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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명 : 장공순 사진전 <저도어장> • 전시기간 : 2017년 1월 5일(목) ~ 1월 25일(수) • 전시개막 및 출판기념회 : 2017년 1월 5일(목) 오후 6시 • 작가와의 만남 : 2017년 1월 13일(금) 오후 4시 • 전시장소 : SPACE22 (서울 강남구 강남대로 390, 미진프라자빌딩 22층) • 관람시간 : 월 ~ 토(11:00 ~ 19:00), 일요일 및 공휴일 휴관 • 전시후원 : 미진프라자 • 전시자료 및 문의 : SPACE22 (T. 02-3469-0822) |
■ 전시 기획 의도
강원도 고성군 북방한계선과 맞닿아 있는 <저도어장/猪島漁場>을 중심으로 한 어업활동을 보여주는 전시다. 이와 더불어 과거에 명태나 오징어 작업 도중 북한 함정에 끌려가는 일을 당한 납북 어부들이나 가족의 모습도 함께 담았다. 더러는 귀한하지 못한 어부들의 가슴 아픈 사연과 납북 어부들의 법정 판결 자료까지 소개하는 특별한 전시다. 흑백 사진으로 40여점이 선보일 예정이며 개막식에 맞춰 36번째 눈빛사진가선 사진집「저도어장」(눈빛출판사) 출판 기념식도 함께 열린다.
■ 사진 해설
장공순의 저도어장 이야기
사진가 엄 상 빈
강원도는 전국 어디보다도 산수가 빼어나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 많다. 이런 관계로 해당 지역에 사는 사진가들은 지리적 환경에 따라 사진도 닮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춘천은 호반과 강을 낀 도시라 호수나 물안개 사진, 겨울이면 상고대 사진이 많기 마련이다. 또 동해안의 강릉, 동해 등은 일출 사진이 많고, 속초를 비롯한 고성, 양양 지역에서는 설악산의 운해나 단풍 사진, 일출 사진 등이 다수를 차지한다. 이러한 작업의 행태는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에 사는 장공순의 사진은 앞에서 열거한 사진들과는 사뭇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아름다운 설악산 또는 새벽 바닷가에서 일출 장면을 찍기 위해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고 그저 흔적뿐인 옛 철길 ‘동해북부선’(함경남도 안변에서 강원도 양양을 잇는 총연장 192.6km의 단선 철도)을 기록해 왔다. 또 한국전쟁으로 본의 아닌 ‘실향과 이산’에 처해있는 노인들을 찾아 나서는 작업에 몰두한지도 오래되었다. 더군다나 흑백필름을 고집했고 디지털보다는 필름작업을 꾸준히 해온 작가다. 즉 겉으로 풍기는 아름다움이나 색감보다는 내용과 이야기에 치중했으리라는 믿음이 크다.
주변의 동호인들이 자연을 벗 삼아 풍경사진의 답습 과정을 이어갈 때 장공순만은 왜 이토록 외롭고 힘든 작업에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았을까 하는 의문의 답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작가의 모친은 함경북도 청진 출신으로, 외할아버지께서 외가 식구들을 이끌고 해방 전 1940년 청진에서 주문진 고향으로 그 동해북부선 기차를 타고 남하하셨다고 한다. 그러니 어렸을 때 어르신들로부터 청진 이야기와 동해북부선 이야기는 수도 없이 들었을 터이다. 모친의 고향으로 따진다면 자신 역시 실향민 2세라 할 수 있다.
한편 이번에 선보이는 ‘저도어장(猪島漁場)’ 작업 역시 같은 맥락이다. 작가 자신이 수협에서 오랫동안 근무하고 있으며 장모께서는 평생을 해녀생활로 이어 오셨다고 장인은 오래전 일이기는 하지만 납북어부 신세가 되어 북에 수개월 묶여있었다고 하니 이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이며 가족의 이야기다. 그러니 장공순의 작업 하나 하나는 자라면서 보고 들은 그리고 성장해서 몸담았던 일터의 이야기를 대 서사시로 풀어내는 셈이라 할 수 있다.
저도어장은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저진리 산90번지에 위치한 조그만 섬이며 이 섬 주위의 해역 일대를 일컫는 말이다. 남북군사분계선에 아주 인접한 지역으로 늘 긴장이 감도는 해역이라 평소에는 민간어선 통제구역이지만 어민 소득을 위해 경비선의 통제와 감시 아래 고성군선적 어선에 한하여 일정한 시기에만 개방하는 곳이다. 그러니 개방일이 되면 좋은 자리를 먼저 차지하기 위해 마치 경주라도 하듯 북으로 내달려 가는 어선들의 모습은 장관을 이룬다. 일반인들이야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서나 볼 수 있는 장면들이지만 장공순은 그 어선을 타고 직접 박진감 넘치는 장면을 사진에 담아 우리에게 소개한다. 그리고 통제구역 바다 속에서 건져 올린 크고 실한 해산물을 손질하고 판매하는 과정까지도 보여준다. 평소 포구를 비롯한 어민들의 삶을 오랜 기간 사진으로 담아 왔지만 이 특별한 기회를 작가로서 놓칠 리도 없었으리라.
겉으로 보면 그렇다. 그러나 작가의 속내에는 좀 더 깊은 뜻이 담겨있음을 알 수 있다. 유형의 선으로 표시되어 있지도 않은 바다 한가운데서 우리는 왜 내 것 네 것 즉 남과 북을 구분해야 하고 통제를 받으며 조업을 해야만 하는가 하는 분단의 아픔을 이야기 하고 있다. 나아가 납북 어부를 취재하거나 그들의 법적 판결과 피해보상 문제에까지 파고들어 작업으로 확장하고 있다. 어민 입장에서는 고의가 아닌 실수였다고 항변하겠지만 그게 먹혀들 리가 만무하던 과거 공안정국 하에서는 ‘납북 어부’라는 낙인이 찍혀 감시와 처벌을 감수해야 했던 사례들이 어디 한두 건이겠는가? 이런 이유로 장공순의 ‘저도어장’은 신바람 나는 어민들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어께가 무거워지는 이야기다.
2005년 4월 한 어부는 술김에 속초에서 배를 몰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월북한 사례도 있다. 며칠 후 되돌아올 수 있어 다행이었지만 과거 군사정권 시절만 해도 엄청난 처벌을 받아야 했으리라. 또 북에 고향을 둔 실향민 어부들은 술만 먹으면 “한걸음에 갈 수 있는 거리인데…” 하면서 한을 삭혔다. 바다 자체가 일터인 동시에 한으로 뒤범벅인 곳이 바로 속초, 고성 앞 바다이다. 지금은 근해에 명태가 거의 잡히지 않는 상태이지만 과거 명태가 많이 잡힐 때에는 명태가 가족의 운명을 좌우하기도 했다. 즉 어떤 이는 그해 겨울 명태가 많이 잡히는 바람에 대학에 갈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명태 배를 가르는 일을 밤낮으로 열심히 해준 어머니의 헌신 덕분에 대학 등록금이 마련되었다는 얘기다. 여름철에 많이 잡히는 오징어도 마찬가지다. 과거 오징어가 지천으로 나는 시기에 각급 학교에서는 농사철 농번기 방학처럼 3일 정도의 ‘어번기 방학’을 하기도 했다. 열댓 살 먹은 중학생들이 오징어 배를 타고 나가 오징어를 잡고, 여자 아이들은 오징어 손질을 거들어야 했던 멀지 않은 과거의 이야기다. 그렇게 해서 번 돈으로 밀린 교납금을 낼 수 있었으니 바다는 참 고맙기도 하고 밉기도 한 존재였다. 그러니 명태나 오징어를 좀 더 잡기위해 무리하게 욕심을 내는 바람에 월북이라는 덧에 빠지고는 했다. 이래저래 사연도 많고 한도 많은 바다를 사진의 주제로 삼아 자신의 이야기로 풀어가는 흔치 않은 사진작업이 바로 장공순의 ‘저도어장’이다. 그래서 더욱 특별하다.
이와 같이 장공순의 사진은 자신의 주변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그냥 옮겨 담는 작업이 아니다. 그간 묻혀있는 이야기를 찾아내 자기만의 담론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업으로 이어온 동해북부선, 실향민, 저도어장 등이 서로 다른 듯 하면서도 같은 공통분모를 가진다. 금강산 육로관광길이 지금은 일시 중단 된 상태이지만 다시 재개된다면 동해북부선 작업의 확장도 기대된다. 실향민의 작업 또한 통일의 그 날까지는 현재 진행형이다. 실향민 1세대는 물론이고 2, 3세대들의 작업도 의미 있으리라 본다. 그리고 저도어장 역시 본인이 아직 수협의 임원으로 현직에 있으니 언제나 가능한 작업이 아닌가? 그러니 지금 20여년 남짓한 작업에 만족하지 말고 더더욱 정진하길 바란다.
■ 사진가의 작업노트
동해안 최북단 어장 그리고 납북 어부 이야기
저도어장
저도어장(猪島漁場)은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저진리 지선에 위치하며 돼지가 앉아있는 형상을 한 20,545㎡ 규모의 섬 저도 주위 해역을 말한다. 민통선 안쪽인 지경리 해안 N38°34′09.69″ E128°30′06.89″와 N38°33′09.69″ E128°30′06.89″에 위치한 직사각 형태로 구획된 어장으로써 1972년 1.7㎢ 규모로 첫 개장했으며 2010년 면적을 15.6㎢로 확대했다.
매년 4월 1일부터 12월 말까지 고성군 선적 어선에 한하여 조업 할 수 있고, 미역, 다시마, 성게, 해삼, 문어, 도루묵 등이 풍부하다. 북쪽 바다로 올라 갈수록 어획량이 많아 안전조업규칙상 월선을 허용한 N38°34′09.69″를 더 넘으려는 어선과 이를 제지하려는 해경의 신경전도 펼쳐지는 곳이다.
북위38°37′10.69″의 동해NLL과는 불과 1마일(1.6㎞/외측 3마일)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어장이 위치해 저도에 조업하는 1백 50여 척의 어선은 매일 해상에서 해경의 점호를 받으며 우리 해군의 삼엄한 경비가 이루어진다. 남북 간 군사상황 발생 때는 출어가 통제되며, 해녀들은 마을과 어장간의 거리가 멀고 해변 전체가 철책으로 둘러쳐져 있는 관계로 선박을 이용하여 출입하고 있다.
동해안 어부들에게 이 해역은 풍요의 바다요 애환의 바다로 기억된다. 어장의 동북방은 과거 명태 주산지이며 납북 어부가 자주 발생하던 비극의 바다였다. 납북 어부란 1953년 7월 27일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 체결 이후 해상조업 중 북한 함정에 의해 피랍되어 간 후 귀환하지 못한 어업인을 말하며 동해안에서 주 발생년도는 1957~1980년이다. 작은 목선에 나침반 하나를 가지고 산줄기와 별빛을 어림잡아 조업하던 시절에는 어로저지선이나 해상휴전선(당시 N38°36′45″)을 분명히 인식할 수도 없었다. 국민의 안전을 위해 어로저지선을 설정하였지만 휴전선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명태를 따라 조업이 이루어져 월선, 납북의 위험은 상존했다.
이 시기에 북한에 끌려가 60여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못한 어부는 400여명에 달하며, 귀환한 일부 어부들은 수산업법, 사안에 따라서는 반공법, 국가보안법이 적용돼 엄중한 처벌과 고문피해를 받게 되었음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 땅, 우리 바다임에도 늘 통제 속에서 조업해야 하는 저도어장의 어업 현장은 남북이 하나 되면 사라져야 할 반쪽의 풍경이다. 이번 사진에서는 바다의 풍요로움과 희망, 분단의 생채기를 함께 이야기하고자 했다. 아울러 납북 어부 촬영 중 체득한 ‘특수한 사연’은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의 안전을 위해 공개하지 않기로 하였으니 통일의 그 날까지 이 작업은 미완성이요 진행형이 될 수밖에 없다.
남편 또는 아버지, 형, 동생을 앗아간 비극의 바다를 떠나지 못하고 생계의 절박함과 가족에 대한 사랑 때문에 어선에 올라 거친 파도와 잠수 한계를 극복해가는 최북단 어부들의 애환과, 그 불굴의 정신이 읽혀지기를 기대한다.
장 공 순
■ 작가 약력
사진가 장공순(張公淳)은 1963년 강원도 평창 출신으로 30여년 고성군수협에 근무했다. 한때 고성신문 취재기자를 역임한 바 있으며 현재 죽왕수협에 상임이사로 재직 중이다.
개인전은 2005년 「반풍경」(김영섭 화랑), 2004년 「고성명태축제 초대전」(거진항 특별전시장)이 있으며 단체전으로는 2009년 「속초·훈춘 교류사진전」(훈춘시문화회관, 중국), 2008년 「동강국제사진제 강원도사진가 초대전」(영월군문화예술회관), 2006년 「내가 사랑한 세상, 내가 사랑한 사람」(인사아트센터), 2005년 5×7전 「시대에 말하다」(갤러리 브레송) 등이 있다.
현재 강원도 영북지역의 ‘동해북부선’, ‘실향민’ 등 분단을 소재로 한 사진작업을 하고 있다.
■ 장공순 연락처
전화 / 010-5364-7996
이메일 / messsucher@hanmail.net
■ 전시 작품 이미지
북위 38도 33분 어로한계선에서 저도어장으로 달려가는 어선들,
2015. 52.5㎝×35㎝ Digital Pigment Print
작업을 마친 해녀.
2005. 52.5㎝×35㎝ Digital Pigment Print
해산물을 배 위로 올리는 해녀들
2016. 52.5㎝×35㎝ Digital Pigment Print
해산물을 선별중인 해녀들
2002. 52.5㎝×35㎝ Digital Pigment Print
물질로 언 몸을 녹인 후 평상복으로 갈아입는 해녀들
2002. 52.5㎝×35㎝ Digital Pigment Print
대진항의 부부 조업선이 잡아 온 활어.
2003. 52.5㎝×35㎝ Digital Pigment Print
대진항 어판장에 내려진 명태 그물들.
2002. 52.5㎝×35㎝ Digital Pigment Print
대진항 어판장에 내려지는 가자미 어획물.
2004. 52.5㎝×35㎝ Digital Pigment Print
대진항 어판장에서 활어를 경매하는 상인들.
2006. 52.5㎝×35㎝ Digital Pigment Print
천계연(74세. 1967년 명태어선 금윤호에서 조업 중 남편(박규채) 납북. 미귀환 상태).
2006. 거진. 52.5㎝×35㎝ Digital Pigment Print
김영훈(60세. 어업. 1967년 북한함정이 침몰시킨 어선 남풍호에서 부친(김승옥) 실종)
2016. 거진. 52.5㎝×35㎝ Digital Pigment Print
여규대(68세. 1968년 11월, 1969년 8월 2회 납북. 귀환 후 반공법 및 수산업법 위반으로 3년 징역 복역). 2008. 거진. 52.5㎝×35㎝ Digital Pigment Print
김성만(당시 18세, 1965년 명태조업 중 납북. 미귀환)
2016. 거진. 52.5㎝×35㎝ Digital Pigment Print
김경수(당시 17세. 1965년 명태조업 중 납북, 미귀환. 북에 생존하고 있음이 확인되었고 이산가족상봉은 미 성사되었다. 동생의 납북피해위로금 지급신청서). 2010. 거진. 52.5㎝×35㎝ Digital Pigment Print
함창식(82세). 휴전선 이북 강원도 고성읍 봉수리 출생 1977년 해상군사분계선 근처에서 명태작업 중 납북, 귀환. 일본군, 인민군, 국군을 거쳤다. 2005. 고성 통일전망대. 52.5㎝×35㎝ Digital Pigment Print
사진미술대안공간 스페이스22 www.space22.co.kr
출처 :고성소식 원문보기▶ 글쓴이 : 장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