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메일
  • |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THIS IS TOTAL WAR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좋은 글들 언제나 전반적인 면을 살펴봐야 합니다.
zert 추천 0 조회 838 11.05.06 20:17 댓글 24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11.05.06 20:40

    첫댓글 가장 큰 이유는 조선이 아마도 '자주적'으로 큰 전쟁에서 이기지 못하였다, 즉, 원숭이군과 청군을 물리치지 못했기 때문아닌가 합니다. 신라는 나당전쟁에서 자주적으로 당을 물리쳤고 고려는 자주적으로 거란을 물리치고 여진을 침략했으며 몽골에게 40년간 유린당하지요. 그렇지만 조선은 임진왜란 때는 명나라에게 작전권을 빼았겨 질질 끌려다니고 병자호란 때는 청나라에게 항복하지요. 이러한 상황이 근대 이후 민족주의가 발달하게 되면서 아무래도 조선이 허약해 보이지 않게 되었나 합니다.

  • 11.05.06 22:32

    오오 청태종이 인질이 될뻔한 얘기는 모르느느데 설명 부탁드리므니더

  • 11.05.07 00:26

    남한산성을 포위공격해서 인조의 항복을 받아냈지만 당시 정황상 조금만 더 시간을 끌었으면, 지방의 군대들이 결집하여 청태종이 역으로 포위될뻔했다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습니다.

  • 11.05.07 12:02

    그럴 가능성은 그닥 높지 않습니다. 일단 조선군의 패인 중 하나가 지방군의 결집-편성을 통한 조직적인 반격의 실패인데, 이걸 막은 가장 중요한 요인이 청군의 교통요지 장악이었어요...-_-; 청군은 수원의 '판교'를 일찍부터 장악하여 지방군 간의 연락과 연합공격을 차단합니다. 일부는 '천안'까지 내려갔고요. 때문에 조선의 지방군은 각개격파...ㅜㅜ

    또한 시간을 벌면 좋은 것이 명군의 참전입니다. 실제로 정묘란 때는 명군 3만5천이 후방으로 다가오면서 후금이 강화를 재촉한 전례가 있죠. 근데 병자란 당시의 명은 관외가 다 털린 상황이었고 구원병을 배로 보내야 했는데, 병력편성 중에 전쟁이 끝나버리죠.

  • 11.05.07 12:04

    왔어도 규모나 전투력은 어차피 시망이고... 청군이 남직례(강소성, 안휘성) 북부까지 털어가도 못막았던 것이 명군인지라...-_-;

  • 11.05.08 13:41

    역포위는 좀 무리고, 위협을 느낀 청군을 돌려보내는 건 가능합니다. 식량만 넉넉했다면 남한산성을 공략하는건 참 기약없는 이야기고(17세기 군으로 20세기 군을 막아낼 수 있단 말까지 나오는 지형보정...) 교통로 잡고 각개격파로 구원군을 연거푸 막아내고는 있지만(질때도 조선군이 재정비가 필요한 정도의 피해를 입히면서 지죠.) 보급문제도 그렇고, 청도 장기전 치르긴 힘든 상황이니까요.

  • 11.05.09 15:59

    bookmark// 글쎄요. 우선 과연 청군이 위협을 느끼고 돌아갈만 한 상황이 있을만한 요인 자체가 적지않나 합니다...^^; 국제적으로 명나라는 이미 청에대한 '공격능력'을 거의 상실한 상황이었고, 또다른 위협요인인 '몽골(내몽골)'도 투항과 복속의 패턴을 밟은 다음이었습니다. 병자란 당시 조선에서 동원한 군사의 수가 거의 10만에 달했지만 이미 전투력에서 청의 적수가 못되었고, 기본적으로 '재정비'를 수행할 [지휘부 수립] 자체가 문제였다는 점이 상황을 더욱 암울하게 만들었죠. 의병이 일어나고 하면서 거국적인 저항으로 갈 수도 있겠지만, 딱 "왕이 항복하지 않는 수준"에서 그쳤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 11.05.09 18:11

    그게... 거기서 더 버티면 청군은 굶어죽을 상황이라. 인조대 농사환경이 그리 좋지 않은건 잘 알려진 바고, 10만+마필 보급은 전근대시기엔 어떤 군대나 난감하기 그지없죠. 수성전이 언제나 유효한 건 장기적으로 들어가면 적군을 자동적으로 굶게 만드는 게 되거든요. 이걸 극복하려면 갈수록 넓은 지역에 군을 흩어서 계속 현지약탈을 해야 하는데 그게 진행되면 될수록 의외의 패전을 경험할 확률도 올라가고, 초토화된 범위가 넓어지면 질수록 보급에 애로사항을 겪게 되죠. 특히 마필보급은... 보급이 난감해지면 가장 큰 피해를 입는게 말이라... 이런 상황을 감수하느니 돌아갔다가 적당히 농사지으면 다시 오는게 낫죠.

  • 11.05.09 21:51

    청군이 [둔전]을 경영하고, 조선에 눌러 앉아 '행정통치'를 전개할 가능성이 꽤나 있습니다...-_-; 정묘란 당시에도 "한양에 머무르며 농사를 지을 것이다"라면서 위협한 전례가 있었고, 정묘화약을 체결한 후에 조선군이 물러나는 후금군을 공격하자, 이를 빌미로 평양을 중심으로 한 평안도에 주둔하면서 조선여인을 현지처로 삼고 농사를 지을 채비까지 한적이 있었어요...-_-;; 또한 한인을 통치한 경험이 있었던 청은 조선의 지방관이나 백성들을 회유하면서 통치할 역량도 있었습니다...-_-;;;

  • 11.05.10 14:59

    3만명이던 정묘호란이야 수확철까지 어찌어찌 버틴다 해도, '10만 이상', '다수 마필', '한겨울' 에 들어온 병자호란의 청군이 둔전을 지어 수확할때까지 버틴다...는건 말 그대로 허황된 이야기죠. 차라리 말이 없으면 또 모르겠습니다만, 말 한필은 사람의 10배를 먹어치우니 다수의 기마전력을 유지하는 시점에서 청은 단기전을 수행할 수밖엔 없습니다. 말 다 잡아먹으면서 버틴다면 또 모르겠습니다만, 행정력으로 둔전을 지으려고 해도 수확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버티려면 한반도 전역의 모든 성과 창고를 털어먹어야 될 판이라...

  • 11.05.07 01:52

    치킨이 먹고 싶군요.

  • 11.05.07 02:27

    조선을 까는 공식을 일본에 대입하면 더 찌질하게 까입니다.
    이건 왜정때 왜곡,날조한 각종 식민주입을 논파하는 저만의 제한적인 공식이기도 하지요.
    100년동안 단련된 군대를 가진 왜군이 200년동안 평화를 누려 사용법을 몰라 총통을 녹여 쓴 나라에게
    자는 사람 밟는 식으로 기습했다가 "곧" 골목길에 몰리는 건 100년트레이닝왜군이 약했다는 방증으로도 먹힙니다.
    시스템의 위력.

  • 11.05.07 14:13

    조선은 기본적으로 전쟁이 터지면 지방군이 병력을 모아서 집결시켜두면 한양에서 지휘관을 파견해 지휘케 해서 대응했죠.
    이게 내란이나 반란등의 진압에는 유용했지만 외국의 본격적인 침공군 앞에서는 무력했다는게 참...
    임진란 초기에 조선최대의 수퍼스타로 각광받던 신립이 이해할수 없는 전투지휘끝에 탄금대에서 격파당한것도 그렇지요. 그에대해선 귀신에 홀렸(...)단 얘기에서부터 긁어모은 군사를 믿지않아 그랬다 상대해야 할 왜군이 너무 많아 서두르다 그랬다. 설이 많지만 아무튼 기본적으로 반란 진압에나 통하는 체제를 조선은 끝까지 바꾸지 않았죠.

  • 11.05.07 14:12

    아무리 이성계가 쿠데타를 일으켜 세운게 조선이라지만 장군이 반란을 일으킬까 두려워 병력따로 지휘관따로 이런식의 군대로는 외국의 정규군을 상대로한 군사작전은 아무래도 무리라는건 당시 사람들도 모를리가 없었는데 이걸 끝까지 유지한 이유를 알수 없더군요.

  • 11.05.07 14:48

    아뇨 모르니까 임진란때 까지 유지했겠죠 그래서 나중에 방법을 바꿨구요.


    지금 우리시대의 군대들이 가진 전략,전술들이 미래에 까지 유지되지 않을 것입니다 꾸준히 바뀌거나

    미처 따라가지 못하거나 할것이고 이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사 모두에서 이런모습을

    보여왔고 앞으로도 계속 나올것이구요.

    현재시점에서 우리가 200년 동안 전쟁없이 살고 있다면 지금의 군대전략들이 얼마나 크게 바뀔수 있겠나요.

  • 11.05.07 15:13

    그리고 제승방략이 제가 고등학생 시절 배웠을땐 단순히 반란진압이나 할려고 한게 아닌걸로 배웠습니다.

    먼저 뉴타잎님께서는 임진난 당시 왜 조선이 제승방략 체제였는가를 다시 알아보셔야 겠습니다

    비록 이 방법은 실패로서 역사에 남았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여러가지 전쟁방법 중

    어떤것이 좋고, 어떻게 하면 좋을것일까 하며 고민했던 당시의 과정을 한번 생각해 보셔야 할듯 합니다.


    조선초기 군제개혁으로 진관체제를 만들어 운영하다가 제승방략으로 바꾸고 임진란후 진관으로 되돌아온 뒤 속오군까지 가는 과정을 보면 나름 역사에서 잊혀지지 않기위해 노력한 조선을 볼수있으니 한번 다시 알아봐 주세요.

  • 작성자 11.05.07 17:54

    바로 지금 뉴타잎님이 말씀하신 것에 해답이 있습니다. 조선은 기본적으로 외침보다는 내부의 반란을 더 우려해서 실질적 혹은 형식적 최고 지휘관이 중앙 정부에서 파견나가는 인원으로 선발했습니다. 그것도 부족해서 실질적 주장인 관찰사 / 병마사 / 방어사 / 조방장 및 사또라고 불리는 목사, 현감, 현령 등등에게 병력을 쪼갰죠.

  • 작성자 11.05.07 17:55

    <당연히 현대인의 입장>에서는 이것은 어리석은 선택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임진왜란 직후의 조선에서도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고요. 일본에서 돌아온 강항은 거의 중세 봉권시대 수준ㅡ.ㅡ으로 한 장수가 계속적으로 병력을 잡고 있어야 한다는 일빠?스러운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 작성자 11.05.07 17:57

    그런데 문제는, <과거를 살았던 우리 조상들이나 현대를 사는 우리들도> 그 당시의 <시대적 한계>를 벗어나기가 절대로 무진장,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먼 미래의 통일된 혹은 북한이라는 실질적 위협세력이 사라진 우리 후손들은 이렇게 욕할지도 몰라요. '어차피 당시 시대적 상황을 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도 적은데 육군을 기형적으로 키울 것이 아니라 해군, 공군, 우주군(???)을 키워야 했다! 그러므로 우리 조상들은 어리석다!' -> 가깝거나 혹은 먼 미래의 후손들이 당연히 내세울 수 있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어떻죠?

  • 작성자 11.05.07 17:59

    어떠한 체제나 모순이 존재하면, 그 모순이 <어떻게, 그리고 왜> 존재했는지 그리고 그것을 알면서도 어느 정도 질질끌면서 유지해야 했는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뉴타잎님 스스로도 위의 글에서 밝히셨듯, 뉴질랜드와 캐나다 사람들이 어리석고 불쌍해서 군사력을 약하게 하고 있는게 아니니까요.

  • 11.05.08 01:42

    고려시대에 일어난 무신난크리만 보아도 봉건제의 문제점이 확연히드러나는것이고 외적의 침입보다 내부의 분열이 훨씬 더위험하거든요. 당나라 절도사만 보아도 --;;; 중국은 이미 송이후부터 그런 문제점때문에 조선과 비슷한 군제도를 실행하였고 말이지요.

  • 11.05.08 01:03

    1. 조선의 제1 주적은 여진족과 왜구인데.. 둘 다 규모는 크지 않아서 일종의 선방어 개념으로 진관체제가 유지됩니다.

    2. 중종 때 삼포왜란이 터졌는데 이때 동원된 왜구는 무려 5000명 수준이었습니다. 기존의 진관체제하의 선방어 개념으로는 대응할 수 없었던 거죠.. 그래서 도입된 것이 제승방략이었습니다. 중앙에서 지휘관이 오면 인근 부대를 규합하여 격파하는 거죠..(실제로 삼포왜란 당시 이런 식으로 처리되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제승방략 넘기고 이런 대규모 왜군의 내습은 또 없었습니다. -_-;;

  • 11.05.08 01:06

    3. 사실 고위 지휘관을 지방에 상주시키면 될 문제긴 한데..(정치장교 형태로 대간을 감시로 붙이면 되긴 하고..) 군사 소요가 워낙 없다 보니까 이런 대비 자체를 가지고 말들이 많았습니다. 일부 병마사들은 성쌓고(...) 훈련한다고 대간들이 탄핵하는 수준이었으니까요;;(그런데 장교 없는 조선군이라 이런 훈련 과정 자체는 개판이라;;)

    4. 반란을 두려워 했던 것은 맞고 그 때문에 구조적으로 아예 군 기동을 못하게 막아버린 것은 분명합니다. 위수지역에 대한 관리가 지독하게 철저했죠.. 그래도 송보단 좀 낫고..(중앙에서 내려간 고위 지휘관에 의해서 기동 자체는 일단 되니까..) 의도적으로 간부진 양성을 피한 것도 맞습니다.

  • 11.05.08 01:08

    마지막으로 뉴타잎님 생각보다는 조선군은 의외로 실전 경험이 많았습니다. 문제는 국가간 총력전을 경험해본 적이 전혀 없다는 점이 발목을 잡았죠.. 일본군은 내전 막바지에 이런 경험이 풍부했습니다. 히데요시가 말년에 일본 통일한다고 큐슈에 20만 대군 돌린 적이 있었는데.. 이 자체로 굉장한 경험입니다. 실례로 일본군에는 1만 이상을 지휘한 경험을 가진 지휘관(사단장급..)이 20명은 너끈히 나오겠지만 조선에서 이 정도 규모를 지휘해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