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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하나 스크랩 [아프리카] 뒤죽박죽 이집트 여행 7(룩소르 & 카르나크 신전)
┏☆뜀도령™☆┛ 추천 0 조회 139 08.01.22 13:5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뒤죽박죽 이집트 여행 7(룩소르 & 카르나크 신전)

 

 역시나 대절했던 버스와 또한번의 요금 전쟁을 치른후 룩소르에 도착했다. 여행 시작후 처음으로 제대로된 숙박시설을 만났다는 기쁨에 얼른 들어가서 샤워하고 싶었지만 외국에 가면 늘 여권 보여줘야하고 이것저것 처리하다보면 시간이 약간 걸리기 마련이지만 또한번 끝내주는 기다림을 만나게 된다. 이건 순전히 산수 교육문제인것 같다.

 

2007.12.30 12:13  New Phililppe Hotel

 

 요거이 호텔 정문 모습이다.

 

 차마 얼굴은 찍을수 없었다. 개인명예 문제이므로

(뭐, 이렇게 글로 남기는것도 문제가 되겠지만 어쩔수 없다)...

 

여행전 코 형이 미국달러 1달러짜리를 잔뜩 요구했다. 사전 정보에 입각해서였는데 현지에서는 이집트파운만을 요구하는 일이 카이로에서 발생했고해서 이곳에서 만만찮은 무게를 느끼게 했던 1달러짜리를 마구 풀어버렸다. 호텔비가 얼마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1달러짜리 180여장과 10달러짜리, 20달러짜리 등을 주면서 셈을 하라고 했더니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울상이다. 뭐, 그래도 열심히 달러의 숫자를 확인하길래 그런가보다 했는데 시간이 흘러도 흘러도 계산을 못한다...한참 시간이 흐른후 성격 급하신 코렐리 형이 1달러짜리 20장씩 묶음으로 만들어서 계산을 도와줬다(요거이 우리가 짐 정리와 샤워를 마친 1시간 후인지 헷갈리지만서도...). 이건 초등학생들도 셀수있음인데 자기 스스로 대단히 피곤하다는 이야기를 한다...이런 된장맞을,,,어쨌든 믿으란 말과 함께 체크 인을 했다....

 

그리고 약 1시간후 내가 잠깐 밖에 나갔는데 이 언니는 아직도 달러를 들고 계산중이시다. 에공, 보는 입장에서 괜히 미안한 마음도 들고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코 형이랑 나오면서 달러를 확인해주었던가? 에라잇, 모르겠다. 이건 코 형이 꼬리말 달아주겠지.

이것이 끝이 아니다. 나보다 한참뒤 아마도 또 시간이 흐른후 진솔이가 이 모양을 보았나보다. 도대체 언제까지 계산할건지...그후 1달러가 모자란다고 해서 코 형이 돈 계산을 해주었나보다...

 

어쨌든 대한민국의 계산 속도는 짱이다!

 

 

  호텔 내부와 뜀도령(샤워후 야시시 사진 개인검열 후  삭제함)

 

 

[여행전 찾은 정보에서는...]

 

룩소르 (이집트 도시)  [Luxor, 우크수르]

 

el-Aksur, al-Uqṣur라고도 함.

이집트 상이집트 지방 키나 주에 있는 상업도시.

고대 이집트 도시인 테베유적지의 남부지역에 붙여진 이름이다(→ 테베).

 

고대유적

테베 남부는 '아몬 대신전(大神殿)'을 중심으로 성장했다(→ 아몬 레 신전). 아랍어로 알우크수르인 지금의 이름은 '궁궐'을 뜻하지만 로마의 '카스트라'(castra:당시의 유적이 인근에서 발굴되고 있음)에서 유래한 것일 가능성도 있다. 제18왕조 말기 아멘호테프 3세(BC 1390~53 재위)는 나일 강 가까이 있는 이곳에 강둑을 따라 아름다운 신전을 지어 이집트의 주신(主神) 아몬과 여신 무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콘스에게 바쳤다.

 

 제18왕조(그 이전은 아닐지라도)에 일찍이 그곳에 신전이 있었겠지만, 그곳에 먼저 있던 건축물 중 남아 있는 것은 작은 부속건물뿐이다. 아멘호테프 3세의 아몬 대신전은 투탄카멘과 호렘헤브가 완성했고, 람세스 2세가 증축했으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시대에 이를 좀더 증축했다. 이 신전의 다주식(多柱式) 강당은 한때 그리스도교 교회로 쓰이기도 했으며 신전의 서쪽으로는 콥트 교회 유적지도 찾아볼 수 있다.

 

 원래 아몬 대신전은 주랑(柱廊)으로 둘러싸인 큰 중정(中庭)과 그 너머 여러 개의 강당 및 작은 방들로 되어 있으며 한 강당에 화강암으로 된 알렉산더 대왕의 사당이 있다. 기둥이 늘어선 큰 복도의 3면을 멋진 파피루스 다발 기둥이 2줄로 둘러싸고 있는데, 그 기둥머리는 산형화(繖形花) 모양의 파피루스 꽃봉오리를 본 딴 것이다. 북쪽 끝에 탑문(塔門)들로 둘러싸인 출입구를 세우려고 했으나 그대신 높이 16m의 기둥 14개가 늘어선 웅장한 주랑을 증축했는데, 이 주랑은 신전의 가장 뛰어난 구조물이며 이 기둥머리 역시 파피루스 산형화 모양이다. 이 주랑은 카나크에 있는 것과 비슷한, 기둥이 많은 강당의 중앙 회중석(會衆席)을 만들려던 것일 수도 있으나 측면복도가 없고 양쪽 아래를 벽이 둘러싸고 있다. 람세스 2세는 바깥뜰을 증축했는데 2열 주랑의 각 기둥 사이에 거대한 자신의 동상들을 만들고, 축제와 시리아 전쟁 장면을 조각한 높은 탑을 세웠다. 이 탑 앞에 거대한 파라오 상들과 1쌍의 방첨탑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아직도 남아 있으나 다른 하나는 1831년 파리 콩코드 광장으로 옮겼다.

 

 신전의 앞뜰에는 이 지방 이슬람교 성자인 셰이크 유수프 알하가그의 이슬람 사원이 있는데 이 성자의 축제에는 '오르페 신의 아름다운 축제'라는 고대 의식을 흉내 내어 배로 행진을 한다. 2월 19일에 갖는 이 축제중에 아몬 신이 카나크로부터 크고 아름다운 배를 타고 축제 복장을 한 테베 사람들의 시중을 받으며 룩소르에 있는 다른 신전을 찾아온다고 한다. 대(大) 주랑 벽의 부조(浮彫)는 이 축제에서 신성한 항해 행진을 준비하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펌 출처:다음백과사전]

 

 

 

호텔 언니들 때문에 한참을 웃었다. 우린 거리로 나와서 룩소르 박물관을 거쳐서 카르나크 신전으로 걸어갔다. 약간의 휴식과 웃음때문인지 의외로 힘이났다.

 

 관광객들을 태우기 위해서 줄지어선 마차들...

(보기엔 좋지만 말도 불쌍해지기 마련이고 마부들은 사기꾼으로 관광객에게 인식되어져버린다)

 

해안가가 아닌 나일강변이다. 흐릿한 날씨와 먼지만 없었다면 달리기에 딱좋은 코스였으리라.

강 건너편은 무엇일까 생각만 했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암굴분묘군이었다...쯧쯧

 

 무난히 잘 찾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2007.12.30 15:40

 

카르나크 신전(Temple of Karnak)

 

카르낙 신전은 룩소르 신전에서 3km가량 북쪽에 떨어진 곳에 있다. 그래서 강변로를 따라 약 20분 간 마차를 타고 가는데 더운 날씨에도 강바람을 안고 달리는 터라  시원하고 강변의 경치가 그만이다.

 룩소르 신전이 나일강을 따라 길이로 배치된 것과 달리 카르낙 신전은 직각으로 앉았다. 그래서 마차에서 내리면 바로 참배길을 앞에 두고 제1탑문을 바라볼 수 있었다. 당초에는 왕이 멤피스 왕궁에서 배를 타고 가르낙 선착장에 내려 계단을 올라가 참배 길을 통해 신전으로 바로 입장하게 되어 있었다. 강변 선착장에서부터 제1탑문 광장까지 스핑크스 참배 길이었음이 분명하다.

카르낙 신전은 수도 테베에서 '아몬 라'를 모시는 신전들 가운데세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크다. 이탈리아의 베드로 성당, 밀라노 성당, 그리고 프랑스의 노토르담 성당이 한꺼번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니 그 넓이를 짐작할 만하다. 뿐만 아니라 남쪽의 콘수 신전, 북쪽의 몬투(전쟁의 신) 신전과 단지( 團地 )를 이루고 있으니 그 일대는 엄청난 규모의 살아 있는 지상 최대의 노천 대박물관이라 할 수 있다.

 

[펌 출처] 이봉규「이집트 피라미드기행」 중에서

 

#일단 거대함에 놀라게 된다. 그러나 부조등에 관해서는 정교함이 많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고 이 거대한 돌땡이들을 어떻게 운반했으며 만들었을까가 궁금해지기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지금부터 많은(?) 사진들이 있다.

좀더 기억에 남게하기 위해서 여행전 펌 해온 글을 활용하자구

 

 세.간.다에는 20L.E.로 나왔는데 우린 사진처럼 50L.E를 줬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현지물가에 비해 지나치게 비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건 어느나라를 가도 비슷한듯하고 비싸다고 안볼수는 없으니..

 

 멀리서 바라본 카르나크 신전 입구...

검색대가 보이누만

 

 내가 왔다는 증거로 사진 한 번 찍어주고...

 

 카르나크 신전보다 더 소중한 나를 위주로도 한 번 더 찍어주고...

 

양쪽으로 도열한 40개의 스핑크스 뒤로 카르나크 신전 제1탑문이 있음이다.

 

양의 머리에 사자의 몸통을  가진 왼쪽편의 스핑크스

 

양의 머리에 사자의 몸통을 가진 오른쪽편의 스핑크스

 

카르나크 신전의 정문인 제1탑문은 점토를 구워 만든 큰 규격의 벽돌을 쌓았고 상형문자와 벽화가 희미한 양각부조로 가득찼다는데 왜 난 기억에 없는겨... (아마도 뒷쪽은 2탑문인듯)

 

  

 람세스 2세 입상

 

 

  

 오벨리스크다.

 

 

 

 

 

 

 

 

 

 

 

 

 

 

 

 

 

[카르나크 신전에 관해서 퍼 온 글들]

 

태양신 AMUN 신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MUT 신전, MONTU 신전,KHONSU 신전 등 LUXOR의 수호신들을 모신 신전들이 기본 신전들로 배치되어 있으며,TUTHMOSIS 3세의 신전,AMENHOTEP 2세 및 3세의 신전,RAMESES 3세의 신전 등 다수의 소규모 신전들도 복합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고대 이집트 중왕국 시대의 제 12왕조(BC 20세기)때부터 건축되기 시작하여 프톨레미 왕가(BC 1세기)에 이르기까지 약 2000년에 걸쳐 계속 증축되어 왔으나,기본 구조는 제 1 탑문(PYLON)이 건설된 제 25왕조(BC 7세기)때 완성된 것으로 알려진다. 전체 신전 배치는 남북으로 되어 있으나,AMUN 신전은 동서로 배치 되어 있으며 전체 신전 규모는 남북으로 2km,동서로 500 - 600m 정도 크기이다.

 

 AMUN 신전 제 1 탑문(정문) 앞 입구에는 양의 머리에 사자의 몸통을 가진 스핑크스들이 도열한 스핑크스 대로가 남쪽으로 약 2km 떨어진 룩소르 신전 입구까지 연결된다. AMUN 신전의 제 1 탑문을 지나면 22왕조때 건축된 대광장(GREAT COURT)이 나온다. 넓이가 약 8,650평방미터에 달하는 대광장의 북쪽에는 AMUN신,MUT신,KHONSU신의 성스러운 배를 모셔두었던 SETI 2세의 신전이 있고,대광장의 남쪽에는 RAMESES 3세의 신전이 있다. 대광장을 지나면 제 2 탑문 앞에 붉은 화강암으로 조각된 RAMESES 2세의 석상을 볼 수 있다. 제 2 탑문은 18왕조의 마지막 파라오인 호렘헵이 건축을 시작하여 19왕조 RAMESES 2세때 완성되었다.

 

제 2 탑문을 지나면 열주전(GREAT HYPOSTYLE HALL)이 나오는데 그 넓이는 5,356평방미터로서 로마의 성베드로 성당과 런던의 성바울성당의 크기를 합친 것과 같다고 한다. 이 열주전은 134개의 기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중앙 12개(좌우 6개씩) 기둥은 아멘호텝 3세가 건축하였으며 외곽의 파피루스 모양의 122개 기둥들은 세티 1세가 건축하기 시작하여 람세스 2세때 완공되었다. 가운데 12개 기둥과 외곽의 122개 기둥간의 높이 차이를 이용하여 햇살을 받아들이는 창문을 천장에 건축하였다. 고대에 기둥을 채색한 흔적이 아직도 기둥 윗부분에 약간씩 남이 있다.


제 3 탑문은 아멘호텝 3세때 건축되었으며,제 4 탑문은 툿투모세 1세때 건축된 것을 세티 2세가 복원하였다. 제 3 탑문과 제 4 탑문 사이에는 작은 광장(SMALL COURT)이 위치하며,동 광장에는 툿투모스 1세의 OBELISK가 있다.(높이 23미터,무게 143톤) 제 4 탑문 안쪽에는 핫셉슈트 여왕의 OBELISK가 있다.(높이 27.5미터,무게 320톤) 툿투모세 1세와 3세가 건설한 제 5 탑문과 제 6 탑문을 지나면 태양신 AMUN의 지성소에 도달한다.


지성소는 동쪽과 서쪽으로 개방되어 일출과 일몰 때 햇살이 AMUN신의 지성소를 비출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지성소는 2중 구조로 되어 있는데 외실은 툿투모세 3세가 건축한 것이며 내실은 기원전 3년경 프톨레미스 왕조가 건설하였다. 지성소 남쪽에는 제사장들이 종교의식을 행하기 전 목욕 재개하던 성스러운 호수가 있고,성스러운 호수 입구에는 고대 이 집트에서 신성한 동물로 여겨졌던 딱정벌레(SCARAB)의 석상이 있다. 호수 입구쪽에 핫셉슈트 여왕의 누워있는 OBELISK가 있다.

 

[펌 출처]까먹음

 

룩소 카르낙 신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가장 오래동안 지어진, 가장 큰 신을 위한 신전이다.BC2000- BC330년 1700년 동안 이집트 주신 아몬-라 신을 위하여 당시 모든 파라오는 이 신전에 정성을 다 하였다.신전의 입구에는 람세스2세가 만든 양머리 ( 아툼)의 스핑크스 42개 상이 있다. 예전에는 스핑크스상이 카르낙 대신전까지 2열로 연결되어 있었다고 한다. 룩소의  첫 탑문을 마주서면 람세스의 좌상이 거대한 오벨리스크와 함께 있다. 원래는 이곳에는 람세스의 입상과 좌상이 모두 6개가 있었지만 이제 남아 있는 것은 고작 2개이다. 람세스 동상과 더불어 탑문을 지키는 오벨리스크 역시 2개였지만 이집트의 마지막 왕조였던 무하마드 알리 왕조의 무하마드 알리 왕이 1883년 프랑스의 필립 루이 황제에게 오벨리스크 하나를 선물해 지금 현재는 프랑스 파리의 중심지인 콩코드 광장에 하나가 서 있다.  BC370년 경 만들어진 제 1 탑문(넥타네보1세 건립), 탑문의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오픈 코트, 이동식 스핑크스, 신전을 건축 할 때 사용한 흑 벽돌 더미, 람세스3세 오시리스 신전, 제 2탑문 안쪽의 134개의 열주기둥 홀( 세티1세 + 람세스2세 건축 함), 투트모스 1세 그리고 합셉수트 여왕 의 29.50m 의 오벨리스크,알렉산더 이복 동생인 필립이 만든 지성소, 투트모스3세의 쥬빌리 홀, 신성한 호수, 스카라비 상 등이 있고, 신전 안에 아몬-라신의 부인인 MUT 여신의 신전과 달(MOON)의 신 콘슈의 신전이 같이 포함되어 있다.

 아몬 무트 콘슈는 룩소의 홀리 페밀리(holy family)라 부른다.카르낙 신전의 걸작은 134개의 열주 홀( 하이포스타일 홀)이 압권이다.24m 파피루스가 핀 모양의 본 기둥 12개와 19m높이의 파피루스가 피지않는 모습의 기둥 122개 기둥이 빽빽하게 서 있다. 각 기둥에는 람세스2세가 아몬 민 & 아몬 라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조각이 되어있고, 각 기둥에는 화려한 채색이 남아있다. 카르낙 신전은 거대한 면적에 세워져 있는 신전인데 1.8 킬로미터에 달하는 길이에 너비도 800미터에 이를 정도인데다 10개가 넘는 신전이 안에 있다. 특히 이 신전이 유명한 이유는 람세스 2세뿐만 아니라 중왕국 시대와 신왕국 시대의 역대 파라오들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기존에 세워진 신전에 다시 다른 신전을 이어 붙이는 식의 건축을 진행한 까닭에 규모 자체도 커지고 신전 안의 구조도 대단히 복잡한 구조로 이뤄져 있다. 그런 카르낙 대신전 역시 시작은 스핑크스 거리로부터. 하지만 이곳의 스핑크스는 양의 머리를 하고 있다.  제 1탑문을 지나면 이 지방 최고의 신이었던 아문 신을 위한 아문 대신전이 나온다. 좌우로는 아문의 아내와 아들이었던 무트 여신과 콘수 신을 위한 사당이 나오고 그 다음은 최대 23미터부터 15미터에 이르는 높이에 지름이 3미터에 이르는 기둥들이 134개나 늘어 선 대열주실이 있다.  이어 람세스 3세의 거상이 나타나고, 람세스 3세 신전(제 20왕조), 대 히포스타일 홀(제 19왕조), 투스모스 3세의 주빌레 신전(축제의 홀)등이 계속해서 웅장한 모습으로 이어진다. 투토몬스 3세 신전은 탑문과 신전이 있다, 투토몬스 3세의 어머니이자 이집트가 손꼽는 3대 여걸 파라오 중의 하나였던 하트세프수트 여왕이 지었다는 오벨리스크 등이 나오고 신전의 최고 핵심인 지성소가 나온다. 그 뒤로는 넓게 자리를 잡고 있는 중앙 코트. 그리고 이곳을 하트세프수트와 그의 아들이 빙 둘러 세운 벽이 나온다.  이 벽 한쪽에는 하트세프수트 여

왕의 치세에 대한 내용이 다른 한편에는 그의 아들이었던 투트몬스 3세가 남긴 글이 있다

 

 

#카르낙 신전을 나오니 석양이 지고 있었다. 사진 기술이 있었다면 멋진 모습을 남길수 있었을텐데란 아쉬움도 있었지만 어느듯 배고픔이 밀려들었고 우린 민생고를 해결하기 위해서 떠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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