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내가 원하니 깨끗함을 받으라
마가복음 1 : 40 - 45
전남 고흥에 나환자들의 정착촌이 소록도에 있습니다. 나환자들의 애환이 담긴 책을 읽어보고 한번 가 보았습니다. 교회 사무실에 들어가 안내를 받고 소록도를 살펴보다 모 장로님 댁을 방문하여 나환자들의 애환을 들었습니다. 환자들 가운데는 일류 대학을 졸업한 학 박사도 많고 사업하던 사람, 이렇다 할 정도로 잘 살던 사람도 그 모든 것 다 버리고 소록도로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물며 결혼하여 자녀를 낳고 발병되어 아내와 자녀들과 헤어진 사람들도 있답니다. 소록도에 와서 환자들과 결혼해서 서로 의지하고 산다면서 쪼막손으로 끊여 주는 라면으로 점심 대접을 받았습니다.
나병은 살이 썩어 들어가고 눈썹이 빠지고 입이 비틀어지고 눈알이 빠지는 무서운 병입니다. 그래서 사람들과 함께 살 수 없을 뿐 아니라 전염 위험성이 있어 따로 격리해서 집단촌을 만들어 살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나병환자”라고 되어 있지만 개역 성경에는 “문둥병자”라고 했습니다. ‘문둥병자’라는 말이 환자들이 듣기 싫어하는 저속어라고 해서 ‘나병환자’로 고친 것입니다. 한센이라는 사람이 나병균을 규명했다고 해서 한센병이라고도 합니다. 지금은 의학의 발달로 치료가 됩니다만 여전히 불행한 병 입니다.
성경에도 나병환자를 부정한 병으로 취급하여 들로 산으로 추방했습니다. 성읍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아람 왕이 엘리사가 숨어있는 사마리아를 군대로 에워싸므로 사마리아 사람들이 굶어 죽게 되었을 때 성문 어귀에 나병환자 네 사람이 있었는데 이들 역시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성읍에 들어가도 죽을 것이고 여기 있어도 죽을 것이니 성읍 사람들이 살려 두면 살 것이라고 하며 일어나 성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들이 성읍을 향하여 들어가는 발자국 소리를 주께서 아람 군대의 귀에 병거 소리와 말 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로 듣게 하심으로 아람 군대가 놀라 도망을 쳤습니다. 그때 아람군대가 남기고 간 양식과 은금과 의복들을 전리품으로 사마리아 성 사람들이 차지하므로 굶어 죽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때 나병환자들 역시 성읍에서 쫓겨나 들에 있었습니다(왕하7:3-6).
이스라엘 민족은 나병은 죄 때문에 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성경에 건강한 사람이 갑자기 나병에 걸린 세 사람이 나타는데 모세의 누나 미리암과 웃시야 왕 그리고 엘리사의 종 게하시 입니다. 이 세 사람 다 하나님을 거역한 죄로 인하여 나병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더욱 나병환자는 죄가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감추인 죄가 겉으로 들어나게 되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더욱 저주스럽고 더러운 병이였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가족들로부터 쫓겨나게 되었고 동네에서도 함께 살 수 없도록 아예 들로 산으로 추방을 한 것입니다. 길에서 사람을 만나면 나병환자가 먼저 ‘나는 부정하다 나는 부정하다’고 소리를 질러야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나병환자를 보기만 하면 돌맹이를 던졌습니다. 완전히 버림받은 인생으로 고통과 절망과 고독 속에서 몸부림치며 살 수밖에 없는 사람이였습니다.
이렇게 나병환자와 같은 살이 썩어 들어가는 육체적인 나병환자는 아닐지라도 나병환자와 같은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나병환자의 가장 큰 고통은 살이 썩어들어가는 아픔과 외로움입니다. 가족들과도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친구와도 같이 할 수 없습니다. 아무도 함께 해주는 사람이 없는 외로움이 가장 큰 고통입니다. 소망없는 사람입니다.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자살율이 1위라고 합니다. 왜 자살을 합니까? 앞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소망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살하는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의사의 자살율이 평균 자살률보다 높다고 합니다. 의사는 경제적으로 문제가 별로 없습니다. 뭇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습니다. 환자들은 의사를 붙들고 ‘나 좀 살려 달라’고, 마치 하나님께 매달리듯 의사를 믿고 살려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정작 의사 자신은 소망이 없습니다. 자신의 고민은 해결할 길이 없어 자살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절망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오늘의 나병환자들입니다.
이처럼 고통당하는 나병환자가 예수님을 만나므로 고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왔다고 했습니다(40). 나병환자가 어떻게 예수님께로 나오게 되었을까 하는 점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당시 나병환자는 마을 밖으로 추방되어 사람들이 없는 한적한 들판 언덕 밑에 움크리고 지냈을 것입니다. 사람들과 접촉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더욱 예수님에 관해서 스스로 알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알고 예수님께로 나아 올 수가 있었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와서 전해 주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간혹 길가는 사람들이 주고 받는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무튼 이 나병환자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았고 또 믿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찾아 올 수 있었습니다.
소망없는 사람에게는 작은 소문을 듣고서도 살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소문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음식도 소문을 듣고 그 집을 찾아갑니다. 소문의 위력은 이렇게 놀랍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은 세상에서 완전히 단절 된 나병환자에게까지 들려졌습니다. 소문은 가지 못하는 곳이 없습니다. 누군가가 길가면서 주고 받으며 했던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가 길 어귀에 숨은 나병환자에게 들려졌듯이 우리가 무심코 하는 말이 뜻밖에도 소망 없는 사람에게도 들려지게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소문을 내야 합니다. 여러분이 예수 믿고 은혜 받은 것을 소문을 내야 합니다. 은혜 받은 것을 잠잠히 숨기고만 있지 말고 소문을 내야 합니다. 은혜의 간증을 통해 좋은 소문을 내셔야 합니다. 좋은 소문은 내면 낼수록 좋습니다. 교회 부흥의 비결도 여기 있습니다. 좋은 소문이 나는 교회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게 됩니다.
무슨 소문을 내야 합니까? 먼저 ‘우리 교회는 말씀이 참 좋습니다’라고 소문을 내십시오. 말씀이 좋다고 소문이 나야 합니다. 말씀이 좋다는 말은 목사님이 설교를 잘 하신다는 말입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좀 쑥스럽지만 그러나 중요합니다. 사실 저도 설교를 잘하려고 많이 노력합니다. 가급적이면 제 설교를 인터넷에 올려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설교에 은혜를 먼저 받고, 받은 은혜를 혼자 잠잠히 세기지만 말고 소문을 내야 합니다. 혹시 주변에 말씀에 갈급한 사람이 듣고 찾아 올 수도 있을지 누가 압니까?
다음으로 ‘우리 교회는 은혜롭습니다’라고 소문을 내십시오. 사실 우리교회만큼 은혜로운 교회가 어디 있습니까? 교회마다 시끄럽고 분위기가 별로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얼마나 은혜롭습니까? 그렇다면 ‘동성교회는 은혜롭습니다’라고 소문을 내야 합니다. 이렇게 소문을 내면 나병환자가 소문을 듣고 예수님께로 찾아 와서 고침을 받았던 것처럼 외로움으로 소망없는 사람이 교회로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나병환자가 길가는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많은 병자들을 고치셨다는 이야기 하는 것을 들었다고 생각됩니다. 28절에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많은 병자를 고치신 소문이 갈릴리 사방으로 퍼졌다고 했습니다. 그때 나병환자도 그 소문을 들었다고 봅니다. 그러한 소문을 들었을 때 ‘다른 사람이 고침을 받았다면 나도 고침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문제 해결을 받았다면 내 문제도 해결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병환자가 예수님 앞에 엎드려 구했을 때 아주 중요한 말을 했습니다.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40). 이 말씀을 우리는 자세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주님, 나의 병을 고쳐 주세요’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주여, 나를 낫게 해 주세요, 낫고 싶습니다’ 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봅시다.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여기 중요한 것은 ‘주여 원하시면’이라는 말입니다. 나병환자가 말한 이 말씀이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앞에 기도 하실 때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26:39)라고 기도하신 말씀과 똑 같습니다.
오늘 우리의 기도는 어떻습니까? 주의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도 내가 원하는 것을 주옵소서 라고 하고 있습니다. 완전히 주의 뜻을 무시하고 내가 원하는 것만을 구합니다. 어떤 분은 자기가 원하는 설계도를 펴 놓고 ‘하나님, 이대로 들어 주실 것입니까 아니 들어 주실 것입니까?’, 아예 하나님께 어거지를 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병환자가 ‘내가 들어보니 당신이 다른 사람들의 병을 다 고쳐주셨다고 하니 나도 고쳐주십시오’, 이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무슨 뜻입니까? 주님은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의 능력에 대해서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분명한 믿음이 있습니다.
다만 내가 그 은혜를 받을 자격이 있을까? 할 때 자신이 없었습니다. 육체의 병도 병이지만 영혼이 병들었기 때문에, 내 영혼이 더럽기 때문에, 그는 자신을 돌아 볼 때 감히 고침을 받을 정도의 자격이 되지 못하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주님은 능력이 충분하시지만, 내가 고침을 받을 정도의 자격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그래도 주님이 원하시면 나 같은 더러운 인간도 깨끗하게 해 주실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살이 썩어 들어가는 나병 보다 자신의 죄를 더 깊이 돌이켜 보는 것입니다. 참으로 겸손하고 경건한 마음입니다.
이 말을 들은 예수님은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고 하시므로 그를 깨끗하게 고쳐 주셨습니다(41).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다시 봅시다. ‘내가 원하노니’라는 말씀입니다. 나환자가 ‘주께서 원하시면 나를 고칠 수 있나이다’라고 말했을 때 예수님 역시 ‘내가 원하니 깨끗함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환자가 고침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나환자의 소원이기 전에 예수님의 소원이기도 한 것 이였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왜, 내가 너를 깨끗하게 되기를 원하지 않겠는가’라는 예수님의 마음이 담긴 말씀입니다.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 데, 내가 너를 위해 십자가에 생명을 내어 놓을 것인데, 당연히 내가 원한다. 그러니 깨끗함을 받으라’는 예수님의 진심어린 마음입니다.
우리의 죄악까지도 담당하시는 주님께서 우리가 깨끗하게 고침을 받기를 왜 원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왜 주님이 내 문제를 해결해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얼마든지 원하시고 계십니다. 얼마든지 고쳐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나병환자와 예수님과의 단 두 마디 대화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주여 원하시면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내가 원한다. 깨끗함을 받으라’. 이 대화야 말로 문제 해결을 받을 수 있는 대화입니다. 이러한 주님과의 대화가 오늘 우리 성도들이 누릴 축복입니다.
나병환자에게 주님이 먼저 손을 내 밀어 대셨습니다. 손을 대셨다는 것은 그냥 살짝 대었다는 뜻이 아니라 ‘만졌다’, ‘잡았다’는 뜻입니다. 나병환자는 ‘온 몸에 나병이 들린 사람’(눅5:12)입니다. 온 몸에 진물이 나고 살이 썩어 문들어진 그 몸을 어루만지셨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두 사람이 병문안을 갔습니다. 환자를 만나 위로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왔습니다. 한 사람은 환자의 손을 꼭 잡고 이야기를 했고, 한 사람은 그냥 이야기를 했습니다. 똑 같은 10분 동안 대화를 했습니다. 나중에 환자에게 ‘문안 온 사람이 몇 분 동안 대화를 한 것 같으냐’고 물었을 때 손을 잡지 않은 환자는 10분이라고 대답을 했고, 손을 잡은 환자는 20분이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병든 자, 외로운 자, 절망 가운데 있는 자들은 만져주는 것이 이렇게 좋다는 뜻입니다. 심리학에서 이것을 ‘터지 치료법’이라고 합니다. 손을 잡는다든지 몸을 만져주므로 마음의 상처를 치료합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얼마든지 육체의 병을 고쳐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손을 대시므로 나병환자의 마음의 병, 고독의 상처까지 치료해 주신 것입니다. 주님이 만져 주실 때 그의 아픈 고통과 외롭고 절망적인 그의 마음을 만지시는 것입니다. 마음을 치료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육체의 아픔과 마음의 외로움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도 주님 앞에 나아와 겸손하게 고백하십시오.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그리할 때 주님 내 아픔의 현장으로 내려오셔서 내 아픈 영혼을 어루만져 주시며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는 주님의 음성과 함께 고쳐 주실 것입니다. 주께서 손을 대시며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는 말씀과 함께 여러분의 고통과 외로움을 고쳐 주시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