부장이니까 헤초여행사니까 이런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거야."
어스름한 새벽. 행복이님이 걱정이 되어 일찍 일어난 사람이 많았다. 라나가 어디서 들것을 가져왔다.
지금 출발하면 12시 이전에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모놀식구들이 격려를 받으며 하산하게 된 다. 이 따 저녁때 뵈요.
내리막은 걸어서 평지는 들 것에 도와주신 4명이 구호팀...
걱정 때문에 포터들도 잠을 이루지 못했나보다. 잘 가요....치료 잘하시고
이렇게 새벽에 행복이님을 떠나보냈다. 총괄대장 라나도 죽을 맛이었을 거다. mbc까지 올라와 다시 뱀부까지 내려가 요수님을 포카라 병원에 입원시켰고 다시 죽어라 지누까지 올라왔더니 이번에는 행복이님이 다쳤던 것이다. 다시 새벽에 포카라고 달려갔으니 우리가 엄청 미울거야.
라나를 포함해 5명의 일행이 새벽에 길을 떠났다.
아침을 먹고 우리도 길을 떠나야 한다. 묵묵히 수고해주신 포터들, 하나같이 얼굴이 선하다.
모놀식구들과 함께~~우린 친구여요.
제일 고생한 후미팀
지누 출발전 단체사진~~여기엔 3명이 없다. 우리는 끝까지 살아남자. 이거 서바이벌 게임이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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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흥분과 감동의 드라마! 경외스러움이 묻어나는 히말라야 트레킹, 후기 잘 읽고 좋은 사진 감사합니다
감동의 대장정.
정말 모놀이어서 완주가 가능했습니다.
모퉁이 모퉁이마다 스토리가 있고,
풍경마다에 감동이 담겨 있네요.
이 멋진 팀에 저도 함께 했다는건 행운이예요.
여러분~~ 사랑해요.
시누아에서 망중한을 즐기고 있을 때 다가온 깨복쟁이들.
연필인지 볼펜인지를 주었더니
답례로 꽃을 꺾어다 주어 잠시 당황도 되고
감동하기도 했습니다.
길고도 길던 여정에서 무슨 일이야 없겠냐마는 점점 마음이 커져
다 수용하게 되는 것이 대자연에 위력앞이라 가능했던 것 같았습니다.
대장님의 세심한 설명 덕분에 다시 정리가 되고 있습니다.
역시, 여행작가님이십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아~~~출근준비해야는데 눈을 떼기 싫어 ㅠㅠ
어쩌면 우리 모두 히말에서 벗어나지 못하나봐
피터팬 증후군처럼 우린 히말증후군을 기꺼이 겪고 있지...
조심조심을 하며 여기까지 왔더라고요.
따뜻한 물에 온천도 하고,
빨래도 하고(집에서는 하기 싫던 빨래가 네팔선 왜이리 하고프던지~ ㅎ)
몸과 맘이 홀가분 해서 이곳서 하루 더 묵었다 가고 팠죠.
계속되는 설사로
라면도,김치찌게도,콜라도 못먹었는데 맥주도 반잔밖에 못먹고...
사진보니 맥주 엄청 땡기네~~~ ㅎ
개선장군들 같아요. 부럽네요^^*
네팔이란곳 그리고 히말라야를 향한 트레킹
겸손함이 무엇인지 알게 만드는곳
행복함을 느끼게 해주는곳
만족한 삶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는곳
대장님 고맙습니다.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는데 정말 다들 꿈같은 생각이 드실 것 같아요.
설산을 향해 가는 하루 하루가 설레임과 불안이 교차했을 것 같고요.
모든 일정을 잘 마치고 하산하는 느낌은 얼마나 감사하고 후련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요수님도 행복이님도 다행스럽게 큰 일 없던 것도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산을 오르는 내내 얼마나 대장님의 심려가 크셨을까 생각해 봅니다. 대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
여전히 재미있고 감동하고, 궁금한 대장님의 여행스토리............ 사고가 있었지만 그 얼마나 다행이냐는 표현에 신들이 함께해준 까닭일거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무엇보다 포터들의 노고에 저두 박수를 보냅니다, 쿡 요리사들의 매번 다른 음식준비에,성의 깊은 식사에도 절절히 감탄하게 하네요 모놀의 뜨거운 우정과 애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