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락없는 반전이었다. 8일 주말 드라마 ‘전설의 마녀’(MBC)가 종영하자 시청자들은 한목소리로 조연이었던 김수미(66)를 치켜세웠다. 그는 극 초반 카메오로 출연했다가 네티즌의 청원으로 40부작 고정 출연자가 됐다. 주연 배우를 압도하는 신들린 코미디 연기로 마지막회 시청률을 30%(닐슨 코리아)까지 견인했다. 거침없이 욕설을 내뱉던 재소자 할머니가 복권에 당첨된 후 귀부인으로 변신해 천역덕스럽게 사기를 치는데 시청자들은 자지러졌다. 때마침 그가 단독 주연한 영화 ‘헬머니’도 개봉했다. 국민 욕쟁이라는 김수미의 독보적인 캐릭터를 그대로 가져온 영화다. 10대들에게 ‘갓(God)수미’로 통하는 그에게 요즘 인기를 실감하는지 물었다.
“지금이 전성기인 것 같아요. 인터넷 댓글을 자주 보는데 10~20대 팬들이 많더라고. ‘전설의 마녀’ 속 김영옥이란 인물이 푼수에 주책 같지만 속시원한 성격이잖아요. 거기에 열광하는 것 같아. 감독님과 합이 잘 맞았어요. 애드리브를 100% 살려줬거든.”
- 교도소에서 부른 ‘젠틀맨이다~’는 유행어가 됐어요.
“어렸을 때 아버지가 술 드시면 불렀던 노래예요. ‘시계 차고 가는 너, 너만 잘났냐. 수갑 차고 가는 나, 나도 잘났다. 젠젠젠 젠틀맨이다’라는 가사는 현장에서 순간적으로 나왔어요. 소시민들의 한을 표현한 거지.”
- 대사가 어떻게 순간순간 떠오르세요.
“무당 신끼라고 해야 하나. 내가 영어·수학은 맨날 빵점 맞았어도 순발력은 있었어요. 선생님이 공부 안 하냐고 하면 ‘저는요. 다른 걸로 돈 많이 벌어서 수학하는 비서, 영어하는 비서 둘 거예요’ 그랬다니까(웃음).”
김수미의 순발력은 영화 ‘헬머니’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공교롭게도 재소자 출신이란 설정이 드라마와 겹친다. 감옥에서 15년 복역한 80대 욕쟁이 할머니를 연기하며 차지고 정겨운 욕 보따리를 풀어놨다. 아들의 빚을 갚기 위해 욕 배틀 프로그램에 출전한 그는 고등학생 일진, 힙합 래퍼, 지하철 막말녀 등 욕 고수들을 한 명씩 쓰러트린다.
- 어떻게 욕을 그리 후련하게 하세요.
“전라도 사람이라 그래. 내가 군산 사람인데 목포·여수까지 바닷가 사람들이 드세거든. 나도 말귀를 알아들을 때부터 엄마 욕을 들어 자연스러워요. 내 욕이 거부감이 없는 건 내가 몇십 년 동안 했던 언어거든. 나도 친한 사람들한테 농담으로 욕을 해요. 내가 욕을 하면 그건 친하다는 증거야.”
-‘헬머니’에서 욕은 서민들의 한풀이 같아요.
“맞아요. 우리가 앞만 보고 달려왔잖아요. 분노가 극에 달했어. 이번 작품에선 노인 문제도 그렇고 억울한 사람들의 속풀이를 해드리고 싶었어요.”
- 여배우로서 욕 연기가 부담스럽진 않은지.
“사람들이 거칠게 보는 면은 있지. 그런데 배우는 상품이니까. 작은 돌멩이도 다 모양이 다른데 나 같은 상품도 있어야지. 나는 좋아요. ‘국민 욕쟁이’라고 하는데 그래도 ‘국민’이 앞에 붙잖아.”
1970년 방송국 탤런트 공채로 데뷔한 김수미는 올해 데뷔 45주년을 맞는다. 그의 배우 인생은 롤러코스터나 다름 없었다. ‘전원일기’(1980~2002, MBC)의 일용엄니로 전국민적 사랑을 받았지만 98년 시어머니를 사고로 잃고 한동안 침체기를 겪었다. 영화 ‘오! 해피데이’(2003)에서 욕쟁이 고깃집 사장으로 재기에 성공한 뒤 ‘가문의 위기-가문의 영광2’(2005), TV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MBC) 등에 출연하며 코미디 배우로 각광 받았다. 천진난만한 치매 노인으로 분한 ‘그대를 사랑합니다’(2011)에서 정극 연기도 훌륭히 소화하며 그해 청룡영화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살아보니 희(喜)보다 노(怒)가 많은 것 같아요. 희는 자꾸 잊어버리고 고통스러울 때를 생각하게 되잖아요. 그런 풍파를 겪은 것이 연기에도 묻어나는 것 같아요. 나는 젊은 사람보다 더 열심히 일해요. 후배들이 ‘늙어서 대사 못 외우는 거 아니냐’고 할까봐. 노배우의 열등감이자 자존심이지. ‘유리하다고 교만하지 말고, 불리하다고 비굴하지 말고 형편이 잘 풀릴 때 조심해라.’ 내 좌우명이야.”
김효은 기자 <hyoeun@joongang.co.kr>
[영상 http://youtu.be/NXnucA2eoVI]