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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40일째; 삽당령~들미재~석두봉~화란봉~닭목령(12.7km)
2010년 5월 28일 금요일, 흐리다 맑음.
오늘은 이번 11차 순례 4일째다. 여느 때나 마찬가지로 5시에 일어나 배낭을 챙긴다. 어제 저녁먹고 오는 길에 간식거리로 사온 참외 2개와 떡집에서 준 콩떡 2개를 배낭에 넣고 6시 10분 전에 숙소인 청송장을 나와 식당으로 간다.
[제19 구간 지도]
제19 구간, 19/24번째 지도..., 오늘은 석두봉, 화란봉을 넘어 닭목령까지 간다. 어제 들렀던 떡 방앗간 옆을 지나 감리교회에서 왼쪽으로 돌아 우리식당으로 간다.
[떡 방앗간]
떡 방앗간 앞에는 어제 저녁에 널어 놓은 떡취가 밤을 새우고 그대로 쌓여 있다.
[임계 사거리]
우리식당에 들어가니 식당 아주머니가 시간을 꼭 맞춰 왔네요, 하며 된장찌게를 차려 준다. 도시락을 싸고 아침식사도 하고..., 식사를 마치고 교회로 가는 길에 뒤를 돌아보았더니 10여 미터 앞에는 임계4거리가 있고 교차점 위에는 도로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그 도로 표지판은 이 사거리에서 국도 35번과 42번이 남북南北과 동서東西로 교차交叉하고 있으며 동서東西로는 삼척과 정선, 남북南北으로는 태백과 강릉을 이어주고 있음을 알려준다.
교회 안으로 들어 가니 목사내외가 반겨 준다. 우리는 교회 마당에 있는 산타페 뒷자리에 타고 목사부부는 앞자리에 앉아 35번 국도를 따라서 삽당령에 오른다. 길은 커브가 거의 없이 곧게 뻗어 있고 백두대간의 서쪽이라 부드러운 오르막 길인데, 목사는 삽당령마루까지 가깝다고 했으나 어제 지도를 보니 12km정도 된다.
삽당령으로 오르며 목사가 들려준 얘기에 따르면 삽당령에서 강릉쪽으로 내리는 길은 커브도 많고 가파르다고한다. 차가 삽당령에 도착해서 목사 내외와 헤어진다. 어제 오늘 뜻 밖에 고마운 사람을 만나 삽당령에서 하루밤을 잘 보내고 좋은 기억을 갖고 떠난다. 언젠가 우리도 받은 만큼 베풀 기회가 있기를 기원해본다.
아침 날씨가 흐린데다 삽당령 마루에는 골바람까지 있어 꽤 쌀쌀하다. 삽당령 기념비에서 사진을 하나 담고
백두대간 마루에 들어 선다.
[삽당령, 680m]
6시 56분 삽당령을 떠나 석두봉 들머리에 들어 선다. 산죽 길을 지나고 임도를 가로 질러 완만한 등로를 올라 862봉에 오른다. 삽당령이 고도가 680m이니 180m를 오른 셈이다.
산죽 길과 잡목을 헤치고 나오는 데 거미줄이 얼굴에 감기고 이따금 벌레들까지 성가시게 달라 든다. 겨울 산행 때는 이런 것 없이 청량한 공기가 코끝을 스쳤는데..., 추울 때는 거미줄이 없고, 또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오면 거미줄이 적은데 오늘은 대간꾼을 생포하려는 거미줄이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거미줄에 시달림을 받은 날은 저녁에 샤워를 하고 나서도 얼굴에 거미줄이 남아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862봉]
862봉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물을 마시며 잠시 쉰다. 이어 도착한 대원隊員에게 거미줄이 성가시다고 했더니 대원은 자외선 차단 마스크를 하고 있고 또 대장隊長 뒤를 따라 오니 거미줄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렇다고 대원을 앞 세울 수도 없고..., 궁리 끝에 대원이 하고 있는 마스크를 달라고 했더니 하나 더 있다며 내 준다.
원래 마스크는 주로 여자들이 자외선 차단을 목적으로 많이들 하는데 나는 답답해 보여 '이렇게 좋은 산山에 다니며 복면을 하고 나타나 사람 놀라게 한다'고 빈정거렸는데, 오늘은 내가 자외선 때문이 아니라 거미줄 때문에 하기로 한다. 그런데 난생 처음으로 얼굴에 걸치고 보니 생각했던 것만큼 답답하지 않다. 아마 마스크를 한 사람보다는 보는 사람이 더 답답할 것이다.
862봉을 떠나 들미재로 가는데 갑자기 시야視野가 탁 트인다. 지도에는 '방화선防火線 시작' 이라 되어 있다.
[방화선防火線 시작점 ]
[다가오는 석두봉 ]
방화선防火線 때문에 시야가 열려 앞으로 내닫는 대간 마루금이 잘 보인다. 바로 앞에는 978.8봉, 그 뒤가 석두봉..., 방화선 내內에는 아름드리 소나무만 듬성듬성 있고 잡목은 다 배어졌다. 그런데, 방화선의 폭이 좁아 방화防火가 잘 될 것 같지 않다. 요사이 산불은 날라 다닌다던데..., 저래 갖고 되겠냐? ㅉㅉ
[강릉시 왕산면 대용수동...]
석두봉이 성큼 다가오고 들미재 좌측으로 대용수동이 보인다.
언제 누군가가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엄홍길 대장에게 산을 오르다 힘들 때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했더니
엄대장은 한 발자국씩 내 디딜 때마다 "도전, 인내, 극복, 성취"를 반복 뇌인다고 했다.'성취 하려면 과감
히 도전하여 힘든 것을 참고 극복하여야 가능하다'는 말인데 공감이 가는 예기다.
나는 이번 순례 길에서는 어제에 이어 오늘도 김수환 추기경님과 법정스님을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
[가죽나무??]
[도라지 ]
방화선 지대에는 산 두릅과 가죽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다. 자생인지 누가 심은 것인지..., 두릅은 가시가 있어 쉽게 식별이 되지만. 나는 아직 가죽나무와 옷나무를 식별하는데 자신이 없어 두릅만 조금 꺾는데..., 대원은 준비해간 곡괭이를 꺼내 도라지 캐기에 나섰다. 아직 꽃이 피지 않아 산도라지를 찾기가 힘들었는데 대원隊員의 설명을 듣고 보니 도라지가 눈에 더러 띈다. 오늘은 산행시간에 여유가 있어 조금 늦장을 부리며 간다.
속명이 박재철인 법정스님은 법랍 56세로 입적하기까지 그 흔한 주지住持자리는 물론 사찰의 3직인 총무, 재무, 교무를 맡은 적이 없다고 한다. 이를 두고 혹자는 '자신의 수행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수행승'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으나 본인이 으뜸 가치로 여기던 무소유의 실천이 아니었나 싶다.
그 분은 자신이 가진 것을 자신의 의지로 줄 수 있을 때 모두 나누어 주고 떠났다. 이제 그 분은 자신이 그렇게 사랑하던 산과 숲, 새와 개울물, 달빛과 바람을 떠나 한줌의 재가되어 송광사 근처 불일암에 있는 자신이 손수 심고 가꾸어 왔던 후박나무 아래 묻혔다. 어쩌면 자연을 떠난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사랑하던 자연 속으로 돌아간 것이다.
법정스님은 불교계에서 가끔 발생하는 주지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폭력에 대하여 안타까워했다. 살생을 금기시하는 종교에서 어째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나로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잡목지대...]
이윽고 방화선이 끝나는 지점까지 왔는데, 뒤따르는 대원隊員이 보이지 않는다. 아직 오르막을 넘지 않고 도라지를 케고 있나 본데..., 한참을 기다려 도착한 대원의 비닐봉지에는 도라지가 제법 들어 있고 더덕도 몇 뿌리 담겨 있어 향긋한 더덕 특유의 향이 코 끝에 닿는다.
방화선을 벗어나 다시 잡목이 우거진 대간 마루를 따라 간다. 오르막으로 이어지다 봉우리 하나가 다가 오기에 나는 삼각점이 있는 978.8봉인가 했는데...,
[석두봉 995m]
낙동산악회에서 달아놓은 석두봉 표지판이 있지 않는가! 이렇게 어렵지 않게 석두봉 정상에 왔다. 그러면 들미재와 삼각점이있는 978.8봉을 어느새 지났다는 예기다. 들미재는 왕산면 들미골과 대용수 동을 넘나드는 재인데 요즈음은 사람 내왕來往이 없다보니 알아 채지 못하고 그냥 지나친 듯하다. 석두봉은 그리 높지는 않으나 전망이 열려 있는 것으로 보아 암봉인 듯하다. 그래서 아마 석두봉石頭峰이 아닐까 생각된다.
석두봉 정상에서 콩떡 1개씩과 참외 하나를 나누어 먹고 잠시 쉰다. 여기서 화란봉까지는 아직도 3시간 정도는 가야 하지만 높낮이 변화가 그리 심하지 않아 어렵지 않게 갈 것 같다.
[산죽]
산죽 길과 단풍취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지역을 지나니 아름드리 노송이 듬성듬성 나타난다.
나는 작년 가을에 광양에 가는 길에 전라남도 도립공원이기도 한 조계산 종주를 하면서 법정스님이 손수 지었다는 불일암옆을 지나 송광사로 내려온 적이 있다. 그 때는 스님이 생존해 있을 때이고 불일암이 그리 알려지지 않아 아쉽게도 그냥 지나쳤는데 다음 기회에 다시 한번 가 보고 싶다.
법정스님은 말년에 "나의 괴팍한 성격 탓으로 내 주위에서 힘들어 했을 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용서를 빈다"고 말씀 하셨다. 법정스님의 이 말씀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스님같이 수행이 높으신 분도 본인의 성격탓으로 주위사람들을 힘들게 했다고 용서를 구하는 판에 일반 범인들이야 일러 무삼하리오' 하는 생각을 해본다. 스님은자신에게 엄격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주위 다른 사람에게도 마찬가지 잣대를 갖다 대어 힘들게 했다고 미안해 한 것이다. 많이 가지기보다는 적게가지고 채우는 것보다는 비워 두는 것을 사랑했던 스님이다.
[단풍취]
취나물 중 가장 눈에 많이 띄는 단풍취 군락을 지나, 30~40m의 오르막 내리막을 거듭하며 11시6분, 989.1봉에 오른다. 여기서 1시간 거리에 있는 1,006봉에서 점심을 먹어야겠다. 40여분 지났을까? 앞에 사람들 소리가 들려서 보았더니 한무리의 산꾼들이 내려온다. 역시 단체 산꾼들답게 떠들석하며 내려온다.
이어 오른 1,006봉은 큰 소나무가 자리하여 좋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을 뿐아니라 평평하고 널찍한 바닥에는 양탄자처럼 솔잎이 깔려있다. 여기서 대원을 기다려 점심상을 편다.
[1,006봉에서 점심]
점심을 먹고 있는데도 아직 단체 산꾼들이 이어진다. 선두와 후미가 많이 떨어져 있다. 남과 여男女, 연령층도30~50대代 까지 다양하다. 후미를 따라 가는 산악회 소속 사람인 듯한 사람이 우리에게 다가와 몇마디 얘기를 붙힌다. 이들은 부천 M2 산악회 사람들로 백두대간白頭大幹을 남진南進중이라고 한다. 오늘 52명이 닭목재를 출발하여 삽당령까지 간다며 자기가 제일 후미란다.
점심을 먹고 지도를 보니 여기서 화란봉까지는 높낮이가 50m정도를 내렸다가 200m정도를 오르게 되는데 시간은 40분정도 걸릴 것 같다.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 화란봉을 오르며 법정스님의 화두를 생각한다. 법정스님이 자주쓰고 또, 불자들에게
내리는 화두는 '나는 누구인가'이다. 스님이 수행 중 지속적인 화두는 '나는 어떤 인연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수행승으로 살고 있는가' 하고 스스로에게 묻곤했다. 스님은 이 화두에 답을 얻었을까?
스님이 하나의 에피소드를 얘기한 적이 있다. 언젠가 불자가 노트를 들고 법정스님을 찾아와서 인생을 살아가는데 깊이 새겨야 할 말씀을 주십사하고 청했다. 그래서 법정스님이 '나는 누구인가?' 하고 써 주었다. 그러자 그 불자는 "스님 이 것 말고 좀 길고 좋은 말씀을 써 주십시요"했다는 일화가 있다.
나도 나에게 물어본다. '나는 누구이기에 지금 이렇게 힘들게 대간 순례를 하고 있는가? 내 인생에서 나는 지금 어디에 와 있는가?' 그러나 물음은 있는데 답은 들려오지 않는다. 언제 어디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지..,
다시 이어 지는 산죽지대와 아름드리 잣나무지대를 지나 힘든 오르막을 오르는데, 나무 한 그루가 표지판을 달고 다가온다. 화란봉이다.
[화란봉 1,069.1m]
[화란봉 1,069.1m]
화란봉에 배낭을 벗어 놓고 잠시 쉰다. 남은 참외 하나를 대원과 나누어 먹고 화란봉을 내리는데..., 이외로 내리막 등로가 엄청 가파르다. 다리에 힘이 빠져 있어 더욱 조심한다.
[화란봉 하산...]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
왼쪽으로 오늘 우리에게 어느 집인지 모르겠지만 숙소를 제공하여야할 마을..., 왕산면 대기리가 보인다. 쉽게 숙소를 찾아야 할텐데...,
[소나무]
큰 소나무를 지나 닭목령에 가까웠다 했는데 표지판 하나가 나무 가지에 걸려 있다. 표지판에는 '2층민박 푸른고원'이라 되어 있고 집 전화와 휴대폰 번호가 적혀 있다. 배낭을 내려놓고 앉아 쉬면서 집 전화로 연락을 하니 음성 메세지가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으니 다음에 하란다. 휴대폰으로 전화를 하니 신호가 가서 연결 되는 듯하다 끊어진다.
나는 사람이 집을 비운 것으로 보아 투숙객이 없어서 전번에 개터재에서 처럼 민박집이 문을 닫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있으니 휴대폰으로 전화가 들어 오는데 통화는 이루어 지지 않는다. 여기가 난청지역인가? 휴대폰에는 가청표시가 선명한데..., 아무래도 닭목령에 가서 다시 연락을 하여야겠다. 닭목령으로 내려가는 길 옆에는 은방울꽃이 앙증맞게 피어 있다.
[닭목령, 700m]
최근에 식재된 어린 소나무사이를 지나서 닭목령에..., 닭목령은 원래 계항령鷄項嶺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는데 지금은 우리말로 닭목령으로 불린다고 한다. 작년 5월, 백두대간 순례를 계획하면서 지도상으로 지리산 천왕봉에서 진부령까지 대간 길을 따라 가다 '닭목령'이란 지명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때는 참 별난 이름도 다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닭목령이 출발지점인 지리산에서 까마득하게 먼 곳에 있는 것으로 느껴졌는데 오늘 이렇게 닭목령에 서고 보니 참으로 멀리 왔다는 생각이 든다.
닭목령으로는 415번 지방도로가 지나는데 북쪽으로는 왕산천을 따라가다 왕산교에서 35번 국도와 연결되고 남쪽으로는 대기천을 따라 가다가 고단교에서 역시 35번 국도와 연결된다. 지방도 건너편에는 사당祠堂이 자리하고 있고 옆에는 산약초와 목공예품을 판매하는 집, 그리고 농산물 집하창고가 마주하고 있지만 어디에도 숙소임즉한 집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닭목령에서 조금전에 통화를 시도했던 푸른고원에 다시 전화를 했더니 남자 목소리가 들려 온다. 나는 등산하는 사람으로 여기가 닭목령인데 오늘 민박이 가능하냐 했더니 몇사람이냐고 한다. 민박이 가능한지 어떤지는 대답하지도 않고 몇사람이냐고 되묻는게 약간은 언짢게 들린다. 내가 두사람이라고 했더니 또, 식사는 어쩔거냐고 한다. 식사도 해주어야 한다니까 이분은 닭목령에서 강릉 반대쪽으로 300m정도 내려오면 도로 우측에 2층집 푸른고원이 있으니 그리로 찾아 오라고 하고는 끝내 민박이 가능하단 말없이 자기 용무가 끝났다는 듯이 전화를 끝는다.
약간 언짢기는 했지만 찾아 오라는 것을 보니 민박이 가능하겠지 하며 우리는 전화로 일러준 대로 도로를 따라 내려가는데 역시 내려가는 길은 동고서저東高西低 답게 거의 평지나 다름 없는 완만한 내리막이다.
좌측으로 경작지 넘어, 조금전에 내려온 1,006봉과 화란봉이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다. 농사철이라 도로 양쪽에 있는 밭에서는 땅을 일구고 거름을 내는 트랙터들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나는 시골 농촌에서 성장하였다. 초등학교 시절 교과서를 통하여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의 농사짖는 모습이라고 소개되어 있는 기계화된 농촌 그림을 보고 참 신기하단 생각이 들었다. 우리 농촌생활의 현실과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의 산골 마을까지 그 때 그 그림처럼 저렇게 밭에서 트랙터로 농사를 짖고 있다.
내가 농촌을 떠나 객지로 떠돌아 다니며 어느새 인생의 황혼으로 가고 있는 동안, 우리의 농촌도 저렇게 변모하게 되었다. 참으로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게 된다.
도로를 따라 300m이상을 걸어온 것 같은데 아직도 민박집 푸른고원은 보이지 않고 우측으로 고랭지 채소밭으로 가는 농로와 농산물 연구소가 있는 지점까지 왔을 때 휴대폰이 울린다.
그런데, 전화에는 여자분 목소리가 들려온다. "민박하실 분이죠? 우리 집까지 왔나요? 아, 농산물 연구소라구요 그러시면 거기서 도로를 따라서 커브를 돌아 조금만 더 내려 오시면 도로옆에 2층집 푸른고원이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거름을 내려고 밭에 나와 있어 부득이 집을 비워서 미안 합니다. 집에 오셔서 수도가에서 쉬고 계시면 한 시간 정도 후에 집으로 가겠습니다."
조금 전까지 찜찜하던 기분이 이 여자분의 전화로 말끔이 해소 된다. 이런 경우 상황파악과 일 처리는 여자들이 더 잘 하는 것 같다. 나는 전화에다 아직 이른시간이니 우리 염려는 말고 천천히 일하고 오시라 하고 도로를 따라 간다. 커브를 돌자 우측에 2층 건물이 나타났는 데...,
[민박집으로 가며 바라본 화란봉...]
[푸른고원 민박]
닭목령 쉼터? 2층 집은 맞는데? 안으로 들어갔더니 2층에 푸른고원 민박이라는 안내판이 붙혀져 있다.
[푸른고원]
[음나무]
아주머니 말대로 수돗가에 있는 평상에 배낭을 내려 놓고 평상에 앉아 쉬면서 오늘 산행을 마친다.
- 오늘 산행시간; 8시간 30분, 산행 거리; 13.7km(백두대간; 12.7km) -
대원이 수돗물을 틀어 땀에 젖은 소품들을 씻는 동안 나는 집주위를 둘러 본다. 이 집 뒤로는 바로 산山이 이어지는데 산을 자세히 보니 두릅나무와 음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고 '산나물과 약초를 재배하고 있으니 관계자외 출입금지' 라는 안내판도 세워져 있다. 또 집주위에는 구상나무, 금낭화, 모란, 작약등이 잘 가꾸어 져 있다.
집 옆 처마 밑에는 장작이 그득 쌓여 있고 그 옆에 오랫만에 보는 지게가 하나 있는 걸로 보아 이집 주인이 손수 나무를 해오고 또, 그 나무를 패서 쌓아 둔 것 같다. 그런데 지게가 알미늄으로 만들어 져 있다. 나는 잠시 어릴 때 지게를 지고 산에 나무를 하러 다니던 생각을 떠 올려 본다.
한 시간 후에 주인 내외가 승용차를 타고 왔는데 우리와 비슷한 연배로 보인다. 주인 내외는 집주위에 있는 나무와 식물들을 설명해준다. 여주인은 내가 산에서 참나물이라고 생각하고 뜯어온 것을 보더니 참나물이 아니라 개당귀라고 알려주며 옆에 있는 산에서 참나물을 하나 뜯어 보여준다. 그외에도 곤드래나물, 당귀, 곰취, 음나무 등을 뜯어 보여 준다. 여주인이 오늘 저녁은 곤드래 밥을 해 먹자고 하더니 주위에 곤드래나물을 뜯자며 대원과 같이 나물을 뜯기 시작한다.
여주인이 저녁 식사 전에 야채튀김을 조금 해 먹자며 주방으로 들어가고, 남男주인은 집 주위에 있는 식물들을 설명해 준다. 예기를 해 보니 전화할 때와는 달리 이외로 강원도 감자바위 다운 순박함이 베어난다. 낮에 일했던 밭이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어 통화가 잘 되지 않는 지역이었다고 했다.
이곳 수돗물은 지하수를 펌프로 퍼 올리는데 주기적으로 수질 검사를 하고 있고 수질이 아주 좋다고 한다. 마당에는 부처님의 머리를 닮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불두화佛頭花, 돌배나무, 매실등이 있었는데 닭목령이 지대가 높아 추위가 빨리오고 연중 기온이 낮기 때문에 자기가 여기온 지 3년 되었는데 매실은 한번도 꽃을 피우지 않았단다. 그나마 돌배는 조그마한 열매가 달려 있다.
[불두화佛頭花]
꽃이 피면 크기가 수국水菊만하고 또, 4월 초파일경 피어서 불두화라는 이름을 가졌다고 하는데 이지역이 북쪽인데다 해발 700m 고지대라 초파일이 지난지 오래건만 아직 꽃이 피지 않았다.
주인이 안내해 주는 2층방에 배낭을 내려 놓고 간단하게 손만 씻고 거실에 있는 식탁에 나갔더니 어느새 산야초 튀김을 내 온다.
[산야초 튀김]
산야초山野草 튀김..., 두릅, 당귀, 음나무잎, 곰취, 곤드래 튀김이다. 하나하나 맛 보는데 여러가지 산야초가 제각기 독특한 향과 맛을 갖고 있고 또, 금방 뜯어 튀긴 것이라 아삭아삭한 게 별미다.
주방에서 여자 둘이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거실에서 남자분과 얘기를 나눈다. 이분은 강릉에서 오랫동안 금은방을 하던 이상수씨로 올해 67세란다. 하던 일을 그만 두고 시내에 있으니 자연히 친구들과 어울려 술과 고스톱으로 소일하게 되어 이래서 않되겠다 싶어 용기를 내어 농사일에 빠저 보려고 이곳에 왔다고 한다. 마침 이집 옆에 있는 산이 선산先山이라 여기다 음나무를 심었단다.
그런데 여기서는 음나무를 개두릅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또 음나무외에도 두릅나무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산야초를 심어 가꾸었는데, 때 마침 이 건물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사람이 세를 놓겠다고 하여 저렴하게 빌려서본인들이 거처도 하고 민박도 하고 있다고 한다. 이상수씨는 음나무 잎은 사포닌 성분이 인삼 다음으로 많이들어 있어 인기가 있다고 하며 올해 처음 수확을 하였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음나무 잎 튀김은 맛이 쌉쌀하다.
이 마을 대기리는 마을 공동자산이 34억이나 되는 부자마을이라고 한다. 공동자산은 년 중 다양한 행사에도 쓰이고 또 주민 복지에 이용되고 있단다. 그리고 해마다 닭목령 사당祠堂에서 소머리를 놓고 동재洞祭를 크게 지내는데 사당이 있는 자리가 바로 금계포란형의 중심이 되는 명당 자리라 한다. 특히 이 마을은 씨 감자 재배지로 전국의 씨 감자 대부분을 여기서 공급한다고 한다. 내가 닭목령의 고개가 목(項)이라면 머리는 어디냐 했더니 이런 질문을 받아보는 것은 처음인 듯 머뭇머뭇하더니 화란봉이 머리에 해당 한다는 대답인데..., 글쌔 그렇다면 화란봉花蘭峰이 아니라 계두봉鷄頭峰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물이 대워졌다고 하여 나는 아래층 화장실겸 샤워장에 내려와서 샤워를 하는데 샤워장이 좀 부실하다. 아까 이상수씨 예기는 빌린 집이라 손을 더 대지 않고 쓰다보니 시설이 부실하단다. 씻고 바깥에 나오니 쌀쌀할 정도로 기온이 떨어져 있다.
빨래를 걷어 2층에 올라가 방에다 널어 놓고 거실로 나오니 식탁에 각종 산나물이 차려져 있고 곤드래 밥을 내오는데..., 시골 일꾼 밥 그릇처럼 완전 고봉으로 담아 왔다. 밥이 너무 많지 않나 했더니 이상수씨가 먹고 더 달라고나 하지 마세요 하며 대접에다 비벼 드시라고 한다. 대접에다 간장으로 비벼 먹는 곤드래 밥..., 정말 별미다. 그외에도 더덕, 곤드래나물, 음나무 짱아지에 고등어 자반 등, 맛갈스런 찬이 차려져 있다. 나는 하산주가 생각나서 혹시 산꾼을 위해 사다놓은 맥주나 소주가 있냐고 했더니 술 준비는 되어 있지 않다며 아주머니가 나가더니 가득찬 플라스크 병을 하나 갖고 와서 돌배 술인데 드셔 보라며 권한다. 이상수씨는 술은 입에 대지도 않는다고 해서 셋이서 건배를 했는데..., 술 맛도 기가 막힌다. 어느새 그 많은 밥이 마파람에 게눈 감추 듯 사라져 버린다.
식사 후에는 매실차를 내온다. 그러고 보니 처음 통화할 때도 느꼈지만, 주인 아주머니 솜씨와 센스가 보통이 아니다. 그래도 사람이 갑자기 많이 들이 닥쳐 밥을 해 달라면 어떻하나 물었더니 그래도 괜찮다고 한다. 밑반찬이 준비 되어 있어 별로 힘들게 없단다. 나는 내일 아침 식사를 6시에 했으면 좋겠는데 너무 이르지 않겠냐니까 아주머니가 우리도 일찍 밥해 먹고 일하러 가야하니 전혀 이른 시간이 아니란다. 그리고 음나무를 잘게 짤라 과일즙 박스에 하나 담아 두었으니 가저가서 닭 백숙할 때 넣어 드시라고 한다. 내일이 산행 마지막 날이기는 하나 산길을 13km는 가야 하는 데 어떻게 가져가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우선 고맙다고 했다. 내일 점심을 싸 달라고 도시락을 내 주고 비용을 얼마드리면 될까했더니 5만원이면 되겠다고해서 5만원을 드리고 방에 들어와 이번 산행 마지막 밤, 4박째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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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대간 순례가 아니고 오지 국토순례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네,,, 대간꾼과 대원이 민박 집을 찾아 방문을 하면 반갑게 맞이해 주는 이유는 평소의 모습은 물론이고 후덕한 인상과 인품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남은 일정 조심하면서 너무 서둘지 않기를 바란다. 음나무와 엄나무가 같은 말이고 또한 개두릅이란 것을 알았다. 줄기에 가시가 많은 나무가 약효가 뛰어나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지만 오지에서 채취한 두릅,음나무,오가피,가시오가피,천삼,생열귀,꾸지뽕,산초,복분자 등해서 7가지 이상을 채취하여 솥에서 우려내어 복용하면 최상의 건강 보조 음료가 된단다...
점심은 누가 저리도 정성스레 준비했는고.......
과연 손 깡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