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낮(10/11) 예배 말씀
*제목: "스스로 지워지는 글씨! 대속의 은혜로 지워지는 죄!"
*본문: 사1:10-18
1.시작하는 이야기 :
1)글자가 '스르르' 스스로 지우는 종이 이야기
지난 9/22 외신에 보면
나노기술을 이용해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글자나 그림이
스스로 사라지는 종이가 개발됐다고 합니다.
미국 노스웨스턴대의 바토츠 교수는 지난 9/7 화학분야 권위지인
'앙게반테 케미(Angewandte Chemie)'지에 자동 삭제 문서를 발표했습니다.
처음엔 글자가 보이다가 곧 사라지는 기술인데 '金·銀 나노 화합물' 문서에
자외선 펜으로 글씨 쓰면 삭제될 시간까지 맘대로 조절할 수 있답니다!
원리는?
미세한 금이나 은 입자에 빛에 민감한 머리카락 모양의 화합물을 붙입니다.
이 물질을 투명한 플라스틱 막 사이에 아주 얇게 바릅니다.
자외선이 나오는 펜이나 자외선을 이용한 프린터로 플라스틱 막에
글자나 그림을 그리면 금 입자가 발라져 있는 경우
빛이 닿은 부분은 붉은색에서 푸른색으로 변합니다.
이렇게 만든 메시지는 자외선이 없는 상태에서
얼마간은 읽을 수 있지만, 곧 사라집니다.
여기까지 듣고나면 자연 질문이 나오죠?
그런 기술이 신기하기는 하지만
무슨 첩보 영화를 찍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어디에 사용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런 <자동 삭제 문서>는 의외로 다양한 곳에 이용할 수 있답니다.
예를들어 민감한 내용을 담은 문서를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게 하거나,
버스나 기차표를 한 달 후엔 쓸 수 없게 하는 데도 이용할 수 있답니다.
그러나 이런 화학적 반응이나 기술에 의한 지우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2)탁월한 기억력 이야기 =>망각의 축복
1920년대 중반!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는 한 신문사 편집국장이
아침마다 기자들을 모아놓고 이런 저런 지시를 했습니다.
다들 받아 적을 때, 저 혼자 안 받아쓰는 기자가 하나 있었습니다.
편집국장이 나무라자, 기자는 국장이 한 얘기를 줄줄이 외워 보였습니다.
국장은 깜짝 놀랐다. 그러자 그 기자는 국장에게 오히려 물었습니다.
“남이 한 얘기를 고스란히 기억하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그러세요?
”그래 편집국장은 그 기자에게 '심리학 연구소에 찾아가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훗날 불세출의 ‘기억술사(mnemonist)’로 유럽 전역에 이름을 떨친
솔로몬 V 셰르셉스키(1886~1958) 세계적인 심리학자
알렉산드르 로마노비치 루리야(1902~1977)를 찾아갑니다!
루리야는 자신의 연구실에서 시험 삼아 이런 저런 단어 30개를 불러주자
셰르셉스키는 즉시 외워 똑같이 반복했습니다.
단어를 50개, 70개로 늘려도 마찬가지였고, 숫자를 수십 개 불러줘도 마찬가지였으며
‘가다마다오다가마바사나…’ 같은 무의미한 음절로 구성된
긴 열(列)을 읽어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마디로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였습니다.
Q: 질문합니다!
이 불세출의 기억술사 솔로몬 V 셰르셉스키(1886~1958?)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 대단한 사나이는 과연 어떤 지적(知的)인 업적을 이루었을까요?
한마디로 셰르셉스키는 ‘실패자’였습니다. 우선 그는 책을 잘 읽지 못했다.
첫째, 낱말 하나, 음절 하나를 들어도 그의 눈 앞엔 수많은 이미지가 명멸했다.
긴 호흡으로 글을 죽 따라가며 주제를 이해하려면, 눈 앞에 튀어나오는 이미지들을
장애물 경주 하듯 이리 저리 젖혀야 했습니다.
둘째, 단어의 발음이 주는 인상과 단어의 뜻이 다를 때
셰르셉스키는 마음의 평정을 잃기 일쑤였습니다.
셰르셉스키의 일상을 지켜본 사람들은 대부분
“산만하고 소극적인 남자”라고 그를 평했다.
그는 신문사를 비롯해 열 몇 군데 직장을 전전했으나, 어디서도 오래 버티지 못했습니다.
그는 결국 무대에 서서 관객이 시키는 대로
자기 기억력을 보여주는 ‘기억술사’로 먹고 살았습니다.
기억력은 그에게 정신적 서커스였습니다.
그는 아무것도 잊지 못했으므로 이 서커스는 그에게 고통이었습니다.
결국 셰르셉스키는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냉장고에 받던 전화를 넣고 닫는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기억의 지우개인 망각이 얼마나 감사한 축복인지 알게 됩니다!
옆 사람과 인사 한 번 더 할까요?
'가끔 자신의 핸드폰 번호도 잊어버리는 당신은 복 받은 사람입니다! 축하합니다!'
3)잠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매일 잠을 자고 일생의 3분의 1을 잠을 자는 데 소비합니다.
유아기 때는 16시간 이상 잠을 자다가 10세가 되면서부터 평균 8시간 잠을 잡니다.
잠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선물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웠어도 잠을 자는 동안만은 쉼과 회복이 있습니다.
잠자는 동안만은 돈걱정 직장걱정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저 <하루 사는 법>만 배우면 되는 것이죠?
오죽하면 시련 기자는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시 127:2)라고 했겠습니까?
오늘은 지우개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스스로 지워지는 종이!
망각이라는 지우개!
세상 모든 근심을 잊게 하는 잠!
모두가 훌륭한 지우개들이지요?
그러나 그 어떤 화학적인 지우개로도
망각이라는 지우개로도
심지어 골아 덜어지는 잠으로도 지울 수 없는 것!
지워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일 까요?
그리고 그 지워지지 않는 것은 무엇으로 지워야 할까요?
2.중심되는 이야기 :
1)오늘 이사야 선지자는 초대합니다!
<사 1:10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타락한 백성들!
하나님을 등뒤로 던져 버린 인생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책망이지요?
2)그리고는 이렇게 찌르듯 묻습니다!
<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 화가 나셨다는 말입니다!
왜?
3)12절 이하입니다!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섬듯하리만치 날카로운 지적이십니다!
아니 어느 인생 하나도 이 질문을 피해 갈 수 없을 정도로
섬세하고 정확한 지적이십니다!
그러나 좌절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이렇게 까지 인생을 몰아치시는 이유는
실망하고 좌절하여 소망이 끊어지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살 길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4)이제 초대하십니다!
"16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라!"
도대체 무엇으로 스스로 깨끗할 수 있습니까?
무슨 값을 치룬 들 우리의 죄와 허물이 지워질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저 히9:22같이 피흘림 없이는 사함도 없습니다!
<히 9:22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그 피흘림을 통하여 깨끗해 진 자 만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그러면 16절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라!"니요??
예! 우리들의 회개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이라는 용서라는 선물을 주실 때!
내미는 떨리는 손! 회개를 말합니다!
입으로 하는 회개! 온 몸으로 하는 회개! 말입니다!
5)구체적으로는?
①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②17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③학대받는 자를 도와 주며
④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6)그럴 때 비로서 무슨 길이 열립니까?(18절)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3.나오는 이야기 :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깨끗해지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레11:45)고 초대하십니다!
그리고는 이 깨끗해짐을 위하여, 이 희어짐을 위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런 사명을 띄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보면서
세례요한은 그렇게 외쳤습니다!
<요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홍 같았던 우리의 죄가 눈과 같이
진홍같이 붉었던 우리의 죄가 양털같이 희어지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도여!
우리가 <잃은 아홉 찾기 전도>를 시작한지 벌써 절반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지난 한 달 동안 어떤 성과들이 있었습니까?
11/15! 추수감사절을 D-DAY로 삼아 남은 수고를 경주해 가실 때
각 영혼 영혼 속에 가득했던 죄와 허물들이
눈보다 더 희어지는 역사가 넘쳐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